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64화 (564/917)

#564

1.

르뤼에는 시우를 질질 끌다시피 몰트바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 기세가 자못 거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심문하는 듯한 말투며, 눈빛이며.

시우의 언행은 도저히 손님에게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시련 관련 문제로 마음 상해있던 르뤼에에게 시우의 태도는 기름으로 젖은 장작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벗어난 르뤼에는 즉각 시우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 무엇이 불만이냐? 어째서 예절교육 못 받은 아이처럼 구느냐?”

따발총처럼 우다다다 불만을 쏟아내는 르뤼에.

까치발을 들어 시우의 볼따구니를 쭉쭉 잡아당긴다.

이마저도 참고, 참고 또 참은 끝에 가볍게 넘어가기 위한 체벌임은 그는 알고나 있을까?

여기서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죄송하다 사과한다면, 일련의 무례를 술자리 농으로 털어 넘길 예정이었다.

“…….”

그러나 모처럼 르뤼에가 사과할 기회를 주고, 해명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는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르뤼에는 두 가지 부분에서 분노를 느꼈다.

“그대는 짐의 국서이자 친애하는 친구니라. 실로 부끄럽도다. 귀족다운 예의범절까지는 바라지 않겠노라. 허나, 기본적인 건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가장 겉으로 드러난 분노의 원인이다.

아무리 시우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해도 시우는 누켈라비 왕국의 국서이고 르뤼에의 애인이다.

벌써 은근히 도로시에게 자랑해놓았다.

남친을 자랑하는 여자의 마음이 그렇듯 르뤼에의 둘뿐인 친구 도로시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정말정말 화가 난다면 도리어 말투가 침착해진다는 것을 르뤼에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조금도 가슴이 가라앉지 않는다.

위와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르뤼에가 정말로 기분이 언짢은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선대 누켈라비는 추방자였다.

게헨나의 겁쟁이들이 저 좋을 대로 만들어낸 규칙 속에서 선대는 공적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철저히 배척당했다.

더욱이 게헨나의 수장인 케테르 공작에게 공격받아 커다란 부상을 입었다.

진조의 마녀의 도움으로 목숨은 부지했으나 르뤼에는 싸움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스승을 보며 자랐다.

고고한 바다 어미이자 자상한 스승이 밤마다 피를 토하며 식은땀을 비처럼 흘려대던 모습은 르뤼에에게 게헨나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었다.

공적의 악행이 간악하다 한들 르뤼에가 심리적으로 더욱 가까이 여기는 것은 도리어 추방자와 공적 쪽이다.

적어도 그들은 스승에게 아무런 차별도, 피해도 끼치지 않았으니까.

“이유를 말해보거라.”

한참을 망설이던 시우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공적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답변은 예상대로 르뤼에의 은밀한 분노와 맞닿아 있었다.

시우가 보이는 태도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고 있다.

그는 게헨나 출신이면서 동시에 게헨나의 마녀를 연인으로 두고 있다.

여태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도로시를 전면부정하는 그의 모습은, 스승을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던 위선자들과 겹쳐 보였다.

“도로시는 짐의 친우일 뿐 아니라 선대와도 막역한 사이였다. 그럼에도 공적이기에 배척한다는 말을 올리려 하느냐?”

“예.”

-찰싹!

매마른 소리와 함께 매섭게 휘둘러진 르뤼에의 손바닥이 시우의 뺨을 쳤다.

예상보다 아픈 손바닥과 커다란 소리가 나는 바람에 제풀에 놀란 르뤼에.

살짝 돌아간 시우의 고개를 보니 마음이 욱신거리면서 콧잔등이 찡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에 대한 불만과 서러움이 복받친다.

공적이 얼마나 나쁜 것이며, 추방자는 또 얼마나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서 게헨나로 돌아가려는 듯한 그의 행보와 도로시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불현듯 불안감이 생겨났다.

시우가 어떤 시선으로 르뤼에를 보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폐하, 저는 지금까지 공적을 세 명 만나봤습니다.”

거의 울먹이려던 르뤼에 앞에 시우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르뤼에는 고개를 들어 시우를 보았다.

“한 명을 제외하면 정말 정신이 이상한 년들이었어요. 죽을 뻔했던 건 당연하고 험한 꼴도 많이 당했어요.”

“…듣기 싫도다.”

기어이 또르륵 흐르는 르뤼에의 눈물.

사실 시우는 르뤼에가 왜 저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지 알지 못했다.

르뤼에가 게헨나 마녀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다는 건 숙지하고 있었지만 상세한 사유는 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서러운 표정으로 눈물까지 흐르는 것을 보면 가벼운 사정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폐하의 지인이라고 해도 공적이라는 말을 들은 이상 신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살짝 팔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감싸며 안기는 르뤼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웅얼거리듯 말하기 시작한다.

“도로시는 나쁜 마녀가 아니니라. 짐 역시 친구가 된 그대를 조건 없이 믿어주지 않았느냐.”

“네, 그 부분은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도 도로시를 믿어주면 안 되겠느냐? 계승을 받은 이후에는 만나지 못했으나 견습마녀 때부터 함께 놀던 사이이니라.”

그녀의 하소연을 들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그것만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는지 숨이 골라진 르뤼에.

“폐하께서 왜 섭섭해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의문점이 조금 있어서요. 그분과 단둘이 대화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말을 하다 보면 오해가 풀릴 수도 있고, 어쩌면 원만하게 지낼 수도 있잖아요.”

멍하게 시우를 바라보던 르뤼에의 눈이 점점 커지며 화색이 돌았다.

설마 그렇게 말해 주리라고는 예상도 못한 눈치다.

