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76화 (476/917)

1.

태아처럼 옆으로 몸을 웅크려 누인 데네브는 침대 시트를 입에 문 채 허덕이고 있었다.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향유를 듬뿍 머금은 채 은밀한 구멍 속을 헤집고 있다.

그 행위가 무엇인지는 새삼 설명하기도 입 아프다.

“음...흐음… 흐응…. 아….”

처음엔 그저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감정이 앞서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으려 했다.

언니와 신시우를 감쪽같은 변명과 능숙한 언변으로 속여 넘겼다.

언니도 신시우도 그 날의 흐트러졌던 데네브의 모습이 연기인 줄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데네브 자신만은 속일 수 없었다.

성숙한 마녀가! 남자에게! 불경한 곳으로! 기분이 좋아져 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날뛰며 매일 같이 독한 술이 가득 담긴 술잔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렇게 거나하게 술에 취했을 때.

무심코, 신께 맹세하건대 무심코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곳을 어루만지던 데네브는 그 날의 감각을 다시 한번 느꼈다.

몸이 간질간질 달아오르는, 입안이 마르고 탁한 한숨이 기분 좋게 목구멍을 긁으며 신음이 되는….

전신의 세포가 깨어나 활성화되는 듯한 상쾌하고도 끈적한 쾌락.

솔직히 그가 선보였던 본격적인 감각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데네브의 일과에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었다.

사실 일정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느긋하게 목욕을 즐길 때, 혹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 이제 슬슬 마무리에 접어드는 마법 연구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 아주 잠깐 비밀스러운 손장난을 할 뿐이다.

물론 처음에는 자괴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쾌감을 얻는 정석적인 구멍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고, 또 이런 쾌감을 알게 된 계기 또한 비범하니.

그러나 두루뭉술한 자괴감은 멀고 달콤하고 직관적인 육체의 기쁨은 가깝다.

그에게 추가로 관계를 요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딱히 쌍둥이에게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다.

성적인 유흥 정도야 이미 많은 마녀가 탐구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데네브가 이따금 명주나 미식을 즐기는 것처럼 취미에 한가지가 더 추가됐을 뿐이다.

이렇듯 데네브는 배고픔처럼 올라오는 성욕을 느낄 때면 간략한 합리화를 거친 후 ‘취미’를 이어가게 된 것이다.

데네브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 침대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여기에서 신시우와 검증을 했었지.

거사 이후 마법으로 한 점의 오탁도 남기지 않고 세탁과 탈취를 했지만, 어째서인지 이 순간만 되면 훅 수컷의 체취가 번져오는 기분이다.

“하아....”

데네브는 애달픈 한숨을 쉬며 무심코 그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의 말캉한 혀가 거침없이 안까지 파고들던 순간.

손가락과 비교하기조차 죄스러운 열기, 굵기를 지닌 단단한 물건이 삽입되던 순간.

인생에 다시 없을 치욕이자 굴욕.

그는 발버둥치는 데네브를 찍어누르며 거칠게,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격렬하게 이 몸을 탐했었다.

“감히…. 감히…. 나를….끙….”

그 순간 데네브는 위세 높은 백작도, 지혜로운 대 마녀도 아니었다. 그저 한 마리의 가련한 사냥감일 뿐이었다.데네브가 어디 가서 그런 대접을 받겠는가?

이 게헨나에서도 제머나이 가문을 소홀히 대접할 수 있는 마녀는 몇 없었다.

괘씸한 마음이 뭉게뭉게 솟는 것과는 별개로 역설적으로 데네브의 몸은 더 뜨겁게 달아오른다.

데네브는 다시 한번 몸을 꿈틀하며 시트를 꽉 물었다.

솔직히 그때와 비교하자면 하잘 것 없는 감각이었다.

비교하자면 수십 개의 금화를 쏟아부어 터뜨리는 불꽃놀이와 소소한 폭죽 정도의 차이랄까.

그럼에도 속옷은 축축하게 젖고 몸은 바들바들 떨리며 환희에 젖는다.

“三 O... ”

잇새로 새어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끝으로 데네브의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만족스러운 식사 이후 찾아오는 식곤을 즐기는 표정처럼 나른하게 퍼져있던 데네브는 이내 마법을 통해 몸과 시트를 정갈하게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마법이 추가된다.

방음의 마법이다.

노래를 자성 마법으로 삼는 데네브에게는 어린아이 장난만큼이나 단순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히스테리의 시간.

“아!!! 짜증나!!!!”

데네브는 폐부에 있는 소리를 한껏 내지르며 침대 위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내려쳤다.펄펄 첫눈처럼 나부끼는 깃털에도 개의치 않고 난동을 부리는 데네브.

아무리 이런저런 방법으로 합리화를 끝냈다고 해도 그녀는 긍지 높은 게헨나의 백작이다.

한껏 굶주렸을 때라면 몰라도 해피 타임을 통해 갈증이 해소된 지금은 얄팍한 눈속임에 균열이 가기 마련이다.

실은 이 행위가 굉장히 남사스러우면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과 데네브가 이 행위에 다다르기까지의 전말 역시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 진한 성녀타임에 뒤섞여 데네브를 쪼아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데네브는 쏟아지는 화살 세례 같은 자괴감을 위해 하나의 방패를 마련했다.

“신시우! 이 몹쓸 자식!”

이 자리에 없는, 그러나 방금까지는 데네브의 머릿속에서 맴돌던 사내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에요!”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데네브가 쌍둥이의 남자 문제를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검증을 거칠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이 치욕스러운 감정을 홀로 감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데네브는 베개를 퍽퍽 때리며 울분을 풀었다.

