#666
1.
기묘한 구도였다.
기모노를 풀어헤치고 하얀 팬티를 엉밑살 바로 아래까지 내린 린네.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런 린네를 바라보는 도로시.
“…….”
“…….”
-쓰윽
린네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 팬티를 올린다.
도로시는 시우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 관계도 아니라며!’라는 무언의 항의가 서릿발처럼 꽂힌다.
그 와중에도 린네에게 동요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말이다.
너무 빠르지도 않게, 그러나 느긋하지도 않게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린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로시, 네가 여기 왜 있지?”
방금까지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내비치던 사람이 아무리 진지하게 말해도 웃기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이 희극을 웃으며 관람하기엔 이리저리 얽힌 것이 많다.
“베겠다.”
제 영역을 침범당한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며 검을 뽑으려는 린네.
시우는 다급히 그녀를 붙잡으며 만류했다.
“스승님.”
도로시도 린네도 오해 중이지만 먼저 이해시켜야 할 사람은 린네 쪽이다.
적어도 도로시는 이 오해로 유혈사태를 일으키진 않을 테니까.
말하는 걸 보아하니 도로시를 만났던 기억까지 말소된 모양이니, 시우는 처음부터 상황을 설명했다.
“도로시 님이 안 계셨더라면 상황이 더 골치 아파졌을 겁니다. 게다가 스승님이 정신을 잃으신 동안도 도와주셨어요.”
“맞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보디가드 역할을 해줬는데.”
아무리 린네가 있다 해도 인사불성이 된 그녀를 업고 승강기에 향하기까지 아무런 트러블이 없던 데엔 도로시의 존재가 컸다.
“…….”
충분한 설명이 되었는지 집어들었던 검을 놓는 린네였으나.
“미안미안~ 좋은 시간 방해해서 화났구나? 비켜줄게.”
도로시가 잠잠해지려던 화로에 기름을 끼얹었다.
린네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조금 전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린네는 편린도 남아있지 않았다.
엄지로 납도 된 검을 밀고 허리를 틈과 동시에 검을 뽑는다.
웅장한 마력의 진동과 함께 나선을 반월을 그리는 참격.
손속도 없이 흉맹하게 휘둘러진 검이 말릴 새도 없이 도로시의 목에 작렬했다.
-쾅!
기습이나 다름없는 발도에 도로시의 목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얗게 빛나는 도로시의 검이 린네의 일격을 막아 세웠으니 말이다.
절대력이 더해진 도로시의 검은 그토록 흉맹한 린네의 일격을 받아내고도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부끄러워하는 거 아니야?”
“죽이겠다.”
도로시가 능글능글한 말투로 도발과 짓씹는 듯한 린네의 엄포.
각기 22 위계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들.
둘의 교전을 감상할 수 있다면 이만한 눈 호강이 없을 테지만….
“왜들 이러십니까! 진정하세요!”
시우는 가까스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설령 도로시가 승리한다고 해도 전투가 엄격히 금지된 헥센나흐트에서 마력의 진동이 펑펑 터져나간다면 이목을 끌 것이고, 이후엔 탈출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린네가 승리한다면 르뤼에의 이모나 다름없는 도로시가 죽게 된다.
여기서 누가 다치건 곤란해지는 사람은 시우라는 의미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도로시가 왜 굳이 시비를 걸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따름.
…아니다.
원래 이런 누님이긴 했지.
“비켜라.”
“아이고! 스승님! 싸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도로시 님도 물러서세요! 그냥 조용히 좀 가시지!”
“난 모욕엔 죽음으로 답한다.”
“네가 하려는 건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거지. 그 자리에서 란다 목을 똑 떼어 버리려고 했던 것도 잊어버렸니? 그랬다면 아무리 너라도 그냥은 못 넘어갔을걸?”
“…….”
도로시의 능청에 린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번엔 피곤해서라기보단 분을 삭이기 위함으로 보였다.
“후….”
그 린네가 한숨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이야.
도로시의 턱밑까지 들이밀어 졌던 검날이 빨려 들어가듯 검집으로 회수된다.
술이 확 깼는지 제법 또렷하게 정신을 되찾은 린네가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그래그래~ 지금 미리 빚을 갚아두는 게 너도 마음 편하겠지?”
“…….”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긍정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찌됐건 린네가 그 자리에서 자제력을 상실했던 건 사실.
일이 복잡하게 꼬이지 않게 도로시가 중간 단계에서 수습해준 것도 사실이다.
둘이 아무런 대가 없이 정을 주고 받는 살가운 친구 관계가 아니니 린네로서도 빚을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도로시의 시선이 시우를 향한다.
그 짧은 사이에 경악을 갈무리한 도로시의 은빛 눈동자엔 욕망과 탐욕이 흐르고 있다.
연기임을 알고 있는 시우조차 속아 넘어갈 완벽한 가장이었다.
“이 남자 마녀를 조사하게 해줄래?”
“욕심이 과하다.”
“대신 오늘 봤던 것도 기억에서 지워버릴게.”
