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06화 (606/917)

#606

1.

게헨나로 돌아온 지 사흘이 흘렀다.

“와, 다리 후들거리네….”

첫날밤엔 잠들어버렸기에 평온히 넘어갔지만, 다음날부터는 판도가 뒤바뀌어 버렸다.

샤론, 아멜리아, 스승님과 번갈아가며 오붓한 데이트 타임.

이후엔 열정적인 성교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3개월이나 떨어져 지내며 쌓인 욕정을 혼자 풀어주어야 했으니….

가뜩이나 영체인데다가 완벽에 가까운 신체 조건을 지닌 시우조차 ‘기 빨린다’라는 표현을 실감해버리고 말았다.

오늘 오전에만 해도 아침 식사를 먹고 쭈뼛쭈뼛 다가온 스승님과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물론 정력 문제와는 별개로 과분하리만치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직까지도 무심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종종 떠오르니 말이다.

한 명 한 명이 색다른 매력을 지닌 절세미인이고 경국지색인데다가 오직 시우만을 바라본다니.

그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모쏠아다 신시우. 출세했다.”

“아까부터 뭘 그리 혼자 쫑알대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없는 남자로다.”

아무튼 진하게 회포를 풀었으니 아무리 행복한 시간이라도 마냥 거기에 머물 수는 없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르뤼에를 데리고 예소드 백작가로 향했다.

“시우 씨, 오랜만이네요.”

미리 연락을 받아두고 있던 예소드 백작이 살며시 드레스 양 끝단을 펼쳐 보이며 인사했다.

제머나이 백작과 마찬가지로 ‘귀부인’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한 듯한 우아한 기품.

단, 제머나이 백작 쪽이 일 년의 절반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북유럽 쪽 귀족이라면 예소드 백작님 쪽은 화려한 남부의 귀족 느낌이 강하다.

역사 전공은 아니니 고증은 잘 모르겠고 대강 느낌이 그렇다는 의미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시우 군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전언을 들은 시점부터는 잘 지냈죠.”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수색에 자금을 지원해주셨다고 들었어요.”

“후후, 당연히 그래야죠. 시우 씨가 있어야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작은 천사에게 낙인을 물려주고도 계속 남아있을 수 있잖아요.”

뜻밖에 재회임에도 루시 예소드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차하며 작은 장모님처럼 안겨들 것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긴 안전이 사실상 확실히 된 것은 한 달 전이었고, 게헨나에 돌아오고 3일이나 지난 뒤에 찾아왔으니.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를 끝냈겠지.

“조금 더 일찍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아무래도 여자친구들 때문에 바빴죠? 뭔가 이런 말 하니까…. 정말로 시우 씨의 불륜 상대가 된 기분이네요, 후후.”

“윽….”

루시 백작님은 아픈 곳을 쿡 찔러왔다.

사실 그녀는 조금 기묘한 포지션이었다.

분명 관계를 맺고 이후 관계를 전제로 한 연구에 동의했음에도 연인보다는 그래, 그녀의 말대로 불륜 상대에 가깝달까.

정작 본인 역시 그런 포지션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니 내색은 않았으나,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또각또각 걸어온 백작님이 슬며시 귓가에 속삭인다.

“어머나 시우 씨.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이건 비밀이지만 그런 취급도 은근히 절 달아오르게 한답니다.”

방금까지 정숙한 모습은 간데없고 끈적끈적 귓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교태 어린 목소리.

목소리만으로 거의 죽어가던 자지를 움찔하게 할 수 있다니.

가히 요부에 가까운 테크닉이었다.

“워… 여전하시네요….”

“여전히 매력적이죠?”

그런 요부가 정작 잠자리에만 들면 ‘쌀 것 같아요!’를 연발하며 조수를 뿜어대는 음란 백작님이라니.

송구하지만 오랜만에 그 갭을 떠올리자 죄책감이 무색하게 발기해버릴 것 같다.

“아무튼,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안녕하세요? 저는 루시 예소드라고해요. 옆에 계신 분은 심해의 마녀님이실까요?”

“흐음.”

멀뚱히 옆에서 두 사람을 보다가 시우를 쿡 찌르는 르뤼에.

“그렇습니다. 이 분으로 말하자면 고대부터 두려움을 사던 옛 마녀이자, 바다 어미로 숭배받던 샬리트 누켈라비의 정통 계승자. 깊은 바다를 아울러 지배하며, 천상천하에 더 높은 자가 없는 위대한 누켈라비 왕조의 여왕. 만민을 굽어살피며 대적한 자는 여지 없이 침몰시키는 르뤼에 누켈라비 되시겠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남의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 더욱 격이 산다는 주장 하에 달달 외우게 된 소개사였다.

르뤼에는 흡족 100%의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고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시키니까 하긴 했는데 백작님의 반응이 심히 기대된다.

천하에 알비레오조차 황망케 만들었던 르뤼에의 허당끼에 예소드 백작은 과연 어찌 반응할 것인가?

“어머나, 낭만 있으신 마녀분이네요. 최근 어린 마녀들은 그런 낭만이 없다니까요?”

원래 취미로 소설을 집필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게헨나에 들어 처음 받아보는 대응에 르뤼에가 기뻐했음을 당연하다.

“호오, 낭만이라…. 루시 예소드라 하였나? 뭘 좀 아는 마녀로구나. 이제껏 만난 게헨나 촌뜨기와는 아주 결이 다르도다.”

“그럼요, 앞으로 신세 질 일이 생긴다면 잘 부탁할게요.”

“물론이다. 그대가 짐에게 보인 예우는 잊지 않겠노라.”

“예예, 그럼 이쪽 시종의 안내를 따라주시겠어요?”

“알겠다. 시우,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도록 하거라.”

