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6
1.
전반적인 모습을 살피자면 향월루는 꽤 검소한 주택인 편이다.
이는 꼭 시우가 제머나이 백작가처럼 게헨나에서 손꼽는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머물고 있기에 생기는 감상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마녀와 저택과 비교해도 그렇다는 의미다.
하다못해 트리니티 아카데미가 아멜리아에게 제공해 주었던 숙소보다 좁으니 오죽할까.
고풍스러운 방과 마루를 치장하는 장식품도 수수한 화병과 드문드문 걸린 족자 정도가 전부.
그처럼 정원 뒷길과 이어진 욕실도 뽐내는 화려함보다는 정돈된 차분함과 수수함이 돋보였다.
마른 이끼가 얹어진 돌계단을 밟아 들어선 실내탕의 너비는 10평에서 12평 남짓.
입구부터 맞은 편의 욕조가 보이는 일자 구조 덕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닥엔 화강암을 다듬어 깔아두었으며 벽과 욕조는 모두 노송으로 짠 것이었다.
이미 물을 받아두었는지 후끈한 증기가 초겨울의 선선함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안에 섞인 짙은 한약 냄새가 노송향을 전부 가라앉히며 코를 찔렀다.
천막으로 가려진 입구에는 간단하게 옷가지를 놓을 수 있는 선반과 수건이 개어져 있었고, 비스듬히 내려오는 천장은 정면 욕조 쪽으로 향할수록 높이가 낮아졌다.
천장과 벽이 맞닿는 끄트머리에는 종이를 바르지 않는 나무 창살이 있었는데 욕실 내 수증기를 빼냄과 동시에 밤하늘을 감상하기 위한 용도로 보였다.
“오….”
다른 건 몰라도 분위기 하나만큼은 최고다.
근데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우도 예빈도 모두 쭈뼛거리며 어색해할 무렵 린네는 거침 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허리 매듭을 풀자 놀랄 틈도 없이 훌러덩 벗겨지는 의복 안에는 오직 새하얀 나신만이 교교히 빛난다.
오비까지 검은 탓에 한결 하얗게 보이는 그녀의 뒤태가 가림 없이 시우에게 드러났다.
일렁이는 촛불과 증기 안에 신기루처럼 빛나는 나신은, 이런 감상을 느끼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아름다웠다.
영체에는 이상적인 신체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여체의 경우 어지간한 수련으로는 크게 외형이 바뀌지 않는다.
이미 해당 인물에게 맞는 최적의 근골격과 신체 특성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련을 거듭하고 거듭하면 어떤 느낌이 되느냐.
마침 신장도 비슷하므로 스승님의 몸을 예시로 들면 설명이 쉽다.
시총 2조 달러 애플힙, 과즙 가득한 탄력 넘치는 사과 궁댕이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 위로는 여리여리한 허리선과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기립근.
군살 하나 없이 길게 뻗은 허벅지와 매끈한 종아리까지.
여체의 기능이 ‘볼륨’이 아닌 ‘라인’에 집중됐을 때 어디까지 극한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슬렌더의 극의였다.
전신이 느슨함 없는 탄력으로 조여진 가운데 유일하게 말랑한 부위가 있었으니….
그것은 길게 뻗은 다리 사이로 슬쩍 엿보이는 꼭 다물려 있는 몰랑한 모찌 두 쪽이다.
머리는 풀지 않은 채 선반의 타올로 손을 뻗는 린네.
그 겨를의 몸이 살짝 돌아가며 나신의 앞부분까지 마저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연무복을 입은 자태를 보며 예상은 갔지만, 린네는 가슴이 큰 편은 아니다.
봉긋하게 솟은 아담한 가슴과 설탕에 살짝 절인 앵두처럼 빨간 젖꼭지는 오히려 쌍둥이 쪽에 가깝다.
그러나 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신체에 그보다 어울리는 크기와 모양이 없는 완벽한 조형의 구성이었다.
“안 벗나?”
감상의 시간은 짧았다.
어느덧 타올로 몸을 휘감은 린네는 갑작스러운 노출에 멍하니 서 있던 시우와 예빈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제야 ‘아 다 벗는 게 아니라 타올을 걸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뇌리를 스쳤다.
“먼저 들어가 있지.”
허술하게 하늘거리는 휘장을 젖힌 린네는 한차례 청결 마법을 사용하고 욕조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아직 아무 일도 없었는데 벌써 얼굴이 벌겋게 익은 예빈도, 어쩐지 멋쩍어진 시우도 서로 등진 채 옷가지를 벗고 큰 수건을 몸에 둘렀다.
예빈은 린네처럼 가슴까지 완전히 커버하는 형태며 시우는 대충 하반신만 가린 형태다.
이후엔 간단한 청결 마법 사용 이후 입욕.
욕실과 마찬가지로 노송으로 되어있는 욕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제법 깊었다.
안쪽에 한 번 걸터앉을 수 있는 턱이 있었는데 물 위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약재를 한껏 들이부은 까닭에 수면이 먹물을 탄 것처럼 새까만데다가 등잔 몇 개를 제외하고는 조명이 없어 사위가 어둑했기 때문이다.
김이 폴폴 나는 것이 무서웠기에 발끝을 담가보았다.
“앗 뜨….”
