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52화 (652/917)

#652

1.

심신의 피로가 쌓였던 앨리스가 꾸벅꾸벅 졸다가 물 안으로 퐁당 잠겨버렸던 일을 제외하면, 별다른 해프닝은 없었다.

온천욕을 끝내고 난 이후 앨리스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시우의 뒤를 따랐다.

발치에 드문드문 등잔을 깔아두어 운치 좋은 복도도, 하늘하늘 꽃잎을 떨어뜨리는 겨울 벚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밤에 남녀가 함께 몸을 씻고 단둘이 방으로 향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일은 명약관화하다.

역시 범할 생각이다.

‘이제야 조금 깨끗해졌네요. 안쪽까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해볼까요?’ 라고 말하면서 덮쳐올 것이 뻔하다.

마냐와 말리샤를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조금의 호감도 느끼지 않는 상대와 살을 섞는 게 기꺼운 것은 아니었다.

천박하게 변해버린 몸을 생판 타인인 그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도 치욕스러웠다.

“이쪽입니다.”

“…응.”

먼저 장지문을 열고 들어선 시우의 뒤를 따라들어간 앨리스.

생각보다 넓다.

칸막이 역할을 하는 쇼지를 들어 올려 방 3개를 하나로 터 사용하는 듯한 넓이.

주변에 놓여있는 묘약 제조용 자재와 연구 테이블이 부조화를 이루곤 있었지만, 방 자체는 향월루의 분위기와 꼭 들어맞았다.

“잠시만요. 눈 좀 붙이시는 편이 낫겠죠?”

아무렇지 않게 붙박이 벽장에서 하얀 이불을 꺼내는 시우와 그 뒷모습을 우울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앨리스.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처음이다.

뭐든 첫 경험은 두려운 법이다.

게다가 남자란 생물은 성욕에만 좌지우지되는 짐승.

‘노예’에 불과한 앨리스에게 무슨 험악한 짓을 해올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번져오는 두려움을 견디고 있자니 시야 끄트머리에 무엇인가 들어왔다.

다다미 바닥 위에 깔린 이불 위에 한 마녀가 쿨쿨 잠을 청하고 있다.

아까 욕실에서 그와 찰싹 달라붙어 있던 마녀였다.

설마…!

앨리스는 아연실색했다.

범해질 것이야 충분히 예상이 갔지만 설마하니 다른 마녀가 자고 있는 옆에서 관계를 종용할 줄이야.

‘소리를 내면 깨버릴지도 모른다고요?’ 같은 짓을 하거나 어쩌면 저 마녀까지 깨워 쓰리썸을 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여기에 누워서 주무시면 됩니다. 이불이 푹신하고 좋아요.”

이불을 깔고 톡톡 두드리더니 한 발짝씩 앨리스를 향해 걸어오는 신시우.

그가 가까워질 때마다 몸이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최근 앨리스는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성관계가 얼마나 잔혹해 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다.

만약 그도 그런 상종 못할 변태라면….

눈이 절로 질끈 감긴다.

대마녀로서 다른 마녀에게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자신이 이런 취급 따위를 받아야 한다니.

험하게 다뤄지는 걸 염려하며 벌벌 떨고 있다니.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앨리스의 옷이 스르륵 벗겨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거친 팔뚝이 제멋대로 허리를 휘감는 일도 없었다.

“안 주무시게요?”

앨리스는 저만큼 멀어진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는 오도카니 서 있는 앨리스를 의아하게 처다보며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잠깐 앉아 있을 예정이 아닌지 스탠드까지 켜 놓았다.

“아니, 그….”

확실히 어마어마하게 피곤하긴 하다.

헥센나흐트로 납치당한 당일부터 밤낮으로 침묵의 마녀에게 불려 가 음란한 시중을 들어야 했다.

기본 체력을 지탱해주는 마력이 반쯤 거세당한 상태에서 깔개 취급을 받으며 온갖 수모를 견뎠다.

이후엔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경매장에 서서 공포와 긴장 속에서 떨었다.

