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13화 (613/917)

#613

1.

시간을 조금 거슬러 지난주.

데네브가 루시를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다.

데네브는 루시 백작의 안내를 따라 예소드 저택의 마도구 창고에 들어섰다.

사업의 주력으로 밀고 있는 제머나이 백작가보다는 못해도 온갖 희귀한 아이템들이 놓여 있는 창고는 경매장의 커튼 뒤편이나 박물관의 유물 보관고를 연상케 했다.

“갑자기 여기엔 왜 온 건가요?”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루시는 그렇게 말하고 하얀 천막을 거뒀다.

그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금과 보석으로 호화롭게 장식된 스탠딩 전신 거울.

골동품을 넘어 문화재급 물건임이 분명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당장 과거로 돌아가 여왕에게 진상한다면 작위와 영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예쁜 거울이지만 당연히 사치품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거울 앞에 섰음에도 데네브의 모습이 매끈한 거울 표면에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보이는 것은 등 뒤로 갖은 물건이 쌓인 선반과 마도구를 덮고 있는 하얀 천뿐.

아티펙트인 것은 확실한 셈이다.

“이건 무슨 아티펙트인가요?”

“잠시 거기에 서 계시겠어요?”

루시가 맞은편 거울에 서자 비로소 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만 살짝 눈을 치켜뜬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 데네브가 아닌 루시의 모습.

마력이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빛이 산란했다.

그 눈부심에 살짝 눈을 가리고 있자 거울 뒤편에 서 있던 루시가 걸어나왔다.

“이건 기만의 거울이에요.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상대와 외양을 뒤바꾸는 아티펙트죠. 다소 제약이 까다로운 대신 완벽한 복제를 자랑해요.”

태연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루시가 아닌 데네브의 것이며, 또한 그녀의 외형 역시 완벽하게 데네브의 것으로 변모해 있었다.

데네브는 제 몸을 살폈다.

마찬가지로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은 그대로지만 몸은 루시의 몸으로 바뀌어있다.

“그렇군요. 근데 왜 제게 이걸?”

추방자도, 공적도 아닌 데네브가 변이 마법을 사용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루시의 목소리로 말하는 데네브는 빠르게 침착해져 있었다.

마녀라는 것이 원체 초월적인 현상을 다루는 족속이다.

두 사람의 외형을 바꾸는 폴리모프 마법 정도는 신비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육안으로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 변장의 성능에 감탄할 무렵.

루시가 불쑥 다가왔다.

“다음 주에도 연구가 있을 예정이에요.”

“연구라면…. 시우 군과요?”

“네.”

이 정도의 눈치를 준다면 데네브도 즉각 알아차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녀의 눈치는 루시의 예상보다 훨씬 더뎠다.

그만큼 그쪽 분야로는 사고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대체 뭐가요?”

“루시, 당신은 참 눈치가 없네요.”

루시는 싱긋 웃으며 다시 한번 눈치를 주었다.

데네브의 모습과 목소리로 데네브를 루시라 칭하는 그녀의 모습에 데네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

그렇다.

이 거울의 존재를 모르는 제 3자가 본다면 필경 데네브가 루시를 부른 것으로 비쳐질 것이다.

마침내 이 번거로운 짓의 진위를 깨달은 것이다.

“기만의 거울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제약이 까다로워요.

우선 변하고자 하는 대상과 거울 앞에 마주 서야 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외견을 바꿔야 하며, 거울에서 100걸음 이상 떨어진다면 변신이 풀리죠.

하지만 제약이 까다로울수록 성능이 올라간다는 건 아시죠? 그가 안대를 벗더라도 절대 눈치 못 챌 거에요. 마법의 주체는 저희가 아니라 이 거울이거든요.”

“지, 지금…. 지금…. 설마…?”

“네, 데네브가 저를 대신해 다음 연구에 들어가시면 되는 거에요.”

이것이 루시가 데네브를 위해 제시한 상사병의 특효약.

서로의 모습을 바꾼 채 그와 동침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어요! 루시! 제정신인가요?”

당연히 데네브는 펄쩍 뛰었다.

루시의 제안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렸기에, 거기에 혹하는 자신을 내치고자 더욱 크게 외쳤다.

“제가 고민하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건 잘못됐어요!”

“뭐가 그렇게 잘 못 됐는데요?”

“다, 당연하죠! 사위를 속이고 동침한다니…. 용납될 리가….”

“데네브, 그렇지만… 괴롭잖아요.”

루시의 한마디에 데네브의 말이 쏙 들어간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 너무나도 매혹적인 제안이었던 까닭이다.

이제 앞으로는 영영 맨살을 부빌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의 품에 다시 안길 수 있다.

키스도 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도 있다.

“특별히 나쁜 일도 아닌 걸요. 시우 씨가 눈치채지만 못한다면 없던 일이 되는 거에요. 들어보세요.”

계속되는 루시의 열띤 설득은 그렇지 않아도 갈대처럼 휘청이던 데네브의 귀가 솔깃했다.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동안 데네브가 보냈던 인고의 세월은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쯤되자 데네브도 궁금한 것이 생겼다.

“루시, 진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도와주는 이유가 뭔가요?”

“저에게도 필요한 일이니까요.”

루시는 답했다.

시우와의 성교를 통한 낙인 계승.

그를 위해선 견습마녀를 둔 다른 마녀의 샘플이 필요하다.

“즉, 이 몸을 바꿔치기한 채 하는 섹스는 시우 씨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음과 동시에 저희 두 사람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거죠.”

루시의 설득을 듣고도 한참을 망설이는 데네브.

