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80화 (580/917)

#580

1.

도로시는 제 자신도 놀랄 만큼 빠르게 마녀 사회에 적응해 갔다.

마법 연구를 위해서라도 돈은 필수적이다.

물려받은 스승의 군수 사업을 확장했다.

인류가 발전할수록 전쟁의 규모는 커졌기에 사용되는 무기의 단가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치솟았다.

군수 사업 역시 수십 배의 규모로 불어났다.

틈틈이 게을리하지 않은 마법 연구는 도로시를 22 위계라는 드높은 경지에 올려주었다.

쫓기는 듯한 삶에서 벗어나 느긋한 안락을 누릴 여유도 생겼다.

위치포인트가 설립되고 공적에 대한 압박과 규제가 늘어나도 몇몇 공적과 파벌을 구축하며 유연하게 틈바구니를 빠져나왔다.

물론 순탄하기만 한 삶은 아니었다.

때로는 같은 소속의 마녀에게 배신당해 뒤통수를 얼얼하게 맞기도 했고, 대대적인 소탕전이 일어나 몸을 피해야 했던 적도 있다.

뒤늦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비정상적이며, 선악의 잣대에 놓고 보면 명백히 악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쯤.

검기만 한 세상 속에 뒹굴다 보니 도로시의 몸 역시 새까만 잿더미를 묻히게 된 이후였다.

그에 대한 후회나 자기 연민은 없었다.

합리화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살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테니까.

그렇구나.

도로시는 문득 깨달았다.

재투성이 같은 삶.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 역시 없었을 뿐이다.

2.

“견습마녀? 네가?”

“응, 이 아이야.”

도로시가 평생을 외톨이로 산 것은 아니었다.

이해득실만을 따져가며 만나는 동료도 있었으나, 제법 그럴듯한 친구 비스름한 마녀도 있었다.

1,000년이나 살아온 옛마녀이자 ‘추방된 적 없는 추방자’, 심해의 마녀 샬리트 누켈라비.

그녀와 친해지기까지는 꽤 장절한 사연이 있었지만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서로의 가치관과 성격이 잘 맞았더라는 식상한 이야기이니.

도로시는 포대에 둘러싸여 눈을 깜빡이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생후 5개월이나 되었을까?

너무나도 작아서 같은 인간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귀엽지? 온종일 얼마나 기운차게 울어대는지. 씩씩한 아이일 게 분명해.”

케테르에게 당하고 가장 깊은 심해로 파고들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새 견습마녀를 데려왔을 줄이야.

몸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함께 약해진 것일까?

그 무뚝뚝하던 샬리트는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행복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도로시를 향한 최소한의 경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파고들기 쉬운 약점이네.

실로 무방비함 그 자체였다.

만약 도로시가 지금 공격을 가한다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샬리트를 죽이고 낙인을 갈취할 수 있겠지.

그럴 생각이 없으면서도 이런 판단을 하는 건 평소 구두를 신을 때 왼발부터 넣는 것과 같다.

별다른 의식 없이도 하게 되는 습관이라는 말이다.

무해하고, 천진하며, 순수한 눈동자.

큼직한 남청색 눈동자가 깜빡이더니 도로시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널 좋아하나 봐.”

왜 였을까?

도로시는 울렁이는 가슴을 느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초조함을 느끼며 황급히 샬리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피해 바라본 장소도 썩 편안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친우가 보였다.

앞으로도 최소 수백 년은 함께일 줄 알았던 친구의 모습이.

긴 세월에 마모되어 도로시 이상으로 지독한 회의주의이던 샬리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는 양 웃고 있었다.

친구의 행복이라면 솔직하게 축하해 주고 말았을 일이거늘.

영원히 같은 진창에 발을 담그고 있을 줄 알았던 친구가 홀연히 떠나게 되었기 때문일까?

도로시는 설령 마법의 성취가 막히더라도 견습마녀를 만들 예정이 없었다.

특정 날, 특정 사건을 계기로 ‘반드시 그래야겠다!’라고 다짐한 건 아니다.

그저 수백 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자연스레 굳어진 굳은살 같은 것이었다.

다른 마녀들은 ‘마법을 위해’라는 다섯 글자로 제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도로시는 아니었다.

그저 살아왔을 뿐이며, 그것이 순탄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견습마녀에게까지 공적으로서의 인생을 대물림 하고 싶진 않았다.

반면, 자신과 동족이라고만 생각했던 샬리트는 ‘죽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녀는 이제껏 봐왔던 모습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샬리트는 찾았고, 도로시는 찾지 못한 것.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기에 도로시는 제법 오래 샬리트의 왕국에 머물렀다.

갓난아기는 하루가 무섭게 쑥쑥 자라났다.

도로시가 품에 안고 분유를 먹이기도 했으며, 아직 그릇을 물려받지 못한 르뤼에의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난리도 아니었다.

아기는 24시간 케어를 원하는 몹시도 성가신 존재였다.

그렇게 튼튼한 영체이면서도 진이 쏙 빠지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행복해 보이는 사제를 볼 때마다.

