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46화 (546/917)

#546

1.

시우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은 마녀는 많다.

그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도움을 위해 달려올 만큼 말이다.

시우가 심해의 마녀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직후.

제머나이 백작은 재빠르게 구출 및 수색팀을 조성했으며 거기엔 아멜리아 메리골드, 샤론 에버그린, 아베느가 남작, 제머나이 백작, 예소드 백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실로 화려한 구성이었다.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인 마녀 전원이 대마녀.

심지어 전 남작이던 아멜리아를 제외해도 작위를 지닌 귀족만 셋이다.

사람 하나를 찾기 위해 꾸린 팀이라기에는 어마어마한 인력들이었다.

조만간 티페레트 공작이 참가하기만 한다면 공적의 주활동 무대인 남미 대륙도 정면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공무로 바빠 직접 참가할 수 없었던 제머나이 백작과 예소드 백작은 군용 소나가 탑재된 화물선 5척을 남태평양 해에 띄워 수색 기지로 삼게 하였으며, 소피아는 짐승의 마녀라는 이명답게 돌고래와 고래를 풀어 대양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샤론과 아멜리아는 화물선에 머물며 잠수도 불사하고 직접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수색은 원활하지 않았다.

애초에 300년 동안 죽었다고 알려졌던 심해의 마녀다.

그녀의 거처를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너무나도 커다란 바다의 면적이 문제였다.

진조의 마녀에 따르면 심해의 마녀가 머무는 공방은 원자력 잠수함.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움직일뿐더러, 클레흐의 진술에 의하면 아티펙트로 개조된 것이라 한다.

아마도 강력한 은폐 기능이 덧붙여져 있겠지.

남북을 합치면 지구 면적 3분의 1에 해당하는 태평양에서 은밀히 심해에 가라앉은 잠수함 한 척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우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한 달을 보낸 시점에서 아멜리아의 인내심은 한계를 맞고 있었다.

잠수를 끝낸 뒤 복귀한 아멜리아는 눈동자를 새파랗게 불태우며 객실 한구석에 갇혀 있는 클레흐를 찾았다.

본래라면 기껏 잡은 공적을 현세로 데리고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 유일하게 심해의 마녀와 접점이 있는 것을 클레흐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의 도움을 얻는 것을 불가피했기에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리스크있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샤론이 지니고 있던 종속의 고리를 통해 마법능력을 제한한 이상 사방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망망대해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아멜리아가 잠수하는 동안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던 클레흐는 갑자기 들어선 아멜리아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일만 끝나면 목숨을 빼앗을 예정인 공적이고, 심지어 시우의 살해를 사주해 위험에 처하게 한 원흉이다.

하지만 클레흐는 어째서인지 아멜리아에게만큼은 묘하게 고분고분하게 굴었으며, 순종적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수색에 협조적이었다.

“다, 다녀왔어…요?”

애매하기 짝이 없는 거리감에 떨떠름하게 무시하면서도 때로는 한 두 마디씩 대화도 나눴던 아멜리아.

그러나 쌓이던 답답함이 폭발한 아멜리아는 클레흐의 멱살을 잡아 선실의 벽에 처박았다.

“윽…! 큭…!”

“똑바로 말해요. 이 근방이 확실한가요?”

소중한 사람이 어떤 고난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무력감은 분노로 화해 귀기 어린 기백을 뿜어내고 있었다.

“확실해요! 여기서 접선했으니까!”

거짓은 아닐 것이다.

취조를 방해하던 클레흐의 혈액을 제어한 뒤 더욱 철저하게 문초했으니.

게다가 클레흐가 쓰고 있는 종속의 고리는 아티펙트 제조에 능통한 제머나이 백작가에서 한 번 더 손을 본 것이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럼에도 답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은 ‘모종의 수단으로 심문을 피해 갈 방법이 있던 것이라면?’ 따위의 의심을 피워낸다.

“…….”

“저,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클레흐는 겁을 집어먹은 듯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말하며 항변했다.

어차피 종속의 고리로 제어 당하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저항의 의지를 터럭조차 내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처음처럼 반항적으로 굴거나 악에 받쳐 노려보았더라면 더 집요하게 캐 물어봤을 텐데….

클레흐는 제 멱살을 거머쥔 아멜리아의 손을 떼어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짓씹듯 입술을 깨물고 그녀를 놓아주었고 클레흐는 여전히 벽에 붙어 선 채 숨을 헐떡였다.

“…….”

이러고 있어봤자 시간 낭비다.

배의 위치를 옮겨 다른 해구를 탐색할 예정이던 아멜리아 등 뒤에서 클레흐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건 끓는 점 바로 밑에서 부글거리던 아멜리아의 속에 천불을 지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우가 이런 처지에 놓인 것은 순전히 진조의 마녀 탓이다.

그 당사자가 저따위 말을 입에 담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번에야 말로 뺨을 올려칠 생각으로 뒤를 돌아보았던 아멜리아는 멈칫했다.