향월루의 온천에 몸을 담그는 순간이 거의 일주일 만에 휴식이었던 것이다.

강제로 노곤해져 버린 나머지 폭신해 보이는 이불을 보는 것만으로 의식의 끈이 끊어져 내릴 것 같다.

앨리스는 낯선 이를 경계하는 야생동물처럼 조심스레 이불에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퍼뜩 떠오르는 것.

설마…!

자고 있을 때 범할 생각인 건가?

앨리스가 각오를 굳히지 못한 무방비한 순간에 이불 안으로 파고들어 괴롭힐 예정인 건가?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이미 당해 봤으니까.

바짝 긴장하며 한동안 시우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움찔거리던 앨리스지만….

그녀가 수마를 이겨낼 수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외부와 실내를 가로지르는 경계는 얇디얇은 장지문 하나이기에 따라서 향월루의 실내는 입김이 나올 만큼 싸늘한 편이다.

그런 와중에 신체를 애무하듯 감싸는 저세상 포근함의 침구.

바로 옆에는 숯이 담긴 가마가 뜨끈뜨끈한 온기를 전달해주고 있다.

순식간에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뻗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2.

악몽을 꾸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악몽 같았던 현실의 추체험.

침대 위에는 알몸의 앨리스가 반듯이 누워있다.

두 팔은 단단히 결박당해 등 뒤로, 두 다리는 허벅지까지 꽁꽁 묶인 채 침대 밑동에 고정되어 있다.

-짤그락! 짤그락!

“웁…! 우웁…! 웁…!”

호흡을 향한 본능적 욕구는 강렬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앨리스의 나신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몸을 싸매고 있는 쇠사슬이 흐트러지는 소리와 맨살이 시트에 비벼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혀, 혀 더 넣어… 하아…. 와아… 미친년, 개 꼴리게 하네….”

그 와중에 ‘침묵의 마녀’ 로지 알루는 마치 소변을 보는 듯한 자세로 앨리스의 얼굴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전문적인 용어를 들먹이자면 페이스시팅이라는 체위다.

“흐븝, 으읍… 우웁…!”

두 손은 앨리스의 머리채를 단단히 고정한 채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한다.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고 문지르며 자위하는 것처럼 허리를 가차 없이 찍어 누르는 로지.

침과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보짓살은 앨리스의 입과 코를 막으며 호흡을 틀어막았다.

단단히 결박된 데다가 마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앨리스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껏해야 필사적으로 혀를 밀어 넣어 로지의 자비를 구하는 수 밖에.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체액에 익사하기 직전에야 로지는 살짝 허리를 들어주었다.

-쮸우웁!

끈적한 액체가 늘어지더니 앨리스의 얼굴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벌써 세 시간째 로지의 보지 깔개 역할을 해야 했던 앨리스의 몰골은 엉망 그 자체였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애액인지 침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액체 탓에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다.

“푸하…! 하아… 켈록! 콜록…!”

겨우 숨을 쉬며 연신 기침을 내뱉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로지는 입술을 핥았다.

기묘할 정도의 열기로 빛나는 눈동자엔 가학의 희열이 피어오르고 있다.

“앨리스 10초나 쉬었으니 충분하지? 다시 1분 가자.”

“자, 잠깐…. 조금만 더… 조금만 쉬게 해줘….”

이대로는 죽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자비를 구걸하는 앨리스.

“그래? 앨리스 양은 얼마나 쉬고 싶은데?”

로지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떼쓰는 아이를 어르듯 답해주었다.

“1분만…. 1분만 더….”

“1분?”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 진짜 죽는다고….”

로지를 만나기 전까지 앨리스는 자신의 성향이 ‘새디스트’라고 생각해왔다.

그쪽 성벽을 진지하게 탐구해 본 적은 없지만 구태여 분류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마냐와 말리샤와 관계를 나눌 때도 언제나 리드하는 입장이었고, 다양한 플레이를 해보는 와중 살짝 하드한 ‘벌’을 준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타인의 고통엔 눈길을 일절 주지 않으며 자신의 쾌락만을 탐하는 로지 정도는 되어야 새디스트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럼 여기까지만 하자.”

