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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도시-495화 (495/917)

뭐야 이 여유.

찌르는 대로 트루 데미지를 받으며 발끈하던 아멜리아는 없었다.

두툼한 이불을 때리는 것 같은 타격감 제로의 아멜리아가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샤론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을 느꼈다.

남녀는 하룻밤 만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걸 알면서도 별다른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큰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론 양의 충고는 요긴했어요. 시우가 정말 좋아하던데요?”

“충고?”

딱히 충고를 한 기억은 없다.

그저 시우와의 관계가 어떤지를 서로 자랑하며, 조금은 낯뜨거운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이다.

가슴을 좋아한다는 둥, 가슴으로도 기쁘게 해준다는 둥, 뭐든지 해준다는 둥, 밖에서 한다는 둥.

홧김에 내지른 발언들은 아멜리아를 쿡쿡 찔렀고 그 결과 아멜리아는 거의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함께해 온 기간이 다른 만큼 손 패에 담긴 족보의 사이즈가 달랐던 것.

아멜리아의 가슴이 딱히 커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짧은 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플레이를….

“실례할게요.”

그때.

아멜리아의 상체가 샤론에게 기운다.

“뭣…!”

깜짝 놀라는 샤론의 손목을 슬며시 움켜쥐고 점점 가까워지는 아멜리아의 얼굴.

아멜리아는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요정같이 아름답다.

기묘한 여유 속에서 묻어나오는 꿈을 꾸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

동성조차 단숨에 포로로 사로잡을 것 같은 색기가 훅 풍겨오자 샤론은 당황한 듯이 몸을 굳혔다.

설마 키스?

키스하려는 건가?

시우가 위에 있는데?

뭉게뭉게 샤론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당신을 보게 된 이후, 첫눈에 사랑에 빠졌어요. 시우는 진작에 잊었고요.’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저와 당신뿐이잖아요. 아주 잠시만, 잠시만 당신의 아리따운 입술 위에서 쉬었다 가게 해줘요.’

아주 엉뚱한 상상은 아니었다.

마녀 중엔 유독 레즈비언이 비율이 높은 편이다.

델라 레드클리프 그 미친년도 샤론의 몸을 호시탐탐 노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무리 아멜리아가 예쁘다고 해도 샤론에겐 시우가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샤론의 목덜미 근처를 가볍게 맴도는 아멜리아.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귀밑머리를 간질이고.

샤론이 이걸 밀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때쯤 아멜리아가 슬며시 맞잡았던 어깨를 놓아주었다.

“샤론 양, 샤론 양의 몸은 분명 여성스럽고 매력적이에요. 저에겐 없는 매력이죠.”

귓전에서 나지막하게 울리는 아멜리아의 목소리.

“하지만 전 시우에게 그 이상의 것을 줄 수 있어요. 전처럼 허무하게 당할 거라고는 착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목덜미 부근에서 속삭이던 아멜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 머리카락 등 신체 각부에서 나는 체취를 맡았다.

그제야 샤론은 아멜리아가 하는 것이 맞춤 향수 제작을 위한 일련의 정보 수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멜리아의 색기 공격에 잠깐 당황해 선제를 뺏겼지만 이대로 멍하니 당해줄 생각은 없다.

샤론은 정신을 차리고 날카롭게 쏘아 올렸다.

“대체 뭘 했길래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데요?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한 것 같은데. 시원하게 푸시죠?”

“그야 어렵지 않죠.”

저번처럼 자랑스럽게 전공을 자랑하려던 아멜리아는 입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

분명 시우가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일을 찾아냈고, 이것저것 많이 하기도 했는데 막상 샤론에게 말하려니 세상 이렇게 민망한 플레이일 수가 없다.

차라리 고양이 흉내를 낸다거나, 밖에서 영차영차 한다거나 하면 상관이 없는데.

청소 시범, 몸을 교보재로 사용한 성교육, 부교수 상황극이라니.

그걸 어떻게 제 입으로 말하란 말인가?

“…아, 아, 아무튼요. 이것저것, 이것저것이에요.”

“갑자기 뭐에요? 전에는 다 이야기했으면서. 저도 다 얘기했었잖아요!”

“그냥 대단한 걸 했어요…! 샤론 양은 흉내도 못 낼 대~~~~단한 걸!”

실컷 불안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비밀 엄수 독점이라니.

완전 비겁하지 않은가?

아멜리아를 향해 쌓여가더너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샤론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한다.

“뭐, 됐어요. 오늘 밤에 시우한테 직접 들으면 그만이죠.”

“네?!”

아멜리아는 청천벽력 같은 샤론의 발언에 입을 떡 벌렸다.

시우에게 직접 듣겠다? 그것도 밤에?

그가 아멜리아의 존엄성에 관련된 문제를 술술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그러지 않겠지만 샤론의 과격한 발상 자체가 충격적일 따름이다.

“‘네?!’라뇨? 저 아멜리아 님에게 많이 양보해줬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쭉 독점하실 생각이었어요? 시우는 아멜리아 님의 것이 아니에요.”

“알아요…. 하지만…! 오늘 시우는 저랑 약속이 있어요. 거기에 다른 연인과의 관계를 베갯머리에서 캐묻다니. 탕녀나 할 짓이네요.”

“아멜리아 님이야말로 욕심쟁이처럼 굴잖아요? 몇 주 동안 줄곧 같이 지냈으면 만족하실 줄도 알아야죠!”

“샤론 양은 몇 달 동안 같이 지냈다면서요.”

“적어도 다른 사람의 몫까지 저는 독점하려고 들지 않았어요!”

처음의 점잖은 탐색전이 단숨에 끝났다.

어째 상성이 잘 맞지 않는 만큼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두 사람.

아멜리아는 샤론의 체취 점검을 재빠르게 완료한 뒤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어떻게요?”

“시우가 결정하게 하죠. 다음 일은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당장 오늘 밤을 누구와 보낼지.”

“그건 아멜리아 님한테 훨씬 유리하죠!”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멜리아는 정말 멍청한 것이다.

샤론은 눈썹을 찡그리며 홧김에 말했다.

“제가 유리하다니, 저는 어디까지나 공평한….”

“시우가 지금 그쪽 신경 엄청 쓰는 건 알죠? 그런데 모진 말 하면서 저한테 오겠어요? 나 참, 애초에 시우가 그 고생을 한 게 누구 때문인데….”

딱딱하게 굳은 아멜리아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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