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78화 (578/917)

#578

1.

이따금 공연히 되묻곤 한다.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의 뒷이야기가 더는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입안에 굴릴 적마다 참으로 진부하고 식상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묻노라면.

삶이란 무엇인가.

2.

세상에 완벽한 마법은 없다.

견문이 짧아, 경험이 부족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우가 지금까지 지켜보온 마녀들은 저마다 약점을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가령 그 스승님조차 계약 마법을 전투용으로 개조한 까닭에 연비가 극악이었으며, 비앙카의 경우 원거리 포격에 특화된 나머지 근접전을 어떻게든 피하려 들었다.

위계의 차이가 아무리 전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더라도 변수를 만들 돌파구는 항상 존재했다.

근접전은 힘의 논리로 압도당한다.

최고 화력을 지닌 원거리 공격은 절대방어에 가까운 깃털들에 의해 차단된다.

이렇듯 언뜻 보기에 난공불락의 요새로만 보이는 도로시에게도 반드시 같은 빈틈이 있으리란 의미다.

뚜벅뚜벅 걸어와 시우에게 검을 휘두르는 도로시.

우선은 그것을 빗겨낸다.

-카카가강!

이전처럼 힘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세운 사면을 이용해 창대로 흘려보냈다.

“어머?”

손맛이 달라진 것을 도로시도 느낀 모양이다.

시우가 힘껏 휘두를수록 그 반작용이 역으로 전가되니 아무리 정면으로 계속 맞서야 답이 없다.

따라서 유로 강을 제압한다.

-까드드드득!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면으로 힘껏 맞부딪쳐도 상쇄할까 말까 한 힘.

절대력을 기교로 빗겨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시우는 발을 적극 사용했다.

사실상 무구를 맞대기만 할 뿐 무릎을 굽히고 몸을 틀며, 검의 궤도를 가로막지 않는 선에서 피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도로시는 시우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것이 아까부터 도로시가 보이는 전투 양상의 공통된 특징 하나.

그녀는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엔 그저 여유에서 기인한 봐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마법식.

수녀복 안감에 복잡하게 쓰여 있던 마법식을 해석하며 다른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마법은 마력을 대가로 신비를 구현한다.

그리고 20 위계가 넘은 대마녀는 단순히 신비의 구현을 넘어 세계의 ‘설정’ 자체를 수정한다.

하늘을 접어 활로 쏜다든지, 그 자체로 달성되려는 성질을 지니는 약속을 맺는다든지, 잊힌 옛 신을 불러낸다든지, 허허벌판 위에 꽃을 피워낸다든지….

아무튼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로시의 절대력은 물리법칙을 근간부터 수정하는 힘이다.

하지만 지금껏 지켜본바 도로시가 행사하는 ‘수정’에 비해 소모되는 마력이 너무도 적었다.

저 정도로 힘을 펑펑 쓴다면 대마녀라도 금방 지쳐 나가떨어져야 정상일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효율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과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건을 파헤치기 위한 키워드는 셋.

‘수녀복’, ‘천사의 모습’, ‘예배당’.

이것들을 보면 알겠지만 도로시의 마법은 상징체계에 의해 힘을 얻는 마법이다.

설령 실존하지 않는 존재일지라도 중첩된 역사와 신화 속에서 힘을 얻듯, 도로시의 절대력은 상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눈여겨본 것은 수녀복 그리고 예배당.

그 위주로 마력의 흐름을 훑었다.

“그렇게 피하기만 해도 지치지 않아~ 나는 온종일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깨닫는다.

도로시는 수녀복을 매개로 이 예배당의 기둥이자 축이 되어 있었다.

단순히 마법적인 의미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즉, 그녀가 이 압도적인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것도.

예배당이 어떠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것도.

그녀의 수녀복이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녀가 땅을 딛고 서 ‘기둥’으로서 존재하는 걸 전제로 가능한 기적.

