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32화 (632/917)

#632

1.

앨리스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흥비 마련을 위해 이런 구질구질한 사막까지 왕림해야 했던 것부터가 불만인데.

이미 한가득 들어 앉아있는 마녀들.

거기에 기약 없이 늘어지는 대기 시간까지 더해지자 그녀의 히스테리 게이지는 맥시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건 기다리고 기다리던 호문쿨루스의 미궁이 나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궁이 등장하자마자 또 하나의 짜증 나는 요소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미궁은 위계의 고저로 유불리가 정해지긴엔 복잡하고 방대하다.

시범 삼아 탐지 마법을 여러 차례 사용해 보았지만 호문쿨루스는 다른 마녀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 많던 마녀 중에 함께 전송된 건 같은 캠핑 카 안에 꼭 붙어있던 마냐와 말리샤 정도고, 나머지는 사방 곳곳에 흩어지게 된 모양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정말로 다른 마녀년들과 공명정대한 보물찾기를 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더불어 이동시간까지 고려하면 거의 일주일을 기회비용으로 썼는데 땡전 한 푼 건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앨리스 언니! 여기 와 봐요! 수상한 문이 있어요.”

“말리샤 너 병신이야? 그냥 문이잖아. 언니, 그보단 저쪽 계단이 더 그럴듯해 보여요.”

“마냐, 말리샤. 이건 놀이가 아니니까 제발 아가리  좀 다물어줄래?”

사람 속도 모르고 보물찾기라도 하는 양 들뜬 말리샤와 마냐도 이글거리는 분노에 살랑이며 부채질 중이다.

저년들 입는 옷과 먹는 음식을 누구 돈으로 계산하는지 기억할지나 모르겠다.

“제대로 해. 우리 지금 돈 버는 거야.”

“넵.”

“하아, 진지한 언니도 멋있어요.”

슬렁슬렁한 두 사람과 다르게 앨리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사치를 부리는 데다가 항상 마냐와 말리샤를 뷰빔쿠션으로 데리고 다니는 호색한이지만 앨리스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마녀였다.

대량의 빚을 감당하기 위해 언제나 많은 의뢰를 받아왔고, 그만큼 많은 전장을 넘어온 것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예상과 다른 미궁의 현 상황이 언제든 전장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 다른 마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운 넓이, 거기에 욕심 많은 마녀와 추방자가 한껏 더해지면….

호문쿨루스가 아닌 다른 것을 사냥하려는 자들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마냐, 은폐마법 제대로 하고 있는 것 맞지?”

“그럼요 언니, 제가 이거 하나로 먹고사는데요.”

따라서 비록 위계는 낮지만 은신과 은폐에 정통한 ‘밤안개의 마녀’ 마냐에게 은폐장을 유지하게 시키는 중이다.

“언니, 그런데 이렇게 할 필요 있어요? 저희를 누가 습격한다고요. 델라 그 미친년도 없는데.”

“말리샤, 게헨나 소속끼리 손을 잡았을 수도 있잖니. 아무리 나라도 여러 명 들러붙으면 힘들어.”

잠깐 진실을 뱉었던 앨리스는 조금의 달콤한 말을 섞었다.

“물론 나는 괜찮지만 너희를 지키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온니….”

“어머어머, 자상하셔라….”

단순한 녀석들.

주위를 살피던 앨리스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마냐, 은폐를 최대치로.”

“넵!”

“뭐야, 누구 있어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말리샤와 마냐는 앨리스를 따라 조심스레 고개를 내빼밀었다.

거기엔 길쭉한 창을 어깨에 걸친 채 한량처럼 걸어 다니는 남자가 보였다.

장안의 화제, 티페레트 공작 옆에 붙어있던 남자마녀다.

“…….”

앨리스의 눈빛에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두 눈동자에 이글이글 달러에 대한 열망이 빛난다.

“언니?”

갑자기 말이 없어진 앨리스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마냐.

“마법 그대로 유지해. 천천히 뒤따른다. 누구 때문이건 들키면 혼쭐을 내줄 줄 알아.”

“네.”

“언니에게 받는 벌이라면 좋을지도…. 농담이에요.”

