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
1.
어렴풋이 직감은 하고 있었다.
시우의 사주팔자는 다사다난 그 자체.
숨만 쉬어도 트러블에 휘말리는 체질이다.
난데없이 수상쩍은 사건에 휘말렸던 시점부터 장모님과 오손도손 패키지여행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하던 바다.
이후 예상되는 전개로는 수상쩍은 능력을 갖춘 호문쿨루스의 등장, 아니면 남자 마녀인 시우를 노리고 있는 공적의 등장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예상대로 저 멀리 파란의 조짐이 보인다.
검게 변한 밤하늘을 더욱 검게 물들이는 그림자.
자세히 보니 하나하나가 커다란 생선이다.
배지느리미와 가슴지느러미가 길게 연결된 날개를 글라이더처럼 활짝 펼치고, 때로는 퍼덕이며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날치떼.
물고기 형태의 괴수를 보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호문쿨루스도 무엇도 아니었던 기괴한 피라냐 떼.
시우가 현세에 머물 무렵 비겁의 마녀가 코엑스에서 벌였던 대량의 학살극.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표정이 굳는다.
“무슨 일이죠?”
데네브 역시 훌쩍 지붕 위에 올라와 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수만은 가볍게 넘어갈 듯한 날치가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드는 모습은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백작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저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보통 때는 제머나이 저택의 연구실에 보관하는 붉은가지를 챙기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가까이 뒀을 텐데.
시우는 그림자로 긴 창을 만들어내며 물었다.
“일단 저라면 최대한 추적을 뿌리치고 도망치면서 상황을 엿볼 것 같습니다.”
일단은 위기, 라고 생각해도 심장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그도 그럴게 마녀가 되기 전부터 온갖 똥꼬쇼를 하며 목숨을 걸고 싸운 횟수가 5번을 넘는다.
그 중 두 번은 심장이 멎으면서 황천길을 건널 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목숨을 걸었던 사투는 시우에게 강한 힘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이라면 샤론과 겨우겨우 잡았던 거대한 들개 형태의 호문쿨루스도 개 패듯이 잡아낼 수 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저 정도 잡어 떼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옆에는 혼자서도 20 위계 급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데네브가 있지 않은가?
“백작님?”
하지만 데네브는 부름에도 답 없이 입을 반쯤 벌린 채 하늘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긴장한 건가?
데네브도 알비레오도 전투 경험이 있는 마녀라고 들었다.
하지만 중공군처럼 몰려드는 날치의 군세는 잠시 위축될 수 있는 수준이긴 하다.
뜻밖에 귀여운 구석이 있는 장모님이 정신 차릴 때까지 한가로이 기다려주기엔 상황이 급박했다.
“제가 전위를 맡겠습니다. 교회당 쪽으로 빠져서 벽을 등지고 맞붙어보죠. 데네브 백작님께선 서포트….”
“…아니에요!”
별안간 데네브는 소리를 빽 질러 시우의 말을 끊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시우.
데네브는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이마를 짚으며 혼란스러움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정말 위험한 건 저게 아니에요.”
“저 날치요?”
“날치가 아니에요! 저것도 심해의 마녀가 만들어 낸 괴수라고요!”
데네브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쳤다.
“심해의 마녀라니….”
그 불길한 어감에 시우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날치를 보고 떠올린 기시감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심해의 마녀는 죽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남긴 예장은 여전히 남아있고 몇몇 마녀들이 그것을 악용하고 있죠. 당신도 알 거에요.”
“거기까진 알겠습니다. 파올라 소치틀처럼 말이죠?”
“그래요. 심해의 마녀는 전설이나 전승으로 전해 내려온 설화를 엮어 자신의 사역마를 만들어 냈어요.”
아직 과학이 발전하기 전, 변덕 같은 풍랑과 폭풍을 이끌어 배를 집어삼키는 바다는 뱃사람들에게 미지의 장소였다.
전 태양 빛 한번 닿지 않는 깊은 심해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보이기에 미지는 곧 공포를 뜻한다.
공포가 부풀린 인간의 상상력은 무수한 상상의 바다괴물을 만들어냈고, 심해의 마녀는 총 다섯 괴수의 설화를 실체화해 사역마로 부렸다.
하나같이 강대하고 악명 높은 괴수였다.
하지만 호문쿨루스와 달리 심해의 마녀의 괴수는 주머니 차원을 만들어 몸을 숨기는 능력도, 차원을 넘나드는 능력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며 위협적으로 변하는 괴수는 잠시 풀어놓는 것만으로 미증유의 재앙을 일으켰다.
그 괴수를 격리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들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다섯 개의 ‘어항’.
“여긴 그녀의 어항이에요. 이 도시 자체가 괴수를 보관하는 수조이자 사냥터.”
하루 만에 창조되고, 하루만에 다시 무너지는 닫힌 고리의 세계.
밑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공복을 채우기 위해.
또한 사냥의 감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흩뿌려놓은 거짓된 먹이.
모든 것이 거짓에 불과한 세계에서 먹음직스러운 마력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두 개의 ‘진짜’ 음식.
심연에 몸을 뉘이던 포식자는 그 존재를 알아차렸다.
“우리는 먹잇감이 된 거에요.”
-쿠구구!!
거대한 굉음이 일었다.
데네브의 말 맺음과 동시에 저 멀리 보이던 바다가 갈라졌다.
아니다.
무엇인가 검은 수면을 가르며 솟구쳤을 뿐이다.
다만 그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하고 압도적인 까닭에 작은 동작만으로 해일에 버금가는 재해를 일으켰을 뿐.
