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
1.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대략 8시간.
질내사정 횟수로 따진다면 5회.
오르가즘 횟수는 세다가 잊어버릴 만큼 하룻밤 내내 끈적한 섹스를 나눴다.
기실 중간에 그만둘 기회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끝나고 나면 항상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하, 한 번만 더…. 할 수 있느냐?’
‘조금 더…. 부탁하니라….’
‘응…. 벌써…. 끝이냐? 아쉽진 않느냐?’
요컨대 르뤼에 쪽에서 열심히 달라붙은 결과라는 의미다.
두 번째 섹스부터 신시우는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럽고 자상했다.
힘들어하면 기다려주었고, 안아 달라고 팔을 벌리면 품어주었고, 키스가 하고 싶어지면 여지없이 끈적한 키스를 퍼부어 주었다.
그것은 이제껏 르뤼에가 알아왔던 섹스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기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 되었다.
뭐랄까.
이전까지 섹스가 쾌락을 강제로 주입 당하는, 혹은 물건처럼 쓰이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것은 진짜로 사랑받으며 함께 아름다운 연주를 해나가는 듯한 행복한 쾌감이었다.
그 결과 섹스가 끝났음에도 몸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다.
아직도 그의 물건이 안에 있는 것처럼 아랫배가 저릿거리고, 엉덩이로 깔고 앉은 침대가 구름이 된 것처럼 푹신거린다.
머리 안에선 아름다운 장미 수백만 송이가 일제히 만개하는 듯한 향긋함마저 느껴졌다.
“드세요.”
“어? 응? 고맙도다.”
뇌내의 행복 스위치를 계속계속 자극 받았기 때문일까?
멍하니 있던 르뤼에의 앞에 머그잔이 내밀어 졌다.
시우가 물을 가져온 것이다.
르뤼에는 그것을 받아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나니 새삼 알몸인 것이 부끄러워 이불을 슬쩍 가슴 위로 끌어올린다.
“잘하는도다.”
“예?”
“믿을 수 없이 능숙했느니라. 이게 진정한 성교인 것이냐.”
입에 담자 더욱 부끄러워진 르뤼에.
아까부터 자꾸 기분이 이상했다.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찾은 것 같기도 하고, 그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다 잃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런 말 따위 낯뜨거워서라도 바로 앞에선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대의 말이 정말 진실이구나.”
“예?”
“체취를 맡으면 눈이 뒤집힌다는 것 말이다. 짐은 영락없이 거짓인 줄 알았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시우의 행동을 두 번 관찰하게 되니 아무리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르뤼에라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묘한 메커니즘으로 성욕을 느낀다는 것을 말이다.
“자리를 옮겨서 대화하도록 하겠도다. 아침 식사가 준비됐을 것이니 따라오거라.”
르뤼에는 침대 위에서 더 뒹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간밤에 수많은 절정을 맞이한 까닭에 여전히 힘이 풀려있는 다리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엇…!”
르뤼에가 휘청거리자 재빨리 다가온 시우가 지탱해주었다.
“괜찮으세요?”
“으…으으….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부축해 드릴게요.”
자상한 손길로 허리를 끌어안는 그의 손.
르뤼에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꼈다.
일전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정말 그가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남자에 빠져 해롱해롱하는 여왕 따위는 누켈라비 왕조의 수치다.
“됐느니라, 짐 혼자서도 걸을 수 있도다.”
르뤼에는 씩씩하게 앞장 서 식당으로 향했다.
“폐하 잠시만요.”
“왜 그러느냐?”
“그대로 가시려고요?”
시우의 다급한 부름에 그제야 제 몸 상태를 확인한 르뤼에.
맙소사, 취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라 미처 몰랐다.
지금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상태였던 것이다.
“꺅! 꺅!”
르뤼에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가리고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껏 실컷 그에게 알몸을 보이고, 심지어 가장 소중한 부위를 맞대기까지 했는데 고작 알몸을 보이는 것이 이토록 부끄럽다니.
“당장당장당장당장 눈을 돌려라!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
“아니….”