도로시는 시우를 봐주기 위해 힘을 조절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두 발 중 하나는 반드시 땅에 붙어있어야 하기에 화려한 몸놀림을 구사하지 못한 것뿐이다.

그녀는 평소의 나른한 말투, 느릿한 몸짓과 여유로운 전투 방식을 습관처럼 보이며 그것을 숨기고 있었겠지만….

확실히 간파했다.

-까드드득!

다시금 공격을 흘리며 이번엔 리본을 뻗는다.

그녀가 땅을 딛고 서 있지 못하게 만든다면 성가신 절대력도 봉쇄될 터.

도로시는 지척에서 뱀처럼 몸을 휘감는 십수 가닥의 리본을 쳐낼 수 있을 만큼 민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콘크리트에서 즙을 짜내는 것도 가능할 리본의 강대한 힘이 전신을 옥죄어도 그녀의 동작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고통스러워하지도, 하다못해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신경쓰는 기색조차 없다.

“이런 플레이가 취향이야?”

무의미한 농담을 무시한 채 힘껏 그녀를 뽑아 던지려 들었다.

“하아압!”

여유로 가득하던 도로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만 도로시는 이 대지 위에 서 있으려 하고 있다.

또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절대력이란 이름대로 절대적, 따라서 상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과 수십 킬로그램에 불과한 육신을 수십 수백 톤의 장력으로 끌어당긴다 한들, 도로시가 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시우보다도 도로시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툭! 투두둑!

예상대로 제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뜯겨나가는 리본.

그렇기에 도로시가 놀란 건 그의 시도 자체다.

그는 지금 땅으로부터 도로시를 떼어놓으려 했다.

도로시의 자성마법 ‘강림(降臨)’의 구조를 그 짧은 순간에 간파했다는 의미다.

수백년을 살아오며 전투에 이골이 난 마녀도 아니고 그녀가 보기엔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않은 풋내기가.

“설마. 눈치챘어?”

하지만 잠깐의 경악도 잠시 다시 여유 넘치는 눈웃음을 짓는 도로시.

모처럼 분발해 준 그에게는 몹시 아쉬운 일이겠으나, 도로시의 마법은 간파했다 하여 허점이 드러나는 부류가 아니었다.

결국 기둥이 된 도로시를 무너뜨리려면 지면으로부터 발을 떼어놓아야 하는데, 그 상태에선 이미 절대력이 작용 중이다.

절대력을 파훼하기 위해서 결국 절대력을 정면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치명적인 모순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난 꽤~나 무거워서 안 될 걸?”

확실히 비앙카를 상대로 분전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여간내기는 아니었다.

멀리서 공격을 퍼붓는 것밖에 못하는 욕망에 마녀가 이토록 끈덕지게 달라붙는 시우를 상대하려면 꽤 곤욕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소소한 감상 이후 전개는 도로시의 입장에서 굉장히 지루한 힘 빼기였다.

-까드드득! 카캉!

무작정 앞으로 밀고 나오는 도로시와 그것을 힘겹게 받아 흘리는 시우.

마법도 아닌 무술에 가까운 방식으로 여기까지 맞설 수 있다는 게 신비로울 따름이지만….

거기까지다.

그는 점차 밑천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참~ 성가시네. 죽일 수도 없으니까 더 성가셔.”

힘겹게 검을 받아내는 그의 창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들어 올리기도 버겁다는 듯이 어느덧 창의 첨단이 땅을 긁어내고 있었다.

알고 있던 대로 예사로운 예장은 아닌 모양이다.

도로시가 여전히 땅을 받치고 서 있음에도 예배당에 흠집을 내고 있으니.

혹시 일부로 바닥을 긁으며 붉은 역장을 통해 마법진의 붕괴를 노리는 것일까?

하지만 저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가 아무리 생체기를 낸다 해도 드넓은 예배당 전체에 펼쳐진 술식에 영향을 끼치는 건 불가능했다.

