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
1.
소소한 해프닝이 끝나고 린네가 기다리고 있을 2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에서 일어난 소란 탓에 벌써 마녀 몇몇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역시 린네는 린네다.
소파에 바른 자세로 앉은 채 주위 어느 곳으로도 시선을 주지 않고 있다.
근처로 다가가자 얇은 막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났다.
역장 마법 중 가장 기초.
외부 소음을 차단함과 동시에 안쪽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방지하는 차음막이다.
“가져왔습니다. 이건 거스름돈이요.”
린네의 앞에 모스크 뮬을 내려놓고 앉고 목을 축였다.
라임 주스의 상큼한 산미 뒤로 진저비어의 강렬한 생강 향이 코를 톡 쏜다.
시답잖은 드잡이 탓에 텁텁했던 목이 시원해진다.
“후우, 살 것 같네.”
과연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갈만하다.
자연스럽게 창틀 쪽에 팔을 기대며 힐끗 선착장 뷰를 바라보았다.
깎아낸 듯한 절벽 아래로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와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화물선.
절벽 위에는 거대한 크레인처럼 생긴 기계 장치가 화물선에서 화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보더 타운과 달리 마땅히 배를 정박할 곳이 없으니 해상에서 곧장 수직으로 화물을 인양하는 것이다.
바다 테두리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문의 흐름을 읽은 시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우가 아는 한 문은 굉장히 정교하고 복잡한 마법이다.
또한 듣기로 헥센나흐트는 공적들이 모여 만든 도시라 들었다.
하지만 헥센나흐트의 ‘문’은 그저 흉내 낸 수준에 그친 마법이 아니었다.
그 정교함, 그 정밀함, 그 위대함.
모두 보더타운의 ‘문’과 비교해도 손색이 전혀 없다.
문의 기술이 완벽히 유출되었거나, 혹은 케테르가 직접 만들어주고 갔다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애석하게도 너무 밖만 보고 있을 수 없다.
일단 포로로 잡혀 온 남자가 탈출구만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린네를 의식해 시선을 바로 하자....
“…….”
물끄러미 잔을 바라보는 린네가 보였다.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누가보면 독이라도 탄 줄 알겠다.
“안 드시나요?”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 네가 멋대로 사온 것이지.”
“그건 그렇죠. 그래도 어떻게 저 혼자 마시겠습니까.”
린네 것까지 사온 건 어디까지나 시우가 멋대로 결정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준 돈으로 말이다.
조금 더 진솔한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녀와 대화를 최대한 오래 끌어 문을 살피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순전히 시우의 편의를 위해 사온 것이었지만….
좋은 변명거리가 있다.
“일단 데이트 중이잖아요. 오늘 목적을 잊으신 건 아니죠?”
“…….”
“티페레트가 강해진 비법을 알고 싶다 하셨잖아요. 서로 노력해야죠.”
린네 행동 방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린네의 손가락이 꿈틀 움직인다.
마지못해 차가운 구리 잔을 잡더니 살짝 마시고 내려놓는 린네.
“꽤 맛있죠?”
“나는 맛을 느끼지 못한다.”
대화다운 대화가 시작된 첫걸음부터 반응하기 곤란한 대답이 나왔다.
‘아, 그건 몰랐네요.’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무심하게 반응하는 것 같고.
‘배려하지 못해서 죄송해요.’라고 하기엔 과잉 응대같고….
“향은 좋다.”
다행히 말을 이어준 린네 덕에 지독한 침묵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봐라.
당장에 중요한 건 아닐지라도 술을 앞두고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린네가 미맹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어?”
맛을 느끼지 못한다…. 맛을 느끼지 못한 다라….
린네의 대답을 곱씹던 시우는 손끝에 거스러미처럼 마음에 걸리는 걸 느꼈다.
느끼지 못한다?
“스승님, 실례지만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해라.”
“혹시…. 다른 감각도 둔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게 있나요?”
다소간의 실례를 무릅쓴 질문이었다.
퍼득 떠오른 한가지 가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우가 밤새 아무리 용을 써도 조금도 반응이 없던 린네.
그리고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린네.
두 가지 요소가 맞물려 나온 것은 ‘혹시 린네가 무감각증이 아닐까?’하는 가설이다.
“있다.”
린네는 과묵하다.
필요없는 질문이라 판단하면 묵살하고 특히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어떤 바람이 분 것인지 순순히 답변이 나왔다.
“따뜻함도, 차가움도.”
그것도 꽤나 줄줄이.
“쾌락도, 식욕도, 성욕도, 수면욕을 비롯 욕망도 느끼지 못한다.”
푸념과 한탄이라기엔 무미건조한 말이었다.
기껏해야 성감대정도를 물었던 시우가 머쓱해질만큼이나 말이다.
“크흠, 힘드시겠네요.”
“문제없다.”
맛은 느끼지 못한다지만 향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시우의 위로 아닌 위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린네는 다시 한 번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거기에 거부감이나 경계심은 엿보이지 않은 터 조금 더 찔러보기로 했다.
“그러면…. 조금 더 여쭤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라.”
그 이후로 시우는 몇 가지 경우를 더 캐물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린네는 쾌락 즉, 삶에 있어 ‘즐거움’으로 치환되는 어떠한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가령 온천에 몸을 담가도 ‘뜨거움’은 느끼지만 ‘노곤함’ ‘피로가 풀리는 상쾌함’은 느끼지 못한다.
