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98화 (498/917)

#498

1.

희미한 소독약 냄새 같은 것을 맡으며 이것저것 검사를 했지만, 시간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별 걱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오긴 했는데.

막상 본격적인 건강검진 같은 것을 받으니 은근 신경 쓰인다.

무엇보다 코하브 백작의 표정이 검사 내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최근 아멜리아에게 마력 증폭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현상도 발견한 직후라 초조함이 생겼다.

“끝난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선 그렇네요. 옷 입으세요.”

시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옷을 입었다.

코하브 백작은 품에서 물부리와 연결된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얇은 입술 사이로 긴 연기가 늘어난다.

심란한 듯 눈을 감는 통에 먼저 물었다.

“문제가 발견된 건가요?”

“…아닙니다. 전혀 없어요.”

그렇게 말한 코하브 백작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마지못해 덧붙인다.

“아무 이유 없이 감각연동이 실패할 리는 없으니. 제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겠죠.”

적어도 코하브 백작이 보기엔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주요 혈관과 미세 혈관, 뼈, 근육, 신경 연동도 완료, 접화부 역시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다.

심지어 전신의 마력회로를 바탕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마력 회로의 형태를 추측, 인공으로 구축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근데 왜 감각 연동에 만큼은 이상이 있다는 건지 코하브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추측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난수 공간에서 팔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잃었는지도 상관이 있나요?”

“그곳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미관측 지대니까요. 당신 영체에 제 검사로는 판별하지 못할 미세한 오류가 생겼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문제가 점점 심각해져 가는 느낌.

시우가 난색을 보이자 코하브 백작이 딱 잘라 말했다.

“전 최상의 시술을 제공했어요. 제머나이 백작에게 받은 시술비는 팔꿈치 아래부터 날아간 왼팔의 의수 이식까지. 여기부터는 제가 책임질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네? 아직 감각이 느껴지질 않는데.”

“말했잖아요. 제 문제가 아니라고. 전 분명 영체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완벽하게 이식했어요. 그걸 명확히 고지하지 않은 것은 제머나이 백작입니다.”

뭔 개소리야 하고 말하고 싶은 걸 꾹 눌러담은 시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쉽게 말해 돈 받은 것 이상은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불로 돈을 내는 노래방도 서비스를 주는 마당에 사람 팔이 불구가 되게 생겼는데 비용 받은 부분까지만 처리하겠다니.

환자로서는 자연스럽게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만약 추가 비용을 지급하겠다면 어느 정도 추가될까요?”

하지만 코하브 백작과 일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코하브 백작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정수기 필터 교체도 아니고 팔을 갈아치우는 작업을 어정쩡하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코하브 백작은 툭 던지듯 답해온다.

“돈은 필요 없어요. 수지가 맞을지도 의문이고요.”

“…….”

“단, 당신의 몸에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습니다.”

코하브 백작의 눈이 시우를 향한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는 은은한 탐구심이 촛불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

“당신을 연구하게 해주는 대가로 방법을 물색해보죠.”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시우는 한숨이 나왔다.

뭔가 상황이 꼬여간다는 느낌은 있었다.

근데 이런 얄팍한 간계가 도사리고 있었을 줄이야.

뻔하다.

높은 확률로, 코하브 백작은 치료할 수 있음에도 어물쩍 상황을 미루고 있었다.

그녀가 밝힌 듯 시우의 몸을 연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연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체가 되는 것은 사절이다.

그래도 물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무슨 실험인가요?”

“영체란 낙인과 함께 부여되는 완벽한 신체. 같은 완벽이라도 남성과 여성의 것은 다양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그러니 신체 전반을 맵핑 해 볼 예정입니다. 감각 연동의 오류를 위해선 어차피 필요한 과정이겠군요.”

“…….”

가만 생각해보자.

이게 과연 나쁘기만 한 일일까?

시우의 영체는 수수께끼 투성이다.

마력 증폭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밝혀지지 않은 블랙박스나 다름없다.

코하브 백작의 실험에 협조해 이 몸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면 그게 마냥 나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노예 시절과 다르게 시우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들고 일어날 지인이 한둘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시우의 몸 특이 사항 중 하나 성교 시 마력의 증폭, 낙인을 뺏거나 덧그리는 능력 또 예소드 백작과 연구 중인 그걸 활용한 새로운 낙인 계승법.

이러한 요소에 마녀가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둘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측근이 아닌 이상 숨기고 있지 않은가?

시우는 코하브 백작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지금이야 코하브 백작이 샘플을 수집하는 기분으로 만족할지 몰라도 이런저런 비밀을 알게 되면 어찌 돌변할 진 예측 불가.

그 밖에 진실이 새어나갔을 때 사방에서 쫓아드는 마녀에게 된통 시달려야 하는 리스크도 꺼림칙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가보도록 해요.”

의외로 미련 없이 물러서는 코하브 백작.

인사도 없이 다시 연구에 몰두하는 코하브를 뒤로하고 시우는 그녀의 공방에서 나왔다.

“흠…. 타로 타운을 한번 찾아가봐야 하나?”

영체에 이상이 생겼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마녀라면 한 명 떠오르는 이가 있다.

치료 전문 마녀이던 19위계, 예빈 스미르나.

