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48화 (648/917)

#648

1.

“한가지 원하는 것을 골라라.”

이 말을 들었을 때 ‘횡재했다’라는 감상보다는 경계심을 느꼈다.

시우는 그녀의 검을 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공적이 되었는지.

어째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까지 힘을 추구하는 건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하나 제대로 알고 있다 말하기 어려웠다.

요컨대, 아래 어떤 포장지가 깔렸을지 모르는 선물을 덥썩 받는 건 탐탁지 않다는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일단 한 번 사양하며 낌새를 살피는 것이다.

아예 선물이 공중분해 되는 슬픈 상황이 올 수 있다지만 뒤탈이 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미 숙식까지 받고 있는 마당에 더한 걸 바랄 순 없죠.”

그래도 일단 여지 정도는 남겨두었다.

“사양할 것 없다.”

“정말 괜찮습니다.”

“사양할 것 없다고 말했다.”

적당히 겸양의 자세를 보이며 두 번 정도의 사양.

타카쇼가 호스트의 접대 업무를 가르쳐주었을 때 배웠던 처세 테크닉이다.

즉, 본격적인 대화는 지금부터인 셈.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솔직히 왜 제가 선물을 받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적당히 멋쩍은 표정을 유지하며 눈을 마주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렷다.

혹시 꿍꿍이가 있다면, 혹은 다른 본심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간파하고 선물을 가져간다.

“…….”

반듯한 일자 앞머리 아래 조금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 투명한 눈동자.

그 검은 호수는 아주 작은 파동도 없는 명경지수였다.

“널 데려오기 전 티페레트와 검을 맞대었다.”

스승님과?

순간적인 걱정이 동요로 전환되기 전 반사적으로 억눌렀다.

“그전에도 검을 나눴었다. 검술의 경지만을 놓고 보자면 나와 크게 다를 게 없었고 최근엔 앞질렀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술은 수년 전보다 진보해 있었다. 다시금 나를 앞질렀다.”

“…….”

“그 이유가 네 존재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함께 수련할 맞수가 있기 때문이라 여겼었지.”

가슴이 철렁했다.

비단 그녀의 시선이 한 자루의 검처럼 가슴을 꿰뚫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겼었지’라는 말은 과거형.

즉, 린네는 시우의 대련와의 대련을 겪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넌 부족하다. 단순 대련이라면 티페레트의 검을 다듬을 숫돌로 충분치 않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바보처럼 굴고 있었다.

도로시와는 달리 단순해 보여서 다행이다? 만약 도로시였더라면 간파당했을 것이다?

안일하기 그지없는 마음가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사실을 놓쳐버렸다.

시우가 린네를 지켜보고 있듯, 린네 역시 조용히 시우를 관찰하고 있었음을.

아득해 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냉정해야 한다.

린네가 호의를 베푸는 이유라고 짐작했던 시우 자신의 가치는 ‘대련’.

그 가치가 부정당했음에도 린네의 태도가 급변하지 않는다면 자연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왜 절 제자로 삼고, 그것도 모자라 선물을 위해 경매장에 오신 거죠?”

“…….”

린네는 입을 다물었다.

불편한 곳을 찔리기라도 한 듯 콧잔등을 찡그린 그녀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듯 말했다.

“파악하지 못한 무엇인가 있을지 모르니까.”

“…….”

“내 직감은 네가 티페레트를 변화시켰다 말하고 있다.”

역시 예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갑작스러운 사제관계는 아무런 타산도 없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또한 린네가 일반적인 마녀와는 아주 동떨어진 사제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선물은 너의 잠재력에 거는 투자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에둘러 감춘 걸 토해낼지도 모르지.”

린네는 어영부영 뜻 모를 말을 늘어놓거나 논점을 흐리지 않았다.

심지어 ‘너랑 친하게 지내면 떡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려나?’라는 표현을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제 속내를 전부 드러내며 패를 전부 내보여준 덕분에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어떤 입장인지 더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으니까.

“우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사양 없이 쪽쪽 빨아먹을 필요가 있다.

린네가 시우에게 거는 기대감이 감소하기 전에, 최소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이에 극한의 이득을 봐야 한다.

어느 덧 무대를 가리던 막이 걷히며 경매가 시작되었다.

2.

공적과 그에 따르는 추방자라 해도 같은 마녀다.

마법 연구를 위해 사용될 물품이나 아티펙트를 구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러나 게헨나라는 중심사회에서 배척된 그들은 연구 재료를 구하는데 항상 어려움을 겪었다.

제법 비싼 자릿값을 치러야 들어설 수 있는 경매에 사람이 미어터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돈만 있다면 양질의 재료를 쉽고 안전하게 손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의 것은 린네에게서 들은 설명이다.

무덤덤하고 무뚝뚝하지만 뜻밖에 질문을 하면 곧잘 답해준다.

관계의 영점조준도 마무리한 시우로선 굳이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대화가 오갔다.

“그럼, 첫 번째 상품부터 보시겠습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은 팔꿈치까지 오는 하얀 장갑이 인상적인, 화사한 금발을 단발로 잘라낸 마녀였다.

레크리에이터 강사를 연상케 하는 경쾌한 말투로 자신을 ‘금화의 마녀’라고 소개한 그녀는 간단한 인사말 이후 경매를 진행해 나갔다.

본격적인 경매가 진행되기 전까지 린네에게 세계관 설명을 듣던 시우도 자연스레 무대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상품을 거래하고 또 어떤 가격에 거래될지 당연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구하기 힘든 캐시미어 산 블루 사파이어 6종입니다. 열처리를 하지 않은 천연 사파이어로 투명도, 색의 농담, 광채 모두 최상위 등급을 판정받았습니다.