마녀들은 모두 극한의 온도감을 즐기기라도 하는 건지 르뤼에의 사우나처럼 더럽게 뜨거웠다.
머리에 수건을 얹고 턱까지 푹 잠수해 있는 린네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표정 변화 하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천천히 온도에 적응하며 몸을 완전히 가라앉히자 ‘뜨어어 시원하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마사지와 휴식만으로는 풀 수 없었던, 골수 깊이 쌓이던 피로가 온천수가 피부로 스며들며 풀렸다.
회로를 타고 흐르는 활기 넘치는 마력이 내부에 생긴 상처마저 다독여준다.
정순하게 가다듬어진 마력인지라 조금 비어있던 시우의 낙인에도 제법 빠른 속도로 마력이 쌓여갔다.
역시 비싼 건 제값을 한다.
르뤼에가 받았던 비슷한 약탕 치료가 한 번에 고급 세단 한 대 값이었던가.
대량의 마력수를 사용해야 할뿐더러 귀한 마법 작물을 처리해 들이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하루 세 번이나 받았다니 퍽 호강하고 잠수함으로 돌아갔구나 싶었다.
처음엔 바싹 긴장했던 예빈도 온천수에 녹아내려 버린 건지 흐물흐물해진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들려오는 건 조용히 물결이 이는 소리와 나지막한 숨소리뿐.
세 사람 사이에 흐르던 정적을 깬 건 린네였다.
“두 사람.”
“네.”
“네, 넵!”
“앞으로는 하루에 한 번 마력을 채워라. 욕조에 물을 채우는 법은 내일 일러주겠다.”
시우의 몸이나 치료에 지장이 가서 대련이 끊기면 안 되니 그런 거겠지.
매일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만큼 죽도록 대련뽕을 뽑겠다는 거니 그다지 달갑진 않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예빈의 검사에 의하면 몸에 어떤 잠재적 위험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다.
약탕 치료는 몸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될 터다.
말문이 열린 김에 정보수집을 해보기로 했다.
정보수집 제 1 순위는 말할 것도 없이 린네이다.
‘이렇게 쉽게 맺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간단히 사제관계를 맺었지만, 그만큼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스승님, 한 가지 여쭤도 될까요?”
“말해라.”
“현세 따로 수입원이 있으신가요?”
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보통 이럴 땐 ‘무슨 무슨 일을 하고 있다’이런 걸 덧붙여주지 않나?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눈조차 뜨지 않고 다시 입을 다무는 린네.
“어떤 일인가요?”
수속성 고양이처럼 얌전히 온천을 즐기던 그녀는 두 번째 질문에야 한쪽 눈만 뜬 채 시우를 바라보았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역시 아무리 봐도 사랑하는 제자를 대하는 모습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녀에게 ‘제자’란 어디까지나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경쟁자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아무튼 그녀오 명목상 사제관계가 되었다 해도 방심할 수 없는 원초적 이유였다.
“샤테이가시라(舎弟頭)다.”
“샤테이가시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요컨대 야쿠자 조직의 회장과 외형제 관계를 맺고 고문과 조언을 해주는 참모 격.
마피아로 치면 콘실리에리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사실 설명을 들어도 잘 감이 오진 않았지만 대마녀의 존재가 현세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족히 알고 있다.
아무리 공적일지라도 22 위계쯤 되면 단순히 고문역이 아니라 조직의 실질적 배후일 확률이 높았다.
“너는 뭘 하고 지냈지?”
어떤 바람이 분 것인지 린네도 질문을 던져왔다.
질문의 수준이 초대면에 물어봐야 할 수준인 것은 그만큼 두 사람이 긴 대화를 이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었던 적에는 게헨나의 노예 출신이었고, 마녀가 된 이후에는 살아남기 위해 바빴습니다.”
그렇게 예빈을 완전히 배제하고 시작된 사제 토크.
“그런가.”
“제가 더욱 큰 힘을 추구하게 된 것도 하도 시달려서였죠.”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법이다.
진실을 기반으로 조금씩 거짓을 보태며 컨셉이 무너지지 않게끔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금은 다른 것엔 신경 쓰지 않고 수련에 힘쓸 수 있어 기쁩니다. 전부 스승님 덕분입니다.”
“좋은 자세다.”
다행히 아귀가 크게 어긋나진 않은 것인지 린네는 말끝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린네가 아니라 도로시였다면 모든 것을 간파당해 버렸을 텐데, 그렇게 복잡한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의사, 너는 남아라.”
“넷…! 감사합니다…!”
혼욕.
남자로서는 참으로 두근두근한 단어이지만 결국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다.
린네의 알몸을 슬쩍 보게 된 것과 몇 가지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
구태여 부연한대도 예빈의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붉게 변하고 있다는 정도다.
하긴 무슨 별다른 일이 있겠는가?
애초에 린네가 혼욕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은 것도 이런 상황을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일 텐데.
2시간 가량 몸을 충분히 녹인 린네와 시우는 예빈을 남겨두고 각기 옷을 챙겨 입었다.
애초에 온천 이벤트는 중요도로 따지자면 서브 퀘스트 쯤 되는 이벤트였다.
메인 퀘스트는 지금부터다.
헥센나흐트에 잡혀 온 지 나흘 만에 첫 외출이자 염탐의 기회,
아르카나 타운으로의 삭막한 사제 데이트가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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