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94화 (494/917)

#494

1.

시우를 독점하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그것을 알기에 쌍둥이와 아웅다웅 거리면서도 제법 건전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연애에는 아주 젬병인 티페레트 공작님을 도와 이벤트 준비를 함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우가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 꽁냥거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대인군자는 아니다.

특히 아멜리아에게는 유독 마음의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아멜리아와 함께한 시간이 적어서일 수도 있고, 그녀가 시우를 위기에 빠뜨린 것을 눈앞에서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샤론은 한 번쯤 아멜리아에게 사과하기로 다짐했다.

지난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아멜리아에게 시우와의 관계를 과시하면서 이죽댔던 것은 감정과는 별개로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얼굴을 맞이한 채 사과도 할겸 꽤 비싸다고 알려진 아멜리아의 향수까지 무리하게 예약한 것이다.

하지만 문 틈새로 시우와 키스하려는 아멜리아를 보는 순간 욱하는 심정을 참지 못해 방해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 몹시 볼썽사나운 표정일 것이라는 것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흐르는 정적 속.

샤론은 뚜벅뚜벅 걸어가 아멜리아의 맞은 편에 앉았다.

위치보드를 사이에 둔 플레이어처럼 둘 사이의 첨예한 눈빛이 오간다.

둘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시우는 그 사이에서 머쓱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두 사람 모두에게 용인받은 관계라 하더라도 아멜리아와 키스하려던 모습을 샤론 앞에서 보였으니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화살이 시우에게 돌아온다든가, 둘이 뾰족하게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지만, 아까부터 압박감이 장난 없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멜리아였다.

툭 던지는 듯한 사무적인 지시가 날아온다.

“조수, 시향판을 준비해주세요.”

“네, 샤론. 마실 거 필요하면 말해줘.”

“됐어, 고마워.”

아멜리아의 지시에 시우는 매대 뒤편에 상자를 샤론 앞에 펼쳐 보였다.

아멜리아의 향수는 제작 향수다.

고객의 평소 옷차림, 선호하는 패션과 색감, 체취, 피부의 온도 및 산도, 심지어는 마력의 파동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맞춤제작 된다.

그러나 다양한 향료의 배합과 조율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향은 그야말로 천변만화.

아멜리아가 어울린다고 생각한 향이 반드시 고객의 마음에 드는 향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시향을 통해 불호 요소를 골라내고, 마음의 드는 향기의 범위를 좁힌 뒤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계승 직후부터 빚에 쪼들려 살았던 샤론이다.

여자의 향수는 스킨이면 충분하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오던 그녀가 이런 작업을 경험해봤을 리 없다.

“…….”

샤론은 앞에 펼쳐진 수십 장의 하얀 손수건과 아주 작은 여러 앰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시우는 만년필과 표 한 장을 앞에 건네며 설명해 주었다.

“하나씩 다른 계열의 향료를 뿌려줄 건데 마음에 드는 거랑 마음에 들지 않는 거를 0~20까지 채점해주면 돼.”

“응, 고마워. 해볼게.”

시우의 도움을 받은 샤론은 본격적으로 시향을 시작했다.

사실 여기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뭔가 한바탕 벌일 기분이었는데 막상 좋은 향기들을 맡으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다.

이게 아로마 테라핀가 뭔가 하는 그런 걸까?

시우는 지금껏 해왔던 대로 작게 자른 손수건 위에 각기 다른 계열의 향료를 차례로 뿌려가며 샤론에게 건네주었다.

연일 이것만 하고 있기 때문인지 꽤 능숙한 손길이다.

무난한 꽃향기를 선보이는 프로럴 부케, 싱글 플로럴 계열.

과일의 싱그러움과 달콤함을 담고 있는 프루티 계열.

라임이나 오렌지, 텐저린처럼 감귤류의 상큼함을 담는 시트러스 계열.

풀잎이나 이끼의 향이 베이스가 되는 그린 계열.

다양한 나무의 향을 머금은 우디 계열.

이슬이 앉은 나뭇잎을 그을린 듯한 시프레 계열.

예소드 백작이 애용하는 파우더리 계열.

상쾌한 물향을 품는 아쿠아 또는 바다향이 한층 강한 오셔닉 계열.

그 밖에도 동양적인 관능을 품은 오리엔탈, 향신료의 향을 담은 스파이시, 담배와 가죽향을 품은 타바코 레더, 디저트처럼 달짝지근한 향을 풍기는 구르망.

또 시프레, 푸제르, 머스크 계열 등등.

샤론이 온갖 향기를 맡고 점수를 매겼을 무렵에는 훌쩍 30분이 지나 있었다.

“시우, 오렌지 P3, 베르가못 R2, 라임 R22, 아이리스 P2, 레진 O4….”

시우가 건넨 결과표를 받아든 아멜리아는 수십 가지의 향료를 시우에게 읊어주었다.

“…까지 부탁할게요.”

“네.”

기억력에는 나름의 자신이 있는 시우기에 곧장 암기해 창고로 올라갔다.

시우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오랜만이네요, 샤론 양.”

“오랜만이네요, 아멜리아 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아멜리아는 매대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시키는 대로 하는 샤론.

온갖 에센셜오일이 마법 시약처럼 담겨있는 매대 안쪽은 연금술사의 실험실 혹은 바텐더의 진열장을 연상시켰다.

“선호하는 취향이 확실하네요. 평소에는 주로 어떤 옷을 입나요?”

그 시점에서 놀란 점이 있다면 샤론을 대하는 아멜리아의 반응이 너무나도 태연했다는 것이다.

분명 저번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오기는 바짝 차올랐는데 확신이 없는 듯한 모습 쫓기는 듯한 조급함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에 만난 아멜리아의 모습은 일전과는 전혀 달랐다.

샤론의 눈을 반듯이 쳐다보면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고, 손짓과 말투에도 여유가 넘쳤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모든 여유에는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아멜리아를 저리 바뀌게 만들었을까?

“보시다시피, 항상 입는 것처럼 입고 왔어요.”

“전에는 좀 더 편해 보이는 복장이었는데.”

“그때는 수업 중이었으니까요.”

사실 샤론이 입은 드레스는 그녀가 가진 옷 중 제일 비싼 것으로 이틀 전에 플로라 양장점에서 큰 맘 먹고 맞춰 입은 것이었다.

물론 그걸 내색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태연한 모습을 보이며 아멜리아를 탐색한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보이네요?”

무심하게 툭 던져온 말에 정신을 차린 샤론은 아멜리아가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우랑 꽤 거리감이 있어 보이네요? 호칭도 조수이고 말투도 딱딱하시고.”

아멜리아가 겉보기보다 약한 심성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에 의표를 찔렸기 때문인지 말이 조금 세게 나갔다.

어투 자체도 꽤 빈정거리는 느낌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보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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