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18화 (618/917)

#618

1.

원수 집안 간의 자식끼리 사랑을.

막대한 재산의 재벌가 2세가 평범한 가난녀와 사랑을.

왕녀가 광대와 사랑을.

이렇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넘쳐나는 새롭지 못한 소재이다.

하지만 알비레오는 단 한 번도 그것에 공감한 적 없었다.

그럴듯한 이야기라고도 여기지조차 않았다.

합리성을 초월해 이뤄지는 사랑 따위 장르적 연출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만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기껏 금단의 사랑에 목을 매지 않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렇기에 여동생도 믿었다.

알비레오만큼이나 똑똑한 데네브니까.

한순간의 충동으로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되돌릴 것이라 믿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태여 판별할 필요도 없는 관계라면 적당히 마음을 접어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지금.

“미안해. 난 포기 못 할 것 같아.”

그 신뢰와 기대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다.

날카로운 얼음파편처럼 알비레오의 말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결연한 데네브의 얼굴.

이미 각오를 굳혔다.

그녀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는 알비레오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신시우와 뒤로 ‘검증’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뜯어말리지 못했던 것 아닌가?

돌이켜보면 그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차라리 알비레오가 몸을 헌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사코 피했어야 했다.

“정말 날 실망시키는 구나.”

“그런 게 아니야, 언니 들어봐.”

데네브는 평소 자신의 의견이 반대에 맞부딪쳤을 때처럼 바락바락 우기려 들지 않았다.

그만큼 제 죄를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도 입에 담지도 못할 행위를 태연하게 계속하겠다 선언하는 여동생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말해봐.”

무슨 헛소리를 변명으로 가져오나 보자 하고 팔짱을 낀 알비레오.

데네브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낸다.

“시우 군을 이용하면 목숨을 잃지 않고도 낙인을 계승하는 것이 가능하대. 예소드 백작이 협력해 준 것도 그 샘플을 얻기 위해서였고.”

“그건 알고 있어.”

“방금 들은 거야?”

“아니, 원래부터 알고 있던 거야.”

알비레오는 데네브보다 훨씬 빨리 예소드 백작으로부터 연구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다.

쌍둥이 역시 시우에게 사전에 들었기에 알고 있었으니 연구에 관해 몰랐던 사람은 오직 데네브뿐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라니? 이건 엄청나게 혁신적인 연구야! 쌍둥이와도 영원히 지낼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당연히 도와야 하지 않겠어? 어쩌면 우리도....”

예소드 백작에게 처음 연구에 관해 들었을 당시.

데네브는 기쁨에 가득 찼다.

낙인을 물려준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죽음 때문이 아니다.

모든 마녀는 마녀가 된 시점부터 제 죽음을 준비하고 각오한다.

그러니 데네브가 두려운 것은 토끼 같은 오딜 오데트를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까닭이다.

견습마녀가 있는 마녀라면 모두 같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연구를 완성한다면 쌍둥이와 영원히 함께할 수도, 조금 더 사심을 보태자면 시우와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데네브, 제발 정신 차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우리는 제머나이로서 소임을 다 했어. 스승님이 그러셨듯 나는 오딜에게, 너는 오데트에게 온전한 낙인을 물려주고 떠나는 것이 마지막 의무야.”

알비레오는 데네브보다 먼저 장모의 권한으로 예소드 백작의 연구를 살폈다.

그 연구물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낙인의 복제를 활용한 전이였다.

견습마녀에게 스승의 마법을 전이해주는 것을 반복.

마무리 단계에선 견습마녀의 그릇과 스승의 마법을 교환하는 것으로 끝난다.

즉, 스승은 본래 견습마녀가 지니던 ‘그릇’을 갖게 되고, 견습마녀는 그릇을 제외하고 본디 스승이 지녔던 자성마법을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자료를 소상히 살핀 알비레오는 빠르게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딸 바보 예소드에게나 필요한 연구라고.

그리고 결코 많은 마녀가 원하지 않을 연구라는 것도.

“만약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결국 쌍둥이는 본래 물려받았어야 할 위계보다 한 단계 낮은 21 위계를 물려받게 돼.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마녀의 존재는 결국 마법의 발전을 위함에 있다.

대를 이어가며 낙인을 계승하는 것도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위계 상승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법으로 계승한 결과가 제자리걸음이라면.

그건 오직 마법을 위해 삶을 불태우고 그 이름을 후대에 넘긴 역대 제머나이의 영광에 누를 끼치는 행위이다.

“쌍둥이 옆에 있을 수 있는 거잖아! 언니는 걱정되지도 않아?”

“쌍둥이 옆에서 뭘 어쩔 건데?”

“그게 아니라….”

“오딜도 오데트도 언제까지고 어린 마녀로 남을 수는 없어.

언젠가 우리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날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해. 우린 스승님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잖아.”

알비레오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오딜과 오데트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다.

하지만 알비레오와 데네브 역시 과거엔 그러하였다.

어설픔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성숙함에 접어든 것은 스승님이 떠나고, 온갖 고난과 험난한 세상에 직접 부딪치면서였다.

