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년 365일의 마지막 날.
쌍둥이와 함께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열기 위해 저택에 남아있던 알비레오는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원래 손님으로 있던 신시우는 그렇다 치고, 그와 손을 맞잡은 아멜리아가 함께 찾아온 것이다.
“저택에 오신 걸 환영해요, 메리골드 양.”
“알비레오 백작, 불쑥 방문하게 되어 죄송해요.”
갈리나 시녀장에게 전언을 받고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알비레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했다.아멜리아 역시 그녀에게 뒤처지지 않는 단정한 태도로 치마를 살짝 펼쳐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 모두 ‘귀족의 예의범절 가정서’라는 책이 있으면 모범 사례로 실릴 만한 기품이 묻어나왔다.
“시우 군도 어서 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후 다소 가벼운 인사말이 약간의 못마땅함을 섞어 시우에게 향한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알비레오는 #조|아와 시우가 응접실에 들어오는 순간 깜짝 놀랐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아멜리아의 분위기가 완전히 일변해 있던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아멜리아가 항시 풍기는 분위기는 마치 얼음 동상 같았다.누가 다가와도 밀쳐내고,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냉기를 풀풀 뿜어댔었지.
그런 그녀가 지금은 동성도 유혹해버릴 묘한 색기와 더불어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은근히 두르고 있다.
거기에 조금만 틈이 나면 힐끗거리며 시우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발그레 뺨을 붉히는 모습을 보면 바보천치라도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있다.
‘했네 했어’인 것이다.
둘이 여행을 떠났다고 들었을 때부터 짐작했던 일이기야 하지만, 짐작했던 일이라고 시우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더군다나 최근 가장 알비레오의 골치를 썩이는 일은 따로 있었다.놀랍게도 쌍둥이와는 상관없는 일로 말이다.
말하기도 난감한 시우의 또 다른 트러블로 한숨을 숨기는 알비레오에게 다가간 아멜리아는 품에서 선물을 꺼냈다.두 마리의 새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예쁜 향수병이었다.
게헨나의 유리 공예 장인이 만든 것으로 텅 빈 병만으로 같은 무게의 금값을 호가한다.
안을 찰랑찰랑 채우는 금빛의 액체는 아멜리아가 제머나이 백작을 위해 직접 제작한 니치(niche) 향수였다.
“이전 사건으로 물심양면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작지만 성의의 표시에요.”
흔히 향수란 어떤 물건을, 누가, 어떻게 뿌리든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고급품을 지향할수록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예컨대 뿌리는 부위, 피부의 산성도, 미세한 체온, 마력의 파동 따위에 따라 같은 향수라도 향기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멜리아의 ‘맞춤형 향수’는 그 의미가 대단히 컸다.
아직 정식으로 판매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예약 명부가 꽉 찼다는 소식은 알비레오도 들었다.
“어머, 뭐 이런 걸 다. 안 그래도 가게를 연다고 하셔서 팔아 드릴 생각이었는데요.”
그런 것을 선물로 받았으니 알비레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필 수밖에.이런 건 돈이 있다고 마구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움을 주신 덕분에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 번 맡아봐도 될까요?”
“그럼요.”
알비레오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향수를 손목에 가볍게 뿌렸다.
눈을 감고 손목을 가볍게 들어 올려 잔향을 맡는 순간, 훌륭한 와인을 시음할 때처럼 머릿속에 환상이 펼쳐진다.
탐스러운 열매를 고혹적으로 뽐내는 장미의 화원,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듯한 상쾌하고 달콤한 꽃내음.
수 없이 피어난 장미 중에 가장 탐스러운 장미를 향해 알비레오는 허리를 숙여 오직 한 송이의 장미의 향기만을 탐한다.
달콤한 향기가 가실 무렵 느껴지는 촉촉한 흙내음과 이슬이 맺힌 싱그러운 잎의 향기.
그리고 가시처럼 콕하고 찔러오는 스파이시함까지.
이건 한 송이의 장미를 꽃부터 뿌리 끝까지 묘사해낸 향수였다.
한참이나 눈을 감고 코끝에 남은 잔향을 만끽하던 알비레오는 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떴다.
“정말 훌륭하네요. 아름다웠어요. 한 송이의 장미를 고스란히 품은 향수라니….”
“감사합니다. 가는 빗에 뿌려 머리를 빗겨주신다면 훨씬 자연스러운 향기가 날 거에요.”
“그 방법도 참고할게요.”
“이건 데네브 백작님께 전해주세요.”
“물론이죠. 데네브도 무척 기뻐할 거에요.”
알비레오가 받은 것과 같은 모양의 향수병을 받아들이 알비레오는 갑자기 아멜리아가 좋게 보이기 시작했다.나쁜 건 절조 없는 사위지 그 마수에 넘어간 아멜리아가 아니다.
“아무튼, 만찬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 제집처럼 편하게 즐겨주시길.”
“네, 다시 한번 방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을 보내준 알비레오는 향수병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손목의 향기를 맡아보며 흐뭇한 소득에 미소 지었다.
