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
1.
본의였던 적도, 본의가 아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껏 많은 마녀를 섭렵해 왔다.
솔직히 말해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었다.
거대한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야 남자라면 누구나 가질만한 것이고, 한 명이라도 잠자리를 같이 한다면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미녀와 숱하게 관계를 맺었으니.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모솔아다 시절과는 다르게 테크닉도 발전했고 어지간한 여자는 각설탕처럼 녹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눈앞의 풍경이 가져다주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기인한 당혹감과 멋쩍음이었다.
“꺄흣…! 가, 간지럽도다…! 꺄하하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르뤼에.
언뜻 보기에 옆구리라도 마구마구 간질인 것 같지만 이 반응은 순전히 젖꼭지를 혀로 핥을 때 나온 것이다.
“꺄하하…!”
르뤼에는 두 팔로 시우를 턱 밀쳐내고는 가슴을 끌어안으며 꺄르륵 꺄르륵 웃었다.
뭐지?
분명 순서는 틀린 것이 없었다.
흔히들 야동에서 여자는 거친 손놀림과 혀 놀림으로 능수능란하게 애무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근데 그건 반쯤은 연기고 반쯤은 AV 여배우들이 닳고 닳은 프로이기 때문이라고, AV 스텝 경력이 있는 타카쇼가 가르쳐 주었다.
무려 1,000명에 가까운 다양한 여성과 관계를 가졌던 타카쇼가 말하길, 여자를 녹이는 가장 좋은 최음제는 부드러운 애무. 특히나 경험이 없는 처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제껏 시우의 경험으로도 얼추 비슷했고 말이다.
우선 하반신에는 일절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르뤼에를 눕혀 놓은 채 목덜미처럼 부드럽게 키스했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여겼으나 르뤼에는 일반적인 신체보다 체온이 3~4도가량 낮은 것 같았다.
그 서늘한 피부의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타고 내려오다가 가슴까지 도달한 것이다.
“하아… 하아…. 너, 너무 웃었더니 배가 아프도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거센 콧김과 파들파들 떨리는 가녀린 육체의 떨림이 쾌감 내지는 미지의 야릇한 감각에 대한 반응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
한참을 시우의 입안에서 뒹굴던 르뤼에의 유두는 조금 촉촉하게 보습 되었을 뿐 조금도 단단해지지 않았다.
또한 르뤼에의 반응 역시 쾌감을 얼버무리기보다는 간지러움만을 느끼는 모습이다.
“연인이 있다 하지 않았느냐?”
르뤼에는 한참을 웃느라 생긴 눈물을 글썽거리며 시우를 바라보았다.
“애무는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모양이다.”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아래는 손도 못 댄다지만 이렇게나 효과가 없다고?
더군다나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대단치 않는 모양이다’라는 르뤼에의 발언은 남성의 자존감을 쿡 찌르는 말이었다.
‘여친 많이 사귀어 봤다길래 잘할 줄 알았더니 너 별로 못하네’라는 뜻이 아닌가?
눈을 감고 속으로 되뇌었다.
타카쇼! 나에게 힘을 줘!
노예 시절 들었던 무수한 타카쇼의 썰풀이.
그 안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 나는 여기까지야. 앞으로는 너의 길이라고, 시우.’
타카쇼는 쓸 때 없이 반짝이는 이를 빛내며 사라질 뿐이었다.
어떠한 경우와도 겹치지 않는 특이 케이스였던 것이다.
그나마 비슷한 사례는 불감증.
선천적인 원인으로 성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증상인데 천하의 타카쇼마저도 씁쓸한 실패만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렇게 간지러움을 잘 타는데 성감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그건 이해되지 않는다.
“뭐, 충분히 놀아주었느니라. 짐은 공사다망하다. 내일부터 시련의 준비에 나서야 하노라.”
르뤼에가 떠나기 전 시우의 머리는 필사적으로 돌았다.
섹스 한 번 하려고 이렇게 머리를 쥐어짜 내는 것은 처음이 기분이다.
정신 나갈 것 같다.
“아….”
그리고 찾아오는 깨달음.
시우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장소를 바꿀 수 있을까요?”
2.
그렇게 도착한 곳은 르뤼에의 침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색 호텔 중에 바닷속 유리로 된 수중 호텔이 있다는데 단순한 특이함으로 따지자면 아쿨라에 비비지도 못할 것이다.
특수한 연금기법을 활용해 천장과 돔 형태의 천장, 그리고 벽면이 심해의 정경을 투명하게 내비치는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구현이 불가능한 초호화 침실인 것이다.
물론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스탠드로 어스름하게 밝힌 조명 가운데 아까처럼 팬티차림으로 편안하게 누운 르뤼에.
제 상반신만 한 베개를 편히 벤 그녀는 발꿈치로 침대를 투닥투닥 두드리며 말했다.
“15분은 넘기고 싶지 않다.”
먼저 이니쉬를 걸어온 그녀는 벌써부터 조금씩 흥미가 사라지는 듯했다.
“네, 대신 한 가지만 약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약조?”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의 팔과 다리를 고정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말을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아아, 그 묶는 것인가?”
포르노에서 본 기억이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르뤼에는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어려울 것은 없다. 필사적인 그대의 모습을 보니 조금 어울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니라.”
허락을 구한 시우는 리본을 뽑아냈다.
선내에는 선대 누켈라비가 개조한 마력의 촉수가 구석구석 뻗어있어 들숨과 날숨처럼 주변의 마력 흐름을 바꿔버린다.