겁먹은 듯이 몸을 움츠린 클레흐는 발밑을 바라보며 면목없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멜리아의 기세가 수그러든다.

기가 차서 화낼 기운도 없어진 것이었다.

“…그래요.”

“비앙카도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나한테는.”

이어진 말 역시 못들은 셈 쳐도 상관없는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도발이라고 여겨도 좋을 정도로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전하기 위해 저런 말을 꺼낸 걸까?

비앙카를 죽인 아멜리아를 간접적으로 괴롭힐 수 있었으니 시우를 노리길 잘했다고?

아니면 철저한 복수를 위해 거짓 자백으로 헛고생시키는 중이라고 털어놓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래서, 사과라도 듣고 싶다는 말인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미안해요.”

치미는 짜증과 분노 속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크기로 부풀어 오르는 감정이 있다.

몹시 우습게도 동정심이다.

비앙카는 숱한 악행을 저지른 공적이었다.

공적을 죽이게 된 점에는 한 점 후회 없으나, 얄궂게도 연인을 잃은 클레흐가 느낄 공허함과 절망은 이해가 간다.

시우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의 모습과 너무도 겹쳐 보였으니.

거기에 단순히 입장 상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클레흐는 한 번도 아멜리아를 원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연인인 비앙카를 마무리한 장본인임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클레흐를 향해 무작정 비난과 분노를 쏟아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아멜리아가 분을 삭일 무렵.

-쿵!

갑판 위에 무언가 충돌한 듯한 굉음이 선실 전체를 울렸다.

일순 기우뚱거렸다고 착각할 만큼의 충격이었다.

아멜리아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 마력의 패턴은 그녀도 이미 알고 있는 자의 것이며 이 정도 능력을 지닌 마녀가 여럿 있을 리도 없다.

갑판 위에 착지한 기척은 길을 헤매는 기색도 없이 곧장 아멜리아 쪽을 향해 다가왔다.

-뚜방뚜방

선내를 울리는 발소리.

이윽고 문이 열리며 시우의 스승이자 연인이 들어섰다.

터번 아래 벚꽃처럼 화사한 분홍빛 머리카락과 마젠타 빛으로 타오르는 눈동자.

사막을 횡단하는 차림새로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망토와 스카프를 동여맨 엘로아 티페레트는 잡아먹을 듯한 목소리로 클레흐에게 물었다.

“네년이 진조의 마녀인가?”

2.

케테르 공작의 부재가 확실시되며 현세 마녀 사회의 정황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

위치포인트가 습격받아 줄줄이 무너지고, 그간 눈치만 살피던 추방자들이 선을 넘고 공적으로 돌변했다.

마법을 활용한 대규모 인체실험을 감행하기 시작한 마녀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고, 튼튼한 사업체를 지녔기에 잃을 것이 많았던 공적들 역시 눈치를 보며 과감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위치포인트의 지부장들은 힘을 모아 남미, 아프리카, 동유럽 밖으로 소요가 확산하는 것을 저지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당연히 엘로아였다.

횡포를 부리는 마녀가 보이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숙청한다.

다시 같은 사건이 반복되면 또다시 달려가 숙청한다.

엘로아는 완벽하게 케테르 공작을 대체할 수 없다.

그녀처럼 빠르고 확실하게, 절대적인 힘의 격차를 보이며 공적을 처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적들 역시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엘로아가 행하는 숙청이 위협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확률이 높지 않을지라도 티페레트 공작와 독대하는 불운은, 공적 대부분이 피하고 싶은 이벤트일 테니 말이다.

일시적인 소강상태겠지만 그동안 위치포인트를 필두로 마녀들이 뭉치며 자위 능력을 확보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따라서 엘로아도 당분간은 마력을 회복할 겸 게헨나로 돌아와 시우와 시간을 보낼 시간이었다… 만.

게헨나에 발을 들이자마자 전달받은 것은 게헨나에 숨어든 웬 잡것의 소행으로 심해의 마녀에게 잡혀갔다는 비보였다.

어디를 가도 사건에 휘말리는 제자지만 게헨나 안이라기에 안심했었는데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다니.

실종된 시우를 찾고, 또 진조의 마녀의 취조하기 위해 잠깐 눈도 붙이지 않고 찾아온 것이다.

“…내 탓이네.”

“…….”

엘로아가 클레흐를 베어버리려 하는 통에 우선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은 아멜리아.

감정이 복받친 듯 길길이 날뛰던 티페레트 공작은 이성을 찾자마자 몹시 풀이 죽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조금만 더 대비를 확실하게 해 두었더라면….”

티페레트 공작을 처음 보게 되었을 당시 아멜리아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사실 지금도 마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통념상 둘은 연적 관계이니 엘로아 쪽에서 아멜리아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속상해하는 엘로아를 보자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자책하지 마세요….”

청천벽력 같은 사건에 충격을 받았을 엘로아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시우라면…. 어디서든 잘해낼 거에요. 꼭 살아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고요.”

“그래, 믿어야지….”

그렇게 시우 수색 파티에 또 한 명의 마녀가 참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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