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74화 (574/917)

#574

1.

목숨을 건 홀짝의 실패.

투창의 여파에 휘말린 시우는 커다란 크레이터 위에 처박혔다.

아득히 멀어졌던 의식이 돌아왔다.

흐릿한 시야와 뿌연 압박감, 충격으로 터져나간 입안을 가득 채우는 끈적한 쇳내.

반 박자 늦게 날카롭게 옆구리를 후비는 통증은 역설적으로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온다.

“콜록…! 끄윽….”

도박에는 실패했지만, 개평 정도는 받아간 모양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가 절반인 침을 뱉고 환부를 확인했다.

창이 복부에 박히려는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기에 직격타는 피했다.

더하여 원소술식을 통해 전 마력을 소모해 갑주의 방호력을 올렸다.

두 번 해보라면 절대 못했을 본능적인 임기응변으로 붉은가지를 흘려낸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지경이다.

압축된 왜곡장과 충격파에 휘말리자 대전차포도 튕겨낼 순간 경도를 지니게 된 검은 갑주가 산산이 조각났다.

술식에 깨어짐에 따라 작용한 피드백이 낙인에 불타는 듯한 작열감을 선사한다.

왜곡장과 직접 맞닿은 옆구리의 마력회로가 괴사했다.

날카롭고 거칠게 찢어진 상처에서는 쉼 없이 피가 꿀렁이고 있었다.

상처가 깊다.

리본으로 거칠게 동여매는 것으로 출혈과 내장이 튀어나오는 것을 일시적으로 차단했다.

이전 ‘시련’과 달리 전혀 감쇄되지 않는 생생한 통증.

뇌에서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까닭이겠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평온함 속에서 ‘그나저나 오늘 저녁엔 뭐 먹지?’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으….”

의도적으로 의식이 옆길로 새려는 것을 막는다.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며 차가워진 머리는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냈다.

중요한 것은 현상의 나열.

그리고 그 인과를 규정하는 것.

현상 하나.

지금 옆에 비스듬히 꽂혀있는 창은 본래 시우가 휘두르던 붉은가지 뿐이다.

즉, 흑기사는 발출에 사용했던 자신의 창을 도로 회수했다.

인과 하나.

저번 시련 중 일어났던 현상은 버그가 아니었다.

미쳐 날뛰는 붉은가지를 모종의 방법을 통해 회수해낼 능력이 존재한다.

현상 둘.

지금 시우의 몸은 만신창이다.

얼마간 의식을 잃고 무방비하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투창이 아니라 간단한 마법만으로 처치할 수 있는 상태였으나, 흑기사는 그러지 않았다.

인과 둘.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붉은가지가 시우와 함께 지면에 격돌하는 순간 방출된 왜곡장이 일제히 마법식을 망가뜨려 버렸다.

지금 흑기사가 시련을 변조하기 위해 펼쳐둔 마법식은 그 자체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심정제를 투여하지 않고 심장 수술을 하는 것처럼 시시 각각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정밀하고 방대한 연산 작업이다.

“…….”

위를 보았다.

조금만 방심해도 흐릿하게 풀려버릴 초점을 다잡는다.

붉은가지를 쥐고 있는 흑기사.

예상대로 그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채로 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거나 뭔가 행동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신체 말단에는 이미 감각이 사라졌고, 솔직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한계다.

다시 주저앉아 쉰다면 아마 일어설 수 없겠지.

막연한 확신이 두려웠기에 선 자세로 체내에 축적된 데미지를 녹여냈다.

약 30초.

이제 슬슬 차가워진 손끝을 까딱거릴 수 있게 될 무렵.

-둥!

시우에게 있어 아주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모하던 마법식.

흑기사가 ‘시련’을 통제하기 위해 연산을 소모하던 마법식이 진정되었다.

시우가 데미지를 회복하는 사이 최적화를 맞추고 안정화 상태에 돌입한 것.

이만한 대규모 마법을 안정화하기 위해선 족히 며칠이 요구되는 걸 생각할 때 말이 안 되는 연산속도였다.

이로써 흑기사를 압박하던 패널티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피어라.”

붉은가지를 뽑아들며 거듭 증폭으로 바닥을 보이던 마력을 회복한다.

