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36화 (536/917)

#536

1.

르뤼에의 관심사는 과장 조금 보태어 초 단위로 빠르게 변한다.

당장 무엇을 하다가도 다른 볼일이 생기면 쏜살같이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오락실에 배치된 게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을 보아 천성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혼자 있다 같이 놀 상대가 생기니 잔뜩 들뜨게 된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산책에 처음 나온 강아지가 정신없이 사방을 쏘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시련이니 뭐니 정작 현세에서 노획품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에 침실 옆 보물 창고에서 묵묵하게 나머지 분의 화물을 붙잡고 앉았다.

“내무대신이라….”

전 국민 26명, 그녀의 괴수 사역마까지 포함하면 29명인 누켈라비 왕국에 내무대신이 무슨 변변한 힘이 있겠냐만 그래도 이 승진은 좋은 징조였다.

르뤼에와 친밀도가 순조롭게 쌓여있다는 의미니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내일 아침 식사 자리에서 슬쩍 게헨나에 통신을 보낼 수 있도록 부탁할 예정이었다.

지금이 제일 적기라고 판단이 된다.

살짝 억측이지만, 이 이상 친밀도를 쌓았다간 시우를 떠나갈 것이 싫어진 르뤼에가 연락을 허락하지 않는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조금 고민되는 건….

“시련도 계속해보고 싶은데….”

가장 급한 건 게헨나에 연락을 해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소소한 욕심을 보태자면 가능한 시련을 이어나가고 싶다.

선대 누켈라비가 르뤼에를 위해 준비한 ‘시련’은 보통 기연이 아니었다.

물론 아프기도 아프고, 조금 쫄리기도 쫄린다.

근데 죽을 걱정 없이 목숨 건 싸움을 해 볼 수 있는 것이 어디 보통 경험이겠는가?

연락이 닿는대로 곧장 게헨나로 돌아가면 그 부분에선 차질이 생긴다.

현세인 것도 모자라 극극극 외지에 있는 바다 밑까지 찾아와 꿈의 요람을 찾으려면 르뤼에의 도움은 필수적인다.

문제는 수면 위로 나가는 것도 꺼리는 그녀가 무작정 도와줄 것 같지는 않다는 점.

그러니까 제일 무난한 중도책은 연락을 취해 안심시키되 한동안 아쿨라에 남아 시련을 수행하는 건데….

르뤼에의 답변을 듣고 고려해도 어련히 늦지 않을 성싶다.

“뭐, 나중에 생각해보자.”

구석에 처박혀 있던 상자를 꺼내왔다.

시련을 위해 르뤼에에게 끌려가는 통에 쌓아만 두었던 상자다.

현세에서 게헨나로 직수입되는 물품들은 그야말로 엄중한 포장에 둘려있다.

워낙 고가의 상품이 많다 보니 조금의 훼손이 생기는 것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에 발견한 상자도 랩으로 칭칭 휘감긴데다가 그 위에 테이프로 한 번 더 감아져 있었다.

함 내에서는 마법을 사용하기 어려웠기에 칼과 망치로 부수다시피 뜯어보고 나니.

“음?”

완벽한 방수포장 안에 완충재 사이에 파묻힌  검은 서류 가방이 드러났다.

다만 폭이나 재질 같은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일반적인 서류 가방보다는 공구함에 가깝다.

“이건 뭐지?”

-달칵

잠금 장치를 해제하자마자 보이는 건 장난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른의 장난감이었다.

“워….”

척봐도 다양한 모양과 크기 그리고 기믹을 지닌 바이브레이터 5종.

거기에 크기별로 8개나 있는 무선 로터, 절정 익스프레스 티켓으로 알려진 우머나이저, 가죽 수갑과 구속용 벨트, SM 플레이용 채찍과 패들, 정조대, 다양한 헤드로 교체 가능한 전동 마사지 머신.

이것저것 해서 13종류나 되는 패키지 상품과 여분의 건전지가 가방 안에 가지런히 수납되어 있었다.

성인용품 같은 건 나름 야동 같은 곳에서 건 많이 봤던 편인데 여기 안에 있는 건 이만저만 매니악한 게 아니다.

어디 사는 마녀님이 주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질펀하게 즐길 예정이었나 보다.

정상적인 성욕을 지닌 남자인 만큼 호기심을 자아낼 물품들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뇌가 깊어진다.

‘이걸 어디에 어떻게 숨겨야 할까?’까 고뇌의 축이다.

다소 억측이 섞여 있지만 르뤼에가 흥미진진한 어른의 장난감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보일 태도가 걱정되는 것이다.

작게는 ‘이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질문에 진땀 뻘뻘 빼며 설명을 회피하는 자신의 모습부터.

크게는 ‘한번 사용해 보겠느니라! 내무대신! 짐을 돕거라!’라고 천명하는 르뤼에의 모습까지.

물론 르뤼에는 예쁘다.

제각기 마녀들이 그렇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마녀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거기에 23 위계에 달하는 그녀의 마법을 복제해 낸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흑심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책임져야 할 연인이 많다.

다들 걱정하고 있을 상황에서 속 편하게 섹스나 하고 있었다간 양심이 더욱 찔릴 것 같았다.

“…일단 적당히 숨겨 놓자.”

어치파 그녀가 일일이 물품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오래된 물건 사이에 숨겨두면 언젠가 찾아서 알차게 쓰겠지.

