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35화 (535/917)

#535

1.

상담이랄 것도 없었다.

르뤼에는 그간 지녔던 고민을 시우에게 우다다 털어놓았을 뿐이다.

비록 제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인지 완곡한 표현과 화법이 사용되긴 했지만 30 분 정도 지나자 비교적 가감 없이 솔직한 고민을 전해왔다.

그녀의 기나긴 하소연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시련이 너무 힘들다.

물론 압도적으로 강한 자신과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오! 신기하도다! 그저 고민을 털어놓았을 뿐인데 마음이 가볍도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의지할 곳은커녕 고민을 털어놓을 곳마저 없었다는 것이 더해져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 르뤼에는 혼자 주저리주저리 상념을 풀어놓은 것만으로도 한결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느니라. 새삼 의지와 투지가 샘솟도다.”

원래 털어놓을 곳이 없는 고민은 안에서 곪기 마련이다.

당장 뾰족한 해답을 내놓을 순 없었지만, 그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경험한 바 있다.

시우만해도 노예 시절 이런저런 푸념을 타카쇼에게 늘어놨었으니까.

타카쇼 역시 지금의 시우처럼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기운이 나곤 했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르뤼에에게는 ‘누군가 귀 기울여 고민을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처음인 셈이니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 시련에는 진지하게 임하겠노라.”

애초에 르뤼에는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기분 전환이 빠르다.

어찌 보면 유치한 성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기분이 좋다가도 한 가지를 못 맞춰주면 불같이 화를 내지만, 또 그렇다고 뒤끝이 길게 남는 것은 아니다.

화를 내다가도 금방 혼자 풀어져서 헤실헤실 웃곤 한다.

결국 시우가 끼어들 틈도 없이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를 끝낸 르뤼에.

평소처럼 에너지 넘치는 그녀로 돌아온 모습을 보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신시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르뤼에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시우에게 말했다.

“네, 폐하.”

“여기 무릎을 꿇도록 하여라.”

르뤼에는 그대로 일어나 시우를 무릎 꿇게 했다.

어차피 또 상황극이겠거니 싶어 잠자코 따랐다.

“그대는 비록 천출이나 왕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대는 더는 노예도 창고지기도, 광대도 아니다.”

손날로 시우의 머리와 양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르뤼에.

지극히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자부심을 품으라는 양 말한다.

“신시우를 누켈라비 왕국의 내무대신으로 임명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해냈다! 초고속 승진!

2.

누켈라비 왕국엔 일손이 부족한 바 업무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내무대신이 된 시우가 마저 창고를 정리하러 간 사이 르뤼에는 영화관에 홀로 남았다.

처음 그에게 사정을 털어놓을 때까지만 해도 부끄러운 치부를 들춘다는 느낌에 조심스러웠지만, 어느샌가 구구절절 다 말해버렸다.

결코 후회하진 않았다. 도리어 후련하다.

꽉 막혀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듯 자책과 자괴감이 녹아내리는 것은 마법 같은 조화였다.

고해 성사가 이런 이유에서 필요했던 것일까?

아무튼 그런 마법을 선보여준 시우에게 합당한 보상을 챙겨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앞으로의 계획도 대충 수립해두었다.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할 것이니라.”

그렇게 웅대한 계획표를 자가 결재한 르뤼에는 블루레이 디스크가 잔뜩 들어있는 상자를 뒤적였다.

내일부터는 예전처럼 작전 회의도 하고 내무대신에게도 조언을 구할 생각이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바쁘게 일만 생각하며 살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시작하기에는 오늘은 너무 힘들었고, 무엇보다 조금의 마력도 남아있지 않아서 힘이 없다.

따라서 영화 감상을 통한 충전을 주목표로 삼았을 뿐이다.

이른바 자신에게 주는 상이라는 것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영화를 고르던 르뤼에.

얼마 전에는 007시리즈라는 것을 정주행했다.

배우는 조금 못생겼지만 발전한 현대 사회와 과학기술, 그리고 흥미진진한 첩보극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뭘 봐도 재밌을 것 같은 작품을 뒤적이던 와중.

“오?”

저번에 보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레이블이 제거된 디스크를 발견한 르뤼에.

검은 봉투에 개별 포장되었던 디스크였다.

그때는 워낙에 볼거리도 넘쳤고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막 고르는 것보다는 대충이나마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영화를 선정했기에 미뤄두었는데.

오늘은 약간 도전정신이 샘솟는다.

르뤼에는 가장 위쪽에 쌓여있던 디스크를 삽입하고 팝콘 기계에서 팝콘을 꺼내온 뒤 감상모드에 돌입했다.

장르도 배경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초반 줄거리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했다.

말도 듣지 않고 건들거리는 양아치 딸과 그런 딸을 보며 속만 썩이는 부모님.

이에 새롭게 찾아온 흑인 가정 교사에게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제발 공부 좀 시켜주세요’라고 부탁한다.

“흐음…. 뭔가 조잡하도다.”

영화라는 것이 보면 볼 수록 몰입할 수 있는 부류도 있음을 아는 르뤼에가 이토록 심드렁하게 예단한 것은 도저히 기대감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앞의 3분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화질만큼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 좋다.

