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
1.
“그러면….”
애초에 얼굴을 맞대고 오손도손 이야기할 관계는 아니다.
따라서 곧장 본론을 꺼내려 했다.
그러니까, 좀 전의 취조를 이어서 하려 했단 의미다.
“잠깐만.”
도로시는 시가를 도로 입에 물며 말을 끊었다.
요염하게 흩어지는 연기 속 질린듯한 웃음이 옅게 고개를 내민다.
“아까부터 계속 질문만 하는데, 서비스 타임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하거든.”
“그런가요? 전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짧은 관찰로나마 그녀가 뻔히 보이는 사탕발림과 내숭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님도 알겠다.
악감정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으나 의구심을 덮어 줄 가식이 사라지자 자연스레 말투는 퉁명스러워졌다.
“지금부터는 술자리 게임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 서로 하나씩 묻고, 그에 대해 하나씩 진실을 답해주는 거지.”
“그렇다면…. 마녀명을 걸죠.”
마녀란 자존심이 강한 족속이다.
마녀명을 거는 건 자신의 명예만이 아닌 선대와 그 선대의 명예까지도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음을 의미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걸 가볍게 여기는 마녀는 본 적 없고, 어차피 마녀명도 없는 처지이기에 치트키를 내세웠다.
도로시는 살짝 놀란 듯이 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다시 나른한 눈매가 되었다.
“그런 거야 얼마든지 걸 수 있지만~ 추방자나 공적을 상대로 마녀명을 건다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야.”
“네?”
“게헨나의 마녀들은 귀족의 명예니~ 가문의 위신이니~ 그런 것들에 집착하지?”
“그렇죠.”
적어도 시우가 아는 마녀들은 죄다 그랬다.
“긍지 높고 고고한 추방자도 존재한다지만, 아닌 예도 있으니까~ 그깟 이름 따위 100번쯤 버려도 좋을 마녀도 많을걸?”
“도로시 님도 어느 쪽이신가요?”
“나 역시도 가치는 이름에 담기는 게 아니라고 믿는 편이라. 벌써 5번은 사하퀴엘 네 글자를 더럽혔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처음으로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말하는 도로시에겐 ‘사회의 규칙 따위는 전부 무시하는 나’에 취한 자아도취적 모습이나, 오직 실리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멋모르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조언하듯이 담담하게 읊조렸을 뿐이다.
심지어 그녀를 의심하는 시우 앞에서, 속이고자 했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이제껏 알던 ‘공적’의 구성요소의 여집합이 자꾸만 도로시로부터 드러나는 것을 느낀다.
심지어 만약 시우의 의심과 의혹이 무고하다면 기분 나쁠 법한 대우에도 그녀는 여태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새삼 ‘공적’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걸 느꼈다.
이전까지 나눴던 대화라면 죽이네 마네, 살리네 마네 하는 살벌한 대사뿐이었으니.
물론 이 모든 것이 기만일 수 있다는 걸 잊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자~ 서로 거짓말하지 않기를 약속하는 거지.”
“…뭡니까 그건.”
대안을 제시하는 듯했기에 당연히 마법의 개입을 예상했던 시우.
허나 도로시가 내놓은 대책은 너무도 허술한, 다섯 살배기 아이들도 의심할만한 규칙이었다.
“못 믿겠어? 걱정하지 마~ 나는 어지간한 거짓말을 꿰뚫어보거든. 너는 거짓말을 굉장히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그런 편리한 능력 없습니다만….”
“그래? 그러며언~ 별수 없네. 여기 볼래?”
그녀는 방금까지 술에 타 마시던 붉은 피를 빈 잔에 몇 방울 툭툭 떨어뜨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피는 일반적인 마녀의 피가 아니야. 온갖 저주와 술식으로 점철된 극독, 마법적인 대항책이 없는 인간은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바로 죽어.”
“대체 그런 걸 왜 마시는 거죠?”
딴지를 무시하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도로시.
“이 피에는 또 다른 특별한 능력이 숨겨져 있어. 바로 진실을 판가름하는 능력이지. 이걸 손등에 바른 채 거짓말을 한다면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죽게 돼.”
순간 혹할 뻔했지만 빙글빙글 웃고 있는 도로시의 표정을 보자 금방 진실이 보인다.
분명 저 피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마력과 형체를 알 수 없이 뒤섞인 저주의 흔적이 관측되지만 도로시가 말한 대로의 편리한 기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있다 하더라도 제약이 걸린 자백 마법은 상당히 정교한지라 상당 수준의 정제가 필요할 테지.
손등에 바른 것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거짓말이죠?”
“너도 잘하네~ 거짓말 판별. 잠깐 정도는 속았지만.”
“별의별 마법이 있어야죠.”
결국 그녀의 놀림에 놀아났을 뿐이다.
이 마녀, 단언컨대 지금껏 만나 본 마녀 중에 가장 마이페이스였다.
도로시는 몸을 바로 세우며 무거워 보이는 가슴을 출렁였다.
“아무튼, 내가 먼저 질문하면 되나?”
“그러시죠.”
이제껏 그녀 말마따나 수사관처럼 닦달했었기에 첫수는 양보하기로 했다.
“여왕님이랑은 연인 관계니?”
첫 질문부터 대답하기 턱 막히는 그런 질문이었다.
여기서 똑 부러지게 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경솔하게 답하기엔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는 아주 잠깐의 망설임에 도로시는 여태까지 중에 가장 크게 눈을 뜨면 경악한다.
“여기서 머뭇거렸다는 건….”
“…….”