이 정도 양이라면 1년은 족히 쓸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은 향수를 알아버린 이상 다른 향수를 쓸 수는 있을까?
아멜리아가 정식으로 가게를 열면 조금 다른 테마의 향수를 주문 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읏…!”
별안간의 자극.
알비레오는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속옷에 감싸인 알비레오의 엉덩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숙녀의 입으로 담기 부끄러운 그 구멍에서 은은한 열기과 움찔거리는 쾌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웃….”
_ 움찔움찔
자꾸만 떨려오는 몸에 허벅지를 바짝 붙인 채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은 알비레오
연신 입술을 씰룩이며 간지러워지는 가랑이를 허벅지를 비벼대는 것으로 애써 가라앉혔다.
이것이 오늘따라 시우가 더더욱 못마땅해 보이던 이유이자, 최근 알비레오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소 과거까지 이야기를 거슬러 가야 한다.
얼마전 데네브와 시우는 알비레오의 참관하에 ‘검증’을 실시했다.
쌍둥이와의 애널섹스 장면을 현장 검거한 데네브가 시우를 납치 및 추궁.
이후 애널섹스가 그릇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데네브가 몸소 뒷구멍으로 물건을 받아들였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예상 밖의 일이 몇 개 있었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일회성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반복될 일도 없고 딱히 일상에 지장을 주지도 않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서고에서 업무를 보던 알비레오는 별안간 찾아온 뒷구멍의 쾌감을 느꼈다.
처음엔 영문모를 사태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머지않아 전후 사정의 파악을 완료했다.
그 감각은 시우가 데네브를 절정에 도달하게 하였을 때 전이되었던 감각과 완벽하게 흡사했기 때문이다.
뒷구멍에 손을 대기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알비레오가 갑자기 쾌감을 느꼈다는 것은 데네브가 쾌락 혹은 절정을 느낀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이후에도 오늘처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또한 데네브의 해피타임마다 불시에 찾아오는 쾌감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차를 마시다가도, 몸을 씻다가도, 잠을 자려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쾌감을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텨야 했으니 말이다.
좋다.
여기까지는 백번 양보해 다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데네브도 알비레오도 평생을 마법 연구와 사업 확장에 매진한 인생이다.
계승도 얼마 남지 않은 황혼기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할 수 있다.침대에 틀어박혀 자위하건 뭘 하건 알비레오는 존중해 줄 자신이 있었다.
다만 사랑하는 혈육이 쾌감을 위해 어루만지는 부위가 하필이면 사위에게 공략당했던 ‘뒤’라는 것.그 말인즉슨 데네브가 새로운 지평에 눈을 뜨게 만든 것이 신시우 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아직 견습마녀인 오딜과 오데트에게 시커먼 흑수를 펼친 것도 모자라 작은 장모님마저 타락시키려 들다니.이 부분만큼은 아무리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려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오... 데네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가 있다면….
쾌감이 낙인의 공명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은 오직 알비레오만 알고 있는 사실.
즉, 데네브가 한창 해피타임을 보낼 때마다 언니에게 ‘나 자위 중’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데네브 성격상 이 일을 알게 되면 수치심에 죽어버리려고 할 것이고….
차라리 즉시 데네브에게 쾌감 공명에 대해 말했다면 몰라, 지금 와서 사실을 성토하기에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방관했다가는 시도 때도 없이 날벼락처럼 덮쳐오는 쾌감을 무기력하게 느끼고 있어야 한다.
공명에 의한 쾌락은 강도가 열화 된 채 전달된다.
때문에 시원한 오르가즘과 함께 상쾌해지는 것이 아니다.
새끼 돼지 통구이를 굽는 것처럼 은은한 쾌감에 몸이 달아오르기만 하고 잔뜩 애만 태우다가 끝나 버리는 것이다.
“아,씨! 생각해보니까 열받네…!”이를 으득으득 갈던 알비레오는 쾅! 소파 손잡이를 내리치며 울분을 토했다.
이게 따지고 보면 전부 신시우 때문 아닌가?
사실 오늘 신시우를 봤을 때도 ‘또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며 목을 잡고 마구 머리를 흔들고 싶었다.
신시우가 알비레오의 조언을 조금만 귀담아들었더라도 쌍둥이와의 밀회가 데네브에게 걸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도 때도 없이 속옷이 축축해지는 고난을 감내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팬티로 기어들어가려던 손을 꾹 움켜쥔 알비레오는 울분을 삼키며 욕실로 향했다.
아까 정강이라도 걷어찰 줄 걸, 이라는 후회와 함께 말이다.
긴 세월 동안 산전수전을 겪었던 알비레오.
心차司&해55 대곻황좇에1주도 슬기롭게 처신해 기업의 몸집을 불려 나갔다.
공적들의 주요 수입원을 타격하고 직접 토벌에 나선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멀리서 봐도 희극, 가까이서 보면 더 꼴사나운 희극인 이 상황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