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
1.
시우와 데네브가 자리 잡은 곳은 동쪽 끝 시가지.
한편 선착장부터 거대한 몸체를 이끌며 기어오는 크라켄은 거대한 다리를 휘두르며 광장에 들어서고 있다.
머리에 돋아난 터널만한 입은 잠시도 쉬지 않고 주위를 날아다니는 날치 반찬을 씹어먹었고 빨판에 돋아난 비교적 작은 입 역시 식사를 도왔다.
길쭉한 동공이 뒤룩뒤룩 구르며 시우와 데네브를 포착했다.
이쪽을 향해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공격이 아니었다.
딱히 위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날치떼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킬 뿐인 행위가 무지막지한 체급과 더해진다면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물리력을 행사하게 된다.
-쿠구구구궁!
횡으로 길게 휘둘러진 기다란 촉수가 종탑을 후려치자 지반째로 도려내진 종탑이 성곽의 저편까지 날아간다.
체급이 깡패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실감이 됐다.
아무리 시우라도 문어의 발차기에 맞는다면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 ♫~”
한편 데네브는 시우의 호위 아래 마법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노래하는 마법.
천상의 곡조를 연주하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이 파동을 일으킬 때마다 메아리처럼 마력의 작용이 증폭된다.
그녀의 주위는 어느새 보랏빛 스파크가 타닥이며 웅장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머나이의 원래 위계는 22 위계.
쌍둥이에게 그릇을 하나 나눠주었기에 21 위계.
알비레오 없이도 데네브가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은 20 위계 초입, 대마녀의 경지다.
시우 주위에 비정상적으로 고위계 마녀가 많아서 그렇지, 대마녀는 전체 마녀의 상위 1%에 속한다.
세상의 순리와 묘리를 거스르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데네브는 자신이 지닌 마법의 위대함을 유감없이 증명해내고 있었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나아가는 곡조와 함께 응축된 마력의 다발이 하늘로 쏘아진다.
밤하늘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점멸하던 뇌광은 데네브의 장송곡에 맞춰 파멸을 선고했다.
자연적인 벼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번쩍임.
눈앞 시야가 일순 새하얗게 변하는 광량과 함께 마력의 창이 크라켄의 머리를 두들긴다.
뒤늦게 공격을 포착하고 수비를 위해 들어 올리던 문어의 다리 세 개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쿠구구구구광!!!!
한 차례의 섬광과 반 박자 늦은 폭음.
“끼에에에에엑!!!!”
그리고 한 박자 느린 크라켄의 끔찍한 비명소리.
끓는 물에 통째로 넣은 문어처럼 발버둥을 치는 크라켄은 정신없이 남은 다리를 휘두르며 주위를 때려 부쉈다.
“어떤가요? 제가 본 실력을 발휘하면 이 정도랍니다.”
데네브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훑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시우에게 쏟아부었던 공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 당시엔 상당히 힘을 빼고 있던 것이다.
만약 저런 공격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무리 튼튼한 시우라도 죽었을테지.
하지만 시우의 표정을 펴질 줄을 몰랐다.
“…….”
왜냐하면 수백 개의 섬광탄이 일제히 터진 듯한 조명 속.
데네브의 일격이 크라켄에 직격하는 과정을 정확히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정련된 마력의 창끝이 문어의 몸에 닿는 순간 시우는 목격했다.
일반적인 무척추 생물에게는 존재해서는 안 될 투명한 비늘이 그녀의 일격을 산산이 흩어내는 것을.
돌 바닥 사이로 빗물이 흐르듯, 집중되어야 할 마력의 파동이 온몸의 비늘을 따라 흐르는 것을.
“시우 군?”
“데네브 님.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 그럴 리가요.”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는 듯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던 데네브.
그러나 이내 시우와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끼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엑!”
크라켄의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괴로워하는 동작 역시 죽음의 단말마라기엔 너무 길고, 거칠다.
“분명 정통으로 맞았는데….”
“제머나이 마법 중에 그보다 더 위력이 강한 마법은 없나요?”
“있어요, 있는데…. 언니 없이는….”
이럴 리가 없다.
심해의 마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진 않지만 생전 그녀는 21위계, 다섯 마리의 괴수를 통솔하며 싸웠다.
여러 사역마를 부릴 때 그만큼 힘이 분할되는 것을 생각하면 데네브 정도면 충분히 저 문어를 제압할 수 있어야 했다.
심지어 절반가량의 마력과 1분에 가까운 영창을 통해 전개한 대규모 술식을 직격시켰다면 말이다.
의외의 변수가 발생한 걸까?
강력한 예장? 아니면 마법적인 상성이 좋지 않았나?
“저놈의 몸에 비늘이 있습니다. 데네브 님의 마법이 직격하는 공격을 흘려냈어요.”
“뭐라고요? 그게 보여요?”
그 난리 통 속에서 술자인 데네브도 눈치채지 못한 걸 봤단 말인가?
