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08화 (608/917)

#608

1.

예소드 백작과의 뜨거운 정사가 끝났다.

구태여 설명도 할 필요 없는 뜨거웠던 시간 이후 몸을 씻고 가운만 대충 걸치고 나온 예소드 백작.

창가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자니 입술을 뾰로통하게 문 채 다가왔다.

“시우 씨.”

“네, 백작님.”

“이거 보세요.”

잠시 뒤를 돌아서더니 목욕 가운의 뒷자락을 올려 보이는 예소드 백작님.

원망 어린 목소리가 부끄러움과 함께 귓가를 기분 좋게 간질였다.

“이거 어쩔 거에요?”

“어이쿠….”

“어이쿠… 가 아니라! 이대로는 당분간 욕장에도 들를 수 없을 거라고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푹신푹신한 루시 마망의 신체 중에서도 발군의 매력을 자랑하는 뒤치기 전용 서스펜션.

달덩이를 연상시키는 백작의 엉덩이는 빨간 줄이 쫙쫙 그어져 있었다.

모두 시우가 허리띠를 풀러 찰싹찰싹 때려주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는데….

제정신인 상태에서 보니 굉장히 아파 보이긴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지나쳤던 것 같아요.”

“지나쳤죠. 그리고 여기도 보세요!”

그대로 몸을 돌린 루시는 이번엔 앞섶을 풀어 뽀얗고 말랑한 가슴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백도 같은 가슴 위에 몇 개씩이나 존재하는 잇자국 역시 시우의 작품이다.

“자국 남을 정도로 깨물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는 예소드 백작이지만 시우는 그만 웃고 말았다.

억울하다는 듯 삐쭉 내뺀 루시의 아랫입술이 더는 튀어나올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지금 웃음이 나와요?”

물론 진지한 항의였다면 아무리 그녀의 표정이 재미났어도 실소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관계 후 시우를 나무라는 일련의 과정이 쑥스러움을 감출 의도의 변명임을 아는 이상, 어쩐지 귀엽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건 백작님이 부탁하셨던 거잖아요.”

은근슬쩍 놀리듯이 진실을 짚어 보았다.

곧장 새빨갛게 달아오른 루시가 투닥투닥 시우의 가슴을 두들기며 민망함을 숨긴다.

“누가! 누가요! 제가 언제 그랬어요!”

“잇자국 남을 때까지 잡아먹어 달라고 하셨는걸요.”

“저는 그런 적 없거든요! 시우 씨가 흥분해서 멋대로 들은 거겠죠! 애초에 시우 씨 취향에 이렇게나 맞춰주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곤란해요.”

하지만 오늘의 백작님도 자신의 취향을 솔직하게 인정할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다.

구태여 이겨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항복 선언을 하고 곧장 사과했다.

“배상이라도 해드려야 할까요?”

“…시우 씨, 사람이 갈수록 능글맞아져요. 점점 변태처럼 변하질 않나…. 제가 알던 모범 청년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지막은 절로 쓴웃음이 나오는 통렬한 지적이었다.

예소드 백작처럼 뒤늦게 새로운 취향에라도 눈을 뜬 건지.

르뤼에와 도로시와 관계를 맺었던 일만 떠올려도 과거 자신이라면 절대 요구하지도, 하지도 않았을 행위들이었다.

“저는 완숙하고 어리광도 쉽게 들어주는 편이라 얼마든지 받아주지만, 다른 여자에게 그런 식으로 군다면 미움받고 말 거랍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약간의 한담 이후 연구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찌 됐건 예소드 백작과 관계를 갖는 가장 큰 목적은 계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시우 씨가 없는 동안 제법 진척이 있었어요. 새로운 계승법이요.”

“정말인가요?”

“메커니즘 상 완전한 복사는 불가능하고 이식만이 가능하다는 건, 전에 얘기했었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법론에 대해서도 제법 청사진이 잡혔어요.”

시우의 특성을 활용한 낙인 이식이 사실상 장기이식에 가깝다는 건 이미 숙지하고 있던 바였다.

그러니 루시가 말하는 시술 방식은 ‘어떻게 잘라내어 어떻게 붙일까’인데.

그녀는 수첩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마법식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현시점에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이거에요.”

예소드 백작이 그려낸 것은 주사기였다.

정말 주사기를 그린 것은 아니고 마법적 작용을 얼추 해석하자면 주사기의 형체를 띤다는 의미다.

예소드는 역장 마법의 권위자고, 시우는 잘 쳐주어야 학부생 정도였지만 그래도 마법 짬밥이 좀 된다.

절반쯤 이해할 수 있는 종이를 보며 즉각 무언가를 떠올렸다.

“설마…. 아니겠죠?”

“시우 씨 예상이 맞을 거에요.”

‘에이 아니겠지’ 싶어 몇 번을 반복해 검토해도 똑같은 결론.

고약한 농담인가 싶어 그녀의 표정을 보았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총 세 단계의 시퀀스가 반복적으로 행해져요. 먼저 제 낙인의 자성 마법을 분할할 거에요.”

시우가 복제해가는 마법은 오직 하나, 그것도 완벽하게 조각난 하나를 떼어온다기보다는 꽤 난잡한 방법으로 복사해 오게 된다.

마치 브라우니를 포크로 잘라내어 들어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 전에 루시가 자성 마법의 분할을 확실히 함으로써 정확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게끔 유도한다.

포크로 들어올리 기 전 브라우니를 일정한 모양으로 자르는 것이다.

“그다음엔 시우 씨의 아인에 복사한 마법이 안착하지 못하게 패킹해요.”

복제할 수 있는 마법은 한 마녀당 하나.

아인에 안착해버리면 배부른 가마우지가 그렇듯 더는 마법을 가져올 수 없게 된다.