블루 사파이어는 우수한 마력 전도성을 지니고 있기에 마법진의 핵에도 적합하죠. 장식품으로도 더할 나위 없고요.”

상자를 열어 고급 초콜릿처럼 포장된 사파이어를 내보이는 마녀.

“최저 입찰 희망가는 100만 달러입니다.”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살벌한 가격을 떡하니 부른다.

1층에 앉은 마녀들은 저마다 원하는 가격이 적힌 푯말을 내밀었고, 시우와 린네처럼 위층 로열박스에 앉은 마녀는 급사를 호출하면 그들이 대신 희망가를 전달해주었다.

“130만 나왔습니다. 150만 나왔습니다. 다른 입찰자 계시나요?”

자선이나 기부 같은 목적의 경매가 아니다 보니 불필요한 말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진행자가 시시한 농담을 하는 일도 없었고 오래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170만 나왔습니다. 170만 셋, 170만 둘, 170만 하나. 낙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연히 뒤따라오는 박수 따위도 없다.

“두 번째 상품은 최근 많은 마녀의 사랑을 받는 향수입니다. 향수의 마녀가 손수 조향한,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향수죠. 별다른 마법적 효과는 없지만 이 작은 병의 가치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멜리아.

여기서 그녀의 향수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의 향수 가게에서 조수 역할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울적함과 동시에 게헨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2.5 fl.oz 들이 5병. 최저 입찰 희망가는 40만 달러입니다.  65만 달러. 65만 셋, 65만 둘, 65만 하나. 낙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개별로 특색을 잡는 맞춤 향수도 아닌데 게헨나에서 거래되던 금액보다 훨씬 비싸다.

아무래도 향수 가게가 게헨나에 있는 만큼 프리미엄이 붙은 모양이다.

이후로도 한 번의 유찰도 없이 진행되는 경매.

대부분이 보석, 연금 촉매, 마법 작물 등의 마법 재료이거나 아티펙트였으나 이곳이 또 하나의 마녀의 도시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거래 품목도 있었다.

“21번째 상품입니다. 인체 실험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솔깃하실 겁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출신 남성 사형수 520명입니다. 마약 사범은 제외했기에 전원 건강하고 튼튼합니다. 또한 사법부로부터 공식절차를 밟아 수형인명부와 함께 인계받아 뒤탈 없이 깨끗합니다. 입찰 희망가는 1,000만 달러입니다.”

국가로 부터 사형수를 인계받아 노예로 사용한다라….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차이가 있다면 저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간을 한 마녀가 오롯이 실험에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괜히 씁쓸해지는 뒷맛에 입술을 깨물고 있자니.

뺨을 찌르는 린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직도 고르지 않았군.”

“달리 살 것이 없어서요.”

사실 시우는 기다리고 있는 게 있었다.

알막 클럽에서 경매가 열리는 건 주에 1회.

시우는 아직 헥센나흐트에 온 지 7일이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대망의 마지막 상품입니다. 아마 많은 분이 이 상품을 보러 오셨을 텐데요.”

갑자기 활기차게 주의를 끌어모으는 진행자.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상품이 경매대에 오를 때는 심드렁하던 마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중앙으로 시선을 모았다.

“알막 클럽 역사 최초의 대마녀 상품입니다. 20 위계 유체 마법의 정통 계승자, ‘수은의 마녀’입니다.”

이전까지 노예 거래는 대충 서면으로만 거래됐지만, 이번은 달랐다.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앨리스가 개목걸이 같은 사슬에 묶인 채 진행자의 손에 친히 이끌려 나왔다.

치욕과 공포가 뒤섞인 눈초리가 불안한 듯 좌우를 훑는다.

“벗겨!”

“옷은 왜 입혀놨어!”

은발의 대마녀를 향한 난폭한 야유와 비웃음이 요란하게 장내를 울렸다.

진행자는 달아오르는 열기를 진정시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낙인을 연구하거나 뽑아내는 것도 좋지만, 보시다시피 꽤 귀족다운 용모라 성 노예로도 적합합니다. 물론 적당히 놀다가 질릴 때쯤 연구에 활용하는 경제적인 사용법도 있겠죠. 구매하실 경우 마력 발생을 제한하는 전용 아티펙트가 지급됩니다. 최저 입찰 희망가는 8,000만 달러입니다.”

언뜻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단순히 전투력으로만 비교해도 최신 전투기를 월등히 넘어가는 게 대마녀다.

그런 대마녀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만큼 어찌 보면 입찰 시작가 자체는 헐값이라 해도 좋을 가격이다.

그 증거라는 듯 희망가가 적힌 푯말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어느 때보다도 가열찬 경쟁.

원체 비쌌던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전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구매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마녀도 여럿 있었다.

“1억 5,000만 달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정했다 해도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최저가의 2배가 붙었을 무렵엔 점차 푯말이 올라오는 속도가 느려진다.

시우는 고민했다.

과연 이것이 맞는 투자인지,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생각의 정리를 끝냈다.

더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스승님.”

“말해라.”

“저 여자를 원합니다.”

린네의 눈동자에 이채가 돈다.

그것이 가장 비싼 물품을 사달라 보채는 시우에 대한 책망의 눈빛인지, 아니면 대담하게 좋은 기회를 움켜쥐는 것에 대한 칭찬인지, 그도 아니면 채 짐작 못 할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의심을 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앨리스는 납치되던 당시 시우와 같은 장소에 있었으니 말이다.

이어 진중한 눈빛이 시우를 향했다.

“어째서지?”

이제 남은 건 얼마나 그럴 싸한 변명을 제출하느냐.

오직 세 치의 혀에 달렸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