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76화 (576/917)

#576

1.

옛스러웠던 왕궁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거대한 예배당이 생겨났다.

장엄한, 거룩한, 혹은 신성한.

예배당을 수식할만한 단어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거대한’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그 위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까마득하게 올려보아야 할 천장.

현실적인 건축물이라기보단 선지자의 꿈속을 연상케 하는 이 공간은 마녀의 전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일전에도 확인했다시피 도로시가 언제나 입고 있는 수녀복은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훌륭한 방호 성능을 지닌, 몸에 걸치는 요새라 부를 만한 아티펙트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 단락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았을 뿐.

그 상세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도로시의 이면결계가 사방을 완전히 잠식하는 순간, 수녀복의 완전한 역할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닥으로부터 천장을 연결하는 기둥은 세계수만큼 굵고 커다랗다.

그러나 이 모든 공간을 지탱하는 건 저 기둥 따위가 아닌 도로시의 수녀복이다.

그녀는 스스로 하나의 축이 되어 새로이 덧그려진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아무런 타산 없이 저런 번거로운 짓을 할 리는 없다.

에아 사달멜리크의 ‘물병’이나, 비앙카가 ‘투기장의 깃발’을 이용해 만들었던 것처럼 모종의 개조가 이뤄진 이면결계로 보인다.

그리고 그 개조는 도로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거겠지.

“…….”

이루말 할 수 없는 씁쓸함을 집어삼키며 마력을 충전.

갑옷을 걸치고 붉은가지를 세웠다.

사실 이와 같은 감정이 사치라는 건 안다.

낙담하게 되는 것은 싸움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도로시를 향한 실망은 그녀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기에 생겨나는 것이었다.

“폐하는 어떻게 됐지?”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는 게 어때?”

질문을 하면서도 반쯤은 확신하고 있었다.

도로시의 행동은 지나치게 과감하다.

방심을 틈탄 일격을 노리고 도주한다면 몰라도 그녀는 보란 듯이 결계를 펼치며 실력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르뤼에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깊은 바다, 그 중에서도 본진이나 다름 없는 누켈라비 왕국에서.

이는 르뤼에가 전투에 개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전후 사정을 예측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가 개장수에게 아무런 경계 없이 다가간 상황과 흡사할 것이다.

아마 시우에게 했던 것처럼 태연히 다가가 칼빵을 놓았겠지.

“도대체 왜?”

의미없다는 걸 알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것이 장난이라는 양 키득거리며 웃는 도로시.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찾았는데. 스카웃 제의에 응해주지 않았잖니? 여왕님의 반응을 보면 딱히 허락해 주지도 않을 것 같고~ 별수 있겠어?”

“고작 그런 이유로?”

그야말로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분노가 치밀었다.

공적은 인지상정조차도 없단 말인가?

도로시를 향한 르뤼에의 신뢰는 옆에서 보기에도 위태로울 만큼 맹목적이었다.

공적이라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친구로서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그런 르뤼에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찔러 버리다니.

심지어 르뤼에는 얼마 전 타계한 친구의 제자 아닌가?

“어머~ 무서워라.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온갖 욕설과 고함을 지르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다스린다.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나는 이런 방법밖에 모른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도로시.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쓰레기 같은 변명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향했던 모든 판단을 재규정한다.

그녀는 더는 르뤼에의 친구가 아니다.

시우로 하여금 복잡한 상념에 빠지게 했던 회색분자 또한 아니다.

정진정명한 적.

배제해야 할 위험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어지러운 마음은 전투에 영향을 주니.

애초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도로시의 언행 자체가 의도된 도발일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전투태세로 들어간다.

습관처럼 양자 간의 상황과 유불리는 나열했다.

전투에 앞서 항상 하는 행동이다.

일전 비앙카를 상대할 때는 달랐다.

시우도 도로시도 서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때는 힘이 미치지 못했을지언정 비앙카의 자성 마법과 예장에 대해 파악하고 만반의 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하다못해 첫 수를 교환하려 들 때부터 선택지가 갈리게 된다.

여기서 선택지는 둘.

하나, 도로시와 거리를 둔 채 리본을 활용해 그녀의 자성마법을 파악한 뒤 접근하는 것.

둘, 갑작스레 거리를 좁혀 가장 자신 있는 근접전을 유도하는 것.

각기 리스크와 리턴이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조금 더 안전한 신중론이다.

정보가 없는 채로 다짜고짜 덤벼드는 건 아무런 장비 없이 지뢰 매설 지역을 달려나가는 것과 진배없다.

따라서 리본을 테스터기로 삼아 모종의 위험을 확인하고 배제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다만 이는 도로시에게도 정보를 주는 것과 다름없으며, 얼추 견적이 나왔을 때는 뒤늦게 거리를 좁히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후자의 경우, 초격에 기선을 잡는 기습책이다.

시우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도로시도 마찬가지.