거기까지는 간파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이미 눈치챘음에도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예배당 바닥을 전부 갈아낼 심산인 걸까.

“그렇게 달라붙어도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그보다 대답 좀 해줘~ 혼잣말하는 미친년 같잖아.”

이번엔 다소 힘껏 시우의 중단으로 검을 날리던 도로시는 불현듯 제 혼잣말에서 위화감을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왜 이렇게 달라붙을까?

전황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었다.

그러나 신시우는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근접전에 가장 자신 있다 한들 제법 그럴싸한 원거리 공격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고집스럽게 근접전만을 고집하는 게 과연 아집 때문일까?

그의 눈을 본다.

동시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검은 투구창안에서 빛나는 그의 안광은 전투를 포기하거나 자포자기에 내몰린 남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수풀에 엎드려 사냥감을 노려보며 차분하게 기회를 엿보고 있는 포식자의 눈이다.

뭘 놓쳤지?

당최 이 상황에서 그가 노릴 만한 빈틈이 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만났던 가장 강한 마녀도 절대적인 방어를 뚫어내며 도로시를 공격할 수 없었다.

부상은 커녕 피를 흘린 적도 없다.

이런 싸움만 하다 보면 전투란, 굉장히 박진감 없는 반복 노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두려워 말라!”

따라서 제 영창처럼 도로시는 전투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하물며 한참 아랫줄일 것이 분명한 시우에게야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온갖 사지를 꾸득꾸득 기어나오며 전투경험을 쌓아온 시우에게 그러한 방심은 너무도 좋은 먹잇감이었다.

도로시의 머리 위에 조금 전처럼 새하얀 고리가 떠오른다.

수만 개의 깃털이 모여 만든 거대한 날개가 펄럭이며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마력을 흩뿌렸다.

이토록 까다로운 제한을 두고도 방대한 마력을 소모하기에 도로시조차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완전체.

도로시의 발상은 단순했다.

뭘 의도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더한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뿐.

어쭙잖은 속임수는 결국 무적의 방패 앞에 부러지는 법이다.

방어 일변도였던 시우의 태세가 공세로 전환됐다.

동시에 도로시의 날개로부터 사방으로 휘날린 깃털이 느릿하게 시우에게 날아간다.

일견 느릿해 보이지만 한 올 한 올에 절대력이 실려있다.

그 앞에 설령 운석이 날아온다 해도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같은 속도와 힘을 지닌 채 묵묵히 날아갈 것이다.

과연 부자연스럽게 깃털을 피해 찔러오던 그의 창격이 지면을 향했다.

얼토당토않은 궤도로 날아오던 창끝이 지면에 박혀드는 걸 보며 도로시는 승리를 확신했다.

“잡았다.”

그러나.

시우가 지면에 박아둔 창대 끝에 힘껏 주먹을 날리는 그 순간.

-둥! 둥! 둥!

세 번의 중첩된 횡파와 함께 지면이 무너져 내렸다.

커팅기를 통과한 치즈조각처럼 부서진 일대의 지반에, 도로시가 딛고 설 땅은 남아있지 않았다.

경악으로 치켜뜬 도로시의 눈.

그런 그녀의 앞머리를 휘날리며 붉디붉은 스파크가 간헐천처럼 솟아올랐다.

갈라져버린 지면에서 솟아오른, 응축된 왜곡의 폭풍이다.

아주 잠깐 발디딜 곳이 사라지며 예배당의 가호를 받지 못하게 된 수녀복은 아티펙트의 천적이라 불릴 만한 폭풍에 저항하지 못했다.

생겨났던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지는 깃털과 천사의 고리.

빙글 몸을 돌려 창을 뽑아낸 시우가 여파에 휘말려 쿠킹호일처럼 일그러지는 갑옷을 벗는다.

완전 무방비 상태로 틈을 드러낸 도로시의 복부에 깊게 창이 박혀 들었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