린네의 손을 주목하던 시우는 그녀의 검지가 움찔 떨리는 걸 보았다.
다행히 검을 뽑는 불상사까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전에 도로시의 청산유수 같은 설득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당연하지만 네 사유재산이니까 이곳에서 조사해보도록 할게. 영구적인 손상이나 장애가 생길만한 실험은 안 할 거고~ 기한은 이틀로. 어때?”
“거절하겠다.”
“그렇다면~ 별수 없네.”
“…….”
일단은 같은 편이라 도로시를 응원하고 있지만, 수법이 상당히 악질이었다.
거래를 거절할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대방의 상상에 맡기며 넘어간다.
완곡한 협박으로 이의제기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함과 동시에 이 거래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겉으로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오늘 약재 상점에서도 그랬고, 도로시에게 보인 반응을 봐도 그렇고.
린네는 분명 시우와의 관계를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있다.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 들키는 것조차 부끄러워하고 있다.
도로시는 그 짧은 사이에 린네의 심리를 간파하고 과하다 싶은 요구를 협박과 곁들인 것이다.
이미 여러 번 해 본 것 같은 능숙함에 감탄하는 사이.
“너무 심각하게 굴지 마~ 그렇게 어려운 걸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었어.”
도로시는 낚시를 하듯 린네의 입에 걸린 줄을 슬며시 풀어주었다.
“무슨 실험이지?”
“남자 마녀를 보는 건 처음인데 당연히 구미가 돋지 않겠어? 당연히 네가 하려던 걸 해봐야지.”
시우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오랜만에 만나데다가 기회를 잡았으니 회포를 풀고 싶은 도로시의 심정은 알겠다.
허나 그건 NG다.
여태 마력 증폭을 감추려고 열심히 똥꼬보지에 정액을 버려왔는데 갑자기 ‘섹스하겠다’고 선언하다니.
린네가 눈치채지 못하게 뒤에서 열심히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정작 도로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때? 별로 안 어렵지?”
“…좋다.”
“스승님, 저는 이 분이랑 하고 싶지 않은데요.”
역시 시우의 의사 따윈 관계없이 진행된 합의에 소심하게 이의를 제기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네 책임도 있다. 스스로 책임져라.”
억울했다.
그 시점에서 훌렁훌렁 벗을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래, 남자라면 자기 행동에 책임져야지.”
도로시마저 속없이 시우를 골려대는 와중 린네가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조건이 있다.”
“조건?”
“관계 중 주도권을 이 녀석에게 넘겨라.”
“그게 무슨 말이야?”
“그의 취향을 수용하겠다 약속하면 네 요구도 수용하지.”
린네의 옆 얼굴을 보았다.
완벽한 포커페이스지만 시우가 모르던 린네의 일면이었다.
시우는 일전 린네에게 마력 증폭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과격한 취향을 밝혔던 적이 있다.
아마 엉덩이 구멍에 쑤컹쑤컹하면서 노예 취급하는 게 취향이라고 했었지.
즉, 린네가 도로시에게 굳이 저런 조건을 거는 이유는 하나.
도로시를 엿먹이기 위함이었다.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는 음흉한 덫이 아닐 수 없었다.
“흐음~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여태 딱히 시선을 던지지 않던 도로시는 생글생글 웃으며 위아래로 시우를 훑었다.
2.
거래가 이뤄진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도로시와 시우에게 객실 하나와 푹신한 솜이불 한 채가 주어졌다.
린네의 예상과 달리 도로시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고,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하나, 침대 위에서 시우가 꽤 난폭하며, 린네가 요상한 조항을 덧붙인 건 도로시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기 위함이라는 것.
둘, 신시우는 아마 사정시 낙인에 벌어지는 작용을 숨기고 있다는 것.
셋, 위의 이유에서 추론하자면 그는 이제껏 린네 뒤로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 까지.
그렇다면 도로시가 할일은 간단해진다.
그와 마음껏 뒤로 섹스하면 되는 것이다.
모처럼의 만남이라면 이런 배덕감 넘치고 짜릿한 관계가 가지고 싶었다.
그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위험한 요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탈선이 발생해도 바로잡을 자신이 있었고 말이다.
“자자, 빨리 벗으렴~”
기대감에 잔뜩 부푼 도로시와 달리 시우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도로시를 엿먹이기로 작정한 린네가 이 방의 동향을 살피고 있을 건 뻔하니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눈빛만 본다면 ‘왜 일을 이렇게 꼽니까?’라는 불만 어린 텍스트가 점멸하고 있다.
“어휴, 알겠습니다.”
도로시에게 불만을 표하는게 의미 없음을 깨닫고 옷을 벗어 던지는 시우.
“엄~청 기대된다.”
골반을 살랑살랑 흔드는 요상한 춤을 추며 싱글벙글 중인 도로시.
“…….”
얇디얇은 창호 문을 사이에 둔 옆방에서, 자료 수집과 도로시가 곤궁에 처하는 모습을 구경하려는 린네.
기묘한 성관계 쇼가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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