따라서 마법의 행사가 방해받지만 그녀의 연구 공방이 딸린 침실은 예외다.
마법 연구에 지장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르뤼에의 팔과 다리를 묶어 고정했다.
“단단하구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시우가 하는 짓을 바라보는 르뤼에.
조금이나마 흥미가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폐하의 명예를 걸고 꼭 약조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요.”
번거롭게 두 번이나 물어보는 시우를 보고 뭔가 예삿일이 아니라 생각한 걸까?
르뤼에는 숙고 끝에 답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아픈 건 질색이니라. 채찍이나 촛농 같은 건 싫도다.”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럼, 윤허하겠노라. 응? 눈은 왜 가리느냐?”
“잠시 후면 알게 되실 겁니다.”
르뤼에의 팔과 다리를 거대한 침대 모서리에 묶고 안대까지 채운 시우는 길고 커다란 갈색 깃털을 꺼내 들었다.
마녀는 깃펜 혹은 만년필을 애용한다.
르뤼에도 예외는 아닌지 테이블에 근사한 깃펜을 여러 개씩 비치해 두고 있었다.
지금은 멸종해버린 ‘후이아’라는 새의 깃털로, 굉장히 고가 상품이기에 허영 많은 마녀들이 종종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더 확실하고 좋은 아이템이 저기 창고에 있긴 하지만, 첫 경험인 르뤼에로 사용하기엔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만큼 매니악한 물건이기에 포기했다.
먼저 깃털의 부드러운 끝으로 르뤼에의 목덜미를 가볍게 쓸었다.
“으갹!”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이 퍼득 튀어오르는 르뤼에.
안대로는 숨길 수 없는 그녀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것이 보인다.
그리고 곧 당혹으로 일그러지는 것도.
“뭐, 뭐냐! 간지럽도다!”
“깃털입니다.”
“서, 설마 이대로 15분간 간지러움을 피울 셈이냐? 짐더러 죽으라는 거냐?”
“명예를 걸겠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그런…!”
경솔한 발언과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성이 차는 호기심 탓에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은 르뤼에.
안대를 벗기면 죽을상이 된 눈빛으로 원망스럽게 노려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부터가 시작이다.
말해 무엇하랴.
아무런 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르뤼에.
그녀에 대한 돌파점으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간지럼 태우기’였다.
단순히 감각만으로 말하자면 르뤼에는 아주아주 민감한 몸일 것으로 추측한다.
아까 69자세로 있을 때, 꽤 거리가 있음에도 숨결만으로 간지럼을 타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 깃털로 목덜미를 가볍게 쓸었을 뿐인데도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몸을 떨었다.
그렇다면 왜 르뤼에가 애무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가.
그것은 놀랍게도 아무런 성적 의식을 품지 않기 때문이다.
무지 탓인지, 아니면 철저한 금남 구역에서 격리되어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르뤼에는 알몸을 보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역설적이게도 중요한 성감 발육의 비료다.
소중한 나신을 이성에게 보인다, 타인에게 젖꼭지를 빨리고 있다는 실감 덩어리야말로 쾌감의 실을 짜내는 누에고치다.
그것이 전혀 없는 르뤼에는 모든 성적 자극마저 간지러움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시우 혼자 열을 올리며 분위기를 잡으려 해봐야 ‘얘 뭐 하는 거지?’싶은 정도가 끝일 테니 말이다.
그런 르뤼에를 하반신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느끼게 만들어야 하니, 그 난이도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높다.
하지만 간지러움이라면 다르다.
간지럼은 르뤼에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임과 동시에 성감에서 느끼는 흥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샤론과 동거하던 시절 서로를 간지럽히다가 그대로 눈이 맞아 침대에서 뒹굴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처음엔 간지러움으로 인식되던 자극을 적절한 템포로, 적당히 자극한다면 필경 숨겨진 르뤼에의 성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살랑살랑 깃털로 늑간 아래와 옆구리 등을 자극한다.
“으힛! 꺄하하하…! 그…그만…! 내무대신…! 그만하거라…!”
마구마구 발버둥치고 싶어 보이지만 사지가 결박당한 탓에 그러지도 못하고, 명예를 걸고 약조했기에 리본을 풀어헤치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깃털이라는 간지럼 최적화 아이템에 눈을 가려 어느 곳을 공략하는지도 짐작할 수 없게 했으니 르뤼에가 느끼는 간지러움은 아마 어느 때보다 선명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 손은 지긋이 르뤼에의 허벅지에 올려두었다.
확실히 접촉하고 있다는 실감을 남기는 것이다.
“신시우…! 따… 딱… 꺄하하하! 15분…! 15분 뒤에… 그대를 유배 보낼 것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으햐햐햑…!”
숨 넘어갈 듯이 웃는 르뤼에.
하지만 시우는 주의 깊게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직감적인 타이밍.
바로 지금.
뾰족하게 서 있는 깃털 끝이 르뤼에의 옴폭 파인 길쭉한 배꼽을 슬며시 간질인다.
“힉…!”
그 순간 긴장과 함께 단단하게 뭉치는 르뤼에의 복부.
침실이 떠나가라 폭포처럼 폭소하던 르뤼에가 목에 무엇인가 걸린 것처럼 탁 숨을 되 삼켰다.
르뤼에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었다.
명백한 당혹성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제 막 10분경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계획의 순조로운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가 머릿속에서 연신 터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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