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30화 (530/917)

#530

1.

“이걸로 정말 영화를 볼 수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영사기가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전정실의 모니터처럼요.”

“호오!”

르뤼에는 널따란 풀HD TV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현세 노획품 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기도 했고 눈에 확 튀기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시우는 곧장 TV를 들고 함내 영화관으로 향했고 스크린을 위로 걷어 올린 뒤 TV 설치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르뤼에는 신기한 것을 다 본다는 눈빛으로 기웃거리는 중이다.

그나저나 게헨나 마녀 중에 TV와 서라운드 스피커를 비롯 전자제품을 들여 놓으려는 사람이 있다니.

꽤 독특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발전 설비도 없는 게헨나에서 이것들을 돌리면 꽤 귀찮은 수순을 거쳐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쿨라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전자제품들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었다.

애초에 전기라면 넘쳐나도록 쓸 수 있는 원잠인 것이다.

“언제 끝나느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 혹시 짐이 옆에 있어서 방해되느냐? 잠시 자리를 비워주는 편이 좋겠느냐?”

르뤼에는 발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안달을 떨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뭣? 벌써?”

“넵, 선만 연결하면 되는 거라 별거 없었습니다.”

표준 전압은 전기가 생겨난 순간부터 110V 내외거나 220V 내외였다.

코드에 변환 어댑터를 꼽고 본래 영사기에 전원을 넣던 플러그에 넣기만 하면 됐으니 전자제품에 조예가 없는 시우라도 손쉽게 세팅할 수 있었다.

스피커를 적당한 위치에 두고 리모컨을 무르자 TV에 전원이 들어온다.

화면 상태를 점검하는, 꽃을 찍은 동영상 따위가 흘러가는 순간 시우는 유심히 르뤼에를 보았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

예상은 했거니와 이 정도로 놀랄 줄은 몰랐다.

TV의 대기 화면에 꽂힌 르뤼에의 시선은 흡사 명인이 혼을 담아 그려낸 유작을 보는 듯했으며, 벌어진 앙증맞은 입에는 제 주먹도 들어갈 것 같았다.

극도로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별 다를 바 없다는데, 르뤼에에게는 눈앞의 모든 일이 시우가 처음 마법을 보았을 때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대단하도다!”

“다행히 잘 작동되네요.”

“이 무슨 신묘한 기술인가….”

그렇다고는 해도, 원잠을 개조하여 공방으로 삼는 마당에 저리도 신기해할 줄이야.

“화면이 흑백이 아니다. 칼라풀하도다! 어떻게 된 것이냐! 진짜 꽃을 보는 것 같구나!”

코를 바짝 붙이고 신기하다는 듯 조목조목 뜯어보는 르뤼에.

별 거한 것도 없는데 괜히 뿌듯해지는 것을 느껴졌다.

전파는 커녕 위성통신도 불가능한 심도로 잠수해있는 만큼 지상파나 공중파 방송을 보는 것은 무리였지만 수백 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영화를 감상하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적당히 그녀가 좋아할 만한 블루레이 디스크를 밀어 넣었다.

“상영 시작하겠습니다.”

“오오오!”

잔뜩 들뜬 르뤼에가 소파로 뛰어들고 시우는 그 앞에 노획품 중 하나인 도리토스와 마운틴 듀를 내려놓았다.

밀수품으로 고작 과자와 음료수 따위를 직구해 사 먹다니 이건 또 누가 주문했는지 몰라도 어지간한 부자인 모양이다.

“이건 무엇이냐?”

“영화 볼 때 곁들이면 좋은 과자입니다. 팝콘처럼요.”

“오오, 짐은 팝콘도 아주 선호하니라.”

손수 봉지를 까 르뤼에의 무릎에 얹어주고 잔에 음료를 따라주었다.

“그대도 여기 앉거라. 짐이 모르는 부분이 생기거든 가르쳐 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떼기는커녕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명령하는 르뤼에.

어렸을 적 TV를 보고 있자면 어머니가 ‘티비에 빨려 들어가겠다’라는 농담을 하며 웃곤 하셨는데 그때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샤론과 동거할 때 보았던 2차 세계 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다.

전차 소대와 그 승무원에 관한 이야기로 전차 액션이 호평을 받긴 했지만 애초에 전쟁의 화려함을 보이기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PTSD에 시달리는 승무원들과 전쟁의 모순과 참혹함을 씁쓸히 보여주는, 즉 르뤼에에게 보여주면 뭔가 변화가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르뤼에가 숫제 사내아이들이 총싸움 놀이를 하듯 전쟁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면, 바꿀 수 있는 한 바꿔보고 싶었다.

이놈의 오지랖이 또…. 싶긴 해도 어떠한가?

거창한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르뤼에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땡그랗게 뜬 채 멍하니 도리토스를 입에 옮겼다.

“전쟁 영화로구나.”

“그렇사옵니다.”

“훌륭한 안목이다.”

