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93화 (593/917)

#593

1.

그로부터 일주일.

시간은 무던히도 흘러갔다.

아니, 무던하다는 평가는 굉장한 저평가일지도 모른다.

도로시처럼 색기가 풀풀 흐르는 미녀와 르뤼에처럼 귀여움이 뿜뿜 묻어나오는 미녀와 잔뜩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낮에는 셋이 영화를 보거나 카드 게임 등에 매진한다.

저녁쯤에는 침실로 향해 지난번 난입 이후, 치료 섹스에 합류하게 된 르뤼에와 도로시를 한 침대에서 영접한다.

쌍둥이를 제외하면 쓰리썸을 하게 되는 것은 처음인데 이게 또 말도 못할 황홀함이 있다.

제각기 다른 몸의 매력을 느끼며 여체에 파묻히는 경험은 호화엔 양손의 꽃이라는 말이 실로 어울렸다.

전세계 남자에게 묻노라면 그 중 반의반 정도는 이 하룻밤을 위해 남은 모든 수명을 팔아치울지도 모르지.

아무튼, 밤이 되면 지쳐 골아 떨어진 르뤼에를 재워두고 도로시에게서 마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너 정~말 똑똑한 편이구나. 아무리 마법을 베껴갔다고 해도 최소한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가운을 대충 걸쳐 입고 기울어진 호박색 주면(酒面)에 입술을 맞춘 도로시는 몇 번째인지 모를 감탄을 내뱉었다.

족히 천 년은 묵은 여우 같은 모습에 조금 전까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쾌락에 탄식하던 그림자는 남아있지 않다.

“그런가요?”

“그렇지~ 위계에 따라 다르지만~ 견습마녀가 물려받은 낙인을 능숙하게 다루게 되기까지 10년은 넘게 걸리잖니? 아무리 편린이라고 해도 쉬운 마법은 아닌데 말이야.”

“이론으로만 가르쳐 주셨잖아요. 직접 해보기 전까진 또 모릅니다.”

그는 칭찬에 머쓱해했지만 도로시기에 이 정도 호들갑에서 그친 것이다.

만약 자신이 다른 마녀들처럼 마법의 성취에 목숨을 거는 일족이었다면 그의 질투 나는 재능에 적개심마저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해볼래? 첨삭해 줄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도로시가 입술을 달싹이자 작은 규모의 결계가 펼쳐졌다.

그간 원활한 치료가 진행된 결과 도로시는 전성기의 힘을 되찾았다.

오히려 치료를 받기 전보다 마력의 순환이 원활해진 감각이었다.

역사상 유일한 남자 마녀.

그것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다소 손속을 두었다고는 하나 22 위계의 도로시까지 굴복시킨 능력자.

희소성과 특이성만으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는데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마력의 급속 충전도 모자라 낙인의 기능부전 회복까지 할 수 있다니.

그는 존재만으로 가치 환산 자체가 불가능한 보물인 셈이다.

“…….”

다시금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적이 된 것을 후회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단념이 빠른 도로시다.

미련을 지니지 않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자, 보여줘 봐.”

“알겠습니다. 피어라.”

시우는 영창과 함께 즉각 낙인을 활성화했다.

검은 그림자가 연기처럼 일렁이며 주위를 떠돌고 웅웅거리는 저주파음이 들려온다.

눈을 감고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최적화와 조율을 끝낸 마법식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렸다.

마력 복제를 통해 가져올 수 있는 마법은 한 마녀당 한 종류.

그마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그녀에게 마법을 가져가게 되었을 때만 해도 시우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도로시의 마법은 일견 어느 것이던 강력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상징성을 기반으로 한 마법을 사용하며 대부분의 자성마법이 하나의 건축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령 절대력을 훔쳐온다 한들 예배당이 없으면 코스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다.

예배당을 가져온다 한들 상징에 맞춰 사용할 마법이 없다면 예쁘고 튼튼한 이면결계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최고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할 수 있겠다.

도로시의 마법 중 유일하게 단독 활용이 가능한 마법.

복불복 중 가장 유효한 당첨 표를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위이이이잉!

성운처럼 흩뿌려졌던 검은 그림자가 블랙홀에 휘말리듯 허공에 말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선의 궤도를 그리며 응축되고 응축된 그림자는 하나의 작은 고리가 되었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주위의 모든 마력을 집어삼킨다.

가속의 가속을 거듭하던 회전은 이윽고 시우의 동체시력으로도 회전수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세차게 돌아갔다.

-끼긱! 끼기기긱!

시우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그러나 미증유의 힘을 품은 검은 고리는 천천히 회전하며 삐걱이는 고응축된 마력의 여파를 사방으로 뿌려댔다.

조금만 삐끗해도 흩어져 대참사로 이어질 것 같은 거대한 힘.

시우가 전력을 짜낸 것보다도 거대한 힘이 전력으로 회전한다.

날뛰는 맹수처럼 이리저리 튀어 나가려는 힘 사이에서 가까스로 밸런스를 잡고 있자니 진땀이 흘렀다.

연산에 방해될까 말을 걸진 않았지만 도로시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검을 꺼내 드는 모습이 보인다.

-쿠우우웅

한참을 고군분투한 끝에 회전이 잦아들며 고리가 안정화됐다.

1분에 10~15회 회전하며 천천히 돌아가는 고리로부터는 전율할 것 같은 힘이 흘러나온다.

체외에 코어를 형성하는 일순간 다룰 수 있는 마력의 총량을 증폭해주는 동시에 집약해주는 펌핑기술.