이모저모 경악할 거리가 남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쿠오오오오-!!!!!!”
다시금 포효를 내지르는 크라켄.
거무튀튀했던 놈의 몸이 탁한 색조의 물감을 잔뜩 섞어 놓은 팔렛트처럼 울긋불긋 변하기 시작한다.
뚜렷한 적의와 분노를 품은 고함이 시우와 데네브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쾅! 쾅! 쾅!
지금껏 만찬에 초대받은 느낌으로 느긋하게 움직이던 놈은 이제 사냥을 위해 난동을 부렸다.
좀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속도로 빠르게 기어오기 시작한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시우와 데네브가 밟고선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휘청였다.
“말도 안 돼…! 벌써 재생이 끝났어요….”
데네브의 말대로다.
형체도 없이 증발했던 놈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 전의 위용을 되찾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재생력과 힘.
그리고 육중한 체구에서 나오는 자연재해 급의 물리력.
“한 번 더 해볼게요. 이번에도 엄호를 부탁할게요.”
다시 한 번 마력을 끌어올리며 노래할 준비를 하는 데네브.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요? 잡어라면 몰라도 저건…. 제가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거리가 있잖아요!”
“조금 더 차분하게 관찰하는 편이….”
“엄호해요!”
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데네브의 작전에 본능적인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껏 사지를 넘나들며 몸에 밴 감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쪽이 아닌 저 문어의 턴이라는 것을.
하지만 시우가 뭐라고 대꾸를 하기도 전에 영창에 들어간 데네브를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데네브가 무리하게 영창을 이어가던 그때.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놈이 여지껏 휘두르던 다른 촉수보다 훨씬 더 기다란 다리, 배 밑에 숨겨두고 있던 사냥용 다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진 것이다.
너무나 거대하기에 느려 보이지만 채찍과 같은 원리로 원심력이 더해진 첨단의 속도는 음속에 가깝다.
“데네브 님!”
“꺄악!”
시우는 아직 영창 중인 데네브의 허리를 끌어안아 몸을 굴렸다.
이건 회피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장대한 대탈출에 가까운 급속 이동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크라켄의 다리가 시가지를 완전히 두 조각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과 더불어 흡사 지진이 일어난 듯 떨리는 대지.
유연하게 회수된 다리는 재차 도망치는 시우와 데네브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피어라!”
시우는 이를 악물며 마력을 복사, 모든 마력을 오직 신체 강화와 리본을 위해 할애했다.
좌표이동식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도시 곳곳에서 날아다니는 날치떼가 문제다.
자칫 좌표가 겹치게 된다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쾅! 쾅! 쾅! 쾅!
그 사이 한층 더 가까이 접근해온 크라켄은 두 개의 다리를 더해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었다.
건물은 물론 지형마저도 바꿔버리는 저딴 걸 ‘공격’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영체의 내구도가 뛰어나고 시우의 갑옷이 단단하다고 해도 직격했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다.
전후좌우로 쇄도하는 일격이 만들어낸 파편만으로도 흡사 옆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위협적이다.
“빌어먹을.”
“시우 군, 이제 저 혼자도 움직일 수 있어요.”
“조금만 더 실례하겠습니다. 제가 더 빠를 테니까요.”
“…알겠어요.”
간혹 엉뚱하고 어설퍼 보이는 작은 장모님도 확실히 마녀이긴 하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도 모자랄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니.
데네브는 자장가처럼 작은 노래를 읊었다.
고운 미성에 섞인 마력과 함께 몸에 활력과 힘이 깃든다.
시우와 데네브의 죽음의 술래잡기는 날이 밝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2.
확실한 것 하나.
이 세계는 낮 아니면 밤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새벽이나 저녁이 없었다.
조금 밝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중천에 떠오른 태양은 빽빽하던 날치떼를 녹이듯이 일소했고, 기어이 도시를 개박살낸 크라켄은 도망치듯이 바다로 몸을 숨겼다.
잔해조차 남기지 않고 무너져 내렸던 도시는 시간을 되돌린 듯 처음 도착했을 때 모습 그대로 복구되었다.
그야말로 닫힌 고리, 하루를 반복하는 세계인 것이다.
“하아….”
한바탕의 난리통이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 긴 한숨을 공유하는 두 사람.
성이 난 크라켄을 피해 도망을 치는 통에 데네브도 시우도 기진맥진이었다.
“그래도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건 다행입니다.”
“…이만한 규모의 격리된 세계에요. 케테르 공작이 아니고서야 온갖 제약이 덕지덕지 붙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나무 상자 위에 걸터앉은 데네브.
그러나 상자에 묻어있던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가 나이트가운에 스며드는 것을 본 그녀는 청결의 마법을 사용해 두 사람의 몸에 달라붙은 분진과 땀을 씻어냈다.
“…작전 회의를 해볼까요?”
“그래요.”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것과 여러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나마 가장 깔끔한 성당 내부를 거처로 삼기로 하고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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