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
1.
말로만 들어봤던 행운의 마녀, 페리윙클은 아멜리아가 본 마녀 중 가장 세련된 미인이었다.
양 귓불에 고상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흑진주 귀걸이, 그것도 모자라 귀 연골을 뚫어 착용한 피어싱이 세 개.
길쭉한 손가락에는 서로 다른 귀금속을 엮어낸 반지가 몇 개씩이나 끼워져 있다.
금화 자루를 흔드는 것처럼 짤랑이는 팔찌도, 보석으로 치장되어 반짝이는 드레스도 어스름한 촛불에 빛난다.
저렇게 장신구를 잔뜩 두른 채 호화롭고 요란하게 치장해도 전혀 경박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페리윙클이 두르고 있는 분위기가 몹시도 부티나고 화사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가 뜻밖의 강적 등장에 긴장한 가운데 페리윙클은 묘한 눈길로 아멜리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
“그래요.”
“저도 주문제작 예약했으니 다음에 찾아가면 잘 부탁할게요.”
“…….”
형식적으로 나누는 인사말.
아멜리아가 시우와 가까워 보이는 페리윙클을 경계하는 것과 달리 정작 페리윙클은 별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시우와의 관계는 속궁합이 잘 맞아 클로버를 몇 개쯤 던져줬어도 아깝지 않았던 섹파.
조금 더 덧붙이자면 뒷구멍을 개통해 준 변태 섹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더 나아간 관계를 원하지도 않았다.
어딘가에 매여있다는 것은 딱 질색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서로 달콤한 것만을 취하는 것이 최고의 남녀 관계 아닌가?
하는 짓이 귀여워서 여러모로 도와주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소문처럼 아름다우시네요. 시우 재주도 좋아?”
페리윙클의 마법은 굉장히 독특하다.
강력한 행운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힘.
페리윙클보다 강한 마녀를 이길 수는 없을지언정 세상이 멸망해도 반드시 살아남을 강운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런 특성은 백작이고 공작이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마이페이스를 지니게 하는데 한몫하였다.
따라서 페리윙클은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아멜리아를 찬찬히 살폈다.
“흐음~”
온실처럼 유리돔으로 덮여있는 탓에 한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은 말쿠트 갤러리다.
그런데 아멜리아는 마치 알몸에 대충 롱패딩만 걸치고 나온 여자처럼, 망토로 몸을 꽁꽁 감추고 있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페리윙클로선 쉽게 그림이 나왔다.
요컨대 ‘그런’ 플레이 중이라는 거다.
“어머머, 대담하기도 하셔라. 겉모습은 얌전한 공주님 같은데. 아니면 네 취미니?”
“무슨 말씀이세요?”
어리둥절해하는 시우와 재차 상황 파악이 완료된 페리윙클.
평소라면 그다지 위축될 리 없는 시선이지만 살짝 흥분했던 아멜리아는 뒤늦게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페리윙클이 아멜리아의 상태를 파악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아니야? 나는 영락없이 네가 시킨 줄로만 알았는데…. 보기보다 꽤 적극적이시네?”
빙글거리는 시선이 몸을 훑자 아멜리아는 쭈뼛 머리카락이 서는 것을 느꼈다.
시우의 취향을 고려해 준비한 이벤트라 한들 자신이 벌이고 있는 짓이 경박하다는 자각 정도는 있다.
그걸 시우도 아닌 제삼자에게 들킨다는 것은 아멜리아가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식은땀이 다시 흐르며 뺨이 굳었다.
마음의 준비를 다지고 시우 앞에서 공개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 의해 까발려지는 것은 전혀 느낌이 다르다.
아멜리아는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 카페에 발도 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쿵쿵 가슴을 두들겼다.
사색이 된 아멜리아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시우를 보고 페리윙클은 나머지 그림을 완성했다.
“이거이거, 생각보다 커다란 방해꾼이 되어 버렸나봐”
“아까부터 이상한 말씀만 하시네요.”
별 생각 없을지라도 상대가 저 정도로 도전적인 눈빛을 보인다면 받아쳐 주는 것이 페리윙클의 성정.
그러나 오늘은 이쯤에서 손을 털고 나오기로 했다.
비록 남작위를 자진 반납했다 해도 상대는 23 위계.
되는대로 산다고 해서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아무튼, 빚은 나중에 변제하기로 하고 나는 가볼게.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네, 들어가 보세요.”
“그럼, 메리골드 양도 안녕히 계시길.”
페리윙클은 마지막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더니 살짝 윙크하며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함구할 테니 걱정 말라는 몸짓이다.
아멜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묘한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엉망진창이었다.
2.
카페를 나서 다시 단둘이 산책에 나선 두 사람.
망설이던 아멜리아가 시우에게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이 행운의 마녀인가요?”
“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죠.”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식혀준 까닭인지 아멜리아는 뒤늦게나마 페리윙클의 말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
‘빚은 나중에 변제하기로 하고’라는 말이나 ‘은혜 갚기는 언제 할 거야?’라고 채근하던 페리윙클의 모습.
정황상 시우는 그녀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며 갚을 빚이 있다는 느낌이다.
“어떤 도움이요?”