나중에 그를 다시 보면 정강이를 걷어차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2.

겨우내 햇살에도 채 녹지 못했던 눈송이가 꽃처럼 얼어붙어 앙상한 가지에 매달렸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이 눈꽃도 보다보면 나름의 흥취가 돋는 법.

아멜리아와 시우는 그 사이를 거닐었다.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있었으며 간혹 간지러운 웃음을 지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것을 빤히 지켜보는 세 쌍의 눈동자가 있었으니.

샤론, 오딜, 오데트다.

여느 때처럼 원소 수업을 진행하던 강의실은 백작가의 중앙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창가 쪽에 앉았던 오딜이 시우와 아멜리아를 발견한 이후로 수업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선생님인 샤론도 학생인 오딜, 오데트도 둘의 데이트를 훔쳐보는 것에 정신이 팔렸으니 말이다.

“어때 보여?”“좋아보여.”

오델과 오데트는 흡사 사냥에라도 나선 분위기로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속닥였다.

어찌나 진지한지 손에 각기 수렵용 엽총을 들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 뒤에 다소 어정쩡하게 서 있던 샤론 역시 눈으로는 두 사람을 쫓고 있었다.

향수의 마녀, 아멜리아 메리골드.

게헨나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시우가 과거 이야기를 해줄 때면 항상 앞뒤를 잘라낸 것 같은 기묘한 공백이 존재하곤 했다.

그리고 아마 저만치 보이는 그녀가 그 공백의 정체이겠지.

절세미인은 백 걸음 밖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던데 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알 것 같다.

티페레트 공작도, 쌍둥이도 저마다 매력을 뽐내고 샤론 역시 그에 지지 않는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여기서 보이는 모습만 해도 조금은 자신감을 잃게 된다.

도대체 이 앞에는 어떤 파란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푹 한숨을 쉬자니 턱밑에서 쌍둥이의 불평 섞인 투정이 들려왔다.

“으으…. 여기서 더 추가되다니….”

“언니 진정해. 어찌 보면 예정된 일이기도 했잖아.”

“하긴…. 눈길만 닿아도 여자를 후리는 조수님이 아멜리아 부교수님을 가만 둘리 없지.”

“그렇지? 그러니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린 우리의 싸움을 계속하면 되는 거야.”아까부터 이렇게 궁시렁궁시렁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다.여기서 조금 의외인 점.

“애들아.”

“샤론 언니, 저희 지금 바빠요.”

“맞아요, 오늘 분 수업은 다음에 숙제로 다 해올게요.”

“그게 아니라, 의외로 가만히 있길래.”

그렇다.

샤론이라고 딱히 둘이 뛰쳐나가 저 데이트를 방해하는 차도 살인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쌍둥이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자면, 또 과거 샤론에게 진지한 사랑의 쟁탈전을 걸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아멜리아와 시우 곁으로 뛰어가도 모자라다.

이렇게 숨죽인 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쌍둥이답지 않다는 말이다.

그 말에 쌍둥이는 되려 샤론이 이상한 말을 한 것처럼 바라보았다.

“뭐, 뭐야? 내가이상한 말했어?”

당황하는 샤론을 보고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오딜.

옆에서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는 오데트.

쌍둥이의 트레이트 마크인 하프 보닛이 부채처럼 움직이며 작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렇구나, 샤론 언니는 부교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죠?”

“부교수님이 얼마나 무서우신데요.”

“무서워?”

오딜과 오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완전 얼음장 같아요.”

“과제 채점도 칼 같고 목소리도 무섭고…. 게다가 눈빛이….”

“뭔가 지금 끼어들었다가는 잔뜩 혼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맞아요, 맞아요…. 그리고 일단 마녀시잖아요. 저희보다 나이도 많으시고….”

조수님 일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드는 오 쌍둥이가 저 정도로 경계하면서 신중하게 추이를 살핀다는 것은 샤론에게 낯선 광경이었다.

그러던 중 불쑥,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야? 그럼 나는? 안 무서워?”

이 강의실에서 서로 머리카락까지 잡아 뜯으며 한바탕 뒹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쌍둥이는 빤히 샤론을 보다가 씩 웃으며 답했다.

“에이, 샤론 언니는 샤론 언니잖아요.”

“무슨 의미야!”

“그러고 보니까 샤론 언니는 별로 안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해 줘!”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면서도 세 사람은 정원 저편으로 사라지는 시우와 아멜리아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아무튼 이렇게 어수선해져 버린 마당에 수업은 무리일 듯싶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오데트, 비상 대책 위원회를 다시 열어야겠어.”

“응, 언니.”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헐레벌떡 사라지는 쌍둥이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 샤론.

“에휴.”

사실 샤론도 쌍둥이의 모습이 귀엽다는 둥 느긋한 감상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연애전선은 오딜 오데트,엘로아, 샤론이 선의의 삼자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었으며,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샤론은 시우를 둘러싼 아웅다웅한 경쟁마저 소박한 행복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우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홀로 현세에서 빚을 갚느라 발버둥치던 세월 동안 느끼지 못했던 우정과 유대를, 얄궂게도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들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던 구도가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품고 있었다.

“이대로만 쭉 같이 잘 지내면 좋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때.

-또또

—브〒三느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달리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쌍둥이가 과제라도 놓고 갔나 싶어 테이블을 살피던 샤론.

“실례합니다.”

노크 이후 열린 문 뒤에는 방금까지 정원을 거닐던 아멜리아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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