시우와 성교를 나누어도 ‘압박감’과 ‘이물감’은 느끼지만 ‘쾌락’은 느끼지 못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만이 아닌, 정신적인 기능에도 장애를 겪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떠한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행복을 체감할 수 없는 삶.
그건 어떤 삶일까?
무덤덤하게 잔을 내려놓는 린네의 모습이 한층 더 인형처럼 보였다.
화사한 진열대에 앉아 세상을 관찰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인형처럼.
그제야 도가 지나친 린네의 금욕주의가 이해가 갔다.
그녀에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나, 정좌한 채 명상을 하는 것이나 조금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이 시점에서 시우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동물의 행동원리와 생존본능은 결국 쾌락과 결부되어 작동한다.
즉, 모든 쾌락이 제한된 삶이라면 어떤 행동도 목적의식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린네에게는 너무나도 강렬한 목적의식이 있다.
강함을 추구하는 것.
또한 일전 목숨을 걸고 린네에게 맞섰을 때 린네의 얼굴을 보았다.
가면 같은 무표정이 아니라 싸움이 즐거워 마지 않다는 듯 웃고 있던 표정을.
모순된 언행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시우 역시 수많은 전투를 딛고 일어선 어엿한 전사.
전투만이 줄 수 있는 고양감과 짜릿함을 알고 있다.
1초를 수백 번으로 쪼갠 찰나에 생과 사가 갈리는 강렬한 체험은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희열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자극으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린네일지라도.
그 순간만큼 삶을 실감하는 게 아닐지.
그래서 검귀라는 이명이 붙을 때까지 싸움을 쫓아다닌 건 아닌지.
이런 추론이 가능했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 좋네요. 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
“이래서 데이트가 좋은 거네요.”
당연히도 린네는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이다.
“저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 없으신가요?”
“없다. 언제 돌아가지?”
“기왕 나온 거 조금 더 있고 가요.”
서두르려는 린네를 만류한다.
아직 문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못했다.
은근 슬쩍 눈을 밖으로 돌리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스승님께선 어쩌다 마녀가 되셨나요?”
‘어쩌다 공적이 되셨나요?’ 라고 묻기엔 너무 직설적이었기에 살짝 돌려 물어본 것이다.
동시에 문의 주요 요점이 되는 포인트를 파악한다.
문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마법이었으나 모든 마법엔 핵심이 되는 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력으로 흐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포인트는 총 셋을 위주로 훑을 무렵.
갑자기 찾아온 침묵에 시우는 눈을 돌렸다.
“스승님?”
“…….”
린네가 대답이 없다.
멀뚱멀뚱하게 앉은 채 눈을 깜빡이던 린네.
혹시 물으면 안 되는 것을 묻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문을 관찰하던 모습 때문에 의도를 들킨 것일까?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스승님.”
“…듣고 있다.”
두번째 부름에야 린네는 느릿하게 답했다.
두 손으로 꼬옥 잡고 있던 잔을 들어 올려 다시금 입술을 적신다.
린네가 잔을 내려놓았을 때.
시우는 보았다.
평소 칼날 같던 눈빛은 어디 있는가?
지금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이 반쯤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하며 흐리멍덩하게 풀려 있었다.
“취하셨어요?”
“…아니다.”
그것도 모자라 눈을 천천히 끔뻑이며 머리를 휘휘 젓는다.
안색은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혀도 묘하게 꼬부라져 있다.
시우는 린네의 잔을 살폈다.
겨우 반 정도 마신 것 같다.
보드카를 베이스로 한다지만 라임주스와 진저베일이 함께 들어가는 모스크 뮬은 고작 15도 정도이다.
거기에 듬뿍 들어간 얼음까지 고려하면 실제 도수는 후레쉬 소주보다도 낮을 것이다.
자율방어가 활성화된 마녀의 낙인은 해독을 겸한다.
작정하고 취하려면 정말 부어라 마셔라 해야 하는 것이다.
스승님만해도 앉은 자리에서 위스키 한 병을 거뜬히 해치우지 않는가?
그런데 린네가 견습마녀도 아니고 꼴랑 저 정도로 마시고 취하는 알코올쓰레기였을 줄이야.
아무리 첫 경험임을 감안해도 살짝 의외였다.
“뭐라고 했지?”
“아, 어떻게 마녀가 되셨는지를 여쭈었, 스승님?”
“…….”
아.
잔다.
차츰 무거워지던 린네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잠기더니 고개가 숙여졌다.
이런 여동생이 있었으면 뜯어말려서라도 술자리에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이런 걸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하늘이 돕는다.
린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문을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즉시 창밖을 살피려던 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차음막을 배치해 놓았다 해도 감각마저 제한된 건 아니다.
마루에서 느껴지는 발걸음이 이쪽 테이블을 향해 쿵쾅쿵쾅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화난 기색을 숨기려는 시도조차 없다.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아까 1층에서 시우에게 추파를 던졌던 마녀와 어째 익숙한 마녀가 있었다.
“도로시 님! 이 녀석이에요!”
“엥.”
잿빛의 머리칼과 독특한 은빛의 눈동자.
I컵의 젖소 가슴을 팔짱 위에 얹은 마녀는 시우를 바라보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이거 아~주 건방지게 생긴 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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