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07화 (607/917)

#607

1.

올해로 173년.

데네브 제머나이가 마녀로 존재했던 기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이룩했다.

연구를 거듭해 드높은 22 위계의 경지를 개척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도구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명무실했던 현세의 사업마저 굴지의 대기업으로 만들어 보였다.

말년엔 총명하고 귀여운 견습마녀를 들여 어엿하게 양육하고 유유자적한 황혼기를 보내고 있으니.

마녀의 귀감이오 많은 이들이 부러워 마지 않는 삶이리라.

데네브 역시 그런 삶에 긍지를 지녔으며, 낙인을 물려주고 떠나간 선대에게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다 생각하였다.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

연모의 마음, 곧 사랑.

이는 생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임과 동시에 만인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허나 그 대상이 딸이나 다름없는 견습마녀의 예비 신랑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닌 손가락질을 받을 커다란 죄악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데네브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감추려고 했다.

원래부터 없던 것으로 취급하기로 다짐했다.

사랑하는 쌍둥이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 시우의 뒤를 밟을 생각은 없었다.

기껏해야 잘 세탁한 그의 옷을 돌려주며 대화라도 나눌 심산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신시우라면 절대로 며칠 간 빌려 간 겉옷의 쓰임새를 눈치채지 못할 테지만 자신의 죄와 부끄러움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데네브 본인이었다.

결국 어영부영 따라오게 된 예소드 백작가의 저택.

데네브는 거기서 시우와 루시 백작이 나란히 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꽤 예전부터 알비레오에게 얼핏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예소드 백작과 시우는 낙인의 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관계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무렵 데네브는 분개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예전보다 훨씬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진 데네브의 평가에 의하면 그것은 질투와 부러움.

발칙하게도, 음란하게도, 외설적이게도 사위가 다른 여자를 품는다는 것만으로 그런 심정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동시에 불쑥 융기하는 충동은 마찬가지로 발칙, 음란, 외설적인 것.

보고 싶다.

그의 품에 안길 수 없다면 그의 탄탄한 몸이라도.

알몸의 그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라도 보고 싶다.

“아아…. 이 어찌 죄 많은….”

욱씬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탄식하며 데네브는 갈등했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있다.

반영구적으로 고요함의 노래를 연주하는 오르골도 데네브의 작품.

데네브가 작정하고 은신에만 신경을 쓴다면 설령 데네브가 미리 장롱에 숨어있다 한들 두 사람이 알아차릴 염려는 없었다.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데네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가혹한 인연을 내려준 것이 하늘이라면, 이 문란한 충동 역시 용서해 줄 것이다.

그런 합리화를 거친 채 저 멀리 사라지는 시우와 예소드 백작의 뒤를 쫓았다.

2.

망설임 끝에 데네브가 자리를 잡은 곳은 침대 옆 창틀이었다.

동시에 데네브는 크나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관계가 데네브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벗어주세요.”

“…알겠어요 시우 씨.”

시우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악덕 귀족처럼 소파에 걸터앉았다.

반면 예소드 백작은 그에게 구매된 성노예처럼, 혹은 헐값에 신체를 노출하는 스트리퍼처럼 옷을 한 꺼풀씩 벗어 던졌다.

나풀나풀한 드레스부터 속옷, 가터벨트에 이르기까지.

한 자락씩 옷을 벗어던질 때마다 예소드 백작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어?”

잘못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봐도 똑같다.

이 자리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명백했다.

물론 시우로부터 침대 위의 주도권은 남성에게 유리함을 배워왔던 데네브다.

데네브만 해도 그와 본격적인 관계에서 품위를 잃고 헐떡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건 아직 본격적인 행위도 전이다.

그런데 제머나이 백작가에 버금가는 부와 명예를 쌓은 예소드 백작이 한낱 창부처럼 턱짓에 부림을 당할 줄이야.

“다, 다 벗었어요….”

기어이 옷을 전부 벗고 곱게 개어 한편으로 치워놓은 예소드 백작.

얼굴은 물론 가슴께까지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드러운 젖가슴과 발딱 서 있는 유두 단정하게 정리된 거웃과 빵빵한 엉덩이가 눈을 어지럽힌다.

동성인 데네브가 보아도 모성애를 물씬 느낄 법한 아름다운 신체였다.

“오세요.”

“네, 시우 씨.”

주춤주춤 다가서려던 루시가 손끝에 제지당한다.

“기어서 오세요. 개처럼.”

“시, 싫어요…. 그런 짓은 못 해요.”

“오랜만이라 감을 잊으셨나 보네요.”

“아니…. 그렇지만….”

루시의 반응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오로지 욕망에 충실한 시선.

아무리 체취를 맡았다지만 저런 행동을 하는 시우 역시 데네브가 알던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아니면, 암캐처럼 기어 오세요.”

“너무해요… 시우 씨….”

주춤주춤 거리던 예소드 백작은 시우의 강압을 이겨내지 못했다.

