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
1.
스승님이나 제머나이 백작처럼 편리한 마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단순히 질문만으로 진실을 파헤칠 수 없다.
그렇다면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질문.
그것도 아주 많은 질문이다.
거짓말을 한 번 하기는 쉬워도 완벽한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
반복된 질문으로 모순점이나 답변과 답변 사이의 헐렁한 연결고리를 찾는 것으로 진실의 편린을 주울 수 있다.
“그러면…. 선대와는 300년 가까이 알고 지내셨던 거네요.”
“352년이라니까~”
“도서관의 군사교본도 직접 가져오신 거고요?”
“내 분야니까 심심해할까 봐 몇 권 줬지~ 저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지만. 들어서 알겠지만 이 잠수함도 내가 맡고 있던 재고품 중의 하나야. 어렵게 어렵게 빼돌린 물품이지.”
하지만 적어도 문답을 주고받는 동안 도로시의 발언엔 한 치의 오차나 어긋남이 없었다.
마녀의 기억력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속셈을 파헤칠 수나 있을까.
그런 회의감도 조금은 들었다.
“르뤼에에게 여왕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뭔가요?”
“너도 폐하라고 부르잖아~? 귀엽잖니. 참고로 예전에는 공주님이라고 불렀어.”
선량한 공적이라는 말의 성립 가능성 여부는 둘째치고
적어도 현재까지 도로시는 친구의 제자를 적당히 아끼는 평범한 마녀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것도 르뤼에의 왕국 컨셉에 아주 잘 어울려 줄 정도로 말이다.
“이제 질문은 끝났나~?”
“아뇨,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얼마나 이곳에서 머물 예정이시죠?”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 길어야 사나흘? 나도 내 사업이 있다고~ 탱자탱자 놀고 있을 순 없어.”
“이런 말씀 실례라고는 생각한다만….”
“실컷 실례해놓고 무슨 말이래?”
“…도로시 님의 사업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나요?”
연이은 질문 공세에 도로시는 눈동자만 올려 하늘을 쓱 보더니 얕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은 기색으로 답하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고민했다.
“선량한 수사관님에겐 미안한데~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말을 돌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이 성가신 주제를 다시는 입에 담지 못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인 듯했지만.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할 일이거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파는 건 죽음이 아니야. 철과 화약, 또는 전자기기로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하지. 누군가 사람을 향해 겨누지 않는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다를 게 없어.”
그녀가 작정하고 좋은 평가를 받고자 했다면 조금 더 뉘앙스에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조금의 가책도 없다는 듯 떳떳하게 굴었으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시우의 비위를 맞추려 들지 않았다.
시커먼 흉계를 꾸미기 위해서였다면 조금이라도 건실한 모습을 가장하지 않았을까?
불성실함과 오만함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듯하여 신뢰가 간다니.
얄궂은 이야기다.
“인간의 역사에 유혈 없던 적이 있던가? 총이 없을 땐 칼과 활로, 냉병기마저 없을 땐 돌이라도 떼어내서 무기를 만들었지. 온 세상에서 철과 화약이 사라진다 해도~ 인간은 다시 맨주먹과 돌도끼로 서로 죽일 거야.”
“…….”
“기왕 서로 죽일 거 편하고 안락하게 보내는 총과 폭탄이 낫잖아?”
실실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것을 보면 나름의 블랙조크인 듯했다.
반박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이 주제로 더 대화를 이어갈 필요는 없다.
딱히 지금 상황과 직관된 것도 아니니까.
만약 그녀가 ‘선량한’ 공적이라도 절대 친해질 순 없겠다는 사실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렇네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다소 더 본론을, 직접 꺼냈다.
“만약 르뤼에의 낙인이 도로시 님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취하실 건가요?”
도로시가 공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 선을 넘은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드는 직설적인 질문이자 이 상황에서 가장 진실을 듣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그녀가 이 무례한 질문에 화를 내며 본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그것대로 바라는 바다.
도로시의 입꼬리가 삐쭉 올라간다.
“관심 없어.”
표정을 보고 거짓인지 진심인지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때 하얀 손이 예고 없이 시우를 향해 뻗었다.
몸을 재빨리 뒤로 빼려고 했지만 도로시 쪽이 빨랐다.
아니다.
분명 이쪽이 훨씬 빨랐다.
체술과 영체 강화가 특기 중 하나인 시우가 저런 느릿한 손짓에 잡힐 리가 없음에도 그녀의 손은 확실히 닿아 있었다.
마치 현실이 비틀리는 기묘한 느낌.
이 현상은 아마도 그녀의 자성마법에 의한 것.
도로시는 태연하게 셔츠 깃 사이로 손가락을 넣더니 갈고리처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오히려 내가 관심 있는 건~ 네 쪽. 남자 마녀라니. 실물로 보니까 너무나도 구미가 돋아. 이렇게 잘생겼을 줄은~ 몰랐는걸?”
“죄송한데 전 관심 없거든요?”
“괜찮아~ 나는 까칠한 남자도 좋아해.”
하얀 손을 쳐내며 식은땀을 훔쳤다.
농담이 아니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급소를 허용해버렸다.
셔츠 깃과 목울대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도로시가 마음만 먹었다면 목숨을 취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그보다, 이제 나도 질문 좀 해도 괜찮을까~? 여러모로 성실하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뭡니까?”
지금까지 수상쩍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만큼 생사람 잡고 있을 줄도 모른다는 염려가 조금은 들었기에 의무감 비스름한 게 생겼다.
물론 모든 질문에 다 답해주겠다는 건 아니다.