갑주를 다시 재구성한 채 힘차게 흑기사를 향해 날았다.

아직 해볼 만하다.

비록 이쪽도 허리에 부상이 있지만 흑기사 역시 도박수를 벌리는 와중 한쪽 팔이 아작났다.

근소한 차이로 기울어졌던 근접전의 유불리가 확연히 벌어진 셈이다.

그걸 아는 흑기사는 제자리에서 요격하는 것이 아니라 도주를 택했다.

바람을 가르며 추격하는 와중 거듭하여 떠올랐던 의문을 파고든다.

흑기사는 어떻게 폭주시킨 붉은가지를 회수했는가? 에 대한 의문이었다.

물론 시우의 마법 중엔 좌표이동식이라는 마법이 있다.

본래 차원을 게헨나를 탈출할 용도로 완성해가던 공간이동식에서 부분을 추출하여 만든 마법식이다.

하지만 좌표이동식으로 폭주 중인 붉은가지를 회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시련 밖에서 몇 번이고 계산을 뒤적이며 시뮬레이션해보지 않았던가?

아무리 흑기사가 규격 외의 연산능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결론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말.

흑기사는 알며, 시우는 모르고 있는 붉은가지의 활용법이 있다는 의미다.

절체절명의 순간 사고는 뜻밖에 오래된 필름처럼 늘어진다.

불현듯 꽤 옛날 주고받았던 예소드 백작의 말이 떠오른다.

‘이건…. 이미 아티펙트나 예장이라고 분류해야 할 범주를 넘었네요. 대단해요.’

‘일반적인 예장은 결국엔 도구에 불과해요.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네요. 별도의 명령이 없이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주위를 오염시키려 들고 있어요. 저주를 받아 창으로 변해버린 마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요.’

그녀의 말마따나 붉은가지는 명령어와 프로세스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일반적인 예장 혹은 아티펙트와 다르다.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킨.

비겁의 마녀의 염원을 이룰 ‘연꽃’마저 피워 냈던.

케테르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마녀 중 하나라고까지 일컬어 지는 스승님을 거의 죽음까지 몰고 갔던.

지금까지 시우는 그 왜곡장과 붉은 결계를 통제하고, 압축하고, 폭주시키는 일에만 활용했다.

하지만 다른 기능도 분명 존재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붉은가지의 특성은 ‘왜곡’이다.

허나 단순히 마법을 방해하는 작용은 그 편린에 불과하다.

그 본질은 현실과 사상(事象)의 왜곡.

비겁의 마녀는 ‘삶과 죽음’을 왜곡하려 했으며, 적기사는 공간을 왜곡해 좁디좁은 빗물터널을 운동장 크기로 넓혔고 시우와 엘로아를 이격시켰다.

그런 복잡한 작업에 비하면 ‘발출 되었던 창을 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린다’ 수준의 기능은 너무도 손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우는 자신을 향해 빛나는 창끝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충분할 정도의 거리를 벌리고 성가신 추격자를 요격하기 위해 검은 꽃을 피운 흑기사.

흑기사는 시우보다 좌표이동식에 능하며, 따라서 기동력도 뛰어나다.

애초에 한 번 거리를 준 이상 시우가 흑기사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태 투창을 피해낸 이후 흑기사를 이긴 적이 없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복부에 상처를 입고만 지금 전과 같은 기민한 회피는 이제 불가능하다.

2분의 1의 도박을 걸 수 없는 지금 남은 수단은 정면돌파뿐.

붉은가지에 왜곡장이 폭주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빠르게 줄어드는 초읽기.

전투의 종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은 정교한 학문이다.

언뜻 기적의 행사로만 보이는 갖은 마법들이 얼마나 정교한 계산의 반석 위에 서 있는지.

안정된 마법을 위해 얼마간의 시행착오가 필요한지 시우는 알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또 하나의 도박에 불과했다.

즉흥곡이나 다름없는 마법의 행사.

즉석에서 떠올린 새로운 마법이 먼저냐, 그게 아니라면 붉은가지에 의해 이번에야말로 심장을 꿰뚫리는 것이 먼저냐.

시우는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무수히 들여다보았던 붉은가지의 특성을, 가능성을, 한계를 모조리 뒤적이며 검토한다.