그렇게 셋은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남자 마녀를 뒤따랐다.

5분쯤 아무 말도 없이 느릿하게 추적하던 중 말리샤가 불쑥 입을 놀렸다.

“언니 근데 쟤가 뭘 알고 있을까요?”

“응? 뭔 소리야.”

“저 신시우 인가하는 놈이 호문쿨루스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아 뒤쫓는 거 아니었어요?”

어처구니가 없어 마냐 쪽을 보자 ‘그런 거 아닌가?’하는 얼빠진 표정이다.

당연히 의도를 알아차렸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냐도 말리샤도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너희 장님이니? 이건 기회잖아.”

“장님이라고 할 것까지야….”

“언니를 향한 사랑 때문에 눈이 멀긴 했는데….”

“환장하겠네.”

그렇다.

차마 엄두도 못 내고 있던 아주 좋은 기회가 미궁과 함께 찾아왔다.

이 미궁의 복잡도와 넓이는 상정했던 것 이상.

더군다나 저 남자 마녀는 척 보기에도 티페레트와 떨어진 미아 상태로 보인다.

다소 위험은 있겠지만 원래 투자는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인 법.

“말리샤, 저 마녀 흉내 내는 남자가 얼마일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놈 납치해다가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냐고.”

“언니! 설마…!”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가는 말리샤와 마냐.

그녀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설마 앨리스가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할 줄은 몰랐기에 애초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 1억 불이야. 최소. 남자 밝히는 마녀한테 잘 가져다 팔면 훨씬 더 쳐 줄지도 몰라. 호문쿨루스 따위, 이제 와서 알게 뭐람?”

“하지만 언니, 티페레트 공작의 제자라며요?”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알고 지내는 마녀 중에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년이 하나 있어. 그리고 이 미로를 봐. 누가 알겠어? 우리밖에 없잖아.”

“…그래도 이건 좀….”

“언니, 저희 그냥 호문쿨루스나 노려요.”

손사레를 치며 뒷걸음질치려는 말리샤와 마냐를 앨리스가 쏘아보았다.

몇년 동안 모래먼지 뒤집어쓰며 일해야 할 돈이 하루아침에 굴러들어올 수도 있는데….

지들이 할 일 아니라 이건가?

불쑥 빈정이 상했던 앨리스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채찍이 아닌 당근을 제시했다.

“조용히 협력하고 입 다물면 마냐는 전에 가지고 싶다던 벤틀리, 말리샤는 그 가격만큼 에르메스 백 사 줄게.”

“베, 벤틀리?”

“에, 에르메스 백?”

멍해지는 말리샤와 마냐의 눈빛.

다시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엔 이미 남자 마녀가 명품백 전시대와 벤틀리 차 키로 보였다.

“사주경계 빈틈없이 하고 있어요.”

“제 봉인 마법으로 포장해서 몰래 빼내요. 우선 적당한 곳에 숨겨둔 뒤에 모르는 척하죠.”

“절대 우리가 한 건지 모를 거에요.”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흡족해하는 앨리스.

“일단 조금 더 지켜보자. 지금까지는 티페레트와 서로 연락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더 확인해서 나쁠 거 없어.”

둘의 걱정대로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자칫 티페레트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일인만큼 신중히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네, 언니. 저희 한탕 크게 해봐요.”

“언제까지 작은 물에서 놀 순 없죠.”

언제 그랬냐는 듯 합심한 말리샤와 마냐와 함께 뒤를 쫓아 웬 연회장 같은 곳에 도달했을 무렵이었다.

“거기 숨어있는 거 아니까, 나와.”

동시에 마냐에게로 쏠리는 힐난의 시선.

“넌 이것도 제대로 못 하니?”

“닥쳐! 말리샤! 언니! 저는 실수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아….”

어차피 충분히 지켜보았다.

이 정도 넓이라면 전장으로 쓰기에도 부족함 없다.

“가능한 저항하지 않게 겁 잔뜩 줘. 어쭙잖게 반항하려다 제풀에 다치면 값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괜히 꿈지럭거리다 나가면 가오 떨어지니까 셋 세고 나간다. 하나 둘 셋. 레디….”

