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1.
“그러니까…. 정말로 그런 취향이 존재한다는 말인가요?”
얼굴이 뜨겁다 못해 귀에서 김까지 뿜어져 나오게 된 루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데네브가 조금이라도 음지의 취향에 관심이 있더라면 일련의 오해는 ‘SM 플레이를 했어요’라는 한마디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불행은 데네브의 성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빈약했다는 것.
데네브는 그런 취향이 존재한다는 근본부터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루시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정말요? 나중에 따로 시우 군을 심판하기 위해서, 혹은 제게 협박당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요?”
“그렇다니까요….”
어느 정도 설명이 된 것 같은데도 데네브의 표정은 아연함 그 자체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스르스트뢰밍을 황홀한 표정으로 먹는 걸 보면 대충 저런 얼굴이겠거니 싶다.
“그러니까…. 지배받거나, 엉덩이를 맞거나 하는 것에 성적 흥분을 느낄 수가 있다고요? 정말요?”
“데네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한평생 감춰오던 성적 취향이 강제로 커밍아웃 되었다.
심지어 거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수치 플레이는 루시에겐 너무 가혹한 행위였다.
거의 울먹일 지경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예소드 백작.
“아, 죄송해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혹시 교차 검증을 위해 다른 분께 여쭤봐도 될까요?”
“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결국 데네브의 의심은 ‘자백의 시’를 사용해 검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녀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가치관에 혼란이 온 것처럼 손톱 끝을 물어뜯는 데네브.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루시는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쪽팔린 건, 쪽팔린 거고 따져야 할 문제는 따져야 할 문제이다.
“데네브.”
“네.”
“데네브는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 선을 넘었어요.”
그렇다.
오늘 관계를 맺었던 침실은 루시의 침소였다.
작정하고 몰래 숨어들지 않는 이상에야 우연히 라도 지나칠 수 없는 장소다.
이젠 루시가 데네브를 추궁할 차례였다.
더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은 잠잠해져가던 분노의 불씨에 훌륭한 풍로가 되어주었다.
“오해라곤 하지만 절 걱정해 주신 건 고마워요. 하지만 이 무례에 대해서는 확실히 설명해 주셔야겠어요.”
“그건 말씀드렸듯 우연히….”
“거짓말 말아요. 우연으로 들어올 만한 장소가 아니랍니다. 설마 제 치부를 이런 식으로 들춰놓고 본인은 쏙 빠져나가려는 건 아니겠죠?”
시우가 협박범이 아니었고 그저 루시 예소드가 상식 외의 변태였을 뿐이다.
라는 결말에 다소 안도하고 있던 데네브였지만 루시의 매서운 추궁이 이어지자 상황 파악이 완료되었다.
데네브의 걱정은 완전 헛다리.
만약 협박이 사실이었다면 ‘지나가던 목격자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갔을지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는 엿보게 된 원인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저기, 그건….”
“설마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말은 아니겠죠?”
과거 루시의 성깔이 나오는 뾰족한 목소리에 데네브는 생각했다.
최근 데네브의 머리를 어지럽히던 고민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으로 누구에게도 털어놓거나 조언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반쪽이나 다름없는 알비레오에게도, 아니 반쪽이나 다름없는 알비레오이기에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
하지만 루시라면 어떨까?
저런 독특한 취향을 지니고 있는 그녀라면.
오랫동안 우정을 지켜온 그녀라면 데네브의 고민을 비난하지 않고 들어 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본의는 아니었지만 데네브도 루시의 약점을 쥐게 되었으니 만에 하나 외부에 발설될 가능성이 낮았다.
“저도 비밀을 지킬 테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데네브 백작과 동귀어진할 거에요!”
펄쩍 일어나 테이블을 쾅 내리치는 루시.
“미, 미안해요. 그런 게 아니라 루시 백작도 제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좋아요. 자리를 옮기죠. 길어질 것 같으니.”
2.
만약 데네브가 어물쩍 거짓말을 입에 담으려 했다거나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읊었다면 루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적 피해보상이라도 청구했겠지.
하지만 고급 위스키 한 병을 혼자서 동내고서야 어렵사리 꺼낸 말은 그런 분노를 깡그리 날려버릴 만큼 충격적이었다.
“요약하자면 데네브 백작님이…. 시우 씨를 연모하게 되었다는 건가요? 그래서 뒤를 밟았고?”
“연모라뇨! 가당치도 않아요! 단지…. 의식하게 된 정도에요.”
“그거나 그거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데네브의 구구절절한 완곡 화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요즘 사위가 남자로 보여요’였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사연만 다루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도 호스트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 법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이유로....”
하지만 이것만 들어서는 원인을 짐작하기 어렵다.
물론 신시우는 대단한 절세미남에 몸도 좋다.
세계에 단 하나 있는 마녀이니 희소성도 굉장할 것이다.
그러나 데네브가 누구인가?
대쪽 같은 성격에 일평생 남자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정통파 마녀다.
