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
1.
스승님은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그러나 너무 빠르지도 않은 시간에 돌아왔다.
그러니까 해가 완전히 저물고 모래 평원 곳곳에 모닥불이 검은 연기를 토해내기 시작할 무렵 말이다.
“곤란하게 됐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꺼내 들었던 계약검을 다시 공간 저 너머로 수납한 그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든 고운 모래를 털어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정보가 생각보다 많은 곳으로 샌 것 같네. 여기 모인 다른 마녀 역시 미궁의 악마를 노리고 있어.”
그녀의 말대로 야영지 쪽엔 족히 40명은 되는 마녀가 모여 있다.
현세에서 이 정도 수의 마녀를 봤던 건 과거 인천항 접선소에 갔을 때뿐이다.
그리고 그건 호문쿨루스를 독점해 사냥하려던 시우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저만한 마녀가 있다는 건 필연적으로 경쟁자가 발생한다는 의미니 말이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나요?”
“어떤 경우 말인가?”
“호문쿨루스의 출현이 미리 관측돼서 지금처럼 마녀가 몰려드는 경우요.”
“흐음,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적다고도 할 수 없네. 예언기관의 신탁이 해석될 때마다 10년에 한 번쯤은 꼭 생기는 행사라네. 평상시에는 찾기 힘든 호문쿨루스를 확정적으로 토벌할 기회니 말일세.”
그렇다면 타카쇼에게 정보를 물어다 준 마녀는 다소 입이 가벼운 모양이다.
아니면 그 정보 자체가 그다지 고급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이럴 때면 보통 어떤 식으로 흘러가나요?”
시우의 질문에 엘로아는 창밖을 가리켰다.
보이지 않은 선을 기준으로 가운데 공백이 존재했다.
“보이는가? 두 부류로 나뉘어있네.”
얼핏 이곳저곳에서 불을 지피거나 텐트를 치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니 40여 명의 마녀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숙영하는 듯하다.
“한쪽은 위치포인트 소속이거나 게헨나의 마녀, 다른 한쪽은 추방자네. 일반적으로 먼저 잡는 마녀가 모든 걸 가져가지. 그걸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진 않지만 말일세.”
“공적은 따로 없는 건가요?”
“없네, 있더라도 날 봤다면 도망쳤을 걸세.”
“아하.”
거기까지만 해도 실로 명쾌한 설명이었지만 그녀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공적은 같은 공적끼리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아니면 마녀가 모인 곳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게헨나나 위치포인트의 마녀는 말할 것도 없고, 추방자에게조차 신뢰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어찌할 겐가?”
“…….”
아무튼 대략적인 그림은 그릴 수 있었다.
스승님과 듀오 레이드가 아닌 아티펙트 쟁탈전쯤이 되겠지.
운 나쁘면 이 먼 거리를 와서 허탕을 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발길을 돌리자니 여기 오기까지의 고생이 마음에 걸린다.
더군다나 이만한 기회를 다시 찾는 것 역시 어려울지도 모른다.
호문쿨루스가 어디 잡고 싶다고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던가?
게다가 이름이 붙을 정도의 네임드몹이라면 분명 괜찮은 유산을 드랍할 것이 분명하다.
“까짓 거 해보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차를 옮기도록 하지.”
2.
시우와 엘로아는 게헨나 소속이었기에 당연히 해당 숙영지 외곽에 차를 대었다.
모닥불 앞에서 불을 보며 넋 놓거나 길쭉하게 누워 담배를 피우던 마녀들.
머무는 행색만 보면 어디 전쟁 피해 도망치는 피난민들인데 다들 한 외모 하는지라 상당히 기괴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하릴 없이 시간을 때우던 마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곧장 이어진 술렁임은 제법 멀리 떨어진 시우의 귀에도 팍팍 꽂혔다.
“뭐야? 저거 신시우 아니야?”
“신시우가 누군데요?”
