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
1.
입찰 금액을 지급하고 상품을 인계받는 뒷무대.
“이건 또 뭔 돈지랄이야?”
침묵의 마녀, ‘로지 알루’는 린네를 보고 별 해괴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을 내비쳤다.
알막 클럽의 경매는 기본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접촉하지 않는다.
로얄 박스에 앉아 구매할 경우 구매자의 신상도 철저히 비공개된다.
헥센나흐트에선 누구도 서로 신뢰하지 않는 까닭이다.
물론 새로이 내각을 구성한 클리포트가 ‘안’에서의 갈등을 엄중히 제한하고 있다지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기엔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검의 마녀와 침묵의 마녀가 대면한 채 계약서와 지급 확인서를 교환하는 것은 두 사람이 상품의 공동 판매자이기 때문이었다.
“수수료도 나갈 텐데, 이럴 거면 차라리 나한테 빨간 창 주지 그랬어. 그러면 수은의 마녀는 넘겼을 텐데.”
로지는 대금을 지급 받았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린네에게 건넸다.
저번 ‘미궁’ 프로젝트 이후 두 사람은 기여도 차이에 따라 노획품을 나눠 가졌다.
린네의 경우 ‘앨리스 이븐 하이얀’의 모든 권리에 관한 3할의 지분, 신시우와 붉은가지의 소유권.
로지의 경우 나머지 7할의 지분과 마냐 및 말리샤의 소유권을 가져갔다.
“뭐, 나야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말이지. 그런데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무슨 말이지?”
“아니, 그렇잖아. ‘토끼 사냥’이 동결된 건 맞지. 이게 언제 다시 재개될지도 모르잖아. 진짜 티페레트의 제자를 제자로 삼을 셈이야?”
나름 린네와 교류한 적이 많은 로지지만 지금 그녀의 행동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
“하긴 그러니까 돈을 이렇게 썼겠지. 그렇게 잘났어?”
그렇기에 더욱 관심 가는 주제였다.
남자 마녀인 것도 신기하다.
그렇지만 도대체 얼마나 예쁜 짓을 했길래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만에 미끼 역할에서 제자 자리를 꿰어찼으며,
그 무뚝뚝한 린네가 견습마녀도 아닌 제자를 위해 20 위계 마녀를 장난감으로 던져준단 말인가?
“모른다.”
로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만 들렸으니까.
하지만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비지니스 파트너 정도지 마음을 터놓는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때 잡아왔던 다른 두 마녀는 어디 있지?”
이때다 싶어 달려들었다.
“집에 잘 있지, 왜? 빌려줘? 남자 마녀랑 하루만 바꿔볼래?”
“셋은 무슨 관계지?”
“아마 끈적끈적한 사이인 것 같던데. 수은의 마녀가 나머지 둘을 엄청 감싸더라고. 이번에 따로 팔려가게 됐을 때도 나머지 둘이 얼마나 울고불고하던지. 맘 약해져서 세트로 팔아버릴 뻔했다니까.”
한 입씩 바꿔먹자는 제안을 한 귀로 흘린 린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둘도 내게 팔아라.”
“뭐? 안 돼! 바빠서 걔넨 아직 맛도 못 봤단 말야.”
“값은 후하게 쳐주지. 당분간 데리고 있어도 좋다.”
서명에 사용했던 펜을 다시 들어 백지 수표 위에 휘갈기는 린네.
예정된 단가보다 곱절은 커다란, 거부하기엔 너무 아까운 금액이 적혀 있었다.
“…오. 데리고 있어도 된다고?”
“그렇다.”
“이런 짓 저런 짓도 해도 돼?”
“망가뜨리지만 않는다면.”
“에이~ 난 그런 거 취향 아니야. 오케이오케이.”
머리에서 주판알을 튕기던 로지는 씽긋 웃으며 악수를 권했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2.
앨리스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추방자가 된 이후엔 제법 험난한 세상을 살아왔다 자부했다.
공적 놈들과 싸운 적도 많았고, 호문쿨루스를 사냥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왕왕 있었다.
그때마다 쫄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나곤 했다.
내일 더 즐겁기 위해선 당장 돈을 옴팡지게 벌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목에 기묘한 아티펙트가 걸어져 마력을 일절 행사할 수 없게 된 지금은.
공적과 위험한 성향의 추방자가 바글거리는 헥센나흐트에 상품이 된 지금은.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정신력이 오만에 불과했음을 배웠다.
앞으로 펼쳐질 일이 두렵고 무섭다.
무대 위에 섰을 때 치욕보다는 공포를 느꼈다.
밝은 하이라이트가 비치는 무대 위와 달리 어스름하던 관람석.
그 안에서 총총히 빛나던 욕망에 절은 눈동자들.
그 탐욕 어린 시선의 주인 중 하나가 앨리스를 구매했겠지.
어떻게 될까?
진행자가 말했듯 성노리개로 능욕당하다가 질릴 무렵엔 분해되어 연구 소재로 사용될까?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이 와중에도 떠오르는 건 마냐, 말리샤 그 철없는 것들.
저택에 함께 구금되어 있다가 앨리스 단독으로 경매장에 오르게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팔을 붙잡던 연인들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잘 대해 줄걸.
남자 마녀를 덮치자느니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는 하지 말걸.
뒤늦은 후회가 먹먹하게 가슴을 두들긴다.