모공까지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배우의 연기가 너무도 발연기이고 구도나 앵글 같은 것도 심심하기 짝이 없달까?

흥미를 잃고 다른 영화를 보려던 르뤼에의 손길이 우뚝 멎는다.

“흠?”

별다른 대화 없이 말 지지리 안 듣는다는 딸년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흑인 가정교사가 갑자기 바지를 벗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전위적인 전개에 눈을 끔뻑이는 르뤼에.

“뭐…. 뭐냐 이건.”

흑구렁이 한 마리가 묵직하게 다리 사이에 드리워진다.

아직 이름도 나오지 않은 딸년은 그걸 좋다고 입을 가리며 ‘와우~’같은 감탄을 하고 있다.

배드신이야 이미 영화를 보면서 몇 번 본 적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앞뒤 없는 배드신은 생전 처음이었다.

혹시 아까 수업하는 장면에서 몇 번 눈이 마주치며 서로 슬며시 미소 짓는 게 시그널이었단 말인가?

고작 그게?

그보다 자지가 모자이크도 없이 나오다니. 지금까지 봤던 배드신이랑은 뭔가 다르다.

“오호, 이것은…. 포르노로구나.”

머지 않아 르뤼에는 해당 영화의 장르 구분에 성공했다.

남녀의 생식 과정을 정교하게 기록한 영상 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들은 바 있다.

대충 보다가 다른 영화로 갈아탈 예정이던 르뤼에는 갑자기 흥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일생을 마법을 위해 살아가는 마녀에게 ‘남성과의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 중에서도 한없이 부차적인 문제다.

따라서 선대 누켈라비 역시 성교육 당시 의학 서적을 교보재 삼아 지식 위주의 정보를 전수했다.

여성기에 발기한 남성기를 넣고 왕복 운동한 뒤 사정하면 임신한다, 이런 단편적인 지식을 짧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고화질 포르노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성교육 자료라 할 수 있겠다.

“흐음, 신기하구나.”

르뤼에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영화를 마저 이어봤다.

“흑인은 고추도 까맣구나. 처음 알게 된 일이로다.”

말총머리의 여자가 흑인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더니 실실 웃음을 흘리면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점점 딱딱해져 가는 흑인의 물건과 본격적으로 앞뒤로 왕복하는 여자의 뒤통수.

사전에 없던 지식이었다.

왜 굳이 저걸 입으로 문단 말인가?

남자 배우의 신체는 영체가 아닐 터.

정상적인 생리 작용이 발생하는 이상 저곳은 소변을 보는 더러운 호스다.

하지만 여자는 그걸 기쁘다는 듯이 입에 물었고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과장되게 일그러졌다.

명백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우웩.”

비위가 상해 속이 미식거리는 바람에 입꼬리가 축 처졌다.

그와는 별개로 여자는 열심히 남자의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추잡하고 더러운 행위를 이어나갔다.

-쮸웁 쮸웁 쮸웁

‘오우… 퍽 예아~’

‘으음, 으음, 푸하, 으음….’

네이티브한 흑인 신음과 여자의 간드러진 콧소리가 흐르길 잠시 뒤.

‘컴 온, 컴 온.’

흑인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추랑은 정반대인 하얀 액체를 여자 얼굴에 마구마구 뿌렸다.

화장이 망해버린 것처럼 엉망진창이 된 여자의 얼굴.

“으, 저건 또 무슨 짓거리냐.”

단 한 번도 정액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딱 봐도 끈끈해 보이는 체액이 얼굴 위로 잔뜩 끼얹어지는 장면에 르뤼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입 주위에 묻은 정액을 혀로 핥더니 이어 물건까지도 쪼옥쪼옥 빨아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 흑인은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만족스럽게 그런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제 여자도 옷을 벗는다.

남자가 찰싹 엉덩이를 때리니 침대를 짚고 내민 엉덩이를 씰룩쌜룩 흔드는 여자.

“넣는 거냐? 이제 넣느냐?”

영화를 볼 때 그렇듯 혼자 쭝얼쭝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는 르뤼에.

하지만 클로즈업으로 카메라에 비친 여자의 거시기는 너무 작아 보였다.

“캐스팅 미스인 것 같도다.”

저렇게 좁아 보이는 짬지에 저 흑구렁이가 들어갈 리가 있나.

흑인이 엉덩이 뒤에 서서 물건을 밀어 넣자 르뤼에는 시한폭탄이 째깍이는 장면을 볼때처럼 몸을 움츠렸다.

이제 여자가 비명을 지를 일만 남았을 터.

‘오우~ 예아~ 뿩 미! 뿩 미! 잇 마이 푸시!’

하지만 여자는 앙앙거리며 좋아하고 남자도 뻑! 뻑! 거리며 좋아한다.

놀랍게도 여성기는 쭉쭉 늘어나면서 공성추에 버금가는 저 거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체의 신비였다.

“어우…. 어우….”

르뤼에는 팝콘을 우적우적 먹으며 난생처음 보는 진귀한 포르노 감상에 빠져들었다.

역시 현세의 물건 중엔 신기한 게 많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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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깜빡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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