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01화 (601/917)

#601

1.

쌍둥이와 스승님에 이어 시우를 만나러 온 샤론과 아멜리아.

네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우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감동의 해후를 나눴다.

물론 르뤼에의 시민권을 딸 예정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재차 혼나고 말았지만, 이 정도는 아주아주 무난하게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숨은 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이 모든 파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르뤼에였다.

잠깐 눈을 뗀 사이 어찌나 어그로를 야무지게 끌었던지 본디 시우에게만 쏟아질 분노의 여파를 앞서 탱킹해 준 것이다.

아무튼 한바탕의 소동이 일단락된 이후.

시우를 포함한 다섯 연인이 한 방에 모였다.

“정말 심해의 마녀라고요?”

“짐은 거짓말하지 않도다.”

뾰루퉁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퉁명스레 답하는 르뤼에를 의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아멜리아.

아멜리아 정도의 마녀라면 보는 것만으로 르뤼에가 모종의 부상을 입고 있으며 그 탓에 힘이 제한될 뿐 23 위계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요는 눈에 보인다고 해도 인지 부조화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비단 아멜리아만이 이런 의구심을 표하는 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들은 모두가 똑같은 반응이다.

비밀스러운 베일에 감춰진 옛 마녀 중 하나.

그 후계자가 이런 성격일 줄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샤론과 아멜리아가 보기에는 조금 겁을 주니 울음을 터트리고 도망간 예의 없는 마녀였고.

엘로아가 보기엔 세상 물정 모르는 천방지축 마녀였으며….

“에이, 야. 거짓말 아냐?”

“맞아, 맞아.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줄게. 너 그냥 변태잖아.”

“무엄하다! 뺨 잡아당기지 마라!”

쌍둥이가 보기엔 그냥 허세 가득한 대사나 찍찍 뱉던 또래 친구였다.

그것도 꽤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친구였다.

씩씩거리며 쌍둥이의 손을 쳐내는 르뤼에.

다부지게 입술을 다문 르뤼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계획과 달랐다.

새삼 시우가 자신의 편만을 들어주지 않아 삐진 건 아니다.

이미 르뤼에는 사랑싸움을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쟁취하고 애정을 하사받는 건 르뤼에답지 못한 행동이다.

그 수단이 매력이 되었건 힘이 되었건 자신의 힘으로 쟁취하고 당당하게 정실로 자리매김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뤼에의 계획은 초장부터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말았다.

게헨나의 암캐들을 완벽히 제압하고 시우의 옆자리를 꿰찼어야 하는데….

꼴이 무엇인가?

두고 보자 라든지, 이른다든지 멋없는 대사만 듬뿍 늘어놓은 채 제대로 호구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연인은 하나같이 강적이다.

더군다나 그 중 둘은 시련을 거쳐 힘을 되찾는다고 이겨낼 상대도 아니다.

이 전쟁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운 것이 될 것 같았다.

“근데 너 옷차림이 너무 촌스럽다.”

“맞아 이건 도대체 언제 맞춘 드레스야?”

“저리 가지 못하겠느냐!”

안 그래도 사색에 잠기기 바쁜데 좌우에서 쫑알거리는 쌍둥이에 결국 역정을 내고 마는 르뤼에.

“뭐야! 모처럼 한심한 패션 감각을 지적해 주려는데!”

“우리가 누군지 알아? 무도회의 꽃 오딜 오데트 자매라고!”

오딜이 눈살을 찌푸리고 오데트가 옆에서 거든다.

“그딴 거 알게 뭐냐! 안그래도 울화통이 터져 죽겠거늘! 그까짓 옷이 뭐가 중요하다고 야단이냐!”

“그까짓 옷?”

“언니, 설마 지금까지 한 번도 꾸민 적 없던 건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어. 말하는 거 봐.”

르뤼에도 보는 눈이 있다.

제 복장이 게헨나에 비하면 다소 뒤떨어진다는 걸 분명 인지했다.

스승인 샬리트가 르뤼에에게 아무 드레스나 가져다 입힌 건 아니다.

그러나 패션은 아주 섬세하고 유행에 민감한 분야.

좋은 소재를 이용해 정성껏 짜낸 드레스라도 세월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르뤼에는 한껏 객기를 부렸다.

“너희야말로 그런 호화로운 옷을 그 정도밖에 소화 못 하지 않느냐?”

“우리 정도면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지.”

“그쵸, 조수님?”

“그, 그렇죠.”

오딜과 오데트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쌍둥이는 꽤 영악한 편이며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했다.

따라서 아직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세 마녀와 달리 즉각 주판알을 튕겼다.

이미 조수님과 재회는 충분히 만끽했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심해의 마녀는 앞으로 연적 중 하나가 될 것이며 그 위계는 무려 23 위계란다.

지금은 비록 쌍둥이가 신체적 능력으로 압살하는 게 가능해도 시련인지 뭔지를 거쳐 힘을 되찾은 르뤼에를 감당하는 건 견습마녀에겐 불가능한 일.

계속 반목하는 것보다는 그녀가 아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은혜를 입혀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흐음….””

사실 반 이상은 흥미 본위였다.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친구와 함께 놀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다.

“흥, 짐이 너희와 같은 드레스를 입으면 훨씬 예쁠 것이 분명하도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느니라.”

“그럼, 드레스룸으로 데려가 줄 테니까 증명해 봐.”

“그래그래, Show and Prove.”

“뭣? 무어냐!”

죄수를 연행하듯 르뤼에의 양팔에 팔짱을 끼는 쌍둥이.

키 차이가 제법 날지라도 망아지 같은 쌍둥이의 힘에 르뤼에는 질질 끌려나갔다.

“조수님 잠시만 빌려 갈게!”