“그 남자 마녀를 몰라? 요새 유명하잖아.”
“쟤가 걔야?”
좌안의 안대에 검은 리본으로 감싼 장창.
일개 남자의 몸으로 대마녀에 필적하는 마법을 지녔다는 시우는 마녀 사이에서도 전설의 포켓몬 취급이었다.
일각에선 이러한 탄식도 들려온다.
“짐 싸자. 티페레트 공작이면 공쳤네….”
“이 망할 접선소 떠버리 새끼들 희귀한 정보라며!”
“비행기값 날렸네요.”
또한 이런 망발도 들려온다.
“와…. 미친…. 존나 잘생겼다. 얼굴 뜯어먹고 100년은 살겠네….”
“함 대달라고 해 봐.”
“너 미쳤니? 옆에 티페레트 공작 안 보여? 제자래.”
“견습마녀?”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뭔가 있나 봐. 이런 곳까지 단둘이 왔잖아.”
“어머머머…. 연인 관계구나.”
게헨나에선 워낙 오래 머문 까닭인지, 아니면 뒷배경 때문인지 이런 쑥덕임도 거의 잦아 들었다.
여전히 추파에 시달리거나 눈길 정도는 받았지만 말이다.
“유난들 떠는군.”
이런 열렬한 반응은 오랜만이기에 괜히 머쓱했다.
옆에 있는 스승님도 몹시 부끄러운지 이리저리 부산하게 몸을 돌린다.
“우리가 연인으로 보이나 보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지막 말만 기억하시는 것 같다.
소매를 스치는 손이 꼼지락거리며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냥 저기에 있을 걸, 괜히 온 것 같은데요?”
“출몰 예정 지역에 가능한 가까운 게 좋을걸세. 나오자마자 미궁을 펼칠 텐데 가능한 근처인 게 유리하지 않겠나?”
“그도 그렇지만요….”
그래도 게헨나보다는 확실히 현세 쪽에서 스승님의 위명이 드높은 모양이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러 오거나 시우를 보러오는 마녀는 있었지만, 사생팬에 휩쓸린 아이돌처럼 되는 일은 없었다.
안대를 벗은 시우는 마냥 그 이유가 전부가 아님을 확인했다.
다들 위계가 썩 높지는 않았다.
애초에 시우가 마안으로 위계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부터 대마녀 이하라는 것이다.
평균을 내자면 18 위계 쯤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뵈어요. 티페레트 공작님과, 신시우 씨.”
그 중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활활타는 불꽃처럼 새빨간 머리칼과 진한 루비색 눈동자.
이쪽 진영의 유일한 대마녀, 델라 레드클리프 남작이었다.
경험이 인간을 변화시키듯 마녀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 봤을 때 느꼈던 표독스러운 악덕 영애 같은 느낌은 간데없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드레스가 아니라 사막인 걸 고려해도 수수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에, 구두가 아니라 투박한 워커가 발을 감싸고 있다.
그럼에도 기품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닌지라 치맛자락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인사하는 그녀에게는 귀족다운 품격이 묻어나왔다.
“일전 친우의 폭주를 막아주셨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평온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것에 또 한 번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그렇게 말한 델라는 자신의 트럭을 돌아보며 물었다.
“변변치 않겠지만 두 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네, 고맙게 받도록 하지.”
엘로아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인 후 친애와 위로의 뜻을 더불어 델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파올라 소치틀의 대소동.
시우의 기억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소동 중 하나였다.
아마 이제껏 휘말렸던 사건의 난이도 중 상위권을 차지하지 않을까?
그 스승님조차 만신창이가 되어 몇 개월간 요양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 사건의 마무리는 전 재산을 위치포인트에 기부한 델라가 파올라의 시체를 인양 받아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친우의 유해를 바라보던 델라의 옆얼굴은 시우에게 적잖은 생각거리를 주었었다.
“요새 그대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더군. 호문쿨루스를 토벌하고 다닌다지?”
