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54화 (654/917)

#654

1.

마법만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마녀 사회.

그 울타리에서 나고 자란 마녀 중 동성애자 비율이 높은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앨리스는 그 중에서도 꽤 성적 지향이 확고한 편이었다.

다른 마녀처럼 양성애적 성향을 띄고 있으나 마땅한 남자가 없기에 여성과 동침하는 것이 아니다.

순도 100% 퓨어 레즈비언인 것이다.

따라서 남성을 유혹해야 하는 과업은 그저 로지에게 학대당하던 나날과는 감상이 또 달랐다.

조악한 비유이지만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시우가 살아남기 위해 게이를 유혹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인 셈.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닌 말리샤와 마냐의 안위가 걸린 일이다.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떫고 쓴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길 이틀.

얼마가지 않아 추파를 던져오리라 예상했던 신시우는 앨리스에게 어떠한 유혹이나 시그널도 보내지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바쁘다.

고작 이틀을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일과라고는 대련, 아주 짧은 마사지, 기절하듯 수면.

린네에게 보고할 것도 없는 단조로운 생활패턴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시우가 그녀를 시종으로 받아들여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바쁜 일정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릇 수컷이란 생물은 예쁜 여자만 보면 발정 나는 생물이 아니던가?

기어 다닐 힘조차 없다 해도 고추로 기어서라도 도킹을 시도하는 것이 그들의 민낯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심하게 구는 이유는 단 하나.

앨리스가 먼저 숙이길 원하는 것이리라.

대쪽 같은 자존심을 굽히고 알아서 처신하길 기다리고 있겠지.

그도 그럴게 그는 앨리스에게 두 번이나 되는 커다란 빚을 지웠다.

미궁에서 한 번, 헥센나흐트에서 한 번.

또한 앞으로 향월루에서 원만한 생활을 생각하면 앨리스가 그의 혀처럼 굴어야 하는 건 지당한 일이다.

그 역시 그걸 알고 있기에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할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앨리스는 판단을 내렸다.

괜한 자존심과 수치심이 뒤섞여 우물쭈물거리던 앨리스지만, 이젠 정말 이것저것 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잠깐 나 좀 봐.”

“네?”

어제와 같이 녹초가 되어 돌아온 신시우.

전투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인지 그의 눈초리는 다른 때보다 살벌했다.

피로로 흐리멍덩한 와중에도 악에 받친 눈빛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잠깐 흠칫했던 앨리스지만 예정은 변동 없다.

오늘이 마지막 밤.

그와 동침해야만 한다.

어리둥절해하는 예빈을 뒤로하고 장소를 옮겼다.

백번 양보해 신시우에게 몸을 더럽히는 것까지는 용납하겠지만, 그것을 타인이 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

방음이 안 되는 고택의 특성을 고려해 옆옆옆옆 방까지 자리를 옮긴 앨리스.

거기엔 낮 동안 옮겨놓은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쭈뼛쭈뼛 드레스 자락을 잡아당기며 앨리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부터 여기서 자려고.”

“네? 잠자리가 불편하셨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앨리스의 소극적인 어필을 모른 척 빗겨내는 신시우.

“오늘 너는 어디서 잘 거야?”

그런 그를 보며 치욕을 삼키던 앨리스가 넌지시 물었다.

코웃음 나올 만큼 속이 빤히 보이는 유혹에 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난 여기서 혼자 잘 건데, 너도 내 옆에 오지 않을래?’와 동치 되는 문장이 아닌가?

누군가 앨리스에게 이런 형편없는 멘트를 던졌다면 실소하며 등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를 먼저 꼬시는 것은 태어나 처음 있는 일.

언제나 욕망에 솔직하게 행동하던 앨리스가 욕망과 정반대에 놓인 임무를 자연스럽게 수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저는 방에서 잘 예정인데요. 화로 옮겨 드릴까요? 여긴 좀 더 추운 것 같은데.”

의도된, 얼빠진 대답이었다.

“아니 됐어.”

앨리스는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아예 발라당 뒤집어져 배를 보여야 만족하겠다는 건가?

린네는 시우를 유혹하고 감시하되 그것이 절대 자신의 지시라는 걸 들키지 말 것을 명령했다.

앨리스가 ‘이러이러하니 관계를 정액을 내달라’라는 정공법을 쓰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앨리스가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이미 눈치채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앨리스가 한 번만 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이 기정사실인 양 유유자적하다.

“…있지.”

“네, 근데 좀 빨리 말해줄래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퉁명스러운 대꾸에 울컥한 앨리스.

분노라기엔 너무도 눅눅한, 서러움의 습기가 가득한 울컥함이다.

“내, 내가 너한테 빚이 많잖아. 밖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그랬고….”

“따지고 보면 그렇죠.”

“갚고 싶어.”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시우를 바라보았으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지금은 피곤하니까 내일 천천히 이야기할까요? 화로는 옮겨 드릴게요.”

대신 바라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곤 휑하고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가 관계를 원할 거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더욱 대놓고 숙이고 들어오기를 원하는 건가?

후자의 경우 기껏해야 자존심을 좀 더 굽히면 될 일이지만, 전자라면 심각해진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앨리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2.

시우는 생뚱맞은 이벤트가 영 당혹스러웠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앨리스의 대쉬.

불과 몇 년 전이었더라면 ‘에이 아니겠지’라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여난과 복에 겨운 하렘 생활이 벌써 2년 차.

대놓고 배꼽 맞추자는 꾀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게 비정상이다.

뭐, 마녀가 된 이후 이런 추파를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고 앨리스 정도면 굉장히 점잖은 축에 속했다.