무의식 속 시우의 격렬한 반항으로 결정적인 치유는 케테르의 손으로 넘어갔다지만 그녀는 너덜너덜했던 시우의 몸을 치유해 주었던 은인이자 우수한 의사였다.

다만,  한번 찾아가야겠다고는 생각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던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좀 민망한 사이여서 말이지….”

예빈과 시우는 연인 관계라고 말할 만한 사이가 아니다.

서로 꽤 기묘한 첫 경험을 주고받긴 했으나 그 이후의 교류는 침대 위에서 보낸 이틀 정도.

그것도 기억을 되찾은 이후 아멜리아와의 극심한 트러블에 실의에 잠겼을 무렵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충동적으로 배꼽을 맞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꽤 지나고 시우 옆에는 여러 연인이 생겼다.

그리고 시우도 조금은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예빈 쪽에서 먼저 찾는다면 모를까 이미 연인이 여럿 있는 시우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문젠데….”

만난다고 해서 무조건 야리꾸리한 분위기로 넘어가리란 보장도 없다.

몸의 이상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었고 말이다.

“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배웅도 없이 계단을 내려오던 중 누군가가 길을 가로막았다.

그다지 의외의 인물은 아니었다.

에렐림 공작 24 위계.

풀네임은 블랑쉬 에렐림였더랬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고운 흑발과 은빛과 흰빛을 뒤섞어 놓은 듯한 신비로운 눈동자.

살결은 거의 내비치지 않는 주제에 찰싹 달라붙어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하얀 드레스는 굉장히 고혹적이다.

그 밖의 특이사항을 말하자면 170은 가뿐히 넘을 듯한 큰 키와 풍만한 가슴.

재판에서나 보았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막상 일대일로 대면하자 분위기가 남다른 사람임이 단박에 느껴진다.

일단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누가 뭐래도 일단 공작이고, 여기는 그녀의 저택이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에렐림 공작님.”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여왕의 포스.

코하브 백작 이상으로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인간미와 건조한 분위기는 경국지색의 아름다움마저 향기 없는 꽃으로 빛바래게 한다.

공작 본인은 그런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사실 시우는 그녀가 불편했다.

에렐림 공작에게 호의를 갖기엔 그녀와의 접점은 썩 기분 좋은 것이 아니던 까닭이다.

공작으로서 맡은 소임이라고는 해도 시우와 아멜리아에게 숙청의 창을 날린 장본인이었으며, 재판에서 보여주었던 차가운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또한 마녀 중에서도 유독 고지식한 정통파, 게다가 그 수장.

여러모로 대하기 어려운 것투성이인 것이다.

당장이라도 제 갈 길 가고 싶지만, 이 공교로운 만남을 우연으로 치부하기에 그녀의 저택은 너무 넓다.

아마 시우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

하지만 에렐림 공작은 아무런 말도 없이 오도카니 시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용건이 없으시다면 가봐도 괜찮을까요?”

“당신이 그 남자 마녀로군요. 메리골드 남작의 난동을 막아 세운.”

“그렇습니다.”

최대한 정중한 말씨를 유지하며 묻자 에렐림 공작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가슴팍에 손을 얹고 살짝 고개를 숙이는 에렐림 공작.

그녀의 목소리는 서늘한 유리 같았다.

“게헨나의 마녀를 대표해 헌신에 감사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멜리아가 폭주한 이유를 따지고 보면 원흉이기도 한지라 내심 찔렸다.

대충 인사를 받고 떠나려 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비켜설 기색이 없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감사 표시는 이것으로 끝났다는 듯 바로 본론에 들어서는 에렐림 공작.

“당신의 눈을 보고 싶어요.”

“눈이요…?”

“안대 뒤편의 눈을요.”

시우는 잠깐 망설였다.

다른 마녀와 달리 시우의 낙인이 새겨진 곳은 왼쪽 눈.

아마도 에렐림 공작은 그 외관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만….”

몸을 연구하게 해달라는 부탁에 비하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시우는 선뜻 안대를 벗고 눈을 떴다.

그러자 성큼 앞으로 다가오는 에렐림 공작.

거의 키스를 할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는 통에 시우는 재빨리 호흡을 멈춰야 했다.

고위계 마녀의 체취일수록 쉽게 반응하는 시우다.

24 위계의 에렐림 공작의 경우에는 어떨지도 모를뿐더러, 여기서 발정이라도 났다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시우의 왼눈을 빤히 바라본다.

세상이 두 쪽 나도 무표정할 것 같았던 에렐림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정확히 어떤 연유로 말미암은 일그러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경악일 수도 있고, 신비에 대한 경탄 혹은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지.

“이, 이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주한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격정으로 차오르는 것을 본 시우는 조심스레 에렐림 공작을 떨쳐냈다.

이유가 뭐가 됐건 싸늘할 정도의 한기가 등골을 스쳤기 때문이다.

심장이 임전 태세에 들어갔을 때만큼이나 쿵쾅거린다.

“…….”

에렐림 공작은 작게 읊조린 이후 휑하니 시우를 지나쳤다.

굳이 잡을 이유도 없긴 하다만 도저히 말을 붙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시우는 얼떨떨해 계단을 따라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왜 제가 아니라?”

에렐림 공작의 읊조림 중 희미하게 들렸던 일부를 소리 내 따라 해본 시우.

그녀의 격정이 어떤 방향을 향했는지 알 수 없었듯, 혼잣말의 의미 또한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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