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
1.
“…….”
“…….”
피차 버거운 침묵이 흘렀다.
르뤼에의 성토를 귀담아 들은 시우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폐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오해? 또 그놈의 오해?”
르뤼에는 버럭 소리쳤다.
패배도 시인했다. 구워먹든 튀겨먹든 알아서 하라고 도마 위에 올라간 수준이다.
여기까지 와서 더 뭘 원한단 말인가?
“도대체 짐에게 바라는 게 얼마나 천박한 수위이길래 끝까지 짐을 능멸하려 드는 것이냐! 졌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니면 아예 홀딱 벗고 엉덩이라도 흔들면서 아양이라도 떨어야 만족하겠느냐?”
부끄럽다 못해 수치사 할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변한 르뤼에.
애초에 밖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협박거리로 삼은 것도 괘씸해 죽겠는데 이 지경이 되어서도 발뺌을 하니 참기 힘들 정도의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까, 제가 뭘 이겼다고 말씀하시는지부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기어이, 르뤼에의 입에서 완벽한 굴복 선언을 듣고 싶은 모양이다.
입술을 꾹 깨물며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했다.
“주도권 싸움말고 달리 있겠느냐!”
“주도권 싸움이요? 거기서 이겼다고요? 제가요?”
“그러하다!”
“무슨 주도권 싸움이요?”
시우의 반문에 멈칫한 르뤼에.
이쯤 되자 아무리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르뤼에도 모종의 위화감을 감지했다.
끔뻑이는 그의 눈이 기만이 아니라 진실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대는 내가 먼저 유혹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않느냐. 그래서 짐이 먼저 유혹해 주었다.”
“네?”
“그대가 짐을 혼자 방치하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않고! 밤에 찾아오지도 않지 않았더냐!”
뭔가 어긋났음을 느끼다가도 그간 그의 행동을 느끼니 설움이 복받치는 르뤼에.
말하다 보니 역시 착각이 아닌 것 같다는 확신과 그가 왜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한 격렬한 의문이 뒤따랐다.
“짐이 그대에게 무릎 꿇을 것을 원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니더냐? 그래서 같은 침대에서 동침하게 되었을 때도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잠이 들고, 오늘도 떠난다는 둥 운운했던 것이 아니냐?”
우다다다 르뤼에의 하소연 겸 설명이 이어짐에 따라 시우는 입을 쩍 벌렸다.
두 사람의 어긋남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르뤼에가 어떤 포인트에서 착각하고 급발진한 것인지 차차 어긋났던 퍼즐 조각이 끼워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르뤼에가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뭐, 아주 이상한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으로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르뤼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짐을 유혹하려 들던 것이 아니란 말이냐?”
문답을 주고받는 사이 뾰족했던 르뤼에의 말꼬리가 슬며시 말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폐하, 잠시만요. 그게 아닙니다
시우는 하나하나 부정하며 르뤼에의 착각을 바로 잡아 주었다.
그런 생각은 일절 하지 않고 있었노라고.
주도권 싸움이라니 그런 거 할 줄도 모르고 한 적도 없노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삐끗한 착각을 바로잡아주었다.
“…….”
긴 침묵을 지키던 르뤼에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아니었느냐…?”
“네, 완전히요….”
“정말이냐? 정말 정말 정말이냐?”
“네, 마녀 명은 없지만 마녀 명을 걸고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녀명까지?
“그렇다면 왜…. 연락한다는 말을 꺼냈느냐?”
“정말 걱정되어서요. 바로 떠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제 안전만이라도 보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부탁드렸던 겁니다.”
르뤼에는 쿠구궁 낙반이 떨어지는 듯한 환청을 들었다.
그렇다면 죄다 삽질이었다는 것 아닌가?
그를 유혹하겠답시고 수영복을 입고 사우나에 들렀던 것도, 밀땅을 하겠답시고 침대로 불러들였던 것도, 그의 선언을 반협박으로 착각한 채 이 꼬락서니로 침대에 들어온 것도 전부 혼자만의 설레발이었다고?
그건 어떤 의미로 시우가 떠난다고 선언했던 때보다도 충격이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울그락불그락했던 르뤼에의 얼굴에서 하얗게 피가 빠져나갔다.
말라 비틀어진 가시덤불처럼 황량해 보이던 르뤼에는 제 자태를 돌아보았다.
스승님의 방 캐비닛에서 꺼내온 중요한 곳이 훤히 보이는 유혹용 란제리.
패배를 시인하듯 다소곳하게 꿇은 무릎.
어젯밤보다 열심히 감고 향수를 뿌린 빗으로 정갈히 빗어낸 머리칼.
그리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수치심을 감내하며 힘겹게 삽입한 성인용품.
달걀처럼 생겨 원격 스위치로 조정하는 그걸 넣고 오느라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던가?
“아….”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은 르뤼에는 마지막 동아줄에 매달리듯 검은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그, 그렇다면 이건 방에 왜 숨겨두었느냐? 지, 짐에게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었느냐?”
“아, 그건…. 이번 노획품 목록에 있던 것인데…. 폐하께 너무 자극이 심할 듯하여 따로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멋대로 빼돌려서 죄송합니다.”
모든 의욕이 걷히고 마침내 완전히 깨닫는다.
이제까지 르뤼에가 한 행동은 오롯이 혼자만의 착각이었음과 동시에 그 멍청한 푼수 짓을 시우에게 까발렸음이나 다름이 없다고.
그러니까 즉.