막장 야설의 대가인 루시조차 ‘그건 좀….’이라고 흠칫할만한 퇴폐적 관계에 눈독을 들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도 될까요?”
“아아, 너무 원망스러워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 행복했는데….”
데네브는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간 홀로 속병을 앓았던 문제를 조심스레 루시에게 털어놓는다.
“처음엔 그저 검증을 위해서였어요.”
“어떤 검증이요?”
“그게….”
이어진 데네브의 회고는 점점 루시의 턱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첫경험은 뒤로 했단다.
견습마녀에게 영향이 없을지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나 뭐라나.
그때까지만 해도 남녀 관계의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고 한다.
문제의 발단은 루시도 익히 알고 있는 어항 납치 사건.
데네브는 마력 보급을 위해 시우와 관계를 하게 되었다.
물론 마력 복사를 위해 굳이 왕복운동은 요구하지 않은바, 최초엔 그저 삽입 후 곧장 사정하는 방식의 섹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쳐갔어요. 그는 믿음직했고 기대고픈 마음이 자꾸만 커졌어요. 어쩌다 보니…. 제가 멋대로 요구를 해버려서….”
그리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질펀한 성교.
이후엔 시우의 희생 아닌 희생으로 홀로 탈출한 데네브.
그 뒤로 시우가 행방불명 되었을 때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괴로워했는지를 풀어나가는 데네브를 루시는 빤히 바라보았다.
고해성사를 하는 듯한 침울한 분위기.
그러나 눈물 어린 목소리와 죄악감에 몸부림치는 칙칙한 분위기로도 가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소녀.
아주 먼 옛날 루시가 처음으로 사랑을 알고 거울을 보았을 때 비쳤던 풋풋한 연심.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임과 동시에 저주였다.
“쌍둥이를 볼 면목이 없어요. 얼마 남지 않은 삶인데, 고작 남자 문제 따위에 얽매이는 모습이 너무 한심한데, 하지만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어요….”
마침내 모든 고민과 죄악을 털어놓은 데네브의 목소리는 먹먹하게 잠겨 있었다.
처음이기에 서툴고, 처음이기에 다루기 어렵다.
처음이기에 두렵고, 처음이기에 주체할 수 없을 사랑.
그런 와중에 연모하게 된 상대가 사위라니.
면허를 따고 곧장 아우토반으로 향한 것처럼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 관계가 금단의 관계라고 해서 어찌 쉽사리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데네브는 일단 루시의 친구.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루시는 데네브의 오해 탓에 겪게 되었던 수치도 잊고 그녀의 손등을 쓸어주었다.
“죄송해요. 너무 취했나 봐요. 너무 주책없었죠?”
“주책없다뇨.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마음 가는 대로 되겠어요.”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고 싫어요. 하지만…. 못 멈추겠어요.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루시의 위로에 쌓였던 봇물이 터진 듯 와락 안겨드는 데네브는 한참이고 엉엉 울며 한탄했다.
3.
“…훌쩍.”
한참 울어 퉁퉁 부은 눈가를 손수건으로 콕콕 찍으며 눈물을 닦아내는 데네브.
호흡은 다소 거칠었으나 어딘가 상쾌해 보였다.
응어리지던 고민을 고름처럼 짜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윽고 이어진 데네브의 질문에 루시의 동공이 초진동을 일으켰다.
고민을 들어주는 것으로 족할 줄 알았거늘, 설마 뭔가 해결책을 묻는 걸까?
연애 상담도 레벨이 있는 법이다.
이런 초고난이도 금단의 러브러브에 조언을 얹기에는 아무리 루시라도 쉽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에 무슨 답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역시…. 포기해야 할까요?”
“저, 저도 잘….”
“알아요. 백작님의 눈에 제가 어떻게 보일지…. 한심하고 멍청한 년이겠죠.”
자기혐오의 아우라가 풀풀 뿜어져 나오는 데네브의 모습에 루시는 엉겁결에 말을 꺼냈다.
명확한 계획이 있다기엔 무조건반사 급으로 튀어나온 말이다.
“우선은 솔직하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솔직하게요?”
“네, 저에게 말해주신 것처럼 시우 씨에게 털어놓아 보는 것도….”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좋은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짝사랑이 아니다.
진솔한 대화의 결과 시우와 데네브가 연결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콩가루 족보 탄생이다.
“역시 못하겠어요….”
“그렇다면 언니분께라도 상담을….”
“언니가 이걸 알면 절 죽이려 들 거에요. 언니에겐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해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현명한 데네브가 이토록 고생했던 것이겠지.
루시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다 불현듯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상사병이라는 불치병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지만 대증 치료 정도의 효과는 낼 수 있을 묘약이었다.
“데네브.”
“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겠어요?”
하지만 과연 이걸 추천해도 될지.
오히려 상황을 복잡하게 꼬아버리는 건 아닐지.
마음 한쪽에 염려를 밀어 놓으면서도 루시는 자신이 방금 떠올린 생각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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