“음, 호문쿨루스에게 습격당할 뻔했을 때 구해주신 적도 있고, 예장을 나눠주신 덕택에 몇 번 목숨도 건졌고 친구 사업도 부탁으로 도와주셨어요.”
“감사한… 분이네요.”
“그렇죠.”
대부분의 마녀는 자기중심적이다.
조건 없이 남을 돕는 마녀는 없다.
심지어 그것이 생명을 여러 번 구해내는 정도의 공로라면 누구도 맨입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페리윙클은 시우에게 무엇을 요구했을까? 라는 생각.
더불어 그 외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친근해 보일까? 라는 생각이 섞이자 마음이 좀처럼 편치 못했다.
“그래서 그녀가 뭘 요구했었나요?”
평소 시우의 연인 관계를 생각하면 어쩐지 그 답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눈치는 안 봐도 괜찮아요.”
“…관계를 몇 번 가졌습니다. 지금은 정리했어요.”
돌아온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몸과 마음이 항상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섹스와 사랑은 하나가 아니다.
분명 둘 사이의 교집합이 있지만 사랑 없는 섹스가 존재하는 건 타로 타운의 벨로벳 창관만 봐도 알 수 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그러나 약간의 질투만은 어쩔 수 없다.
샤론과 쌍둥이에게 느꼈듯 불타는 승부욕도 어쩔 수 없다.
“좋았나요?”
“…네?”
그래서인지 경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다.
다만 홧김에 내뱉었다 한들 남사스러움까지 훌훌 털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지라 아멜리아의 목소리를 모기처럼 조그맸다.
“그녀와 관계를 가졌을 때…. 좋았나요?”
비단 페리윙클과의 관계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샤론, 오딜 오데트, 티페레트, 예소드 백작까지 포함된 광의적인 질문이었다.
시우의 옆에는 아멜리아 외에도 여자가 많다.
지금껏 그의 연인들과 부딪혀 본 결과 아멜리아는 딱히 내세울 것도 마땅치 않은 소소한 관계만을 그와 맺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맺었는지 전부 말해주세요.”
도발적인 말투와 동시에 힘이 없던 아멜리아의 목소리도 점점 의지를 되찾는다.
설마 아멜리아가 대놓고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던 시우가 당황하는 사이.
아멜리아는 제 마음속의 생각을 갈무리했는지 점점 더 선명한 눈동자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듣고 싶어요. 꼭이요.”
“…….”
“대신 거짓말은 하지 말아줘요.”
“…알겠습니다.”
아멜리아의 질문은 사실 상식적이진 않다.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헤집는 질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주변에 관계를 맺은 여자가 많다는 것은 아멜리아는 물론이오 다른 연인들에게도 찔리는 부분 중 하나였다.
이미 정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페리윙클과의 관계를 아멜리아에게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쓰레기짓인 것도 맞고, 비겁한 행동인 것도 많다.
그래서 쌍둥이가 예소드 백작의 일로 그랬듯이 아멜리아가 화내고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조금, 강압적으로 했습니다.”
“강압적으로….”
“제 리본으로 묶었어요.”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시시콜콜 털어놓아야 하는 뻘쭘함.
그 와중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멜리아의 표정이 무척 신경 쓰였다.
지금 그녀는 시우의 처분을 고민하는 것처럼 굉장히 고뇌하는 표정을 짓는 중이다.
“그리고요?”
시우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페리윙클의 뒷구멍을 개통해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남녀관계에 무지한 아멜리아 앞에서 차마 그런 짓을 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뒤…로 했습니다.”
“뒤로…?”
예상대로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빨리 평정을 되찾는 아멜리아.
대신 얼굴을 붉힌 채 조곤조곤 말한다.
“뒤에 있는 구멍이란… 말이겠죠? 저희가 한… 그곳 말고…?”
“…그렇습니다.”
“그다음엔?”
“엉덩이를…. 손으로 좀 많이 때렸네요.”
“엉덩이를? 주먹으로요? 그녀가 뭔가 잘못했나요?”
“아뇨, 주먹은 아니고요. 손바닥으로….”
대충 이런 살 떨리는 대화들.
페리윙클 누님과의 성관계를 동의도 없이 털어놓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녀라면 이해해 줄 것이다.
아마 쩔쩔매는 시우의 모습이 우스웠겠다며 깔깔 웃겠지.
그렇게 듣게 된 두 사람의 관계 전적에 아멜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가 아득해졌기 때문이다.
3일 내내 미친 듯한 광란의 섹스.
묶어놓고 실신할 때까지 두 구멍을 번갈아가며 박아댄 것도 모자라 실신해도 자지로 억지로 깨워내는 짐승 같은 섹스.
아멜리아 역시 편린을 맛본 적 있다.
시우의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시트를 더럽혔다고 사과하며 가냘프게 울어 댔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거면 된 것으로 생각했다.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너무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
그러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아멜리아의 분전은 시우의 요구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왜 나한텐 그렇게 안 해줄까?
왜 나한텐 그렇게 요구하지 않을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과연 시우를 만족하게 한 적이 있긴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입이 삐쭉 튀어나온다.
“따라와요.”
아멜리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재빨리 시우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나아갔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로.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