“네, 잘 다녀오세요.”

감격한 채 씩씩하게 팔을 휘저어 인사를 하곤 시종을 따라가는 르뤼에.

“수색을 도와주신 것도 면목이 없는데 치료까지 도와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괜히 르뤼에를 예소드 백작가에 데려온 건 아니었다.

르뤼에의 손상된 마력 회로의 중추.

그 치유의 가속을 돕기 위해서였다.

물론 도로시의 말대로라면 자연치유가 되는 부분이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제법 걸린다.

또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기부금 마련을 하기 전에 시련까지는 몰라도 르뤼에의 완전회복까진 도울 예정이었기에 예소드 백작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름하야 약탕 치유.

마법작물의 최대 생산지인 라티푼디움에서 떼어온 약초를 연금술을 통해 입욕제로 만들고, 아낌없이 온천수에 풀어 넣는 약탕 치유는 레바나 대욕장이 자랑하는 명물 중 하나다.

문제는 이게 대욕장의 회원이라도 별도 결재를 통해 이용해야 하는 서비스인데다가 시우의 힘으론 도저히 지급할 수 없는 고가라는 것이다.

하루 세 번이나 해야 하는 입욕 한 번에 고급 리무진 한 대씩 태워야 하니 어지간한 마녀에게도 혀를 내두를 가격이 분명했다.

다행히 사정을 전해 들은 예소드 백작이 흔쾌히 조력을 약조해주었다.

이런 게 인맥의 힘이 아닐까 싶다.

“시우 씨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도와야죠. 게다가 심해의 마녀라면 친분을 쌓아두기엔 충분한 귀인이니까요. 그보다….”

순간 예소드 백작이 입술을 핥는 것이 보였다.

르뤼에를 떠나 보낼 때 ‘방해꾼 처리’라고 말하는 듯한 호박색 눈동자는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뿐사뿐 걸어 다가온 그녀는 자연스레 허리에 손을 감았다.

“정말이지 시우 씬 못됐어요. 어쩜 이렇게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어요?”

그것도 모자라 가슴에 뺨을 기댄 채 부디부디 뺨을 비빈다.

감정 정리가 끝났다고 보였던 것은 순전히 르뤼에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 모양이다.

데네브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만큼 격렬하게 껴안는 걸 보니 말이다.

“삼 개월마다 하나씩 사건이 안 터지면 심심해 죽는 체질인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후후, 젊었을 땐 다 좋은 경험이지요. 저도 소싯적엔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답니다.”

“백작님이요?”

살갗에서 물씬 풍기는 포근한 파우더향.

눈웃음을 치며 놀려대는 예소드 마망.

“그럼요, 한창 혈기왕성할 때잖아요. 조금 강해 보이는 마녀마다 싸움을 걸었어요.”

완전 예상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은 규방 규수 그 자체인 예소드 백작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을 줄이야.

문득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혹시 그 무렵 제머나이 백작님은 어떠셨나요?”

“두 분도 무시무시했죠. 앗, 험담하려는 건 아니랍니다. 어디까지나 백 년도 넘은 이야기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장모님이시기도 하니 궁금해서요.”

턱밑에 손가락을 대고 잠깐 생각하는 예소드.

오랜만에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게 즐거운 건지 아련한 향수가 맴돌고 있었다.

“음….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가 따로 없었죠. 둘이서 공적의 사업체를 죄다 깨부수고 다니고, 엄청 리스키 한 인수합병을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게헨나 안의 마녀라도 즉석 결투를 걸곤 했답니다. 어머? 생각보다 크게 놀라진 않으시네요?”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무서우시거든요.”

최근 작은 장모님은 뭔가 살가워지셨지만, 큰 장모님은 여전히 무섭다.

“그런가요? 지금은 굉장히 굉장히 유해지신 편이에요. 시우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면 용케 제머나이 백작이 살려두고 있구나 싶다니까요?”

“그런 말씀 마세요. 무섭습니다.”

“반쯤은 자업자득 아닌가요? 저와도 이렇게 나쁜 짓 하잖아요.”

“나쁜 짓이라뇨. 연구 목적 아니겠습니까.”

말하면서도 양심이 찔리는 말을 하고 있자니 예소드 백작이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하긴 그녀와 관계를 맺으며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면 저렇게 웃을 만도 하다.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로 하고, 시우 씨?”

은근슬쩍 팔을 끌어당기는 루시 마망.

자연스럽게 가슴 사이에 팔을 끼우는 테크닉은 언제 당해도 설레는 기술 중 하나였다.

보기와는 달리 지금까지 만났던 그 누구보다도 마조히스트 성향이 강한 예소드인만큼 묘하게 시우와 파장이 잘 맞았다.

속궁합 이야기보다는 서로 무얼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에 ‘혹시 이거 싫은데도 억지로 무리하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가령 다른 연인들과 상황극을 할 때는 혹시 너무 과하지 않았는지 주의하며 조절하게 되니 말이다.

실제로 르뤼에에겐 큰 상처를 입힐 뻔 한 적도 있었고 말이다.

“저희 오늘도 나쁜 일 하는 거 맞죠?”

배덕감과 정복욕을 살살 자극하듯이 도발하는 예소드 백작.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우의 입가에 제 머리를 바짝 붙였다.

“맡아 주시겠나요? 제… 체취.”

“네? 그러면….”

그렇게 되면 자칫 이성을 잃고 격렬하게 해버린다, 라고 주의하려던 때.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총명한 그녀가 그런 중대한 사실을 잊었을 리 없다.

참, 여러모로 매력적인 백작님이다.

시우는 과감하게 백작의 어깨를 안고 그녀의 체취를 탐했다.

그 무렵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시우 군.”

남 몰래 시우의 뒤를 밟은 데네브 제머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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