이것이 도로시의 조력으로 개조된 ‘천사의 고리’이다.

“이거…. 장난 아니네요.”

동시에 억 소리가 절로 나는 마력의 소모를 체감하게 되었다.

그저 코어를 생성하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해야 했다.

만전 상태의 도로시조차 천사 폼을 유지 못 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야수의 심장이구나.”

안정화된 코어의 모습을 보고야 한숨을 내쉬는 도로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알겠지만 겁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다.

불과 15초 남짓한 구현 순간 동안, 고리의 구성이 열세 번이나 무너질 뻔했다.

마법의 구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마녀가 두려워하는 순간이다.

큰 부상이라던지 후유증을 떠안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모든 위험한 순간을 정면돌파 해버렸다.

이해력과 응용력이 남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배짱까지 두둑할 줄이야.

정말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더 하려고?”

“네, 기왕 한 거….”

시우의 팔이 휘둘러진다.

마치 지휘를 따르듯 그 뒤를 쫓는 리본 한 가닥.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고리가 재차 회전하며 삐걱이고.

-콰아아아앙!!!!!

예배당의 기둥을 향해 휘둘러진 리본이 굉음을 내며 세 개의 기둥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아무리 도로시가 수녀복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튼튼하기 짝이 없는 예배당이다.

그것을 단숨에 부숴버린 건 고작 리본 한 가닥이었다.

조금 더 이어 가보려던 시우였지만 애석하게도 여기까지였다.

고리가 흩어지며 시우가 구사하던 마법이 사라진다.

“오….”

시우는 과다한 소모에 어지러워진 머리를 부여잡으며 무너진 기둥의 잔해를 살폈다.

대충 감을 잡은 것 같다.

여러가지 마법을 기워내 사용하는 시우의 특성상 승부를 결정지을 ‘한 방’이 부족한 편이었다.

따라서 신체에 막대한 부담을 전가하는 주제에 준비시간까지 긴 투창에 기대왔다.

그런 의미에서 천사의 고리는 부족한 한방을 보충해준다.

소년만화 주인공이 쓰는 시간 한정 각성 모드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 고리를 유지하는 게 허리가 휜다는 정도인데….

첫술에 배부르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도로시의 표정만 봐도 엄청 놀란 것 같지 않은가?

충분히 대단한 성과라는 의미다.

“어떤가요?”

“여기부터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네.”

도로시는 어깨를 으쓱 떨며 졸업을 알렸다.

2.

짐을 꾸린 도로시와 르뤼에는 서로 뜨겁게 껴안았다.

“보고 싶을 것이도다.”

“저도 여왕님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언젠가 봤던 장면의 추체험이었다.

그때는 도로시가 되돌아와 르뤼에의 억장에 비수를 꽂았지만 모든 오해와 어긋남이 풀어지고 난 뒤에는 서로 애틋한 마음이 가득할 뿐이다.

“여왕님의 얼굴이 벌겋게 물드는 걸 한동안 못 보는 게 아쉽네요.”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뺨을 꼬집는 도로시와 농담에 발끈하는 르뤼에.

“호오, 짐 역시 그대가 젖소 흉내를 내던 모습이 그리울 것이니라.”

“아이참~ 톡 쏘는 모습까지 귀엽기도 하셔라~”

“여왕에게 못하는 말이 없도다! 존중을 표하거라!”

“어쩜 이리 귀염뽀짝 하신 지~”

하지만 침대 위가 아닌 이상 도로시는 강력했다.

르뤼에의 반격을 싱긋 웃어넘기며 이마에 쪽쪽 키스를 퍼부을 뿐이다.

저렇게 보니 정말 다정한 이모와 개구쟁이 조카 관계로 보인다.

저런 둘을 동시에 한 침대에서 품었다니.

…이건 무슨 덮밥이지?

새삼 자신의 죄과를 돌아보는 시우.

한참 정답게 르뤼에를 끌어안고 작별인사를 나누던 도로시가 걸어왔다.

“여기, 내 공방의 위치야. 적적해지면 연락해줘~”

한 번 접은 종이 위에는 상세한 GPS 좌표가 적혀 있었다.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우는 게헨나의 마녀와 굉장히 가까운 사이, 한편 도로시는 공적이다.

반드시 숨겨야 할 공방의 위치를 알려주는 건 그만큼 시우를 신뢰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설령 의도치 않았다 해도 이 정보다 다른 곳에 흘러들어 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시우의 반응을 다르게 해석한 것인지 태연하게 말을 잇는 도로시.

“알아~ 이미 여자친구도 많은데 곤란하겠지만 그건 게헨나의 이야기지. 현세에는 없잖아? 일종의 현지처라는 거지. 더불어서, 넌 음….”

도로시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내 친구이기도 하고…. 역시 낯간지럽네.”

오히려 현지처 운운할 때보다 친구라는 말에 쑥스러워하는 게 도로시답달까.

“꼭 찾아뵙겠습니다. 조금 걸리겠지만.”

아마 한동안은 보기 힘들 것이다.

추방자인 르뤼에가 게헨나의 시민증을 따기 위해서 불리한 심증이 없어야 하는데, 공적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불리하게 작용할 테니.

“그래, 언제든지 기다릴게.”

마지막으로 르뤼에의 이마에 키스를 건넨 도로시는 미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르뤼에.

“엉덩이 좀 그만 보아라. 닳을까 봐 걱정되도다.”

“안 봤습니다….”

그렇게 시원섭섭한 감정과 함께 함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쿨라에서의 3개월이 끝났다.

이젠 르뤼에와 함께 게헨나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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