‘천첩은 낭군께서 안아주지 않아서 너무 외로웠사와요. 낭군님을 유혹하기 위해 이것도 저것도 해보았지만 전부 수포로 돌아갔으니 천한 몸을 낭군께 맡기는 것 외엔 도리가 없사와요.’
라고 말함과 동시에.
‘이렇게 야릇하고 천박한 옷을 입고 온 것도 모두 낭군님을 위한 것이랍니다. 검은 가방 안에 들어있는 기구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으니 천첩의 외로운 밤을 채워주시와요.’
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터무니없는 잔혹한 진실 앞에 르뤼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힉!”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우에게 건네주었던 스위치.
하다못해 그게 르뤼에 안에 있는 물건의 스위치라는 것만은 숨겨야 한다.
패닉에 빠진 그녀는 슬라이딩 캐치하는 유격수처럼 스위치를 집어들었다.
“음하하하! 다 농담이니라! 짐이 그런 멍청한 착각을 할 성싶으냐?”
그리고 벌떡 일어서 저 멀리 힘껏 던진다.
곧바로 증거 인멸.
사실 수상쩍음을 더하는 행위밖에 더 되겠느냐만 시시콜콜한 사정을 가리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뽀각!
책상의 모서리로 날아간 원격 스위치는 애처로운 단말마를 지르며 박살 났다.
하지만 주인의 변덕에 유명을 달리한 스위치는 죽음의 메아리를 남겼고, 그녀의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강력한 로터는 무시무시한 진동을 선보이며 파트너의 죽음에 분개했다.
-부우우우웅!
르뤼에 안에 깊숙이 삽입되어 있던 ‘유리잔도 깨버리는 초강력 로터’를 작동시킨 것이다.
“꺄흥!”
갑작스러운 자극에 퍼득 머리칼이 곤두서는 르뤼에.
차라리 르뤼에가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기분 나쁜 진동으로 치부해버렸을 자극.
사실 너무도 강렬한 탓에 애무라기보단 충격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극이다.
허나 최근 성감에 눈뜨게 된 그녀의 몸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그것에 ‘느끼고’ 말았다.
질 내부에 직접 전해지는 자극도 자극이거니와, 아랫배 전체가 울려대는 듯한 진동 속에서 그녀의 조그마한 진주가 부드러운 팬티에 사정없이 비벼지는 것이 치명타였다.
“하읏… 윽… 으으윽…!”
일련의 촌극은 너무도 빠르고 공교롭게 이루어졌기에 시우는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서 헛다리를 짚었던 르뤼에가 부끄러움에 쓰러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냥 쓰러졌다기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기에 걱정스레 물었다.
“괘, 괜찮으세요?”
“다앙자하으앙! 나아가하라하앙…!”
“아니, 그래도….”
“다응장! 나가라하지…! 않았더냐흐…!”
울먹이며 답하는서슬 퍼런 르뤼에의 축객령에 시우는 쫓기듯 침소에서 빠져나왔다.
2.
시우를 쫓아내고 난 이후.
원래라면 자괴감에 베개나 퍽퍽 때리며 몸부림치고 있었어야 할 르뤼에.
미숙한 연애 스킬로 평생 이불킥 거리를 획득한 가시밭길 앞에는 그보다 더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웅! 웅! 웅웅, 우웅!
그녀의 깊은 곳에 파고든 무선 로터.
무식할 정도의 진동을 다채로운 패턴으로 선보이는 로터는 쉴 새 없이 안쪽을 울리고 있던 것이다.
급한대로 팬티만 벗은 채 엎드린 르뤼에의 엉덩이는 리듬을 타듯 진동 박자에 맞춰 연신 움찔거렸고, 그녀의 손은 아래로 뻗어진 채 더듬더듬 헤매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자기계발 삼매경에 빠진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애초에 르뤼에가 장착한 로터는 그냥저냥 가벼운 장난감처럼 사용되는 물건이 아니다.
이런저런 플레이가 식상해진 커플을 위해 만들어진 초강력 에그 바이브레이터이자, 초심자인 르뤼에가 감당하기엔 과분한 물건이었다.
즉, 그녀가 시우가 나간 뒤 5분 넘게 침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에는 아주 깊은 사정이 있었다.
“하아앙…! 이… 이게…! 왜…! 안, 안 빠지는 것이냐…! 아앗…!”
그렇다.
르뤼에는 제 안에 쏙 들어간 로터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본래 무선형 로터는 삽입 이후 쉽게 빼낼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SM 플레이용으로 특별제작된 것.
위압적이고 깔끔한 외관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애초에 자력으로 빼 내기 힘들게 만든 것인지 그런 편리한 악세사리가 달려있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쾌락을 느끼는 즉시 로터를 안쪽으로 쪽 빨아들였고, 심지어 어설프게 손끝으로 건드리는 통에 아주 깊게 삽입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어 쾌감에 바들 거리는 야들야들한 점막은 더욱더 꼬옥 로터를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고, 거기서 기인한 쾌감이 다시 르뤼에를 괴롭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던 것이다.
그 덕에 아래서 들려오던 웅웅웅웅 소리는 이제 애액소리가 섞인 뷰뷰뷰뷰 소리로 변모해 있었다.
“으…! 크흣…! 하앙…!”
그녀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르뤼에는 대마녀답게 마법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본래 르뤼에에게 체내의 이물질을 빼내는 것 정도야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이 핑핑 도는 지금 르뤼에의 마법은 번번이 헝클어졌다.
경험이 부족한, 거기에 극도로 당황한 신출내기 마녀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울상이 된 르뤼에는 한참이나 침대에서 발버둥치다 못해 도움을 청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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