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05화 (605/917)

#605

1.

계획을 원천 봉쇄당한 채 알비레오의 좌우에 나란히 누운 오딜과 오데트.

아무리 시우바라기 쌍둥이라도 알비레오를 원망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얼 걱정하고 있는지 알며 스승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얌전히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알비레오의 팔베개를 베고 찰싹 달라붙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비록 선수를 뺏긴 것은 아쉽지만, 어차피 조수님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걔 엄청 웃겨요.”

“생각보다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요.”

새로 사귄 친구이자 연적 르뤼에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쌍둥이의 뒤통수를 알비레오는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었다.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랬니? 그래서? 그렇구나? 그런데? 정도만 말해주면 쉴새 없이 양옆에서 재잘거렸으니 말이다.

다사다난했던 하루의 피곤함이 싹 가시는 귀여움.

분명 성가시기만 할 것으로 생각했던 꼬물이들이 이렇게나 예쁘게 자라서 많은 행복을 준다.

배 아파 나은 자식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겠지.

“게다가 저희가 계략에 성공했거든요?”

“앞으로 경쟁에도 유리할 거에요.”

“경쟁? 무슨 경쟁?”

““당연히 조수님 쟁탈전이죠.””

힐링타임을 갖던 알비레오의 평온함이 ‘조수님’ 세 글자에 와장창 박살이 났다.

지옥의 겁화가 이러할까 싶을 만큼 뜨거운 열불이 훅 정수리를 데웠다.

“이 놈의 자식….”

우리 귀염둥이들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홀라당 채어가다니.

그것도 모자라 주변에 하나, 둘, 셋, 넷이나 되는 연인이 있다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데네브까지 홀려 버리다니.

“스, 스승님…!”

“뒤통수가 아파요…!”

알비레오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간 결과 버둥거리는 쌍둥이.

“어휴, 미안해.”

한숨을 푹 쉰 알비레오는 사과하며 쌍둥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끔 계승의 날을 떠올리면 두려워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니었다.

처음 스승님께 낙인을 물려받았을 무렵부터 제 죽음은 각오해왔다.

다만 쌍둥이가 알비레오와 데네브의 도움 없이 이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떠나는 그날까지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랑을 전부 나눠주지 못하면 어떨지.

그런 문제들이 불현듯 두려워지곤 하는 것이다.

“오딜, 오데트.”

““네, 스승님.””

오랜만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을 해주어야 계승 때 후회하지 않을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나? 너희는 정말 특별한 존재였고 선물이라고 말해야 하나?

먼 훗날 쌍둥이가 알비레오를 그리워할 때 입가에 미소를 띨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을 고르던 알비레오는.

“흐으응…!”

별안간 야릇한 콧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스승님?”

“어디 편찮으세요?”

오랜만에 스승님과 함께하는 잠자리.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겨 곧 이어질 다정한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으읏…. 읏….”

큰 스승님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잔뜩 찌푸려진 아미와 송골송골 흐르기 시작한 땀.

거기에 입술을 꾹 다물고 숨을 참는 모양새는 흡사 열병에 시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쌍둥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승님의 몸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명백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토록 괴로워하는 알비레오는 처음 보기에 오딜은 재빨리 판단을 내렸다.

“오데트 여기서 스승님 상태 살피고 있어. 나는 작은 스승님을 모셔올게.”

“으, 응, 언니!”

쌍둥이는 짐작도 하지 못하겠지만 이건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데네브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쾌감이 연동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데트나 오딜이 데네브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는 순간 큰일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따라서 커다란 목소리로 쌍둥이를 만류했다.

“안 돼…!”

깜짝 놀라는 쌍둥이.

“왜, 왜요?”

“정말 별거 아니야 애들아. 잠깐 다리에 쥐가 나서 그랬어.”

“그래도….”

“아냐아냐, 정말 괜찮으니 어서 다시 누우렴.”

하필이면 이런 날까지…!

누구는 쌍둥이 챙기느라 업무도 미루고 침대에 같이 누워있는데 누구는 속 편하게 손장난이라.

아무리 여동생을 챙기고, 아끼고, 사정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알비레오도 부글부글 속이 끓는 것을 느꼈다.

“데네브는 오늘 바쁘댔어. 괜히 방해하지 말고 혼자 있게 해주자.”

““네, 스승님.””

처음엔 미심쩍은 기색을 내비치던 쌍둥이였지만 별말 없이 알비레오의 양옆을 다시 파고들었다.

그리고 알비레오는 즉각 후회했다.

워낙에 당황했기에 일단 같이 누웠지만, 이건 무슨 핑계를 대서든 잠깐 밖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데네브가 시작하면 적어도 30분가량 오르가즘에 도달할 때까지 자기 개발을 하는 것이다.

“후우우우우우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극에 길게 심호흡을 하며 각오를 다진 알비레오.

뭐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직접 성교하는 것과 달리 자위 시 연동되는 쾌락은 그 강도가 현저히 낮으니 어찌저찌 버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조금 부자연스럽게 보이긴 해도 그게 가장 안전하기는 한데….

“후우, 후우, 후우.”

“스승님, 역시 편찮으신 것 같은데….”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데네브의 열정적인 손길이 시작되어버린 것이다.

“아냐, 정말 아니라니까.”

“정말요?”

“응, 정말로.”

알비레오는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이를 악문 채 허벅지를 찰싹 붙였다.

“다행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맞아요, 저희 때문에 불편하신 거면 따로 주무셔도 괜찮은데….”