그걸 근본부터 차단함과 동시에 낙인이 변조 없이 고스란히 전송될 수 있는 안전 조치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패킹한 마법을 디아나의 아인에 푸는 거죠. 이걸 대략 12번 정도 하면 될 거에요.”

그녀는 굉장히 은유적인 방법으로 말했지만 아주 쉽고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아한 귀부인의 품위를 자랑하는 루시와 귀족 아가씨의 새침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디아나가 더해진 예소드 모녀덮밥.

그것도 총 12회.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예소드 백작님. 정말 송구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시우 씨가 다소 민망한 상상을 하고 있다면…. 맞을 거에요.”

진짜 맞나보네.

“굳이 직접 연결할 필요가 있을까요? 공명을 통한 연동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이렉트로 전송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요. 공명은 노이즈가 발생할 수도 있고 패킹 자체가 벗겨져 버리는 수도 있어요.”

다름 아닌 낙인의 전송인 만큼 신중을 기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와 딸을 한 침대에서?

남자로서 끌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이게 정말 맞나 싶다.

하지만 예소드 백작의 눈은 자신이 민망한 대화를 입에 올린다는 자각조차 없어 보였다.

딸의 이야기만 나오면 한없이 진지해지는 어머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시우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오히려 실례겠지.

“확실한 건가요?”

“아직은 즉흥적으로 악상을 휘갈긴 정도긴 해요. 방법론은 큰 변화가 없을 테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전혀 미정립된 상태여서요. 한 명 정도 샘플이 더 있으면 좋겠네요.”

“샘플이라면….”

“시우 씨가 질내사정할 때 발생하는 과정이 항상 일정하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메리골드 전 남작은 아예 마력 증폭 현상마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아무리 연구에 열중한 예소드 백작이라도 이런 부탁을 하기엔 조금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제 앞에서 다른 분과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으면 싶어요.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시우 씨.”

이렇게 연구에 관한 이야기도 얼추 끝났다.

하지만 예소드 백작의 할 말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아, 시우 씨.”

“네.”

“가는 길에 오랜만에 디아나 얼굴이라도 보고 가는 것 어떤가요?”

방금까지 모녀덮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듣고 디아나의 얼굴을 봐야 한다니.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예소드 마망과 질척질척한 섹스까지 하고 난 직후 아닌가?

세상에서 제일 겸연쩍을 것 같다.

그런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설득하듯 덧붙이는 백작님.

“미리 친해질 필요도 있을 것 같고…. 디아나가 시우 씨에게 사과하고 싶어하는 모양이어서요.”

거부할 구실은 없었기에 즉각 디아나에게 향했다.

2.

만약 데네브가 시우의 연인 중 하나.

하다못해 알비레오와 논의했더라면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폭력에 가까운 성적 괴롭힘을 가하는 신시우와 저항하지 못하는 예소드 백작의 관계가 협박의 산물이 아니라 합의하에 펼쳐지는 SM 플레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데네브는 이 문제를 독단적으로 해결할 심산이었다.

또한 데네브는 시우와 관계를 맺기 전까지 정통파 마녀다운 삶을 살아왔던 만큼 착각의 오류를 바로잡을 레퍼런스가 없었다.

허나 엉뚱한 착각과는 달리 데네브의 계산은 냉철했고 재빨랐다.

신시우가 저지른 죄과와 그에 대한 질타는 뒷순위로 밀어두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떤 식으로 그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예소드 백작을 영원히 협박할 수 있다 생각한다면 착각에 불과하다.

오랜 기간 다양한 협력을 해왔기에 알고 있다.

예소드 백작은 상당한 수완가며 사업가다.

언젠가는 빈틈을 찾아내 상황을 역전시킬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상황의 주도권은 완전히 예소드 백작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며 그 시점부터는 데네브가 개입할 여지가 적어진다.

따라서 그 전에 데네브가 개입해야 한다.

먼저 둘 사이에 서서 상황을 중재한다.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준 중재자는 상당한 발언권을 지니게 되기 마련이다.

그 발원권을 이용해 시우와의 원활한 합의와 선처를 종용할 예정이었다.

물론 예소드 백작에게 별도로 상당한 수준의 피해보상을 대신 해 줄 예정이었고 말이다.

중요한 건 시간.

최대한 백작이 곤란한 상황일 때.

최대한 시우의 만행이 더 심해지지 않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협상에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기교다.

거기까지 판단이 미쳤을 때 데네브는 즉각 예소드 백작과 저녁 약속을 잡고 저택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머,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루시 백작님.”

“어서 편히 앉으세요. 갑자기 오신다는 말을 들은 지라 차린 건 변변치 않지만요.”

미리 준비된 식사 자리.

어쩐지 전에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반질반질해 보이는 예소드 백작이 미소를 지으며 데네브를 맞이했다.

마치 몸에 좋은 음식을 듬뿍 먹은 낯빛이랄까.

내심 감탄한다.

만약 데네브에게 비슷한 일이 있더라면 저렇게 태연히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지금 하려는 행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아무리 신시우를 위해서라지만 이게 맞는 걸까?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은 데네브는 자리에 앉고 가장 먼저 와인을 들이켰다.

앉은 자리에서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는 데네브와.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그런 데네브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루시.

데네브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신시우가 어떤 식으로 루시를 협박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어엿한 마녀다.

“아뇨. 별다른 걱정은 없어요.”

발설을 방지하기 위한 금제나 감시 장치가 존재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육안으로 보아야만 식별이 가능하도록 조치가 취해진 쪽지를 슬쩍 들이 밀며.

[협박받고 계신 거라면 지금 왼쪽 귀밑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겨주세요]

이 문제 해결로의 발걸음을 떼었다.

다음화 보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