“…….”

“대신 마냐랑 말리샤랑 놀아달라고 부탁할 건데 괜찮지? 네가 옷 갈아입혀서 침실로 데려오면 돼.”

그러니까 저런 잔혹한 말도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을 수 있는 거겠지.

한동안 입술을 씰룩거리던 앨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로지가 바라는 건 분명하다.

오직 굴복과 굴종.

“죄송… 해요….”

“뭐가?”

“마음대로… 쉬려고 해서….”

추례한 몰골로 눈물을 흘려봐도 로지는 일말의 동정심도 내비치지 않는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혀 내밀어.”

“에베….”

“더 길게.”

뭘 할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었다.

앨리스는 로지가 시키는 대로 혀를 쭉 내밀었다.

길고 깨끗한 선홍빛 혀의 끝자락에는 은색의 피어싱이 반짝이고 있었다.

애무할 때 기분이 더 좋아진다는 이유만으로 로지가 박아넣은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액세서리도 선물해줬는데. 자꾸 섭섭하게 굴면 서운해.”

로지는 혀를 관통한 피어싱의 양 끝단을 잡고 길게 잡아당겼다.

매끈한 혀라도 이렇게 손잡이가 있으면 단단히 붙잡을 수 있다.

“잘못 했으니까 벌을 줘야겠지?”

로지는 혀를 잡아 뺀 상태로 다른 한 손의 두 손가락을 모았다.

그리고 마치 보지를 애무하듯 앨리스의 목구멍 깊이 손가락을 넣어 지분거린다.

“욱…! 우걱…! 커헉…!”

아무리 가느다란 손가락이라지만 목구멍 깊숙한 곳을 쑤시면 구역질이 날 수밖에 없다.

흰자에는 단박에 핏줄이 서고, 반사적으로 흐르는 눈물에 시야가 뿌옇게 흩어진다.

-찌걱! 찌걱! 찌걱!

“여기도 성감대로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점막이잖아. 여기로 가는 거 성공하면 엄청 웃길 것 같은데.”

“으걱…! 꺽…!”

“가버려라! 목구멍으로 가버려라! 얍얍! 목구멍 오르가즘 보여줘! 할 수 있어!”

인정사정 없이 한층 커다란 찌걱거림을 동반하는 로지의 손가락.

이런 짓거리를 매일 같이 당했으니 ‘성적인 자극’ 전반에 대해 거부감이 새겨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본인의 성감대가 자극받는 것도 아닐 텐데, 앨리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감상하던 로지의 숨이 거칠어진다.

그녀는 앨리스의 목 깊이 잠겨있던 손가락을 빼냈다.

더욱 끈적해진 타액이 손끝에 길게 늘어진다.

로지의 얼굴엔 홍조가 떠올라 있었고 희번들한 흰자에도 전보다 매서운 광기가 돌았다.

그녀가 전에 없이 흥분했다는 건 발딱 선 유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 너무 흥분해서 못 참겠어. 앨리스, 선물 하나 더 줄게. 기다려봐!”

앨리스를 내팽개치고 침대 밖으로 뛰어나간 로지는 선반에서 커다란 가방 하나를 꺼내왔다.

“짜자잔!”

카탈로그를 보여주는 영업사원처럼 가방을 펼쳐 보이는 로지.

그 안에는 온갖 흉악한 물품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은밀한 쾌감을 위한 도구의 모음이라기보단 심문에 사용하는 고문 패키지 쪽에 가깝다는게 앨리스의 감상이다.

바늘을 들어올린 로지는 짤랑거리는 금속소리를 내며 그 고문도구 들을 두드렸다.

“네가 하나 골라봐. 뭐가 제일 마음에 들어? 오늘도 새로운 거 달자.”

하얗고 탐스러운 장미를 연상케 하는 로지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앨리스의 악몽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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