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08화 (508/917)

#508

1.

“저는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혹시 활용할만한 장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지금부터 바로 마력 회복에 들어가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그럴게요….”

그렇게 말한 시우는 데네브만 교회당에 남긴 채 훌쩍 떠나갔다.

“…….”

홀로 남겨진 데네브는 심란한 마음을 숨기며 방금 봤던 것을 떠올렸다.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던 그의 왼손.

크라켄을 양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던 그의 뒷모습만 봐서는 떠올리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아….”

데네브는 탄식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이 쿡쿡 머리를 찌르는 듯한 기분이다.

돌이켜보자면 실로 당연한 이야기다.

신시우는 고작 20대 중후반, 마녀가 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마녀다.

심지어 상대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은 무지막지한 괴수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여러 번 전투 경험을 쌓았고 죽을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싸움이 익숙할 리가 있나.

그럼에도 시우는 데네브에게 간편한 마력충전을 제안하지 않았다.

선택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자진해서 미끼 역할을 택했다.

데네브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약 3~4일.

이 세계는 8시간마다 낮과 밤이 반복되니 시우는 그 세네 배는 되는 회차 동안 크라켄을 홀로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데네브도, 시우도 알고 있다.

이 세계는 재도전 코인이 몇 개나 주어지는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데네브에게 마력 충전을 제안하는 것이 누구나 떠올릴 방법이다.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지름길로 향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시우는 데네브에게 관계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이유를 모를 만큼 눈치 없진 않다.

그는 데네브와의 ‘검증’조차 완고하게 거절했었으니까.

“바보 같긴….”

최근 들어 데네브는 시우를 못마땅하게만 바라보았다.

거의 숨을 쉬듯 시우만 보면 핀잔을 주고 정강이를 걷어차 댔다.

하다못해 걸어 다니는 모습만 봐도 눈꼴셔 괜스레 짜증만 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투정인지, 데네브는 깨달아버렸다.

비록 요즘 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이 생겼다 해도 그는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쌍둥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은인이다.

그뿐이랴?

사람들을 위해 비겁의 마녀를 토벌했으며, 친구를 구하려고 욕망의 마녀와 맞서고, 최근에는 아멜리아를 구하고 오기도 했다.

시우가 단순히 파렴치한에 푼수에 가벼운 인간이라면 타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리 없지 않은가?

데네브는 그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그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구실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판단하며 그를 평가절하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인간적으로 실망이니 뭐니….”

철딱서니 없었던 것은 자신이었다.

현실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주제에 흰 눈을 치켜뜨고 그의 행실이나 의심하고 있었다니.

데네브는 나이트가운의 자락을 휘날리며 시우를 쫓았다.

2.

시우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교회의 종탑에서 종을 살펴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뭐 하고 있나요?”

“날이 저물기 전에 종이 울렸었잖아요. 혹시 뭔가 마법적 상관관계가 있나 들여다보는 중이었습니다.”

“관련이 있나요?”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시우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종 표면을 손으로 쓸었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으니 딱히 실망은 없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고난에는 한숨만 나온다.

“시우 군.”

“네, 백작님.”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요.”

“그러시죠.”

데네브는 각오를 굳히고 시우에게 한 발짝 크게 다가갔다.

이 질문은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가 암묵적으로 덮어 놓으려 하던 해결책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왜,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건가요?”

“쉬운 방법이라뇨?”

“의뭉 떨지 마세요! 알잖아요! 시우 군도!”

하지만 그 문제에 있어선 이미 결심을 끝낸바.

다만 시우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하, 하면 되잖아요. 저랑.”

막상 말하고 보니 이 어찌 천박한 말일까.

데네브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검증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머리꼭지가 돌아버릴 정도로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쌍둥이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데네브는 남녀의 육체 관계가 얼마나 낯간지러운 일인지 생생히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데네브가 아닌 것이다.

그것이 부끄러워 평소처럼 톡톡 쏴대듯이 빠르게 말을 잇는 데네브.

“시우 군에게는 마력 복제 능력이 있잖아요. 저와 관계를 맺어서 충전하면 굳이 위험한 일을 무릅쓸 필요도 없어요.

왜 꼭 위험한 길로 가려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제 입에서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었나요?”

그 결과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까지 쏟아내 버리고 말았다.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럼요?”