끝내 무릎을 꿇는다.

치욕을 삼킨 채 천천히 그의 앞으로 기어가는 백작.

그 시점에서 데네브의 머릿속을 떠도는 것은 더는 욕망이 아니었다.

위기의식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굴욕감에 젖어드는 예소드 백작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건 합의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보기 어려웠다.

“손은 쓰지 말고 입으로만 하세요.”

“네, 알겠어요….”

그녀는 이 끝으로 버클을 내리고 쩍 벌린 그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채 한참이나 낑낑거렸다.

손도 쓰지 않고 지퍼 사이로 물건을 꺼내려면 적잖은 노력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쪼옥… 쪼옵… 쮸웁….”

사타구니에 얼굴 전체를 비비듯 고군분투하며 혀과 입술로 간신히 자지를 빼낸 백작은 천천히 그것을 빨아대기 시작했다.

그런 백작의 머리에 말 잘 듣는 개를 칭찬하듯 올라가는 손.

“말도 안 돼….”

애무 방식 중 하나로 구강성교라는 것이 존재하고, 실제로 시우에게도 비스름한 것을 받았던 데네브지만 차마 반대로 해줄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던 데네브다.

그도 그럴 것이 데네브는 오랜 세월동안 마녀로 군림해왔고, 남비여존의 사고가 확고한 마녀 사회에서 남성기를 입으로 애무한다는 건 그만큼 터부시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 깊이 무세요.”

“이 이상은 히, 힘들어요 시우 씨….”

“괜찮아요. 전엔 잘하셨잖아요.”

저 인정사정없는 남자가 정말 그 얼빵한 사위가 맞단 말인가?

저 비참해 보이는 여자가 정말 그 우아한 루시 예소드가 맞단 말인가?

데네브는 믿을 수 없는 장면에서 가장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다.

이건 평등한 관계 따위가 아니다.

아마도 예소드 백작은 사위에게 협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가 최근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예소드 백작은 제머나이에 버금가는 권력자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협박받고 있는지도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우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장면을 어떻게 설명하라는 말인가?

협박이 아닌 이상 예소드 백작 정도 되는 대마녀가 저런 취급을 받고 넘어갈 리 없다.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할까?

신시우는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런 짓을 저질러 버린 걸까?

예전 데네브였다면 신시우에게 커다란 분노와 실망을 느끼고 끝났겠지.

어쩌면 쌍둥이와 더욱 깊은 사이가 되기 전에 직접 손을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만약 쌍둥이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데네브는 그게 어떤 사악한 행위라 해도 감싸줄 것이다.

훗날 따끔하게 혼을 내고 질책하며 눈물을 흘리겠지만 뒷수습을 위해 노력하겠지.

세상 그 무엇보다 쌍둥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시우의 만행을 목격하게 된 지금 데네브가 느끼는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신시우의 행동이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며 그것을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한편, 그의 인생이 끝장날 것을 생각하니 염려가 앞섰다.

데네브는 다시 힐끔 안을 보았다.

거기엔 허리띠를 풀러 채찍처럼 쥔 시우와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치켜든 채 음부를 훤히 노출하는 예소드 백작이 보였다.

“교육을 다시 해드려야겠네요.”

“시우 씨, 때리는 거 싫어요. 제발 다른 방법으로... 꺄흥!”

예소드 백작의 나약한 애원에 굴하지 않고 휘둘러진 혁대가 매마른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빨간 선을 남겼다.

세차게 떨리는 예소드 백작의 몸.

시우의 만행은 점점 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엉덩이 다시 제대로 드세요.”

“시, 시우 씨…. 이런 건, 이제 그만… 꺅!”

-찰싹! 찰싹! 찰싹!

자신의 가설에 확신을 세우며, 데네브는 쿵쾅거리는 심정을 부여잡은 채 테라스 밖으로 뛰어내렸다.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설마 쌍둥이가 저런 행동을 당한 것은 아니겠지?

아니다.

알비레오 백작은 데네브와 달리 그와 쌍둥이가 관계를 갖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즉, 쌍둥이에겐 저런 모습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아무리 순진한 쌍둥이라도 저런 본색을 알았더라면 조수님 조수님 노래를 불렀을 리도 없다.

언젠가 이 사실을 쌍둥이에게 알리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겠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그의 죄과를 덮는 일이다.

아직이라면 바로잡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언니, 어떻게 해야….”

위기의 상황 속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언니 알비레오.

그러나 어떤 면에선 데네브보다 엄격한 면이 있는 알비레오다.

쌍둥이와 격리조치에 취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니가 신시우에게 직접 손을 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구도 모르게 데네브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

다른 모두가 신시우의 잘못을 손가락질하고 적이 될지언정.

그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받을지언정.

나중에 힘껏 뺨을 때려줄지언정.

급한 불을 끄기까지는.

그가 그랬듯 데네브가 그를 구명하기까지는.

그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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