바다 한가운데 섬이 하나 더 솟아난 것 같았다.
그 괴수는 처음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곧장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는 독특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문어를 닮은 두족류의 바다 괴수, 크라켄.
우렁찬 기세로 뻗어나온 촉수가 하늘로 날아오르던 범선을 잡아챈다.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던 범선의 마스트는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동체는 종이 접히듯 접힌다.
아직 멀리 도망치지 못한 날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빨판의 지름만 해도 5M를 훌쩍 넘기는 촉수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민첩하게 날치를 낚아채었다.
괴수는 수만 쌍의 이빨이 날카롭게 돋은 입으로 으스러진 날치와 범선의 잔해를 쑤셔 넣고 포효한다.
쿠오오———!!!
이미 소리의 영역을 넘어 충격파로 전환된 저주파 음이 가슴을 울렸다.
그 순간 시우는 온몸에 소름이 삐죽 돋는 것을 느꼈다.
울음소리는 심연에 가라앉은 망자의 무리가 수천 개의 입으로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저희가 메인 디쉬로 보이나 보네요.”
서늘해진 간담을 농담으로 애써 털어내며 시우는 창을 꽉 쥐었다.
“일단 도망치면서 상황을 보죠.”
“그게 좋겠어요.”
어느새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한 날치떼를 피해 데네브와 시우는 지붕을 박차며 달렸다.
2.
크라켄을 피해 혼비백산 도망치는 대형 날치떼는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주둥이를 쩍 벌린 채 굶주린 메뚜기처럼 눈에 보이는 것 전부를 물어뜯는다.
그들의 비행이 도시를 스쳐 가면 그곳에 남는 것은 융단폭격을 맞은 듯 너부러진 건물의 잔해 따위였다.
성인 남성 크기의 잡식성 날치가 중세 항구 도시를 습격하다니.
B급 코스믹 호러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로는 정어리 무리를 느릿하게 추적하는 범고래처럼 크라켄이 부서진 잔해를 밟으며 착실히 거리를 좁혀온다.
덩치가 큰 만큼 속도는 확실히 느리다.
시우와 데네브가 마음먹고 따돌리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민첩함이었다.
그러나 온갖 아비규환이 일어나는 그물 안에 함께 갇힌 형국이다.
시우와 데네브는 크라켄의 대응책을 상의하기 앞서 거대 날치 군집을 떨쳐낼 수밖에 없었다.
-촤르르륵!
순식간에 회전하는 시우의 창이 거침없이 달려드는 날치를 쥐어뜯는다.
코끝을 찌르는 비린내와 함께 깔끔하게 반으로 잘려나간 날치가 지붕 위에 처박혔다.
-으적 으적 으적
몸의 반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연신 입을 뻐끔이며 지붕을 갉아먹는 날치 대가리를 보고 시우는 질린 시선을 던졌다.
“아주 징글징글하네.”
시우의 예상 중 하나는 옳았지만, 하나는 틀렸다.
먼저 옳은 것 하나.
짐작대로 이 날치떼는 시우와 데네브에게 별다른 위협을 줄 수 없었다.
어미 개가 양산해냈던 검은 들개보다 쉽게 토벌할 수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배어나 가는 시우의 발치는 어느덧 조각난 날치의 몸뚱이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데네브의 경우 보랏빛의 반사광이 번뜩일 때마다 빽빽한 군집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렸다.
애초에 이것들은 도망치다 눈에 보이는 것을 물어뜯을 뿐 딱히 시우와 데네브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상에서 빗나간 것 중 하나.
그럼에도 날치떼는 몹시 성가시다.
이것들이 수만 마리에 불과하다 여겼던 것은 예단에 불과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바다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날치의 수는 얼핏 봐도 여섯자릿수를 훌쩍 넘어갔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날치는 물량공세의 무서움을 톡톡히 알려주고 있다.
운신의 폭이 극도로 제한될뿐더러, 가랑비에 옷 젖듯 차근차근 소모가 누적된다.
도시의 잔해를 가루로 만들며 천천히 전진해오는 크라켄 역시 당장 해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다.
“백작님! 저거 문어 얼마나 강한 건가요!”
조금씩 데네브 백작 쪽으로 이동해 고래고래 고함을 치듯이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굉음과 날갯짓 소리에 목소리가 묻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눈치챈 데네브가 손을 휘젓자 두 사람 사이에 라인이 연결되는 것이 보인다.
이어 데네브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주위 소음에 묻히지 않고 들려왔다.
“제가 먼저 공격해 볼게요. 어차피 이대로 도망만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괜찮으시겠어요?”
“언니가 없으면 여러모로 지장이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을 거에요. 심해의 마녀는 분명 강대했던 마녀지만 300년 전 케테르 공작에게 죽었으니까요. 그 당시 21 위계였다고 하니 사역마 한 마리 정도는 저 혼자도 어렵지 않을 거에요.”
사역마의 강함은 일반적으로 마녀의 강함에 비례한다.
비록 과거 심해의 마녀가 수많은 마녀의 저항에도 홀로 국가 하나를 가라앉힐 만큼 강대했다 한들, 현시점에선 그럭저럭 강했던 마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데네브는 믿음직한 말을 한 뒤 부탁해왔다.
“1분만 시간을 벌어줘요.”
“알겠습니다.”
붉은 가지는 없다.
하지만 비앙카를 토벌하게 된 이후 비약적으로 갯수가 늘어난 리본까지 동원한다면 1분 정도야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다했었지.
한 번 정도는 장모님 캐리로 날로 먹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피어라.”
시우의 등 뒤에서 리본이 피어나며 날치 디펜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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