“이따 저녁 식사 때까지 올게요!”

쌍둥이는 그대로 르뤼에를 끌고 사라졌다.

“시우, 순진한 아이를 너무 꾀어댄 것 아닌가?”

세 명이 나간 이후 엘로아는 짐짓 시우에게 핀잔을 던졌다.

아무리 그녀가 시우의 편이고 늘어나는 연인에 대해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해도 이건 경우가 다르다.

“그럴 리가요. 저래 봬도 꽤 속 깊고 다정한 분입니다.”

“걱정이 지나쳤다면 미리 사과하겠네만…. 내 눈엔 사랑보다는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마녀로 보이는군.”

힐끗 르뤼에가 끌려나간 문을 보는 시선에 더 이상의 적의는 없다.

샤론과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발칙한 르뤼에의 선전포고문이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만나면 즉시 실력행사를 해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가 시우를 납치하고 독점하는 바람에 생사도 확인하지 않았던 두 달간 얼마나 속을 썩였던가?

머리에 한가득 혹이 쌓일 때까지 꿀밤을 먹여주어도 시원찮을 상대였는데.

“…….”

괜히 안절부절못하는 아멜리아.

아무리 아멜리아가 권위적인 성격이라 해도 그 대상은 꽤 한정되어 있다.

쌍둥이가 수업에서 바꿔치기하는 둥 장난을 벌이거나 잡담을 할 때도 한숨으로 넘기지 않았던가?

낙인을 물려받았다고는 해도 아직 미성숙해 보이는 르뤼에.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겁박한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돌아오면 사과해야겠네요….”

작게 한숨을 쉬는 아멜리아였다.

2.

“귀찮게도 구는구나. 놔라! 짐의 발로 걷겠노라.”

심드렁하게 쌍둥이를 따르던 르뤼에.

“왜 이렇게 까칠해?”

“너 친구 없지?”

그런 르뤼에에게 타박을 쏟아내는 쌍둥이.

“도대체 뭘 자랑하려고 이렇게 난리들인지 통 모르겠도다.”

하지만 툴툴거림도 거기까지였다.

쌍둥이의 드레스룸에 들어선 순간 르뤼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변한 것이다.

“무, 무슨…. 이게 다 무어냐?”

“우리 드레스룸이야.”

르뤼에의 얼굴을 빤히 주목하고 있다가 예상대로의 반응을 보이자 키득거리는 오딜과 오데트.

그야 르뤼에가 놀랄 만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드레스룸이라는 소박한 표현으로 묘사하기엔 부족했다.

과장 좀 보태어 드레스 아파트쯤은 되어야 할 것 같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그린톤의 고풍스러운 벽지와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한 샹들리에.

좌우로 늘어선 유리 진열장에 수백 켤레의 구두.

조금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르뤼에가 지닌 옷을 전부 합쳐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기다란 옷장이 몇 개씩이나 늘어서 있다.

“여긴 사냥복 코너, 여긴 파티 드레스, 이쪽은 가을 겨울 용이니까 안 봐도 돼.”

“언니 근데 옷이 맞을까?”

“우리한테 널널한 옷 입히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눈을 끔뻑이던 르뤼에는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겨 이 옷 저 옷을 살펴보았다.

같은 옷만 돌려 입던 일평생이다.

잠수함 안에서 혼자만 지낼 때는 사실 패션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보여줄 사람도 없고, 설령 같은 옷만 반복하여 입는다 해도 그걸 스스로 지적할만한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우가 복구해 준 신문물로 영화를 보면서, 결정적으로 게헨나를 돌아다니면서 르뤼에는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르뤼에도 어엿한 한 명의 여자.

그리고 패션은 달콤한 디저트처럼 본능적으로 여심을 사로잡기 마련이다.

즉, 지금 르뤼에의 심정은 평생 마른 빵만 먹던 사람이 호텔 뷔페에 처음 온 것과 같았다.

“후후, 이제 느껴지느냐?”

“이것이 제머나이 백작가의 재력이니라.”

따라서 쌍둥이가 르뤼에의 말투를 따라하며 히죽거려도 제대로 화를 낼 수 없었다.

“자, 이거 먼저 입어볼래?”

“언니! 그거 내가 아끼는 원피스야!”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니잖아.”

오딜이 옷걸이에서 꺼내 든 옷은 짙푸른 남청색의 원피스.

르뤼에의 퍼스널 컬러와 몹시 어울리면서도 샤론도 입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프리사이즈다.

“그럼 구두는 이걸로 하자. 발이 작은 편이니까 괜찮을 거야.”

“오데트! 그거 내가 아끼는 구두잖아!”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니잖아.”

오데트가 진열장으로 뛰어가 가져온 도르세이 구두.

평생 굽이 낮은 구두만 신어왔던 르뤼에가 실물로 처음 보는 펌프스 힐이었다.

“그, 그래도 되겠느냐…?”

과연 여러 가지 옷을 많이 입어왔던 쌍둥이답게 훌륭한 초이스였다.

생존자를 발견한 좀비처럼 비틀비틀 걸어가는 르뤼에.

그 순간 손에 거의 닿을 뻔했던 드레스와 구두가 휙 하고 치워진다.

쌍둥이가 등 뒤로 재빨리 감춘 것이다.

“그 전에.”

“조건이 있어.”

르뤼에는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거의 흐를 뻔했던 입가의 침이 도로 입으로 들어간다.

생각해보면 이런 호의를 꽁으로 베풀어 줄 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까닭이다.

“앞으로도 여기서 마음껏 골라 입게 해 줄 테니까….”

“조수님이랑 헤어져.”

예상대로 아주 간악한 악마의 미소를 지은 쌍둥이가 르뤼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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