실은 망설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음에도 망설이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요, 상세 계획을 들어보죠.”

그렇게 루시와 데네브의 은밀한 계약이 성사되었던 것이다.

2.

계획은 순조로웠다.

루시의 모습을 한 데네브와 데네브의 모습을 한 루시가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

드디어 데네브와 시우 단둘이 침실에 남게 되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하나는 아무리 말투를 비슷하게 흉내 내도 어딘가 위화감을 느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우가 보는 앞에서 데네브의 모습을 한 루시가 퇴실하게 된다면 한결 의심을 덜어 놓을 수 있겠지.

뿐만 아니라 서로의 말투나 습관을 구별해 연습하고, 행여 그가 체취를 통해 데네브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기에 평소 루시가 사용하는 향수도 듬뿍 뿌렸다.

사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잘못되어있다는 건 알고 있다.

조마조마한 나머지 콩닥콩닥 뛰는 심장.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하고 돌아갈까 고민하던 데네브.

그때 시우가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데네브의 뒷목을 잡고 입을 맞췄다.

“츄웁…. 츄우웁….”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신시우의 입술이었다.

여자의 것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래도 남성의 신체 부위 중엔 가장 부드럽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입술.

배덕감과 죄악감이 머릿속을 잠식해 나간다.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설탕 공예처럼 녹아내리며 데네브는 그저 시우에게 매달려 혀를 섞었다.

“츄룹… 츄우….”

정말로 그와 키스해버렸다.

최음제라도 듬뿍 마신 양 고작 키스만으로 저려오는 아랫도리를 비척이는 데네브.

그런 데네브의 머리를 아찔하게 만드는 건 아랫배를 꾹꾹 누르며 풀발기한 그의 육중한 물건이다.

마치 여기까지 삽입해 줄 것이라고 공표하듯, 의도적으로 데네브의 매끈한 복부에 자지 꾹꾹이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의 물건은 데네브의 가느다란 손가락과는 달리 아무런 무리 없이 그 깊이까지 닿으리라.

“하아…. 하아… 시, 시우 씨….”

애탄다.

벌써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밤, 이 순간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어루만졌던가?

얼마나 많은 밤, 결국 덧 없고 허황한 망상임에 좌절하며 슬피 울었던가?

하지만 이젠 아니다.

어항 속 그때처럼 만질 수 있고, 키스할 수 있는 신시우가 바로 앞에 있다.

“후흡….”

그대로 정수리에 파묻히는 시우의 코가 체취를 힘껏 들이켰다.

데네브는 짧게 탄식했다.

그가 체취를 맡으면 어떻게 되는진 이미 알고 있다.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소드 백작님 저한테 잘못한 거 맞으시죠?”

“네?”

어쩐지 비릿한 웃음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혹시 들킨 것일까?

뭔가 수상한 낌새를 흘린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에 시우는 보란 듯이 데네브의 체취를 마셨다.

그렇다면 데네브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품으려는 것인가?

커다란 동요의 물결과, 그 사이로 출렁이는 희미한 기대감.

“저한테 거짓말하셨잖아요.”

“…네?”

“오늘 저랑 하는 거, 연구 샘플로서의 가치는 딱히 없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키스하기 전 데네브가 그를 침실에 잡아 두기 위해 했던 거짓말을 짚었을 뿐이니.

“네? 네, 사, 사실 그래요….”

“그냥 저랑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 될 걸 거짓말을 해버리셨네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시우의 말은 데네브의 또 다른 치태를 관통하고 있었다.

장모이면서 사위에게 정욕을 품고, 결국 이런 간사한 거짓말을 쓰면서까지 몰래 그와 정을 통하려는 치태를.

그걸 책망하듯 시우의 커다란 손이 데네브의 엉덩이를 꽉 움켜쥔다.

“맞죠?”

“마, 맞아요….”

“거짓말하셨으니까. 벌을 받으셔야겠죠?”

“벌…. 벌이요?”

그가 말하는 벌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숙지한 뒤다.

시우와 루시가 평소 즐기는 건 꽤나 과격한 SM 플레이.

따라서 루시는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데네브에게 경고했다.

‘데네브, 무조건 오늘은 부드럽게 해달라고 하세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굉장히 험한 꼴을 보게 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데네브는 아직 그런 수위 높은 취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네, 벌… 벌 받아야죠….”

하지만 입술은 정반대의 말을 읊으며 달싹였다.

결국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욕망에 젖어 그의 말대로 시우를 속이고 말았다.

그에게 취향을 맞추는 이 벌로 속죄할 수 있다면 얼마든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시우에겐 전해지지 않을 자기만족을 위한 속죄일지라도 말이다.

“그럼 평소에 어떤 식으로 자위하는지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세요.”

그렇게 시우로부터 부여받은 벌은 평소 자위 습관에 대해 낱낱이 보일 것.

데네브의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가혹한 벌이었다.

귀족으로서, 그리고 대마녀로서.

얌전하고 정숙한 몸가짐을 평생 옷처럼 두르고 다니던 데네브다.

시우의 요구는 그런 데네브의 가치관을 찢어발겨 누드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침대에 눕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고, 이토록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해야 한다니….

치욕과 굴욕감이 데네브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데네브가 놀란 까닭은 그런 변태적인 요구에도 흥분이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생전 처음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절대 불쾌하지 않은 따끔따끔한 통각이 아랫배를 저릿하게 만든다.

“하, 할게요...."

경건하게 고개를 끄덕인 데네브의 손가락이 이미 반쯤 젖기 시작한 속옷 안쪽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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