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1.
아쿨라의 전정실로 쉴 새 없이 달려간 시우와 르뤼에.
전정실의 모습을 묘사하자면 한마디로 우주선과 매우 비슷하다.
수많은 콘솔, 음탐장치의 결과 값 및 다양한 지표를 표기하는 모니터, 뭐가 뭔지 구별도 되지 않는 다이얼이 협소한 공간을 가득가득 메우고 있다.
평소 반쯤은 시체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는 승조원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부신 속도로 움직인다.
“상황을 보고하라!”
르뤼에는 도착하자마자 약식 경례를 받고 지휘대 앞에 섰다.
“잠수함 잠정 경보입니다!”
“방위 240도 7엽 추정! 소나음도 함께 들려옵니다!”
그리자 곧장 들려오는 승조원의 보고 역시 놀랍게도 ‘자..자..잠수함 잠정…경보…입니다….’ 같은 느릿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노련한 군인의 관록을 보이며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
애초에 그들은 이 잠수함을 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역마인 것이다.
“음탐장은 적함의 기종을 조속히 파악. 무음 항주로 유지하며 추이를 살피거라! 역탐지 당하지 않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과 붉은 불빛이 번쩍이는 정전실 가운데.
시우는 필사적으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데네브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은 분노한 심해의 마녀 앞에 맞서는 시우의 모습.
설마하니 그 수단이 잠수함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지만 이 습격은 높은 확률로 시우가 납치된 것으로 알고 있는 여러 마녀가 구출작전을 펼치는 것일 터다.
시우는 르뤼에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 겁니까?”
“그대도 전투태세를 갖춰라. 방독면을 착용하도록. 함 내에는 고 반응성 화학물질이 많아 언제든 독가스가 퍼질 수 있느니라.”
“그게 아니라…! 싸워선 안 됩니다!”
섣부르게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말려야 한다.
르뤼에는 분명 23 위계의 강자며 여기는 그녀의 무대다.
그러나 시우를 구출하기 위해 잠수함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한 것이라면 저 잠수함에는 아멜리아를 비롯, 여차하면 스승님까지 계실 수도 있다.
23위계의 마녀가 셋이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벌어진다면 누군가는 크게 다칠 것이 뻔하다.
그때 나탈리 음탕장이 큰 소리로 보고했다.
“적의 어뢰 발사음이 들립니다!”
“갑판장! 전투태세로! 기관실의 출력을 최대로 높여라!”
“적 어뢰, 방위 241, 240에서 접근 중! 적함의 위치 확정되었습니다! 거리 3,800M! 미군 소속 시울프로 추정!”
난데 없이 어뢰라니.
필사적으로 르뤼에를 설득하려던 시우는 망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잠수함에 어뢰를 박는 행위는 인질 구출에 있어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수단 중 하나다.
심지어 시우가 어떤 상태로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조타장! 양현 옆으로 전속! 우현으로 전타 하여 회피기동을 펼쳐라! 교란기 사출!”
어안이 벙벙해진 시우를 뒤로하고 평소 허술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일사불란한 지휘를 내리는 르뤼에.
이런 경험이 몇 번이나 있다는 듯이 능숙하기 짝이 없다.
“1, 2, 3, 4 번 어뢰실 주수. 1번 어뢰실 개방하거라!”
“어뢰 사출 준비 완료!”
“무장관, 적 탐지 지점으로 어뢰 발사하라!”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 모두가 숨죽여 모니터를 바라본다.
“명중입니다!”
“들뜨지 말거라! 적 어뢰가 살아있다.”
“방위 280 적 어뢰가 아군의 교란기를 쫓고 있습니다.”
환호성이 터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 르뤼에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적 어뢰 교란기에 폭파!”
“충격에 대비하라!”
일제히 어딘가를 손으로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어 폭압에 대비하는 어인들.
“전투 상황 종료. 적 함 격추, 남아있는 위협은 없습니다.”
“와아아아아!!!!”
모두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승전의 순간.
시우는 더 없는 어색함을 느꼈다.
원래 물은 공기보다 훨씬 충격과 소리를 잘 전달하는 매질이다.
어뢰가 폭발하거나 적 함이 폭발하거나 한다면 수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일지라도 충격파가 전달되어야 정상이다.
“오늘도 우리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짐의 통치 아래 있는 한 누켈라비 왕국에게 패배란 없느니라!”
“르뤼에…폐하… 만세에…!”
“만세에…!”
하지만 이 교전 내내 기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느낌 정도는 받았지만 잠수함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찬찬히 되짚을 시간이 생기자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수중 교전에 대해 많이 아는 바가 없는 시우였지만 밀리터리 마니아인 심해의 마녀가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어댄 결과, 아쿨라가 얼마나 규격 외의 병기인지 알게 되었다.
제작된지는 수십 년이 지난 병기지만 마법의 힘이 더해진 이상 최첨단 병기보다도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과학기술을 총 발휘해도 무인기로 밖에 갈 수 없는 심해의 최저층을 아무렇지 않게 누비며, 가속만으로 어뢰의 탐지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우수한 잠항 능력.
그런데 일견 아슬아슬해 보이는 교전이 벌어졌다?