어마어마한 값을 치른 상등품인 만큼 금화의 마녀의 인솔을 거쳐 최상층까지 도달했다.
대나무숲을 거쳐 일본 느낌 물씬 나는 저택 앞에 도착했을 무렵.
앨리스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대로 얄짤 없이 실험대 위에 오르게 된다면 그걸로 끝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두 발로 서서 숨을 쉬며 살아있다.
혼자라면 최악의 경우라도 죽음이다.
그러나 앨리스에겐 아직 책임져야 할 연인이 있다.
이대로 허무하게 개죽음을 당한다면 마냐와 말리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마침 비싼 값을 받기 위해 고운 드레스도 입었으며 어여쁜 화장도 받았다.
구매자에게 잘 보이자.
자존심은 깡그리 버리고 아양을 떠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얻고 나머지 둘에게도 어떻게든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거다.
“으헥?”
비장한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방으로 들어선 앨리스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놀랐다.
아마 거울을 보면 굉장히 해괴망측한 얼굴이겠지.
좋다.
그녀가 잡혀 오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마녀는 침묵의 마녀와 검의 마녀.
그러니까 검의 마녀가 구매자인 건 크게 이상하지 않다.
내부자끼리 거래를 반복하며 시세를 올린 다음 더 큰 차익을 남기려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안녕하세요?”
근데 얘는 뭐야.
검의 마녀 옆에 붙어 서 있는 건 신시우.
앨리스가 제압해 팔아넘기려다가 되려 삥 뜯길 뻔했던 남자 마녀다.
린네 옆에 붙어선 것이 앨리스처럼 노예 취급을 받는 것 같지도 않다.
당장 지금만 봐도 제집 안방인 양 평안하게 있지 않은가?
“그때 진짜 마음에 들었는데 자꾸 가려고 해서 섭섭했어요. 사람 인연이라는 게 또 이렇네요.”
“너, 아니, 그쪽, 아니, 당신이….”
냉정함이 사라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려고 해도, 호칭조차 정할 수 없어 허둥지둥하는 앨리스.
“스승님 정말 감사합니다.”
“됐다.”
둘의 짤막한 대화를 듣자 머리통 밑바닥에 2% 정도 고여있던 냉정함까지 깔끔하게 증발했다.
스승님? 스승님? 스승니이임?
티페레트 공작이 스승님이라고 들었는데 이제는 린네에게 스승님이라며 아양을 떨고 있다.
그새 스승을 갈아치운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클리포트 측 인간이었는데 선량한 탈을 쓰고 있던 건지.
당최 사태파악이 되지 않아 뻣뻣하게 굳어 있는 앨리스의 어깨에 팔이 휘감겼다.
“그 사이 험한 일 당하셨을까 봐 걱정했어요. 이제는 안심해도 됩니다. 스승님께서 선물로 사주셨거든요.”
뱀처럼 휘감는 손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앨리스도 바보는 아니다.
간추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대략 상황이 정리됐다.
전후를 자르고 현재 상황만을 보자면 앨리스는 노예로 그에게 팔린 것.
그걸 사준 사람은 검의 마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둘의 관계는 사제 관계.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추론이 그의 첫마디에 닿았을 때 앨리스의 눈초리가 좁아졌다.
그때는 마음에 들었는데 자꾸 가려고 했다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잘 지내봐요. 아, 여기 머물면서 제 시중을 드시면 됩니다.”
“네.”
“왜 이래요 어색하게. 말 편하게 해요.”
“응….”
이상하다.
마음에 들었다고?
그냥 가려 해서 섭섭했다고?
둘 사이에선 없던 일이 날조되어 있다.
제압당한 이후 누구보다 그냥 가고 싶었던 앨리스와 악착같이 보상금을 뜯어내려던 시우다.
즉,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좀 씻고 싶은데…. 스승님, 온천 좀 사용해도 될까요?”
“먼저 가 있어라.”
“네?”
“마녀는 나중에 보낼 테니 먼저 가 있어라.”
“…네, 알겠습니다.”
살짝 당황한 듯한 시우는 등 떠밀리듯 떠나고 방에는 앨리스와 린네만이 남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봤을 땐 머리털이 삐쭉 설 만큼 놀랐지만, 그렇다고 린네와 독대하는 자리가 편해진 건 아니다.
“앨리스 이븐 하이얀.”
“네.”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최대한 의연하게 답했다.
실패였다. 목소리 끝이 가늘게 갈라져 떨리고 있었으니까.
“마냐, 말리샤.”
린네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떨어졌을 때 앨리스는 놀란 눈으로 린네를 보았다.
“둘은 내가 데리고 있다.”
“…무사, 무사…. 무사한 거죠?”
경매장으로 끌려와 팔려가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어떤 일을 당했을지 걱정되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직은.”
더 이상 연기를 할 수도 없었다.
몸의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휘청인다.
“제,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
하지만 신시우의 영문 모를 말과는 달리 재빨리 상대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건 모종의 협박이자 회유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매일 밤 내게 보고해라.”
역시 일반적인 사제관계는 아니었다.
앨리스가 모르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다만 사실상 이 저택의 실세이자 언제든 시우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린네가 구태여 뒤로 부탁을 해오는 것이 미심쩍다.
더욱이 머리가 복잡해지는 앨리스에게 린네는 한 가지를 더 요구해왔다.
“사흘 내로 그를 유혹해 동침해라. 그리고 증거로 그의 정(精)을 받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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