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
1.
약 한 시간 이후.
“으으음….”
옅은 신음 끝에 정신을 잃었던 도로시가 일어났다.
“헉…!”
물에 빠졌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듯 상체를 벌떡 일으킨 도로시.
나신은 아니었다.
살짝 까슬하면서도 보드라운 가운이 몸을 감싸고 있었고 이불도 잘 덮여 있었다.
끈적끈적하던 땀과 체액이 사라진 뽀송한 피부를 보아하니 살뜰한 뒤처리를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일어나셨나요? 좀처럼 정신이 없으셔서 걱정했어요.”
“…….”
“여기 물 좀 마시세요. 위스키도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고요.”
신시우가 마치 집사처럼 수건 하나를 팔에 걸고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웃….”
반박자 뒤에 깨어나는 성감.
아랫배에 은은한 열기가 번져 오는 것은 물론 앞뒤 구멍 안쪽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찔거렸다.
정신을 잃기 전의 일이 기억난다.
젖소 흉내를 내며 울었던 일, 그에게 연거푸 질내 사정을 당하며 정신을 잃었던 일, 심지어 정신을 잃고 있던 상태에서 뒤에 박혀 깨어나고 그대로 느껴버렸던 일.
도로시의 팔이 번개처럼 뻗어 시우의 볼때기를 잡아당겼다.
“어디서 세상 스윗한 척이니? 죽을라고.”
“악! 악!”
“네가 사람이니?”
“기, 기분 푸세요.”
“죄~다 거짓말만 늘어놓고~ 약속은 하나도 안 지키고~ 자기 좋을 대로만 하고~ 힘들어서 기절한 여자를 눕혀두고 그대~로 허리를 흔드는 건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아닐까?”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거기에…. 나한테 그, 그, 그, 그런 대사까지 시켜놓고 그대로 안에 싸?”
감정이 복받쳤기에 말을 더듬게 된 도로시.
“심지어 기절해 있는 틈을 타서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곳까지 손을 대?”
“조,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하긴 개뿔이!”
그라데이션 분노와 함께 호통을 친 도로시의 뺨 꼬집기를 시우는 한참이나 받아내야 했다.
2.
도로시의 진노가 가신 것은 그녀의 손끝에 쭉쭉 늘어졌던 시우의 뺨이 벌겋게 물든 뒤였다.
사실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자면야 얼마든지 그를 혼쭐 낼 수 있겠지만 도로시는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해주었다.
어느 정도는 도로시가 자처한 부분도 있었고,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신시우는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하여 아무렇지 않은 듯 그를 대할 수는 없었다.
화가 조금 가라앉자마자 도로시의 머릿속으로 걸어들어온 것은 영원히 묻어버리고 싶었던 침대 위의 흑역사였으니 말이다.
결국 도로시는 얼버무리듯 몸 상태를 점검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대단하네.”
아인을 살핀 도로시는 감탄했다.
거의 불능이 되었던 마력 저장고가 40%가량 회복되었다.
하긴 어떤 마법으로도 따라 할 수 없는 순수한 마력을, 그토록 많이 쏟아부었으니 차도가 있는 건 당연했다.
걱정하는 르뤼에와 시우 앞에선 초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법에 아주 미련이 없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앞으로도 공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도로시다.
낙인을 발전시키려는 욕심이 없다 해도 그녀에게 마법은 중요한 호신용품이었다.
“다행이네요.”
“이것까지 회복 안 됐으면 난 널 절~대 용서 못 했을지도 몰라.”
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한번 효과를 검증받았던 시술인 만큼 어느 정도 확신은 있었다.
도로시가 입은 부상은 샤론의 불완전계승 때와 매우 흡사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눈으로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럼 이제 괜찮아진 건가요?”
“…….”
진심으로 기뻐하는 시우의 질문에 도로시는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경황이 없어 간과하던 중대한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약 8시간의 관계 끝에 회복된 낙인은 40%.