“귀염둥이들이랑 자는데 뭐가 불편하겠어.”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지난 어항 실종 사건 이후 데네브는 시우에게 모종의 마음을 품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신시우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손짓이 격렬해졌을 리 없다.

이런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고, 알비레오와 마찬가지로 황혼기에 접어든 여동생인 만큼 하고 싶은 일은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는데.

“흐응! 자, 자꾸 재채기가 나오려고 하네?”

암만 그래도 이렇게는 못 산다!

오늘은 그냥 참고, 내일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자.

알비레오는 굳게 다짐했다.

2.

눈치게임 같던 의견 분배가 끝났다.

4P는 공식적으로 확정.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시우 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될 것인데, 협의회 3인의 대화는 오히려 은은한 열기를 띠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주제가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야한 이야기’.

교양 없고 낯부끄럽지만, 분명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야기가 주된 화두였다.

과거 아멜리아와 샤론이 투닥일 때 잠깐 언급했던 적은 없지만, 애초에 이런 종류의 대화를 심도 있게 해 본 적 없던 세 사람이다.

그런 셋에게 은밀하면서도, 말초적인 대화는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따라서 여고생들이 꺅꺅거리며 수군대듯 세 사람은 야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로 이런 대화를 말이다.

“아까부터 이벤트 이벤트 하니까 생각난 건데…. 그러고 보니 다들 어떤 이벤트 해보셨나요?”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를 타면 쭉쭉 뻗어 나간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는 샤론이다.

“저는…. 조금 부끄럽긴 한데…. 탈의실에서도 해봤어요. 헤헤….”

푼수 같은 미소를 지으며 쑥스러워하는 샤론의 모습에 잠시 과거를 떠올리는 두 사람.

“아….”

아멜리아의 경우 부교수와 노예의 상황 역전 플레이, 야외 노출 향수 플레이.

심지어 그와 관계를 나눌 땐 거의 항상 낮이밤져 컨셉으로 시우에게 당해주고는 했었다.

“흐음….”

엘로아의 경우 스승의 권위를 내려놓고 제자에게 존대하기, 바니걸 복장으로 나는 발정난 토끼라네 운운하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싶다.

역치가 올라간 지금에도 차마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그런 내용이다.

“이 얘기는 넘어가면 안 되겠나?”

“샤론 양, 저도 혼자 간직할게요….”

“에이, 그러지 말고 말씀해주세요. 오늘은 서로 숨기는 거 없이 이야기하기로 했잖아요. 아차, 공작님은 제가 옷도 같이 골라 드렸는데. 수확제 날 그거 입으셨어요?”

“샤, 샤론 양…!”

묘하게 텐션이 높아진 샤론이 장난스레 재촉하자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핑크핑크해지는 엘로아.

샤론은 그런 엘로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배시시 웃었다.

“그거 정말 귀여웠잖아요. 혹시이이…. 상황극 같은 것도 하신 거 아니에요?”

“무, 무슨 말인가! 나는 상황극이니 뭐니 그런 거 결단코! 절대! 모른다네!”

격하게 부정해 보는 엘로아지만 그녀는 원래 거짓말엔 소질이 없었다.

“너무 부끄러워하신다. 다 이해해요. 시우가 상황극 같은 거 좋아하잖아요. 은근히 짐승 같기도 하고….”

괜히 옆에서 찔끔한 아멜리아가 불똥이 튀기 전에 재빨리 바통을 넘긴다.

“샤론 양도 해봤나요?”

“저는.... 음, 많이 해봤죠. 야한 말도 많이 했고.”

아멜리아와 엘로아와는 달리 선뜻 인정하는 샤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당당했다.

“사랑하는 사이인데 조금 부끄러우면 어때요? 기왕 같이 좋은 거 하는 김에 만족도까지 높여주면 베스트잖아요.”

엘로아도 아멜리아도 감탄했다.

“그렇네요. 어쩐지 제 체면치레만 신경 쓰고 있던 느낌이에요. 샤론 양 대단해요.”

“그 용기가 부럽네.”

“에이에이, 뭐 별 거라고. 두 분도 다 할 수 있어요.”

술이 깨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그땐! 왜 그랬지!!!’라고 절규할 샤론이지만, 지금만큼은 콧대가 높아지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야기 하다 보니 너무 늦었네요.”

“그렇군…. 슬슬 이동하겠나?”

“좋아요! 다 같이 사이좋게!”

사실 세 사람이 이야기에만 몰두하던 건 또 하나의 속사정이 끼어 있었다.

원체 로켓 추진제급 행동력을 지닌 쌍둥이라도 껴 있었다면 ‘어어어…?’ 하다가 시우 방으로 갔겠지만 내심 결단을 내리고도 쑥스러워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시점에서 샤론이 보여준 용기는 귀감이 되었고 더는 뭉그적거리지 않고 행동케끔 해주었다.

그렇게 곧장 시우의 방으로 직행한 세 사람이 발견한 것은 침대에 뻗어 아주 곤히 자는 시우였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만큼 드물게 피로가 쌓여 있던 것이다.

“오늘은 좀…. 어렵겠네요.”

아멜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수다 떠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군….”

모처럼 심기일전한 계획이 틀어졌으니 허무해할 만도 한데 막상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청하는 시우를 보자 그런 감정이 싹 달아난다.

“그럼 저희, 하던 얘기나 마저 할까요?”

다 같이 이야기하는 것도 제법 즐거웠고 말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밤새 도란도란 야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분을 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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