모순됐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 르뤼에는 시우가 건네준 가운을 걸쳤다.
재빨리 허리띠를 두르고 발걸음을 떼려는데 또다시 문제가 일어났다.
-주륵!
“웃!”
이번에는 매끈한 허벅지를 타고 흐른 허여멀건 정액이 문제였다.
너무나 많이 사정한 결과 아직도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이다.
게다가 르뤼에가 쪼그려 앉아있던 자리에 작게 고여있는 정액 웅덩이에 시선이 향한 두 사람.
“…….”
“…….”
뭔가 부끄럽다.
갑자기 미칠 듯이 부끄럽기 시작했다.
르뤼에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잔뜩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일단 이 민망함을 조금이라도 죽이려면 남탓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짐승 같은 놈! 얼마나 안에 싸댔으면 아직도 아기씨가 나오겠느냐!”
이 점에 대해선 시우도 반박의 여지가 있었다.
슬슬 끝내려고 할 때마다 달콤한 콧소리를 내며 도망치지 못하게 하던 사람이 어디 누구던가?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건 폐하의 강력한 요구로….”
“시끄럽다! 시끄럽다! 안 들린다! 아아아아!”
귀를 손바닥으로 탁탁탁 막으며 입으로 소리까지 내는 르뤼에의 모습에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진상을 지적할 시기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럼 먼저 씻을까요?”
“곤란하도다. 이대로라면 걸을 때마다 줄줄 샐 것 같으니라.”
“이렇게 하면 되죠.”
“우아!”
설명 대신 르뤼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안락한 공주님 안기 자세다. 이 자세라면 엉덩이가 위쪽을 향하는 만큼 뚝뚝 떨어지는 것도 한결 덜하리라.
단숨에 넓은 가슴팍에 폭 안긴 르뤼에.
“…….”
사실 반쯤은 장난이었던지라 격렬한 항의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조, 좋다. 이동하도록 하여라.”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던 르뤼에가 순한 양처럼 시우의 가슴에 뺨을 기댄 것이었다.
2.
장소는 욕실.
몸을 대충 물로 닦은 이후엔 르뤼에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다.
“흐음, 트리트먼트까지 구석구석 발라야 하니라.”
“네, 여기 빗으로 빗어주면 될까요?”
“그렇도다.”
매번 느끼는 것인데, 르뤼에는 머릿결이 참 좋은 편에 속한다.
체모가 건강하고 두꺼운 편인데도 어찌 이리 찰랑거리는지, 또 이렇게 숱이 많은 편인데 아래는 맨질맨질한 건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샴푸를 한 뒤 헹궈내고 트리트먼트까지 구석구석 닦아주는 중.
어차피 모발에 영양이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신시우.”
“네, 폐하.”
“아직도 연락하려는 마음이 남아있느냐?”
“네, 많이들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요.”
연락이 두절된 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애타고 있을 샤론, 쌍둥이, 아멜리아, 스승님을 생각하면 이런 속 편한 생활이 미안해 질정도다.
“하지 않으면 안되겠느냐?”
조용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렸다.
“연락하지 않고 왕국에서 영원히 짐과 단둘이 사는 것은 어떠하느냐?”
그것은 꽤 의외인 제안이었다.
“짐이 진정한 왕국만 되찾는 날 그 재보의 절반을 그대에게 하사하겠노라. 그대의 적이 있다면 짐의 적이 될 것이다. 그대에게 고난이 닥친다면 그 옆에는 항상 짐이 우뚝 설 것이니라. 또한 함께 세계를 정복하는 패도의 역사를 지켜보게 해주겠노라.”
“…….”
“그리고…. 짐과 매일매일 같이 잘 수 있게 해주겠노라. 가끔은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거부하지 않겠노라.”
조그마한 뒤통수, 촉촉하게 젖은 비단처럼 보이는 머리칼 사이로 발갛게 달아오른 귀가 보인다.
대부분 어린애 장난 같은 선에서 마무리되지만 르뤼에는 꽤 유아독존인 성격이다.