르뤼에의 말끝에서 느낌표가 사라진 것은 흥미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완전히 푹 빠져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기에 처음 먹어보는 자극적인 스낵에도 달리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장비들과 주변 배경이 등장하자 와구와구 도리토스를 먹으며 콧김을 쏟아냈다.

그토록 좋아하는 병장기를 흐리멍덩한 흑백 화질이 아닌 풀 HD로, 그것도 최신 영화기법으로 보고 있으니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오오! 저것이 주인공인 M4 셔먼이로구나! 베테랑 전차의 느낌이 물씬 나는군!”

“그렇습니까?”

“헌데 어째서 전차의 궤도가 T84인 것이냐?”

“네?”

“작중 배경을 보면 T80 쪽이 보편적일 것 같도다. 하지만 전쟁 말기인 것 같기도 하고, 꽤 오랫동안 전선에서 활약한 전차 같으니 땜빵으로 사용했다 하면 말이 안 될 것도 없구나.”

“…….”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전쟁 영화이니 만큼 자연스럽게 많은 병기가 등장했다.

르뤼에는 자기가 아는 병기가 나올 때마다 환호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우다다다 설명을 해댔다.

문제는 작품에 나오는 모든 병기를 그녀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냥 겉핥기 수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고증 오류를 모조리 지적할 정도로 속속들이.

따라서 해설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해설을 듣는 처지가 되었다.

“오…!”

르뤼에의 탄성과 함께 드디어 처음 등장한 제대로 된 전투신.

전차가 왜 보병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도리토스를 다 먹은 르뤼에는 대전차포와 전차가 포탄을 주고받는 장면을 주먹을 불끈 쥔 채 재잘재잘 떠들었다.

전 재산을 마권에 배팅한 아저씨가 침 튀기며 응원하듯 말이다.

“나치 놈들은 죽어도 마땅하니라! 과연 전차의 위력은 대단하도다!”

그러나 감탄도 잠시였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심약한 주인공은 살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적 보병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르뤼에는 그 돈을 건 경마기수가 지지부진한 것을 보는 것처럼 투정을 부렸다.

“아니! 주인공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총을 쏴라! 적이 앞에 있지 않느냐!”

답답했는지 벌컥벌컥 탄산을 들이키는 르뤼에.

“답답하도다. 고구마를 한 상자는 먹은 느낌이노라!  제 알량한 양심을 찾느라 적을 쏘지 않다니. 짐의 부하였더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렸을 것이다.”

영화에 빨려 들어간 르뤼에는 이미 전장의 지휘관이 되어있었다.

호괘한 전투씬이 끝난 뒤 이어지는 장면.

참호에서 끌려나와 투항한 나치 포로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전차장은 전투 내내 총 한번 제대로 쏘지 못한 주인공에게 군인다운 모습을 보이라며 무저항 상태의 포로를 사살할 것을 명령한다.

극구 거절하는 주인공의 손에 권총을 쥐여주고 흐느끼던 포로를 강제로 쏘게 하였다.

원치 않는 살인은 강요 받은 주인공은 죄악감에 시달린다.

슬며시 옆을 보자.

르뤼에는 굳어 있었다.

아까까지 열변을 토하며 모습 따위는 없다.

포로가 애원하며 등장하는 순간부터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듯이, 잃어버린 길을 묻는 것처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본다.

“…….”

그간 함께 지내오며 지켜본 결과, 르뤼에는 실로 단순하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해도 좋다.

선 그 외에는 악.

우리 편 그 외에는 적.

평생을 추방자로 살아오던 선대 누켈라비의 피아식별 기준은 그 정도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르뤼에도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을 것이고.

하지만 이 세상엔 어지간해선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지 않은가?

전쟁이란 애매한 나쁜 놈, 애매한 착한 놈이 어우러져 죽고 죽이는 터전이다.

두꺼운 책으로 써내려가도 모자랄 장대한 삶의 여정이 몇 그램의 총탄과 몇 킬로그램의 포탄에 의해 덧없이 찢겨나가는 살육의 장이다.

르뤼에는 민간인이 아닌 군인들만 죽이겠다 했지만, 어디 전쟁이 그런 것이던가?

그녀가 검고 흰 색깔이 확연히 나뉘어 넓게 펼쳐진 도화지의 변두리가 아니라.

두 색이 모호하게 맞물린 회색 지대를 보아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반응을 보아하니 충분했던 것 같다.

“…재미없구나.”

방금 전까지 흥분한 기색을 잔뜩 내비치던 르뤼에는 심드렁한 목소리를 애써 가장하며 떨리는 눈빛을 숨겼다.

“다른 걸 틀어 드릴까요?”

“아니, 흥이 식었다. 실로 저질스럽고 기분 나쁜 영화였도다. 그대는 업무로 복귀해 마저 노획품을 분류하도록 하여라.”

“네, 알겠습니다.”

시우는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르뤼에를 살폈다.

“…….”

발끝만 바라보던 르뤼에는 잠시 고민하더니 시우가 했던 것처럼 리모컨을 눌러 조용히 영화를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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