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
1.
아멜리아의 가게 일을 돕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시우는 잠깐 볼일이 있다 둘러대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코하브 백작과 약속했던 의수를 조율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팔이 조금 회복되는 조짐이 보였더라면 솔직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시우의 왼팔은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에 일상생활의 큰 불편은 없지만, 사실대로 말해 구태여 마음의 짐을 더해주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팔에 대해 걱정을 느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 번 곤죽이 되었던 뇌도 어찌저찌 해결했는데.
왼팔 정도야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이본느 코하브 백작.
그녀는 고위 마녀로서는 드물게 따로 자신의 저택을 두지 않았다.
진리진명 학술회의 본관을 겸하는 에렐림 공작의 저택 별채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었다.
처음엔 너무 많은 마녀를 마주치게 되지 않을지.
그 결과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되지 않을지 염려했던 시우였지만 공연한 일이었다.
에렐림 공작의 저택 부지는 작은 캠퍼스 정도로 넓었던 데다가 마녀 대부분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마녀가 드나드는 만큼 길을 걷던 중 몇몇과 마주쳤는데 다들 신기하다는 듯 한 번 쳐다볼 뿐 노골적인 관심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 덕에 시우는 별채에 이르기까지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절간 같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조금 덜 화려한 트리니티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멈춰버린 교회당처럼 정숙한 분위기, 속세를 벗어나 연구에만 몰두하는 수도녀 같은 마녀들,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
아름다운 건축물이 우수한 관리 아래 유구한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고즈넉한 정취를 풍기게 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집이라는 것은 거주자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예소드 저택에서 느껴지는 밝은 푸근함이나, 제머나이 저택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우아함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에렐림 공작과 개인적으로 대화한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저택을 구경한 것만으로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갔다.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관철하는 구도자(求道者).
그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추종자로 알려진 코하브 백작도 전성기 아멜리아 이상으로 꽉 막힌 학자 인상이었지.
인도조차 제대로 닦이지 않은 넓은 들판 위로 듬성듬성 솟아있는 건물 중, 코하브 백작의 별채는 부지의 중심이자 에렐림 공작의 숙소인 ‘진리관’ 동쪽에 있었다.
백조가 내려앉은 듯 하얀 지붕이 인상적이다.
부지 내 다른 건물이 그렇듯 화려함을 뽐내는 대신, 외벽을 담쟁이덩굴로 뒤덮은 채 우뚝 선 3층 석조 저택이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타로 타운의 일반 가정집만큼이나 작은 문을 가진 별채.
그 옆의 문고리를 두들기며 노크했다.
-끼이익!
잠시 뒤 주근깨가 있는 40대 여성이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옷차림을 보나 나이대로 보나 이 저택에서 근무하는 메이드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후 8시, 백작님과 약속이 있어 찾아온 신시우라고 합니다.”
“…….”
“코하브 백작님 계실까요?”
“…….”
문을 열어준 메이드는 시우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더니 말 한마디 없이 앞장섰다.
환영 인사는커녕 아무런 설명도 없었기에 제자리에 서 있다가 뒤늦게 마룻바닥을 밟으며 뒤따른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건물 내부를 곁눈질로 살폈다.
명색이 공작의 별채다.
외관은 조금 허름해도 내부는 잘 꾸며져 있으리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침묵이 내려앉은 오래된 연구실 그 자체.
예전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아멜리아가 사용했던 연구동보다도 낡은 시설이다.
방(아마도 연구실 겸 공방)이 가지처럼 뻗어있는 복도를 지날 때도, 홀을 거칠 때도, 계단을 오를 때도 장식품다운 장식품은 황량하게 걸린 액자 두어 개가 전부.
제머나이 저택에선 형광등인 양 자주 볼 수 있는 샹들리에도 없고, 황량한 구석을 장식하는 생화도, 전시된 예술품도, 푹신해 보이는 소파나 화려한 테이블도 없다.
바닥에는 카펫은커녕 대리석조차 아닌 마루가 깔렸다.
목재임에도 삐걱거리는 소리나 먼지 한 톨마저 없는 점이 편집증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살풍경한 실내를 비추는 장식불 역시 보더 타운에서 쓸법한 양산품이었다.
워낙에 공간에 덩그러니 있었기에 작게 보였을 뿐일까?
넓이 자체는 생각보다 넓어 도달하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저기….”
“…….”
시우가 조용히 불러도 말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메이드.
-똑똑
3층을 도달해 가장 처음 보이는 문을 노크한 그녀는 시우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 조용히 사라졌다.
발소리 하나 나지 않는 것이 마치 유령 같다.
“들어오세요.”
겉보기이상으로 부드럽게 열리는 문과 그 너머로 들리는 코하브 백작의 목소리.
시우는 괜스레 헛기침하며 발을 들였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정면에 비치된 자단목 책상에 앉아 깃 펜을 정신없이 놀리는 코하브 백작.
“예정보다 15분 일찍 왔군요. 시간을 맞춰 주십시오.”
“아, 넵. 죄송합니다.”
상앗빛의 눈동자.
그녀의 말투만큼이나 똑 부러지는 검은 단발.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기에 변함이 없다.
시우가 조금 놀란 것은 공방의 풍경이었다.
마녀의 공방보다도 먼저 떠오른 말은 인형사의 작업실.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나름 3층 저택인데 복도가 원룸처럼 좁은 이유가 있었다.
벽을 허물거나 최대한 천장을 높게 해 개방감을 주는 대신 모든 공간을 공방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듯 효율을 추구해 건축된 것 같았다.