이만큼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 그녀가 여기까지 양보를 하며 부탁한다면 그건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건네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 나름의 진중한 사랑 고백이라는 말.
어쩌면 르뤼에는 만나보고, 관계를 맺은 사람이 시우 밖에 없기에 비교적 쉽게 마음이 맞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쌍둥이처럼 목숨을 구하거나, 샤론처럼 궁핍한 처지에 있던 것을 도와주거나, 스승님처럼 제자를 잃은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거나, 아멜리아처럼 어긋났던 관계를 겨우겨우 수복했다거나….
그런 장절한 이야깃거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르뤼에의 고백을 설익은 연심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었다.
따라서 시우도 입바른 말이나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답해주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짐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도?”
그제야 르뤼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못내 아쉽고, 섭섭한 기색이 가득한 짙푸른 눈동자가 시우를 올려본다.
거기에 화를 내는 기색은 없었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르뤼에라지만 또 은근히 타인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훌륭한 여왕님인 것이다.
“만약 제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폐하께선 어떤 느낌일까요?”
“…….”
“최소한의 연락만이라도 좋습니다. 절대 배신하거나, 폐하를 보고 달려들 사람들이 아니에요. 모두 좋은 마녀들입니다.”
“…….”
르뤼에는 고민이 깊은 듯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따뜻한 물을 퍼 트리트먼트를 씻기고 나서야 입을 여는 르뤼에.
“스승께서는 게헨나의 마녀를 믿지 않으셨다. 케테르 공작도, 에렐림 공작도 그를 비롯한 모든 귀족이 마도를 걷는 자의 본분을 져버린 위선자라고 하셨다. 짐 또한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하니라.”
“그건….”
“허나 짐은 게헨나의 마녀는 믿지 못해도 그대는 찰떡같이 믿노라. 승조원 하나를 가장 가까운 육지에 전보를 보내도록 하겠다. 그대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게 사진과 자필로 된 편지, 녹음테이프를 동봉하면 되겠느냐?”
정말 고마운 말이었다.
시련을 완수하지 못한 르뤼에가 외부와 커넥션이 생기는 것을 얼마나 꺼리는지는 시우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현세의 노획품이 들어오면 공중제비를 도는 르뤼에가 육지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련에 도전할 계획이다. 어서 시련을 완수하고 그대와 함께 현세로 나갈 것이니라. 그동안 짐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면 저도 좋지요.”
만일 르뤼에를 혼자 두고 휙 떠나게 된다면 마음이 불편했을 와중 르뤼에의 제안은 시우에게도 반가운 것이었다.
공적은 낙인이 세습되어도 연좌제가 적용되지만, 다행히 샬리트 누켈라비는 옛마녀, ‘추방된 적 없는 추방자’이다.
어떻게 잘 부탁한다면 함께 게헨나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시련을 완수한 23 위계 대마녀를 해할 수 있는 마녀는 몇 없을 것이고 말이다.
더불어 시우 역시 시련을 통해 파워업을 확실히 할 수 있으니.
현재로선 두 사람이 납득 가능한 가장 상책이라 볼 수 있겠다.
“매일매일 시련을 할 것이다. 매일 매일, 알겠느냐?”
갑자기 사족을 붙이는 르뤼에.
“매일매일 시련을 도전하려면 마력이 부족할 텐데…. 그 문제를 어찌하면 좋겠는지 모르겠도다.”
난데 없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아마 르뤼에는 마력 충전을 구실로 삼고 싶은 모양이다.
“하아…. 고민되느니라. 마력만 충전할 방법이 있으면 만사가 형통할 터인데…. 흐음….”
방금 전까지 충전 받던 것을 잊었을 리 없음에도 의뭉을 떠는 르뤼에.
그 모습이 귀여워 시우도 같이 시치미를 떼주었다.
“글쎄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르뤼에는 배신감을 느낀 표정으로 휙 시우를 돌아보았다.
할 말 많다는 듯 꿈질거리는 입술이 불호령을 쏟아내기 전에 시우는 르뤼에의 머리에 온수 한 바가지를 더 끼얹어 남은 거품을 씻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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