어기적어기적 다시 업무를 위해 전정실을 나서는 승조원을 보며 시우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짐의 지휘 능력은 어떠한가?”
옆을 보자 흡족한 표정을 지은 르뤼에가 힐끗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칭찬해 달라는 표정이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혹시 이거 모의 전투인가요?”
“…….”
르뤼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라는 각주가 달린 경악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김이 샌다고 할지….
5분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던 시우는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도 쭉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딱 봐도 르뤼에는 멋지게 지휘하는 모습을 시우에게 자랑하고 싶어 이런 촌극을 벌인 것이다.
모두 능숙하게 움직였던 걸 보아 하루 이틀 일은 아닌 듯했지만.
아무튼 간에 심력이 소모된 바 다소 시큰둥하게 답한 것이 화근이었는지 르뤼에는 뾰족하게 눈썹을 세우며 말했다.
“모의 전투긴 해도 실제 녹화된 음향 녹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해낸 것이니라. 실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입술을 삐죽이며 불평 가득한 목소리로 보아 몹시 심기가 불편한 듯했다.
“…됐느니라 업무로 복귀하거라.”
잔뜩 토라진 듯이 등을 돌린 르뤼에는 시우를 남겨둔 채 사라졌다.
2.
오후 5시.
오늘의 업무도 종료.
“하아….”
일 자체는 역시 별다를 것 없는 쉬운 일이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마음이 무겁다.
역시 르뤼에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아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지간하면 르뤼에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게 좋다.
그걸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그녀에게 아부하며 차근차근 호감도를 쌓아갔다.
하지만 고작 한 번의 미스로 이 정도로 삐칠 줄이야.
정말 제멋대로 자라온 여왕님 같은 성격이 아닐 수 없다.
두세시간에 한 번씩은 찾아오던 르뤼에가 오늘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부터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증명했다.
-탁!
창고 불을 끄고 침실로 나갔다.
세상 어디에서 없을, 심해를 관람하며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초호화 해저 침실.
널따란 침대 한가운데는 르뤼에가 책장을 펄럭이고 있었다.
평소엔 바쁘게 선실을 돌아다니는 그녀가 이른 시간부터 침대에서 책을 뒤적이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흥.”
분명 시우가 나오는 것을 보았을 텐데 보란 듯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르뤼에.
양 뺨은 좀 전처럼 빵빵하게 불만이 차 있었다.
쌍둥이를 다뤄온 경험으로 봤을 때 그냥 갔다간 하루 삐지고 말 것이 일주일로 연장되는 수가 있다.
결국 침대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폐하.”
“무엄하다! 감히 축생과 같은 노예 주제에 신성 누켈라비 왕국의 통치자인 짐에게 말을 거는가!”
지금까진 그런 거 따진 적도 없었는데 ‘나 화났어!’ 라고 성토하듯 책을 쾅 덮으며 불같이 화내는 르뤼에.
“송구하옵니다.”
“송구할 것도 없느니라. 당장 짐의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모처럼 멋진 모습을 보이고 칭찬받고 싶었는데 시큰둥한 모습만 보였으니….
아니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싶긴 하다.
“한 가지만 아뢰고 싶습니다.”
“싫다, 듣지 않겠노라.”
“오늘 폐하께서 보여주신 늠름한 모습에 제때 경탄하지 못한 것 같아 시름이 큽니다.”
“이미 늦었느니라, 짐은 사탕발림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 곧잘 대답하는 르뤼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워도 너무 쉽다.
사실 이번 노예 생활이 비교적 윤택한 것은 시우의 처신도 처신이지만 르뤼에의 난이도 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제를 빼앗겼음에도 원숙한 기동으로 적함의 지뢰를 교란책으로 흘려내고 역으로 격추하는 작전 지휘 능력. 미천한 노예에 불과한 소인에겐 지극히 수준 높은 전술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모의 전투였냐고 물으며 코웃음을 치던 가증스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니라.”
코웃음까지 쳤던 기억은 없는데….
“아니옵니다. 소인은 신출내기 마녀인바 이런 웅장한 전투의 경험이 없사옵니다.”
“…….”
“실전 상황과 흡사한 긴박한 상황 속 손에 진땀을 쥐며 폐하의 용투를 지켜보다 보니 기력이 다해 충분히 감탄할 수 없었습니다. 일하는 내내 오늘의 전투를 회상하며 전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무릎을 꿇고 감동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비로소 이 드넓은 해양의 전신이 폐하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개를 들라.”
르뤼에는 어느새 침대에 앉아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기분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싱글벙글 웃고 있다.
“하기사 그대의 말 또한 타당하도다. 실전에 처음 투입된 신병은 패닉에 빠지길 마련이거늘 그조차 헤아리지 못했다니 짐의 부덕이다.”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어찌나 좋으면 그 르뤼에가 ‘짐의 부덕’ 운운하며 용서하겠느냔 말이다.
“일어나거라 승전고를 울린 날이니 성대한 만찬을 준비하게 시켰느니라. 가자!”
르뤼에는 좀 전의 설움을 완전히 다 잊어버린 발걸음으로 날아가듯 식당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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