“굳이 단 둘이여야 할 필요가 있느냐? 아니다, 그대의 뜻대로 하거라.”

의아해하다가도 펄쩍 뛰며 좋아하는 르뤼에.

도로시는 공적이라는 것만으로 전혀 신용할 수 없는 상대지만, 르뤼에가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대화 정도는 괜찮겠거니 싶었다.

“그럼, 30분 정도만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잘 의외로 유머러스한 친구이니 이 기회에 친해지도록 하거라.”

“들어가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 때 갑작스레 잡아 당겨지는 옷자락.

“시우.”

“네, 폐하.”

“뺨을 때린 것은 미안하도다. 그대가 짐의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듯하여 발끈했느니라. 앞으론 결코 손찌검하지 않겠노라.”

우물쭈물거리며 사과하는 르뤼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요. 저도 엉덩이 많이 때리잖아요.”

“무, 무엄하다!”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지려 하는 르뤼에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져주곤 몰트 바로 돌아왔다.

2.

자, 그럼.

더럽게 거북한 상대와 독대할 시간이다.

르뤼에가 워낙에 속상해했기에 적당히 넘겼지만, 여전히 도로시에 대해 일말의 신뢰도 없었다.

원체 순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잘 믿는 르뤼에다.

그녀의 말마따나 별다른 접점도 없는 시우에게 이것저것 퍼주지 않았던가?

따라서 르뤼에를 위해서라도 부족한 몫의 경계심을 대신 지녀야 한다.

“혼자 오셨네요? 여왕님은 어디 가셨나요?”

몰트 바에 팔꿈치를 기댄 채 휙휙 잔을 돌리던 도로시.

나른하게 늘어진 눈꼬리 틈새로 창백한 은안이 시우 쪽을 향했다.

비앙카와 에아가 상당히 더러워 보이는 눈매를 하던 것에 비해 유들유들한면서도 세련된 인상이다.

수녀복을 입었다는 것을 빼면 어디 할리우드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연기는 발연기인데 워낙 예뻐서 이 영화 저 영화에 얼굴마담으로 출현하는 배우쯤 되겠지.

게다가 저 펑퍼짐한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육감적인 몸매라니.

반쯤 테이블에 올려놓다시피 한 가슴은 소피아에게도 뒤지지 않는 크기였다.

“여왕님은 영화 보러 가셨어요. 잠깐 이야기하게 자리 비워달라고 부탁했고요.”

의자를 끌어 옆쪽에 놓고 털썩 앉았다.

그녀는 의외라는 듯 의아한 미소를 짓더니 턱을 괴었다.

이것도 미드에서 많이 보던 앵글과 자세다.

“날 담배회사 회장만큼~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요?”

“친해지라는 명령을 받아서요.”

그 자세 그대로 온더록스 잔을 손끝으로 톡 밀자 기다란 바 테이블을 따라 미끄러지며 시우의 앞으로 배달되었다.

“아주 치명적인 맹독을 넣었어~”

제 딴에는 농담이라고 던지는 듯한데 영 꺼림칙했다.

“갑자기 말 편하게 하시네.”

“원래~ 난 존댓말 따위는 하지 않는 걸. 친해지려면 서로 말 놓는 게 어때?”

“됐습니다.”

정말 독을 넣었을 것 같진 않으니 입술을 축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폐하와는 무슨 관계시죠?”

“재미 없긴~ 바로 취조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두죠.”

“친구의 딸이지. 예전에 잘 놀아줬기도~ 하고.”

확실히 르뤼에의 반응만 보아서는 정말 잘 대해줬던 듯하다.

“여기는 어떻게 온 겁니까? 폐하는 계승 이후로 꽁꽁 숨어지내시던 것 같던데.”

선대 누켈라비는 르뤼에를 위해 많은 것을 안배해두었다.

시련도 시련이지만 기존의 공방, 그러니까 그 커다란 여객선의 위치를 옮긴 뒤 마법으로 은폐하고 르뤼에가 시련을 완수하기 전까지 외부와 접촉하지 않도록 행동지침을 내렸던 것이다.

“잠시 크루저 위에서 유유자적~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아쿨라의 승조원이 보이지 뭐야?”

승조원?

얼마 전 르뤼에는 시우의 메시지를 현세에 보내기 위해 갑판장을 가까운 해변으로 보냈었다.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그때 조우한 것이라면 말이 되긴 된다.

“승조원을 쫓아 여기까지 온 건가요?”

“그 친구 한동안~ 연락이 안 됐었거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싶었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말도 없이 계승해버렸을 줄은 몰랐네.”

“별로 믿음을 사지 못했나 봐요?”

내심 납득하면서도 툭 던진 말은 르뤼에가 옆에서 듣고 있었다면 꾸지람을 들을만한 도발이었다.

‘계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르뤼에를 노릴 것이 뻔하니 알려주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라는 일종의 빈정거림이었으니 말이다.

도로시는 입가를 가리며 깔깔 웃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내 사악한 본성을~ 까발릴 수 있겠어?”

태연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반응.

한 점 감출 것이 없다는 태연자약한 태도에 머쓱해 질정도였다.

“게헨나 샌님들은 다르겠지만~ 현세에서 계승한 마녀를 숨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샬리트에게 딱히 섭섭함을 느끼지도 않고~”

“…….”

“그래도 가뜩이나 없는 친구가 하나 줄었네.”

도로시는 쓸쓸한 옆모습을 보이며 술잔을 채웠다.

“건배나 할까? 사명을 다하고 떠나간 친우를 위하여.”

머뭇거리던 시우였으나 그것까지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건배가 뭐 어려운 거라고.

가볍게 잔을 맞대자 도로시는 피식 웃으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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