액션.

“어떻게 눈치챘지? 분명 꼼꼼히 숨었는데.”

“마냐 네 마법이 형편없던 탓이겠지.”

“넌 입 닥쳐 말리샤. 엘리스 언니,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꼴에 마녀라더니 제법 재주는 있나 보네?”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다.

마냐가 말했듯 은폐 마법은 그녀의 밥줄이었다.

방금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걸 앨리스도 확인하고 있던 것이다.

“귀엽게 생겼나. 언니, 나중에 저도 가지고 놀아도 되나요?”

“눈 안 깔아? 확, 이게 스승 믿고 깝쭉거리네.”

마냐와 말리샤는 제 배역에 심취한 채 남자마녀를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이내 서로 속눈썹 개수를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세 사람.

그는 이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멀뚱히 서서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안녕하세요, 앨리스 님이셨죠?”

“언니 이름을 막 불러?”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팔짱을 낀 채 그를 좌우로 둘러싼 마냐 말리샤.

불량배 같은 품새가 여러 번 해본 듯 익숙하다.

비슷한 구도로 여자를 짐승 보듯 보던 종교쟁이 놈들도 겁을 주었으니 당연하다.

“어떻게 된 건가요?”

딱 봐도 놈에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찡그린 눈가나 자꾸만 뒤통수 쪽으로 향하는 손이나 마녀의 관록이란 1g도 보이지 않는 기생오라비 자체다.

이 거리까지 태연하게 접근을 허가했다는 게 그 증거다.

마음만 먹으면 그를 단숨에 죽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많이 당황했어?”

“공작님 치마폭이 어지간히 따뜻했네.”

마냐와 말리샤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얼빠진 그의 반응이 진심으로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갓 마녀가 된 주제에 미색으로 공작을 홀려서 제자 취급이나 받고 말이야.”

“우리 같은 추방자는 아주 우스웠지? 전에 보니까 목이 빳빳하더만, 아래쪽도 그런가 봐?”

“누나들이 만져줄까?”

“말리샤 마냐 적당히 해. 울겠다.”

앨리스도 모처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놈은 멍청한 양이다.

어미에게서 떨어져 포식자가 목덜미 앞에 이빨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상황파악을 못 하고 메에에 울어대는 양.

하긴 고작 얼굴 반반하게 태어났다고 티페레트 공작과 제머나이 백작의 비호를 받았으니 얼마나 세상이 만만했겠는가?

누구는 고작 오염수 좀 버렸다는 이유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가는데, 누구는 속 편하게 호문쿨루스 사냥 겸 관광이라.

마침 비위가 상하던 터다.

“저기, 이러지 말아주세요.”

“마냐 봤어? 이뤠지 마라주세요오오, 막 이래.”

“여기서 딸딸이 치면서 사과하면 용서해줄게.”

“미친 년, 그게 뭔 더러운 소리야.”

“뭐가? 재밌을 것 같은데.”

험악해져가는 분위기에 당혹스러워하는 그의 모습만 봐도 콤플렉스 응어리가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일전 무례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보내주실 수는 없나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다.

드디어 기다렸던 비굴한 말을 꺼내온다.

이마저도 고민 끝에 나온 답변도 이리 얼빠져 있을까.

“사과? 그래. 잘 말했어.”

등장부터 위해를 가하려 한 정황을 대놓고 드러낸 상태다.

이 시점에서 무사히 티페레트 공작에게 돌려보내 꼰지르게 할 리가 있나.

적당히 놀려주다가 생포해 비밀 옥션에 익명으로 넘길 예정이었다.

“자위까지는 나도 더러우니까 보기 싫고. 무릎 꿇고 구두 핥으면서 사과하면 생각해볼게.”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그의 반응을 지켜보던 앨리스, 마냐, 말리샤.

“10초 만에 꿇으려고 하네.”

“남창 따위한테 자존심이 있겠어?”

꿈틀거리는 그의 무릎을 보며 비웃던 세 사람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스으읍….”

앙다문 잇새로 바람을 빨아들이는 소리였다.

그 음원지는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는.

남자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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