“애인이 하나가 아닌 거구나?”
순식간에 거기까지 읽어내는 것을 보며 모르는 사이 마법이 조화를 부린 건 아닌지를 의심하게 한다.
“이건~ 좀 못마땅한걸? 하필이면 공주님의 첫 남자가 이런 못된 카사노바일 줄이야~”
순수하게 궁금해지고 말았기에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안 거죠?”
“뭐가?”
“저는 아주 잠깐 대답을 못했을 뿐이잖아요.”
여기에 르뤼에 본인이 있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찰나의 망설임이었다.
도로시는 손톱 끝을 고르며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연인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르뤼에가 있는 침실 쪽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눈동자를 돌렸지. 그 순간 다른 여자 혹은 여자들을 떠올렸다는 건데, 네가 여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이득을 챙길 만큼 뻔뻔할 것 같지는 않았어. 아직 제대로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거겠지?”
과연, 무사태평해 보이는 인물이 겉보기와는 달리 능구렁이를 열 마리 쯤은 키우고 있는 경험 많은 마녀다.
겨우 그 정도의 정보에 연륜과 직감을 더해 순식간에 간파해낸 것이다.
굴욕감보다는 시원시원한 추리에 감탄이 먼저 나왔다.
“…좋습니다. 이제 제가 질문할 차례죠?”
“아니? 어떻게 알았냐는 대한 질문에 답했주었으니 다시 내 차례. 여기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 된 거야? 남태평양 한가운데 잠수함은 티켓을 끊는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
이런 잡다한 이야기라면 괜찮을 것 같아 대충 말해 주었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간추려 이야기했으나 도로시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듯 귀를 기울였다.
“꽤~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구나?”
“어찌하다 보니까요. 그럼 이제 제 차례인데….”
어지간한 궁금증은 전부 취조로 확인한바 이번에는 조금 사적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로시 개인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어쩌다 공적이 되신 거죠?”
“그건~ 이미 말했잖아. 계승 받았을 때부터 공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고.”
“선대의 이야기를 묻는 겁니다.”
어쩌면 답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내 스승은 견습마녀를 열 명 이상 죽였어. 게헨나가 생기고 난 뒤에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그 짓거리를 하다가 마녀들의 눈 밖에 났어.”
“그렇다면….”
“난 견습마녀는 죽인 적도 노린 적도 없어. 멋모르고 덤벼드는 마녀 열둘 정도 죽였나?”
‘도로시 님의 경우는 어떠냐’라고 물으려 했다.
무슨 질문을 던질지 다 알고 있다는 양 선수를 친 도로시는 어떤 지탄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 느긋하게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계승을 받고 난 이후 3년간 내 낙인을 강탈하러 온 추방자만 둘, 게헨나 출신이 하나. 같은 공적만 셋이었어.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지. 정작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스승이 공적이었다는 이유로 비쩍 곯은 들개처럼 살아가야 했으니.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내 앞에 적으로 나타난 마녀를 죽였지. 때로는 친구도 죽였고. 때로는 사업을 방해해서 죽였어. 필요한 건 손에 넣었고, 필요 없는 건 주머니에 있는 것이라도 버렸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꺼내놓는 그녀는 전혀 감정에 변화가 없었다.
꽤 지독한 이야기라고 생각함에도 ‘그린란드 상어는 눈에 기생충이 살아서 시력이 없대’라는 아무래도 좋을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평이한 톤이었을 뿐이다.
도로시는 제 말이 너무 길어졌다 생각했는지 “하여간, 술만 마시면.”이라고 작게 툴툴거리고는 애교 없는 웃음을 지었다.
“너의 시점으로 본다면 공적은 전부 지독한 악당이겠지.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난 이렇게 사는 방법 외엔 몰라. 다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개탄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아. 어쨌거나 이게~ 내 삶인걸.”
그녀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술을 홀짝이는 그녀를 보며 많은 상념이 꿈틀거렸다.
단순히 객관적인 잣대만을 들여대자면 도로시는 악인이다.
당장 그녀의 사업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무기상이었으며, 공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무수히 많은 마녀를 죽였다고 제 입으로 자백했다.
그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나 자책도 지니지 않으며, 그것을 개선하려 하는 의지 또한 없다.
그러나 개인 대 개인으로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니 혼란스러워졌다.
적어도 지금까지, 사람 대 사람으로 보자면 그녀는 조금 유별난 면이 있었지만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전부 믿을 순 없지만, 만약 자신이 공적의 낙인을 물려받은 마녀였다면.
그녀처럼 죽이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는 야생과 같은 환경에 던져졌다면.
과연 얼마나 더 올바른 선택을 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내 차례지?”
“그렇습니다.”
차라리 아예 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었다면 걸쭉한 찜찜함이 묶음 상품으로 딸려올 일은 없었을 텐데.
“혹시 날 안아주지 않을래?”
“그게 질문인가요?”
“응, 네가 내키면 얼마든지 어울려주겠다는 말이야. 어차피 공주님도 자잖아?”
스르륵 흘러내리는 수녀복의 치맛자락.
길쭉한 다리와 함께 탐스러운 허벅지가 드러나고 도로시는 가슴을 강조하듯 몸을 비틀었다.
고혹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신묘한 은빛의 눈동자가 향수처럼 짙은 색기를 품고 시우에게 고정된다.
고민할 것도 없다.
“거절하겠습니다.”
“아~ 너무해. 옛날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외로워졌는데….”
“…거짓말이네요.”
뜬금없는 추파를 쳐내자 도로시는 샐쭉한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잘하네, 거짓말 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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