“티페레트 공작님께 말씀들을 정도는 아닌걸요.”
그리고 다시 만난 델라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우선 존대를 하더라도 떨쳐낼 수 없던 오만한 성향과 탐욕스러움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폭탄이 빗발치는 최전방에 자원한 간호병의 인자하고도 강인한 눈빛이랄까.
친애하는 친우를 잃었던 경험은 그녀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놓은 모양이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모래바람이 덮치지 못하도록 판자를 씌워 덮개를 씌운 모닥불.
델라는 작은 화덕처럼 변한 모닥불 위에 무쇠 팬을 올려놓고 능숙하게 베이컨과 달걀을 구워냈다.
옆에는 그을음이 가득한 찻주전자가 매달린 채 증기를 뿜어냈다.
계란후라이를 뒤집는 손길이 능숙한 걸 보니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삭막한 밤사막의 공기를 노릇노릇한 음식 냄새가 녹여낼 무렵.
보리빵을 꺼낸 델라는 버터와 함께 구워낸 베이컨과 계란을 얹어 샌드위치처럼 만들었다.
곁들이는 마실 거리는 브랜디와 홍차를 1대 9의 비율로 섞은 것이었다.
“공작님 입에 맞으실만한지 모르겠네요.”
“그럴 리가, 훌륭한 만찬이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항상 먹던 호화로운 저택의 식사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지만, 장소가 이런 곳이라 그런지 진수성찬처럼 느껴졌다.
중간에 경비행기를 타기 전 간단히 요기했지만, 중앙아시아 음식이 영 입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니.
향신료도 너무 존재감이 강하고 무엇보다 그 강한 향신료 향을 뚫고 고기에서 올라오는 누린내가 장난 없다.
“토벌을 위해 온 것인가?”
델라와 엘로아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우는 다소 주변인이 되어있었다.
듣자하니 그녀는 소치틀이 죽은 이후 현세를 떠돌며 호문쿨루스를 토벌하고 다닌다고 한다.
너무 늦어 구하지 못한 친우를 향한 속죄였다.
“네, 본래는 미궁의 악마만 처리한 채 발을 뺄 예정이었는데….”
여기 모인 다른 마녀와 마찬가지로 신탁을 접하고 찾아온 델라.
하지만 그녀를 반겨주는 건 30명 남짓한 마녀와 또한 소식을 접하고 뒤이어 찾아오는 마녀였다고 한다.
“원래라면 그냥 돌아가려고 했어요.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도 그렇지.”
“하지만 보시다시피 추방자와 게헨나 측 마녀 간 진영이 생겨버려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아 있었어요.”
균형을 맞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곱씹는 시우와 다르게 엘로아는 금방 진상을 파악했다.
“저쪽에도 대마녀가 있는겐가?”
“네, 수은의 마녀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갈라선 숙영지에서 알 수 있겠지만 추방자와 게헨나 마녀들은 사이가 썩 좋지 않다.
게헨나의 마녀 입장에서 추방자는 예비 범죄자고, 추방자 입장에서 게헨나 소속 마녀는 재수 없는 깍쟁이 일테니 말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델라가 빠진다면 저쪽에만 대마녀가 남게 되며 이는 곧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걸 의미한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덮쳐버리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제대로 된 감시기구도 없는 사막 한복판이라면 감정의 골이 실력행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한 것이다.
따라서 델라는 이 자리에 남아 균형추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이 역시 이전의 델라를 떠올린다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이타적인 모습이었다.
“노고가 많았네.”
“저야 이곳에 있었을 뿐인걸요.”
겸손하게 시선을 내리깔며 답하는 델라가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이런 부탁하기 죄송스럽지만, 혹시 수은의 마녀와 대화해 주실 수 있나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요.”
전혀 달라진 델라의 모습에 인자한 웃음을 짓던 엘로아.
그녀는 기꺼이 델라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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