“데네브 백작님은 제 장모시기도 하잖습니까. 일전의 일은 정말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이상은 오딜 님에게도 오데트 님에게도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라….”

예상대로의 답변.

그럼 다른 여자들이랑 놀아나는 건 배신하는 게 아니냐, 그렇게 물렁물렁하게 구는 사람이 이런 여성 편력을 자랑해도 되는 거냐 등등.

원래대로였다면 여기서 와다다다 그를 몰아붙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변보다는 떨리던 그의 손이 더 뇌리에 박힌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꼭 해야 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시간을 버는 건 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사람이 그렇게 손을 떨어댔을까.

데네브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허세를 떠는 그의 모습에 더욱 스스로의 한심함이 체감된다.

“바보같긴….”

데네브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까 술잔을 나누던 주교의 방으로 돌아온 데네브와 시우.

가능하면 목욕이나 샤워를 하고 싶지만 이런 낙후된 시설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침대 흉내를 내는 침대라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

데네브는 손가락을 튕겨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몸에 청결의 마법을 걸었다.

“데네브 님?”

“벗어요. 할 거니까.”

목 뒤로 손을 넘겨 머리를 묶으며 툭 던지듯 말하는 데네브.

시우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데네브를 바라보았다.

“사나흘이나 기다릴 시간 없어요. 언니도 걱정하고 있을 거고 그때까지 시우 군이 무사히 버텨 준다는 보장도 없죠.”

“데네브 님?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잖아요. 설령 한다고 해도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본 이후에….”

“생각해보세요. 만약 제가 마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시우군이 당해버리면 그 뒤에 당하는 건 전위도 없고 마력도 부족한 저에요. 이편이 가장 안전하고 정확해요.”

딱히 둘러대는 말은 아니었다.

어젯밤에야 데네브도 마력이 충분했고, 시우도 만전의 상태로 어그로 분담을 해주었다.

하지만 시우가 부상만 입어도 데네브는 도주와 마력 보존 및 회복을 동시에 해야 한다.

장모니 사위니 따지며 질질 끌다가는 정말 골치 아파질 수 있는 것이다.

“오딜 오데트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제가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그게 더욱 미안해야 할 일이죠. 뭐해요? 안 벗어요?”

“데네브 님, 흥분하신 건 알겠는데….”

“걱정 마세요. 섹스하자는 건 아니니까.”

“…네?”

하지만 데네브라고 대책 없이 시우를 이 방으로 끌고 온 것은 아니었다.

데네브에게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시우 군, 마력 충전을 위해선 질내사정만 하면 된다는 거죠?”

데네브는 아주 똑똑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듯이 살짝 뻐기는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섹스는 삽입-왕복운동-사정의 메커니즘으로 이뤄진 거에요. 그 과정에서 상호 간의 쾌감을 느끼며 마음을 확인하는 행위. 맞죠?”

“네, 그렇죠.”

“하지만 저희는 왕복 운동, 상호 간의 쾌감, 마음의 확인 이 세가지 행위를 배제할 거에요.”

말인 즉슨.

“시우 군이 사정 직전에 제 안에 넣어서…. 무슨 말인지 알죠?”

“…….”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불가항력의 상황이지만, 이렇게 하면 굳이 시우 군도 쌍둥이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저희가 한 건 섹스가 아니라. 잠깐 넣어서 마력충전을 한 거니까요.”

공교롭게도 데네브의 아이디어는 며칠 전 예소드 백작의 아이디어와 똑같았다.

물론 그때는 예소드 마망의 사정 리드를 받긴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마력이 충전된다는 사실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백작님은… 그… 처음이 아니신가요?”

하지만 예소드 백작과 데네브의 입장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데네브는 처녀인 것이다.

첫 경험을 그런 식으로 겪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염려하는 시우.

“그게 어때서요? 저는 쌍둥이를 위해서라도 무사하게 돌아가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에요. 어차피, 딱히 계승 전에 남자와 할 생각은 없었고요.”

데네브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우.

“시간이 별로 없어요. 곧 밤이 올 거에요.”

이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가장 빠른 지름길이긴 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좋아요. 준비할게요.”

그렇게 말한 데네브는 남은 계획을 마저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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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지은밥 선생님이 그려주신 루시 예소드 마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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