최대한 구석진 곳에 물건을 짱박아둔 채 침실로 나왔다.

엄청나게 큰 침대에 르뤼에는 없었다. 아마 지금도 영화 삼매경에 빠져있을 것이다.

퇴근 시간이다.

참고로 승조원 객실 중에서는 나름 급이 있는 것으로, 2인 1실 1층 침대가 비치된 곳을 숙소로 배정받았다.

승조원용 객실로 내려온 뒤 가볍게 몸을 씻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시련 과정을 천천히 되짚었다.

시우에겐 명확한 위계 체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마녀와 싸웠던 경험을 토대로 추산하길 흑기사의 위계는 약 21 위계.

욕망의 마녀가 22 위계였으며 흑기사는 제약이 있던 비앙카를 어렵사리 쓰러뜨렸으니 아주 엇나간 추측은 아닐 것이다.

그 흑기사를 초월할 수만 있다면 스승님을 도울 수도 있고 여러 문제에 봉착했을 때 조금 더 능동적인 활동이 가능하니….

“어우, 졸려.”

침대라고 영 불편해서 잠은 자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하루가 고되긴 했나 보다.

이 딱딱한 침대가 푹신푹신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내일 일어나서 차분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몇 분 만에 잠이 들고 말았다.

2.

꿀 같은 단잠이었다.

하지만 가위라도 눌린 것인지 갑자기 호흡이 갑갑해지고 가슴이 꾹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영체가 가위라니…. 정말 어지간히도 피곤했구나 싶다.

태평하게 눈을 비비며 일어서려는데 누군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움하움…. 깨어났느냐?”

그리고 찬물을 끼얹듯이 정신의 각성을 재촉하는 르뤼에의 목소리.

시우는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을 느꼈다.

우수한 영체는 금세 어두컴컴한 객실의 불빛에 적응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인지한 것은 셋.

헐렁헐렁해 보이는 가운을 입고 침대 위에 올라와 시우의 다리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르뤼에.

벗겨진 바지와 속옷.

그리고 태연자약하게 인사를 건넨 르뤼에가 재차 입술을 열어 한껏 입에 무는 빳빳한 자지.

“…꿈 아니죠?”

“우움, 우움, 아니니라.”

대답이라도 하듯 한 박자 늦게, 뭉근한 성감과 촉촉하고 따뜻한 르뤼에의 혓바닥이 느껴진다.

꼬리뼈가 찌르르 떨리는 쾌감도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맹렬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르뤼에가 아닌 밤중에 찾아와서 펠라치오를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잠에서 깬 거라고?

우물우물거리며 귀두 부분을 빨대처럼 빨던 르뤼에가 상체를 일으켰다.

귀여운 입술 사이로 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 물건이 바들바들 떨렸다.

“후움….”

슬쩍 흐른 침을 소매로 닦는 르뤼에는 팔짱을 낀 채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꿈이라 여기는 것도 당연하도다. 다름 아닌 누켈라비 왕국의 영원불멸한 군주인 짐이 이런 포상을 베풀어주니. 어서 감사를 표하거라. 혹은 감격 탓에 흐르는 눈물도 좋도다.”

몰래 찾아와 자지를 빨던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건지 턱을 치켜들고 뻐기는 르뤼에.

아직 무슨 감정을 느낀다기보다는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사고도 녹이 슨 것처럼 덜그럭거렸다.

한동안 뻐끔뻐끔 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도 이게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

그래.

이게 궁금했다.

이 상황 자체는 어느 정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막무가내인데다가 호기심이 넘치는 쌍둥이가 특유의 행동력을 연료로 써서 시우에게 ‘성교육’을 요구했던 때와 비슷하다.

근데 그땐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맥락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르뤼에와는 섹슈얼한 커뮤니케이션은커녕 남녀 사이의 썸씽이라 치부할 수 있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르뤼에가 성적인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듯한 기색도 일절 없었던 것이다.

그냥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자다 일어나니 르뤼에가 펠라치오를 하고 있었다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상황이었다.

“내무대신은 짐의 고충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러니 짐도 그대에게 선물을 하사했을 뿐이니라.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려 들지 말거라.”

“…….”

세상에 어떤 여왕님이 자는 대신의 고추를 손수 빨아주는 선물을 준다는 말인가?

아니,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고금동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두어 명 쯤은 있겠지만….

전혀 납득가지 않아 혼란스러운 와중에 르뤼에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번 노획품 중 포르노가 있었느니라. 현명한 짐은 철두철미한 분석을 토대로 그대가 좋아할 만한 하사품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그대도 기뻐하는 듯하니 다행이도다.”

르뤼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시우의 자지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대 아니었더라면 짐은 시련에서 전략적 후퇴를 반복했을 것이니라.”

“…….”

“천금을 만금으로 갚는 것이 어진 군주의 덕목이니라. 크나큰 가르침을 받았으니 짐 역시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거짓말이다.

허울 좋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단숨에 알아차린 것은 시우가 유달리 콜드 리딩에 능숙했기 때문이 아니다.

말하는 내내 르뤼에의 눈동자가 단 한 번도 시우의 것과 마주치지 않는 기이한 무빙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궁금하셨던 거 아니죠?”

“무엄하다!”

아픈 곳을 찔린 듯 발끈하는 르뤼에.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시우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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