“그게 아니면 영원히 함께 살며 걸림돌로 남고 싶니?”

알비레오는 아직도 반박하려 드는 데네브에게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었다.

“너도 봤다며, 만약 전이를 무사히 끝낸다 해도 우리에게 남는 것 그릇뿐이야. 같은 마녀는커녕 호문쿨루스 한 마리조차 제대로 상대할 수 없게 되겠지. 마법 연구는 고사하고 간단한 학술지조차 이해할 수 없어.”

마녀에게 마법이란 삶의 목적 그 자체이다.

그런 마녀에게 마법을 뺏어간다는 건 삶을 앗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크나큰 장애를 안은 채, 빈 쭉정이처럼 연명해야 하는 거야. 이런 미래를 감당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

데네브의 대답을 즉답이었다.

단순히 말싸움에서 밀리기 싫기에 주워섬기는 허세가 아니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보랏빛 눈동자가 똑바로 향해오는 게 증거다.

알비레오는 스승으로서 제자의 독립과 자립을 응원하는 사랑을.

데네브는 어머니로서 더 많은 보살핌과 애정을 주고 싶다는 사랑을.

두 사람 모두 방식은 다르지만, 쌍둥이를 정말 사랑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아직 너한테 들어야 할 말이 많아.”

대치를 먼저 끝낸 건 알비레오였다.

오늘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양육론의 차이 탓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가 옆으로 샌 셈.

보다 근본적으로 나눠야 할 문제는 장모인 데네브가 시우와 동침하기 위해 장대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점과, 그것도 모자라 이런저런 구실을 덧붙이며 그 관계를 이어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뭐가 어찌 됐건, 절대 안 돼. 포기를 못 하겠다니. 너 제정신이야? 쌍둥이랑 처첩 자리 놓고 다투기라도 하게? 눈에 흙이 들어가도 난 그 꼴 못 봐!”

칼로 긋듯 단호하게 선언한 알비레오는 지금껏 참아왔던 묵직한 팩트를 무차별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고작 기분 좋아지고 싶다고 사위를 꾀는 게 문제야. 네가 길고양이라도 되는 줄 아니?”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예소드 백작이랑 작당해서 침대로 끌어들이니까 좋디? 만족스러워?”

“그런 거 아니라니까!”

데네브는 억울한 듯이 입술을 내밀고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언니는 몰라. 언니가 사랑에 대해 뭘 알아?”

“와, 환장하겠네.”

남녀의 사랑은 번식본능을 포장한 로맨티시즘이라 열변을 토하던 데네브는 어디 있는가?

또한 마녀로의 위업을 달성하고 여생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대마녀의 품격은 어디있는가.

사춘기 당시 오딜 오데트가 할 법한 대사를 진지한 눈빛으로 설파하는 것이다.

“나는 시우 군의 몸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의 따뜻한 품에 다시 안기고 싶었던 거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안길 예정이라고?”

“…언니도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알비레오는 탄식했다.

데네브가 어떤 상태인지 이제야 완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언니 말대로 계승이 문제가 아니라 해도, 오히려 이건 쌍둥이를 위한 일일 수도 있어.”

그녀는 지금 눈 양옆이 가려진 경주마였다.

뜨거운 불장난에 옷이 타들어 가는 줄 모르는 순진무구한 공주님처럼 실로 맹목적이다.

“언니도 쌍둥이가 시우 군과 관계를 맺는 걸 걱정했었잖아. 내가, 계승 전까지라도 욕망을 해소해준다면 쌍둥이도 한결 안전해질 거야.”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는 저따위 말을 진지하게 주워섬길 만큼이나 말이다.

이미 그의 옆엔 연인이 많다.

욕망의 해소가 목적이라면 굳이 장모인 데네브가 나설 필요도 없다.

“그래서, 쌍둥이를 위해서 사위의 욕망을 해소하는 역할을 자처하겠다고?”

“응.”

“전에 검증도 했잖아.”

“검증만으로는 대비할 수 없는 변수가 있을 테니까.”

어이가 없어 내뱉는 탄식에도 ‘이제야 이해해 주려나?’ 같은 기대감 서린 눈빛을 던져온다니.

더는 대화를 나눌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다른 남자를 물색해 보는 건 어때? 내가 미남으로 구해줄게.”

“시우 군이 아니면 안 돼.”

“하아….”

알비레오는 깊은 한숨을 숨기지 않고 내쉬었다.

“됐다, 가서 쉬어.”

“언니….”

“가서 쉬라고.”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알비레오는 우두커니 서 있는 데네브를 휙 등진 채 저택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여동생을 단단히 훈계할 예정이었던 알비레오였으나, 본인이 들어먹질 않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아, 편두통….”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며 눈가를 꾹꾹 누르는 알비레오.

말년에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은지, 살아생전 여동생이 사위 놈과 정분 나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이 소문이 밖으로 나돈다면 제머나이의 명성은 바닥까지 떨어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 이러니저러니 아끼고 사랑하는 여동생이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면 막아야 할 의무가 언니에겐 있는 법이다.

“그렇게 둘 순 없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데네브를 위해 알비레오는 특단의 조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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