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
1.
날카로운 창날이 복부를 헤집는 통증.
둔한 고통이 날카로움으로 뒤바뀌기 직전 천천히 쓰러지던 도로시는 뒤늦게 그의 수법을 깨달았다.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한 성이 있다면 성이 아닌 지반을 공략하자.
강림의 원리와 조건을 파악했다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전술이다.
하지만 그 성이 물렁한 대지 위에 쌓아올린 성이 아니라면.
단단한 화강암 위에 세워진 요새라면 어떨까?
도로시의 마법은 견고한 요새였으며 그 기반을 받드는 예배당은 화강암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전력 투창이, 위력이 줄었들었다 해도, 겨우 조그마한 생채기를 내는데 그쳤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붉은가지를 이용하면 제아무리 단단한 기반에라도 상처를 낼 수 있다.
그는 거기부터 파훼를 시작했다.
신시우는 구태여 집요하게 근접전에서 도로시를 상대했다.
조금만 더 밀면 넘어갈 듯,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으며 도로시의 검을 정면에서 받아들였다.
도로시는 분명 앞으로만 직진했다 생각했지만 커다란 반원을 그리도록 유도하며 뒷걸음질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을까?
그가 땅에 박아 넣은 창에 정권을 때리는 순간.
바닥이 부서지며 그 안에서 왜곡의 폭풍이 터져 나오기 직전.
도로시는 보았다.
그가 여태 강공을 힘겹게 쳐내면서도 바닥을 긁어댔던 흔적들.
그는 절대력이 가해진 검을 흘리듯이 쳐내면서도 그 힘을 이용해 바닥에 되려 상흔을 새겼다.
도로시가 어리석은 시도라고 단정 지었던 그 상처 중 몇 개가 시우의 마력에 응하며 빛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연신 바닥을 긁어대던 행동은 마법진을 그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약식 마법진이라 한들 그토록 격렬한 전투 도중에 바닥을 긁는 것으로 회로를 만들어내다니.
상식의 선을 아득히 넘어 곡예의 수준이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도로시가 한 발씩 함정에 빠지는 와중에도 그는 영리했다.
도로시도 일류 마녀.
바닥에 별다른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명확히 보이는 마법진이었더라면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우는 마법식이 들통 나지 않게끔 무의미한 획을 더미로 남겨 자신의 큰 그림을 감췄다.
시종일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며 도로시가 우위를 의심치 않게 만들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계획을 숨기고 불리함을 가장하다 한 번의 판을 뒤엎어버렸다.
만약 그가 안일하게 맨땅에 창을 박아놓고 같은 짓을 했더라면 파괴의 범위는 이처럼 넓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큰 크랙을 만드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며 도로시가 넘어질 일도 없었겠지.
도로시는 그가 화감암 지반을 끌로 긁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폭약을 쑤셔 넣을 깊은 구멍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곡차곡 마법식의 준비를 끝냈고, 그 마법은 무려 누켈라비의 것.
횡파를 통해 중첩된 왜곡장은 더더욱 효율적으로 지반을 파괴했다.
지면을 더는 파고들지 못한 왜곡장은 거꾸로 뒤집은 종에 소리를 지른 것처럼 위로 치솟아 올랐다.
아아, 정말이지.
경탄 어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윽고 도로시의 의식이 어두컴컴한 어둠으로 물든다.
2.
암전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의식의 끝자락을 붙잡은 건 익숙한 목소리였다.
“찌르렴.”
어둠, 철제 의자, 마녀, 도로시, 통통한 쥐, 곰팡내, 가스등, 쇠사슬, 스승.
어느 순간부터 꾸지 않게 된 오래된 꿈의 파편이다.
정말이지.
마지막에 이런 주마등을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스승이 준 길쭉한 칼을 도로시는 건네받았다.
긴장으로 가빠진 호흡에 지하실 특유의 습기와 더해진다.
가죽으로 감싸인 단도 손잡이는 땀으로 미끈거렸다.
눈앞에 있는 건 스승이 포획한 마녀.
“어서, 찌르렴.”
재촉하는 다정한 목소리와 등을 떠미는 손길.
입에 재갈이 물린 엉망진창 몰골의 마녀는 흰자위가 다 보일 정도로 눈을 치켜뜬 채 조금씩 꿈틀거렸다.
스승의 실험에 이용된 나머지 애처롭게도 자비를 구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도로시는 칼과 마녀 그리고 인자한 스승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이내 종종걸음으로 다가선다.
단도가 땀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힘껏 잡고 스승이 가르쳐 주었던 부위를 단숨에 찔렀다.
잘 손질된 칼날은 늑골과 늑골 사이를 정확히 비집고 들어가 심장을 찔렀다.
마무리를 위해 비틀자 뼈가 쇳날에 긁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녀의 눈이 뒤로 넘어갔다.
전신이 기운차게 파들파들 떨렸다.
발가락과 손가락은 지리멸렬하게 오므라졌다.
“그래, 잘하는구나.”
어둠, 철제 의자, 마녀, 도로시, 곰팡내, 가스등, 쇠사슬, 스승, 단도, 피 냄새, 피 냄새, 피 냄새.
첫 살인.
도로시가 아직 견습마녀였으며 8살 때의 일이었으며, 선악의 분간보다도 스승의 다정한 한 마디가 더 소중했던 때의 일이었다.
공적은 견습마녀를 쉽사리 만들지 않는다.