이런저런 변수를 배제하고 단순 숫자 계산해도 12시간은 더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신시우는 굉장히 사려 깊고 사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그가 섹스 중에 어떻게 돌변하는지 뼈저리게 학습한 도로시다.
그 꼴불견의 모습을 또 보여야 한다고?
그 어마어마한 쾌락을 또 감당해야 한다고?
절대 못한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도로시가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시우.
그와 눈이 마주친 도로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느꼈다.
어처구니 없게도 몹시 뜨거운 한숨이었다.
그 온도감에 도로시는 황당무계함을 느꼈다.
“혹시 치유가 잘 안 됐나요?”
분명히 싫었는데.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경망스럽게 뛰는 것이며, 허벅지 사이가 움찔움찔 떨려오는 것일까?
만약 이대로 ’40% 밖에…. 치유가 안 됐어’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갑자기 돌변하지 않을까?
이 옷 같지도 않은 방어력 낮은 가운을 벗기며 가슴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앞도 뒤도 헐어버릴 것처럼 격렬하게 쑤셔지면 또 그 끈적한 쾌락이 뇌수를 대체하고, 가냘프게 자비를 구걸하며 헐떡이게 되겠지.
그러다 정신을 잃으면 또 그가 원하는 구멍으로 즐겨댈 것이 뻔하다.
“…….”
몇 번을 아무 말 없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던 도로시의 입술이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지나친 쾌감의 여파로 살짝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는 기대감이 짙게 묻어있다.
“이제…. 절반 정도야.”
“그게 무슨 말이시죠?”
“더 해야 한다고…. 치료….”
얼굴이 달아오른다.
거짓말도 아니고, 도로시가 관계를 조르는 형국도 아닐 진데 이 음흉한 속내가 그에게 전달될 것만 같았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그의 반응을 살핀다.
“아하.”
예상대로 그는 비열한 웃음을 참으며 찐득하게 입맛을 다시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멍청하게 눈을 껌뻑거리며 도로시 이상의 당혹감을 내비칠 뿐이다.
기억을 잃기 전 그와의 갭이 워낙에 컸기에, 원래 이런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아연해진 도로시.
이제껏 실컷 즐겨놓고 ‘그렇게 됐나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멀뚱히 있는 그를 보자 도리어 화가 났다.
이래서야 혼자만 변태가 된 것이 아닌가?
“다음엔 절~대 네 페이스 대로 하지 않을 테야. 그렇게 기대하는 표정 짓지 말아 줄래?”
“기대하는 표정… 이었나요?”
엄밀히 따지면 기대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무작정 우겼다.
“내가 네 장단에 맞추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네가 움직이는 것도 금지, 뒤로 하는 것도 금지야. 알겠어? 너는 그냥 누워만 있어. 내가 위에 올라타서 움직일 테니까. 내 몸에 손 하나 댈 생각하지마렴.”
가슴을 얹어 팔짱을 끼고 거칠게 토라진 시늉을 한 도로시는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삐쭉 내밀고 쫑알거렸다.
섹스 이후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환락에 젖다 못해 숨을 헐떡이는 파트너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시가를 물고, 근사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자신일진대….
꼭 막 첫 경험을 끝낸 철딱서니 없는 어린 마녀처럼 굴 줄이야.
침대 위를 벗어났는데도 여전히 그에게 주도권이 들려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힘드셨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시다면, 처음 예정했던대로 할까요?”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어리둥절해하는 도로시와 이후 이어진 시우의 말.
“왜, 사정 직전에 넣고 싸기만 하는 식으로요.”
“아….”
도로시는 그제야 자신이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애초에 낙인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질내사정 뿐, 섹스 자체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렇기에 시우를 유혹하며 끌어들였던 것이 아닌가?
아니,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던 걸까.
혹시 남모른 욕망이 투영된 나머지 의도적으로 그 선택지를 배제한 채 말하고 있던 건 아닐까?