“널 연구하게 해줄래?”
“거절하겠습니다. 1,000번쯤 받았던 제안이네요.”
“그렇지? 남자 마녀라면 다들 신기해할 테니까.”
도로시는 시우 쪽으로 빙글 몸을 돌린 채 다리를 꼬았다.
호리병을 연상시키는 관능적인 라인과 함께 하얀 허벅지가 흘러내리는 치맛자락 사이에서 빛깔을 뽐낸다.
뭔 놈의 수녀복에 옆트임이 있어?
갑작스러운 노출에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질문인데. 내 몸에서 어디가 제~일 시선을 잡아끄는지 말해줘.”
그 말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도로시의 몸을 훑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반응해 버린 것이다.
테이블에 얹어놓고 있던 가슴은 정면에서 보니 소피아 수석 교수보다도 커보인다.
겹쳐진 허벅지살은 말랑하다 못해 손에 감겨들 것처럼 쫀득거려 보였고, 의자를 삐져나온 골반과 다르게 잘록한 허리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잿빛의 머리칼과 서늘한 은색의 눈동자.
살짝 처진 눈꼬리임에도 묘하게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아름답다.
모성의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 행위 자체가 그녀가 노리던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곧장 눈을 뗐지만 이미 늦었다.
도로시의 입가에는 빙글거리는 웃음이 새겨져 있었으니.
“잘 감상했으면 평가도 부탁할게~”
“가슴이요. 존나게 크시네요.”
지극히 못마땅한 상황이었기에 뱉듯이 말하자 도로시는 한결 짙은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예쁘고 가슴 큰 여자가 좋다지만 공적의 유혹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슬슬 대화의 영양가가 없어지던 시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르뤼에가 총총 걸어들어왔다.
취조에 가까운 대화를 멈춰야 할 시간이었다.
“이야기들 잘 나누었느냐?”
“네~ 여왕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일단은 제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잘됐도다! 잘됐도다! 어떠냐 두 사람! 짐의 말이 맞지 않더냐!”
“네, 폐하의 말씀대로 유머러스하신 분이네요.”
“맞아요~ 정말 잘생기셨네요.”
스스럼없이 다가오던 르뤼에가 도로시의 대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자세 그대로 유심히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잘생겨?”
“네~ 아주 미남이셔요.”
곧장 못마땅해지는 르뤼에.
시우야 도로시가 르뤼에를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깨달았지만, 르뤼에는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도로시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훤히 드러난 허벅지를 발견했다.
“어딜! 어딜 보고 있던 게냐!”
“악! 악! 저한테 왜 그러세요!”
득달같이 달려들어 시우의 옆구리를 꼬집는 르뤼에.
아까 맞았던 뺨보다 이게 훨씬 아팠다.
“도로시! 그 음란한 복장은 어떻게 된 것이냐!”
“여왕님~ 원래 제 수녀복에는 옆트임이 있었는데요?”
“그럼 다리를 꼬지 말았어야 하니라! 아니면 지금 누켈라비 왕국의 국서를 꼬시기라도 할 셈이냐? 당장 그만두어라! 안 그래도 숙청해야 할 불여시들이 많다!”
도로시가 나쁜 마녀인지 좋은 마녀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 대 개인으로는 지극히 상성이 좋지 않다는 것만은 알겠다.
돈을 주고 친하게 지내라도 그러고 싶지 않은 여자다.
그러나 르뤼에는 펄펄 열을 내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친구와 친구가 사이좋아지니 세 제곱쯤 행복해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일단은 르뤼에의 장단에 맞춰줘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공적이니까 도로시를 멀리해 주세요!’라고 부탁해도 먹히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오히려 근거 없는 직언에 잔뜩 뿔이 난 르뤼에가 시우를 멀리하고 도로시와 단둘이서만 지내는 경우가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일단 두 사람을 눈에 닿는 곳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도로시가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도 르뤼에는 23 위계, 도로시는 22 위계.
위계 차이에 지리적인 이점까지 더해진다면 아무리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 르뤼에라도 호락호락하게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르뤼에의 방심을 틈탄 일격만 어찌저찌 방어해 준다면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나저나 도로시, 언제 돌아갈 생각이느냐?”
“어머머, 벌써 보낼 생각부터 하시나요~? 섭섭해요~”
“아니니라! 가능한 오래 남아주었으면 해서 그렇다!”
‘그건 좀….’ 이라고 시우가 끼어들 틈새도 없었다.
아까 문답에서 주고받았던 똑같은 답변을 했으니 말이다.
“저도 몹시 함께 지내고 싶지만~ 조만간 전쟁이 터질 낌새가 보여서요~ 일주일 내외로 지내게 될 것 같아요.”
“그런 것이냐? 아쉽도다. 이제 포커도 셋이서 칠 수 있게 되었거늘….”
벌써 헤어질 때가 된 것처럼 시무룩해하는 르뤼에.
그런 그녀를 보던 도로시가 바 한구석에 쌓아두었던 캐리어 중 하나를 염동으로 잡아당겼다.
“그나저나 여왕님, 선물이 있답니다~ 바로바로 밀리터리 매거진 초판이에요! 총 10년 치!”
“끼야아아아악! 짐의 것이다! 짐의 것이니라!”
맨바닥에서 무릎으로 슬라이딩하며 캐리어를 마구마구 파헤치는 르뤼에.
그 모습이 꼭 땅을 파며 흙더미를 휘날리는 두더지 같다.
“…….”
새삼 다짐하게 되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도로시와 르뤼에 그리고 시우의 기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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