경험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이때야말로 파고들기 가장 좋은 시점이다.

다만 그 이후 모든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더하여 도로시가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함정에 전혀 대응하지 못할 리스크를 동반한다.

“피어라.”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도로시는 22 위계.

그 강대했던 욕망의 마녀와 동 위계이며 수많은 마녀와 전투경험이 있는 공적이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강해진 시우라도 정공법만으로 덤벼드는 건 기댓값이 낮다.

선수필승.

시우의 최대 장점은 붉은가지를 활용한 근접전을 유도하는 것이 상책이다.

시우의 몸이 푸른 빛과 함께 공중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장소는 도로시의 등 뒤, 공중, 노리는 곳은 훤하게 드러난 후두부.

마력 강화에 더해 전투의 흥분으로 민감해진 시신경계는 그녀의 목덜미에 조그마한 솜털조차 포착해낸다.

인간에게도 마녀에게도 치명적인 급소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휘둘렀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덜미에 핥듯이 창날이 감겨든다.

짧은 순간이나마 필중(必中)을 예감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분홍색 공작님을 떠올리게 하네. 제자라더니 정말이구나?”

도로시의 몸이 슬쩍 움직였다.

왈츠를 추며 우아하게 턴을 하듯 가볍게 한발을 내디뎌 빙글 돌았다.

그녀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시우를 바라보지도 않고, 등 뒤에서 쏟아진 불의의 일격을 피해냈다.

당황할 필요 없다.

빗나간 힘을 고스란히 이용해 회전력을 더하면 될 뿐.

손에 들린 창의 날카로움은 한 달 전과 아득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쇄애애액!

아까보다 훨씬 강렬한 일격이 도로시의 새하얀 검과 격돌했다.

-텅!

-파츠츠츠츠!

아름답게 부서지며 산란하는 하얀 빛과 스파크처럼 거칠게 번지는 결계.

“컥!”

그 순간.

손목을 시작으로 팔 전체가 박살이 날 것 같은 충격과 함께 회전력을 더하던 허리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장을 진탕하는 듯한 압력.

인간 시절로 돌아가서 거대한 합금 큐브에 있는 힘껏 쇠파이프를 휘두르면 지금과 같은 느낌이 들겠지.

손목이 부러지거나 뼈에 금이 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영체의 강인함 덕분이었다.

휘청거리는 뒷걸음질을 치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려 들었다.

전투에 있어 무구를 맞대는 경험은 적지 않다.

시련 속 자신과, 적기사와, 스승님과 이미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병기가 격돌했을 때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놀랐니?”

다시금 조금 전의 상황을 반추한다.

도로시는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두르는 시우를 향해 슬쩍 검을 내밀어 방어했을 뿐이다.

그 시점에서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로시의 검은 원래 내밀어진 자리에서 1mm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 또한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린 방어 자세 그대로.

심지어 머리카락 한 올도 휘날리지 않았다.

“한 번 더 해 봐. 기회를 줄게.”

도로시는 검을 든 채 팔을 벌려 보이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조금 전의 격돌에 아주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후웁…!”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어차피 부딪쳐보는 수밖엔 없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신중히, 갑주 안쪽으로 밴딩하듯 손목을 비롯하여 관절부를 리본으로 감쌌다.

최대한 충격을 감쇄하기 위함이었다.

상단을 점하는 척,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찌르기.

언뜻 별것 없어 보이는 단순한 찌르기지만 페인트 동작이 섞여 있기에 정면에서 본다면 거의 대응할 수 없는 신속한 일격이다.

-쾅!

-파츠츠츠츠!

“크윽…!”

그러나 다른 방식의 공격일지라도 나온 것은 똑같은 결과였다.

도로시의 자세는 일견 대단할 게 없어 보였다.

검술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것도 아닌 듯 일견 빈틈투성이의 자세.

그럼에도 시우의 페인트를 우습게 간파했으며 마치 거미줄을 걷어내는 것처럼 슬쩍 옆으로 쳐냈을 뿐이다.

고작 그 정도의 대처에 매서운 힘이 실린 창의 궤도가 완전히 틀어지며 내장이 꽉 짓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반면 도로시의 검은 원래 움직임에서 한치도 변함이 없는 균등한 운동을 하며 휘둘러졌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왜곡장은 수녀복에 의해 간단하게 중화되었다.

작용과 반작용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움직임이오 결과다.

느껴지는 것은 태산을 마주한 무게감과 절대적인 완력의 격차.

비앙카 전 때처럼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없었기에 잠깐 망각하고 말았다.

상대는 22 위계.

순리를 비트는 대마녀의 경지에서도 두 계단이나 더 올라선 강자.

“다 끝났지? 내가 간다?”

제풀에 나가떨어질 뻔한 시우가 자세를 다잡길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취하는 도로시.

언제나 실없어 보이는 목소리엔 어느덧 강자의 관록이 넘쳐흘렀다.

이후.

그녀의 검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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