“…….”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정말 명쾌하고 최적한 해결책이 그의 입에서 나온 순간.
뜨거움이 훅 가시며 커다란 낙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 그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나가 볼까요? 르뤼에 님도 기다리고 계실 것 같은데…. 입으실 옷은 미리 꺼내왔어요. 침대에 뒀으니 갈아입고 오셔요.”
“어? 알겠어.”
도로시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섹스를 한다면 그가 체취를 맡게 될 일도 없을 것이고, 광폭화해 선을 넘을 리도 없다.
사정 시 발생하는 쾌감이 강렬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것만이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즉, 그의 앞에서 천박한 울음을 낼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미련 없이 등을 돌리는 신시우를 보자 오만가지 생각이 제멋대로 자라난다.
조금 더 솔직해진 본심이었다.
어지간한 마녀들조차 두려워하는 도로시다.
그런 그녀를 힘으로 깔아뭉개고 이성을 잃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의 일생에 없었고, 만약 있다 해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라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겠지.
그러나 신시우는 다르다.
언제나 우위에 있던 도로시를 마음껏 깔아뭉개고 통제를 앗아갔다.
도로시조차 감당할 수 없던 야만성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
신시우와 도로시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다.
그의 연인들은 모두 게헨나에 속한 마녀이며 공적과는 극상성의 관계.
아마 그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힘들겠지.
만약 어렵사리 만난다 해도 그에게 ‘그때처럼 해줘’라고 부탁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대로 그가 방을 나서 버린다면 다시 그런 섹스를 할 수 있기는 할까?
지금 이 분위기가 아니라면, 체면치레에 신경을 쓰는 자신의 성격상 영원히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찔하고 배덕적이었던 플레이는 오늘 밤이 정말로 마지막인 것이다.
그렇게 되뇌었을 무렵.
도로시는 아직도 제대로 힘이 들어오지 않은 다리를 비틀거리며 그의 소매를 잡아채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어디 안 좋으세요?”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을 지키느냐.
자존심을 버리는 대신 생에 다시 없을 경험을 또 즐기느냐.
도로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미열과 함께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이 목을 갈라지게 만든다.
맨정신이라 그런지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만 느껴졌다.
실제로 시우가 걱정스레 묻는 것도 그만큼 도로시의 얼굴이 시뻘겋기 때문이리라.
“투…. 투….”
“투 요?”
“투 플러스 원 행사야….”
-쓰윽.
도로시의 손이 가운을 잡아당긴다.
헐겁게 흘러내린 가운 자락 사이로 풍만한 가슴 한쪽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목까지 타고 내려간 홍조는 도로시의 가슴을 싱그러운 사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연분홍빛 유륜도 색조 파운데이션을 바른 것처럼 더욱 진한 색상이 되었으며, 그 첨단은 만져달라는 듯 뾰족하게 서 있다.
“이, 이게 무슨…?”
“앞이랑 뒤에 했으니까 이번엔 원하는 곳에다가 하면 되는 거라구…. 이 멍청아.”
설마 이런 짓까지 하게 될 줄이야.
자괴감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의 숨소리가 커지는 것을 들은 도소리 도로시는 미증유의 흥분이 몸을 적시는 걸 느꼈다.
“…제대로 못 하면 혼내줄 테야.”
그 말을 끝으로 도로시의 가운이 시우의 거센 손길에 찢겨나갔다.
도로시는 한 마리의 젖소였고, 시우는 침대 위를 누비는 황야의 밀크카우보이였다.
두 사람의 연장전은 기다리다 못한 르뤼에가 방으로 쳐들어올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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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싱 님이 헌정해주신 르뤼에의 팬아트입니다
550화, Ep.사랑과 전쟁(3)에 나오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세수하는 다람쥐처럼 제 머리 위로 손을 올리는 르뤼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입꼬리를 씰룩거릴 수 있다니 대단한 기술이다.>
파트를 참고 삼아 그려주셨다고 합니다
예쁜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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