“뭐지.”

어차피 당분간 섹스는 봉인이다.

각종 리스크를 제외하고서라도 굳이 공적의 도시까지 잡혀 와 바람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상한 부분이 있다.

시우가 아는 한 앨리스는 레즈비언이다.

세 사람이 앞다투어 몸을 바치려 했을 때.

‘저희는 양성애자니까…. 언니보다 거부감이 덜할 거에요.’ 같은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상당히 어수선했던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거짓말은 아닐 텐데.

그런 그녀가 불쑥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향월루에서 마땅히 할 일이 주어지지 않은 앨리스의 입지는 좁다.

예빈처럼 저택에만 있던 것도 아니고 경매장에 오르는 둥 험한 꼴을 본 앨리스로선 자신의 쓸모를 호소하려 들었을 수 있다.

일단 시우는 린네의 제자며 앨리스를 구매해 준 장본인이니 말이다.

그녀 말대로 은혜를 갚고 싶을 뿐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마 그런 이유로 유혹해온 건 아닐까?

“아닐 것 같은데.”

솔직히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시우를 유혹하던 그녀의 표정이나 분위기는 흡사 쥐약을 먹는 것 같았으니 본심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이상한 건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다.

시우는 앨리스가 말리샤와 마냐를 위해 치욕을 무릅쓰려던 순간을 잊지 않았다.

겉보기엔 기쎈 양아치 같지만 실은 자기 사람을 아끼는 그녀가, 고작 그런 이유로 시우와 동침하려 들까?

멀쩡히 구해야 할 연인이 있는데?

그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건 앨리스를 데려온 첫날밤, 린네가 그녀와 독대했던 날의 기억이다.

여기부터는 억측이다.

마땅한 근거 없이 작두를 타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눈칫밥 생활만 5년.

온갖 사건을 겪으며 시우의 눈치는 비약적으로 기민해져 있었다.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 것이다.

만약 앨리스가 모종의 지시를 받은 거라면?

그렇다면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도 아귀가 맞는다.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닌 만큼 심사숙고하며 화로를 들고 방으로 돌아간 시우.

앨리스는 시우가 들어오기 무섭게 벌떡 일어났다.

“화로요. 여기가 저 방보다 춥네요.”

“…….”

아무말도 없이 시우를 빤히 바라보는 앨리스.

얽히고설켜 해석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에 그녀의 낯빛이 일렁인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이불 옆에 조심스레 숯이든 화로를 놔주고 돌아서려는 그때.

덥썩 시우의 소매를 붙잡는 앨리스.

“나 별로 매력, 없어?”

기묘한 조화다.

어금니를 꽉 다문 채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다니.

유혹을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협박을 하겠다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살짝 헐렁한 수면용 드레스 자락.

D컵은 넉넉하게 돌파할 것 같은 앨리스의 부드러운 가슴골이 팔에 비벼졌다.

말랑한 감촉. 달짝지근한 숨소리가 귓바퀴에 휘감긴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될까?”

이어진 대사는 전보다는 조금 자연스럽다.

“저기요, 진정 좀…!”

그러나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우는 우선 막무가내로 키스하려 드는 앨리스를 떨쳐내었다.

엉겁결에 밀어내느라 얼굴을 밀어버렸지만 내팽개쳐진 앨리스는 굴하지 않았다.

“나 너무 무서웠어…. 이상한 곳에 잡혀 오고 경매장에 오르고 불안하고 걱정됐어. 사실 지금도 그래….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도 모르겠어. 오늘 밤만 날 안심시켜주면 안 될까? 네가 옆에 있어주면 나을 것 같아.”

급발진.

앨리스의 행동을 표현하자면 저 한마디로 충분하리라.

당연히 시우의 경계심은 단숨에 맥스를 찍었다.

“이봐요. 무슨 생각이에요?”

사람이 하지 않던 짓을 하면 수상쩍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미 미심쩍은 정황이 있는 앨리스라면 말할 것도 없는데….

-사락

앨리스의 나이트가운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발밑에 떨어졌다.

안에 속옷을 미리 벗어두었다.

드레스가 사라지자 드러나는 건 남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다실만 한 나신이었다.

그녀의 은발보다도 뽀얀 피부가 달빛을 반사하며 육감적으로 빛난다.

잘 익은 과실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젖통과 꽤 넓은 편인 젖꼭지 받침대.

제모한 뒤 시간이 조금 흘렀기 때문인지 뾰쪽뾰쪽한 거웃이 수줍게 자라나고 있다.

“엑.”

그나저나 뭔가 반짝이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던 시우는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괴상한 신음을 내뱉었다.

앨리스의 나신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매력을 차치하고도 시우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양 젖꼭지에 달린 피어싱이었다.

유두를 관통하는 축으로부터 내려오는 은사슬.

그 끝에는 물방울 형태로 커팅된 핑크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있다.

마치 롱드롭 형식의 귀걸이를 유두에 한다면 저렇게 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녀의 젖가슴이 포잉포잉 출렁일 때마다 추처럼 움직이며 눈을 매혹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나한테 창피를 줄 셈이야?”

저런 걸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야동에서 서양 누님들이 종종 착용하는 건 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충격이 배가 되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던 시우의 눈에 들어온 것이 또 있었으니.

“맙소사….”

시우의 눈길을 눈치챈 것인지 간신히 웃어 보이는 앨리스.

이런 과감한 악세사리를 장착하는 누님답지 않게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있다.

“응, 맞아. 여기도 했어. 내가 좀…. 야하거든.”

샤프심처럼 음모가 자라나고 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도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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