여태 시우가 끼적였던 방대한 양의 종잇장이 정신없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떠올려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좌표이동식, 차원이동식, 처녀의 베틀, 원소의 강화, 그림자의 법칙, 만병지왕의 계약, 역장 마법, 마해의 파도, 노래하는 마법, 그리고 붉은가지의 왜곡.

주어진 패는 많다.

요는 이것 중 어떤 것이 가장 높은 족보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문제다.

오버클록 한 채 가속하는 사고 속 깨질듯한 두통이 머리를 들쑤셨다.

“아.”

야트막한 한숨이 새어나오며 눈이 떠졌다.

가까스로 찾아냈다.

패배에 가까운 전투를 뒤집을 비장의 한 수를.

다만 부족한 것은 시간과 확신이다.

찰나의 영감이 휘발해버리기 전까지 마법을 그려낼 수 있을지.

설령 실수 없이 그려냈다 한들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한들 예상대로의 현상이 일어날지.

모든 것이 미지수다.

시우의 등 뒤로 떠오른 금빛의 프랙탈.

그 용도는 소환.

소환하려 하는 대상은 게헨나 제머나이 저택 연구실에 보관된 붉은가지.

몇 번이고 들렀던 장소이고, 한때는 살다시피 했던 공간이기에 그 좌표는 분명히 기억한다.

“피어라!”

그럼에도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마법이다.

이제껏 좌표이동식만을 사용했던 시우가 갑작스레 연구를 중단한 차원이동식을 활용, 붉은가지라는 까다로운 예장을 시련의 공간에 소환하려는 것이니.

그러나 여기엔 이미 붉은가지가 있다.

비록 꿈의 요람이 덧그려낸 이미테이션에 불과하지만 ‘왜곡’을 발휘할 수 있는 창이 존재한다.

그것을 매개로 부족한 식의 중간을 메운다.

완벽하지 않은 어정쩡한 마법식은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마력과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했다.

단순히 위기감으로 따지자면 거친 노면을 미친 듯이 달리는 바이크 위에 매달려 있는 느낌.

이 정도로 몰려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시도하지 않았을 미친 짓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아주 작은 위화감이 들었을 뿐이다.

들고 있던 창의 표면이 바스러졌다.

겹겹이 껍질을 벗어낸 이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버드나무의 잎새처럼 생긴 창날과 이음매 없이 전체가 붉은빛으로 빛나는 창대.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는 양 부름에 응답한 ‘진짜’ 붉은가지.

과연 ‘꿈의 요람’이 한 사람의 마녀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붉은가지의 모든 성능을 구현해 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안에서 여태 흑기사와 시우가 휘두르던 물건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한정된 모조품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겉모습은 다름없을 지라도 손에 쥐는 것만으로 부담이 느껴지는 왜곡장은, 그저 흉내 냈을 뿐인 시련 속의 가짜와는 격을 달리한다.

저 멀리 번쩍이는 붉은빛이 보였다.

시우가 새로운 마법을 준비한 사이 벌써 창이 쏘아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예상이 맞아떨어졌길 바라는 것뿐.

“피어라!”

-우우웅!

시우는 모든 마력을 붉은가지에 불어넣었다.

게걸스럽게 모든 마력을 먹어치운 붉은가지는 흉포하다는 단어만으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거친 결계를 사방에 뻗었다.

찰나의 인식 속 눈도 깜빡이지 않았음에도 어느덧 이마에 다다른 투창이.

-퍼석!

투구를 관통하고 살갗을 긁어내자마자 먼지처럼 부서진다.

모조품의 힘은 진품의 힘을 넘어설 수 없었다.

이 공간에서 유일한 붉은가지는 이제 시우의 손에 들린 것 뿐이다.

“……!”

저 멀리 크게 당황한 듯한 흑기사가 보인다.

흑기사의 전투 방식은 모든 확률을 계산하고 불확실한 변수를 차단하는 슈퍼컴퓨터에 가깝다.

그렇기에 더욱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변수에 대해서는 대비할 수 없다.

상정 외의 사태에 뒤늦게 몸을 빼려는 흑기사이지만, 이번 만큼은 시우가 더 빨랐다.

몸과 일체 되어 뻗은 창날이 흑기사의 심장을 깊숙하게 헤집었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