그 넓은 공간이 난잡해 보일 만큼 다양한 부위의 마네킹이 이리저리 걸려있고, 선반에 처박혀 있고, 바닥을 뒹굴고 있다.
아마도 그녀의 전공 분야인 ‘자기 의체’겠지.
절단면만 봐도 일반적인 마네킹은 아니었다.
실제 사람의 팔다리를 잘라놓은 것처럼 그로테스크하지는 않지만 정교하게 구현된 혈관이나 뼈, 관절 따위는 혼자였더라면 오싹함을 느낄 정도다.
“…….”
“그, 검진받으러 왔습니다.”
“…….”
코하브 백작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어디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시우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는다.
설마 15분 일찍 왔으니 그만큼 기다리라는 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자 코하브 백작은 짧은 한숨과 함께 턱짓했다.
“…앉아서 기다리십시오.”
전에도 느꼈지만 굉장한 원리원칙 주의자인 것 같다.
시우는 소파에 앉혀진 마네킹을 조심스레 치우고 앉았다.
정확히 15분가량이 흘렀을 때.
코하브는 단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듯 저번에 보았던 공구 상자가 있다.
아무말 없이 시우의 옆으로 걸어오더니 주섬주섬 상자를 펼쳐 보이는 코하브.
최근 들어 이런 삭막한 분위기는 익숙지 않았기에 작게나마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여기 고용된 사용인은 아까 절 안내해주셨던 한 분인가요?”
“그게 왜 궁금하죠?”
“오는 내내 한 분 밖에 마주친 적이 없어서요.”
“맞아요.”
“굉장히 과묵하신 분이더라고요.”
스몰톡 시도에 조금 의외라는 듯 시우를 슬쩍 보더니 마저 공구를 늘어놓는 백작.
그래도 말을 거니 곧잘 받아준다.
“진리진명 학술회는 마녀를 위한 탐구와 사색의 장입니다. 사용인은 근무 중 허가 없이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어요.”
“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은 굉장히 차가웠다.
코하브 백작의 말투야 개성이라 치더라도 내용이 그렇다는 말이다.
수능 앞두고 히스테리 부리는 고3 딸도 아니고 집중해야 한다고 말도 못 하게 하다니.
유난 떠는 게 아닌가 싶은 시우였지만 코하브는 그것이 몹시 지당하다는 양 설명조차 덧붙이지 않았다.
하긴 예소드 백작에게 들었던바 있다.
진리진명 학술회는 에메랄드 타블렛과 더불어 가장 많은 마녀가 속한 게헨나 최대의 학파.
그 성격은 굉장히 보수적이며 정통파 마녀에 가까운 자들이다.
밖으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성 마법만을 탐구하는 마녀들.
그저 그런 학회원이라면 몰라도 부학회장인 코하브 백작쯤 되면 전근대적인 귀족의 특권 의식을 한껏 장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마녀가 스승님이나 샤론 혹은 쌍둥이 같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끔 이런 마녀들을 보게 되면 괜스레 불편해진다.
“상태는 어떤가요?”
“외적으로는 지난번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감각 연동 체크를 해보겠어요. 따끔할지도 몰라요.”
코하브는 예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장침을 꺼내 들어 시우의 왼손을 푹 찔렀다.
손바닥을 꿰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오는 뾰족한 은침.
마술 트릭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꿰뚫었다는 걸 아는 이상 통증이 없더라도 오싹해진다.
“여전히 감각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코하브 백작은 미간을 찡그렸다.
전에 봤던 양피지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듯했지만 구겨진 그녀의 미간은 펴질 기미가 없었다.
“코하브 백작님, 이거 의수인 거죠?”
“그래요.”
“떼었다가 다른 것으로 붙여보면 안 될까요?”
“시간 낭비입니다. 의수 기관의 문제는 일절 없는 것으로 표기되고 있어요. 이 경우 문제가 있다면 제가 아니라…. 당신이겠죠.”
코하브 백작에게선 자신의 마법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묻어 나왔다.
오히려 ‘너 왜 그러는데?’하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본다.
“예를 들자 면요?”
“영체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그런…. 영체는 어지간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나요?”
“그렇죠. 어지간하다면.”
영체는 내구도는 물론 회복력까지 일반적인 신체를 아득히 웃돈다.
영체의 구성 자체가 무너지지 않은 이상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회복해버리는 것이다.
코하브 백작은 주섬주섬 기기들을 상자에 다시 집어넣었다.
“이걸로 끝인가요?”
“아니요, 좀 더 제대로 된 기기로 정밀 검사를 할 겁니다. 너무 기대는 말아요, 저는 어디까지나 의체 전문이니. 따라오세요.”
코하브 백작이 안내한 곳은 같은 방구석 당구대 정도 사이즈와 높이를 지닌 작업대였다.
주위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의체들이 널려 있고, 요상하게 생긴 끈과 호스가 정리가 덜 된 전선처럼 주렁주렁 드리워 있었다.
“벗으세요. 윗옷만.”
이건 뭔가 익숙한 전개?
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코하브 백작의 표정과 눈빛, 말투를 보고 들으면 엄한 생각이 쏙 들어갈 것이다.
“상처를 많이 입었군요.”
“알아보시네요.”
일전에 있었던 일은 말하기도 입아프고 비앙카와의 격전, 아멜리아 구출극 등.
최근에만 해도 꽤 험하게 몸을 굴렸긴 했다.
그러나 흉터마저 깔끔하게 회복해버리는 영체의 성능에 얼핏 봐서는 티도 나지 않을 텐데.
코하브 백작은 단박에 그것을 짚어냈다.
그녀는 작업대 천장에서 드리웠던 전극(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을 시우의 몸 여기저기에 붙이고 본격적인 검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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