심장 한쪽에는 따뜻한 온기가, 그 반대편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무가 차올랐다.

도로시가 보기에 샬리트는 날이 갈수록 나약해지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하루에 한 발짝씩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강인함을 좀 먹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호기심을 느꼈다.

더 가까이 갔다가는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모닥불에 몰려드는 부나방처럼 샬리트와 르뤼에에게 다가갔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귀여워지는 르뤼에와 날이 갈수록 행복해 보이는 샬리트를 보며 도로시가 느낀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선망.

친우에 대한 저열한 질투와 열등감.

그리고 이제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따뜻함이었다.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허무의 수렁을 느꼈다.

결국 그것을 버티지 못해 도망쳐 버렸고 종종 모녀를 찾았을 따름이다.

3.

어느 날 샬리트는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계승했을 것이라 막연히 알고 있었다.

르뤼에가 계승을 받을 만큼 자랐을 시기니 말이다.

도로시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공방의 위치까지 바꿔버린 친우에게 모종의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이해했다.

그러던 중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르뤼에.

“도로시!!!!”

더욱 예뻐진 르뤼에는 도로시를 반기며 안겨왔다.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모습에 도로시도 자연 웃음 지으며 그녀를 껴안아주었다.

이후엔 몰트 바에 앉아 르뤼에와 밀린 대화를 나눴다.

많은 감회가 가슴을 적셨다.

이것이 올바른 사랑을 받아온 마녀란 것이겠지.

르뤼에는 천진했고, 해맑았으며, 붙임성이 좋고, 사람을 잘 따랐다.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성격과 선한 천성도 어디 가지 않았다.

제 사역마를 죽인 남자 마녀를 덜컥 배 안에 들일 정도로 말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하나부터 열까지 도로시가 갓 마녀가 되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감회 뒤엔 염려가 뒤따랐다.

샬리트는 제자를 위해 안배를 남겼으나 중요한 건 ‘시련’ 따위가 아니다.

설령 르뤼에가 시련을 극복한 상태라도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공적 내지는 추방자에게 쉬이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하지만 르뤼에는 견습마녀가 아닌 어엿한 마녀다.

도로시가 나서서 오지랖을 부릴 상대는 아니었다.

애초에 도로시가 그런 산뜻한 성정도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도로시의 예의주시한 부분은 르뤼에가 국서로 들였다던 남자 마녀였다.

르뤼에의 곁에 붙어있는 목적을 모르는 이상 분명한 위험요소였다.

공적을 접한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날이 선 적개심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도로시는 오히려 시우를 관찰하고 있었다.

취조나 다름없는 그의 대화에 어울려주면서 목적, 성정, 천성 등을 역으로 엿보았다.

오래 관찰할 것도 없었다.

제 속을 감추는 시늉도 못 할 만큼 멍청한 남자였다.

‘공적이란 이유로 미워하는 게 옳은 일일까?’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조금만 수상쩍은 행동을 보여도 헷갈려하는 그가 재미있어 자꾸만 놀려주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트러블 없이 평화로운 휴가를 보냈다.

도로시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친구로 대접해주는 르뤼에.

의심하면서도 도로시를 미워하지 않는 신시우.

무해하고, 순진하고, 바보 같은 두 사람이 만들어낸 느슨한 흐름 탓일까.

도로시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맡겼다.

르뤼에의 이 말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게헨나의 겁쟁이들보다 공적인 그대가 훨씬 신용 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더냐.”

어쩌다 나온 말이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르뤼에 딴에는 도로시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논조로 꺼낸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을 잠깐 잊은 채 당장 분위기에 취해있던 도로시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는 스위치였다.

르뤼에는 도로시와 달랐다.

대책 없이 남을 믿었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했고, 또한 착했다.

문제는 그런 르뤼에가 게헨나의 마녀에겐 적대감을, 추방자와 공적에겐 희미한 동질감까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며 그 생각이 꽤 확고하고 뿌리 깊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샬리트가 말년에 고생한 것이 케테르 때문이니 이해는 갔다.

하지만 공감하는 것은 거기까지.

도로시가 보기에 르뤼에는 늑대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새끼 양 그 자체였다.

태생이 다른 르뤼에가 저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봤자 예후가 좋지 않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도로시는 생각했다.

만약 르뤼에가 저대로 현세에 나오게 된다면.

추방자로서 남은 삶을 살아간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도로시는 생각했다.

르뤼에는 견습마녀가 아닌 어엿한 마녀다.

제 망토에 떨어진 불똥은 스스로 쳐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태여 그녀의 앞길을 도로시가 걱정해주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끝자락에 미련이 남은 까닭은 르뤼에가 친우의 제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솔직하게 내비쳐온 친애가 외면하기엔 너무도 두터웠기 때문이리라.

도로시는 결정을 내렸다.

역시 르뤼에는 공적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물며 추방자들 사이에서도 위태롭다.

검을 테면 깃털 한 올까지 철저하게 검어야 한다.

과거 도로시가 그러하였듯이 옆에서 하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쓰라린 경험이 그녀를 성장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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