다른 마녀의 낙인을 강탈하며 얻는 데이터는 혼자서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유예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공적에게 견습마녀를 만들고 낙인을 계승한다는 행위는 아주 리스크가 큰 탓이다.
갓 낙인을 물려받고 공적이 된 견습마녀에게는 험난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안전한 울타리는 고사하고 같은 처지의 공적도 믿을 수 없는 상태.
자칫 대를 걸쳐 쌓아온 모든 연구 결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스승은 도로시에게 전투를 가르쳤고, 무엇보다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쳤다.
만약 적이 된다면 누구든,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마음가짐.
즉, 도로시의 첫 살인은 선대에 의한 조기 교육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에는 죄악감 따위 느끼지 않았다.
가끔 생리적으로 혐오스러웠던 몰골의 마녀가 꿈에 나타났을 뿐이다.
이후로도 도로시는 꽤 많은 인간을 죽였다.
스승이 시키는 대로, 필요한 행위라고 했으니.
스승이 적당히 ‘손질’한 마녀와 싸운 적도 있었고, 같은 견습마녀와 목숨을 걸고 겨룬 적도 있었다.
어떨 때는 당시 사업의 배신자나 사형수를 데려와 처형을 맡기기도 했다.
그 수가 도로시의 나이의 두세 배를 가뿐히 넘어갈 무렵.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적으로 나타난다면 사정없이 죽이렴. 마음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사하퀴엘은 최강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멋대가리 없는 유언’ TOP3 정도는 가뿐할 말을 끝으로 스승은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후 도로시는 스승의 유언장에 적힌 대로 칼을 들어 당신의 유체를 난도질했다.
스승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비뚤어진 애정이자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나 다름없는 스승의 유체를 토막 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면, 당신이 안심할 수 있을 만큼 잔혹해진 것이라고 여긴 거겠지.
스승에게 미안해해야 할지, 아니면 자랑스러워 해야 할지는 아직도 헷갈리지만….
그 당시 도로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며 번거로운 작업을 끝냈다.
생명 활동이 멈춰버린 육체 따위, 매일 식탁에 오르는 고깃덩어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계승을 받고 난 이후 삼 년간 한동안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구도의 마녀가 막 계승을 끝냈다는 정보를 입수한 온갖 불청객이 도로시를 찾아온 탓이다.
추방자 둘, 게헨나 출신의 사냥꾼이 하나, 같은 공적이 무려 둘이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 공적이었겠지만 도로시는 멋들어지게 그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선대의 안배로 인해 도로시는 마법을 휘두르길 두려워하지 않았다.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선악을 판단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니 손속에도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다.
날아드는 날벌레를 손등으로 쳐내는 것처럼 모든 방해물을 청소했을 뿐이다.
“도로시, 괜찮니? 많이 힘들었지?”
갓 계승 받은 도로시가 슬슬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얕잡아 보이지 않을 무렵.
마지막으로 찾아온 마녀는 어머니의 친구이자 공적이었다.
그녀는 다정하게 안아주면서 그간 있었을 괴로움을 위로했다.
“뭐가? 난 다친 곳도 전~혀 없는걸?”
왜 위로받아야 하는지.
왜 동정 어린 눈빛을 받아야 하는지.
도로시는 알지 못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마녀 역시 근본은 인간이다.
사정 없이 마멸되고 닳아 없어져 인간미를 찾기 어려운 도로시였으나.
본능적으로 그 포근함을 좇게 되었다.
단지 그녀의 품이 따뜻했기 때문에 도로시는 잠자코 그녀를 따랐다.
함께 있기만 해도 꼭 스승님과 함께 있었던 시절의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통점이 없어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상처도 상처이듯.
도로시는 자신이 지친 줄도 모른 채 지쳐 있었으리라.
그것이 모두 허울이자 가식이었으며, 사하퀴엘의 낙인을 차지하기 위한 사전공작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것은 불과 수개월 뒤였다.
그 당시 17 위계로 도로시보다 두 위계나 낮았던 그녀는 도로시가 잠든 틈을 타 목숨을 취하려 했던 것이다.
아마 한 달 정도만 신중하게 기다렸더라면 도로시는 아무런 대비 없이 당했겠지만, 불행일지 다행일지 그때까지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한 번만…. 선대를 생각해서 한 번만 봐 줘.”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리는 걸 바라보면서도 참으로 뻔뻔한 부탁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는 달리 도로시는 태어나 처음으로 목숨 구걸 앞에 검을 멈춰 세웠다.
욱신거리는 흉통을 느꼈다.
멍하게 뜬 눈꼬리를 따라 투명한 눈물이 흘렀다.
배신감.
이 감정은 분명 배신감이리라.
“꺼져.”
도로시는 등을 돌렸다.
우습게도 그녀는 최후의 빈틈을 노려 도로시를 등 뒤에서 찌르려 했다.
자비를 거부한 채 마지막까지 비열한 욕망을 관철했던 마녀는 그에 걸맞은 비루한 죽음을 맞았다.
도로시는 멍하니 으깨진 마녀의 시체를 내려보았다.
이것이 죽음인가.
피로 물든 손으로 거칠게 쿵쾅이는 가슴을 짓누르며 중얼거렸다.
또한 이것이 삶인가.
그날 이후 도로시는 마지막 연약함을 버렸다.
무표정했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새겨졌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세계가.
그 안에서 입을 뻐끔거리며 떠도는 삶이, 인생이.
몹시도 우스운 희극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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