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66화 (466/917)

1.아멜리아에게 이 옷 저 옷 입혀보며 인형놀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소피아는 기대감 넘치는 미소와 함께 친구의 사랑을 응원해주었다.

소피아의 첫 번째 선택.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민소매 원피스 형태의 검은 네글리제.

치렁치렁한 옷감이 가슴까지 가려주지만 명치 부근의 리본으로부터 커튼처럼 갈라져 배꼽을 드러내고, 음부 따위는 가려주지 않는다.테두리를 따라 나풀거리는 레이스와 목 뒤로 옷을 고정하는 리본이 매력 포인트.

소피아의 평가에 따르면….

우아함: ★ ★ ★ ★ ★

세련됨: ★★

관능적: ★★★

한줄평: 특별할 것 없는 전통적인 네글리제 디자인이지만 그렇기에 귀족스러운 기품을 지닌 아멜리아와 어울린다.

“브라는 벗고 팬티는 입은 채로 입는 거야.”

속옷 차림으로 소피아와 거울 앞에 선 아멜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손에 들린 옷을 몸에 대봤지만, 도저히 착용한 이후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브, 브래지어를 벗어요? 다… 비쳐 보일 것 같은데….”

“응, 괜찮아. 여차하면 팬티도 벗어도 되고.”

거울이 앞에 있는데도 휙 소피아를 돌아보는 아멜리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팬티까지 벗으면 더 야하잖아. 내 앞에서 벗으라는 건 아니고….”

“그, 그, 그런…. 음란한 차림을….”

어차피 섹스라는 건 이곳저곳 다 벗고 다 보여주는 행위이다.

아멜리아라고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야릇한 옷을 착용해야 하는 심리적 간극은 숫처녀인 아멜리아에게는 너무나도 먼 것이다.

“마침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이랑도 무척 잘 어울리는데? 마침 둘 다 검은색이잖아.

“이, 일단 이건 됐어요.”

아멜리아는 못볼꼴을 봤다는 듯 냉큼 손에 들고 있던 네글리제를 다시 걸어두었다.

어차피 선택권은 다양하다.

이것저것 둘러봐도 나브브지 않을 것 같았다.

“평범한 거 없나요?”

“저게 제일 평범한 건데….”

소피아의 두 번째 선택은 가슴 부분의 천이 없는 하얀 코르셋 란제리였다.

웨딩드레스의 보정 속옷처럼 순결한 백색을 자랑하지만 정작 가슴 부위에는 천이 하나도 없었다.

소피아의 평가.

우아함: ★ ★

세련됨: ★★★大

관능적: ★★★大

한줄평: 가슴을 강조하는 형태로 요부의 관능과 신부의 순결이 공존하는 의상.

거기에 가슴을 밑에서 들어 올려 강조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다소 아쉬운 아멜리아의 미드 볼륨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

한 세트로 준비된 베일까지 착용한다면 결혼식 직전 교회당에서 아찔한 경험을 보내는 신혼부부의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아무런 말도 않고 침묵을 지켰다.

소피아를 빤히 바라보는 표정에서 ‘괜히 부탁했다’라는 후회가 묻어나온다.

“왜? 마음에 안들어? 그럼이건 어때?”

이후 소피아는 이것저것을 보여주었다.

용도 자체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옷차림인만큼 하나같이 굉장히 야하고 노출도가 높다.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고 골라들었던 파자마가 가슴부분만을 덜렁 노출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멜리아는 얌전히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차라리 첫번째로 할게요.”

백번 양보해도 ‘옷’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의상을 본 아멜리아는 순순히 검은 네글리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소피아가 뒤로 보여준 의상이 워낙 음란함의 끝을 달리는지라 무뎌진 것인지 이거라면 그럭저럭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직접 입어봐도 좋을텐데….”

아멜리아의 야릇한 의상 패션쇼를 기대했건만 정작 옷을 한 번도 입혀보지 못한 소피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단념했다.

고집을 부리기엔 아멜리아에게 있어 너무 중요한 날이다.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알겠어, 입고 가면 구겨질 수 있으니까 포장해 줄게.”

“…네.”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이 빠져 보이는 아멜리아는 뒤늦게 떠올렸는지 고개를 퍼득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멜리아는 소피아를 찾아온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관능적인 잠옷만을 빌리러 온 것이 아니다.

고작 옷을 입는다고 몰랐던 일을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발기한 남성기가 여성기에 삽입되고 왕복운동을 하면 정액이 배출되는 것이 섹스라는 건 개념적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삽입까지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아멜리아로서는 도저히 자연스럽게 유도할 자신이 없었으니 말이다.그에 소피아는 아주 단순하다는 듯 말했다.

“옷을 입고, 신시우 군에게 가서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봐.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키스해달라고 졸라 봐.”

주의깊게 경청하던 아멜리아는 소피아가 더는 말을 잇지 않자 ‘그게 끝?’이라는 표정으로 소피아를 보았다.

소피아가 판단하건대 신시우가 고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달리 있다.

“응, 그거면 돼. 다만 주의할 게 있어.”

“주의할 거요?”

“아무리 관계 중이라도 그가 너에게 싫은 행위를 요구하거나 할 수 있을 거야.”

“싫은 행위?”

“4가 거부감이나 지나친 수치심이 느껴지는 행위 말이지.”소피아는 신시우를 굉장히 고평가한다.

요령도 없고 남자답게 강단 있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을 살며 그만큼 근면 성실한 노예는 본 적 없던 까닭이다.

심지어 별로 인연도 없는 견습마녀를 구하기 위해 물병자리의 마녀와 맞서고, 아멜리아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이건 만에 하나를 대비한 조언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눈처럼 무구한 아멜리아라면 정상적인 요구와 비정상적인 요구를 구별하지도 못한 채 분위기에 이끌려 얼떨결에 다 허락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럴 때는 꼭 이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의사표현을 해줘. 알겠지?”

“알겠어요.’’

그걸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고, 일단 뭉뚱그려 표현한 소피아.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짓는 아멜리아의 손목을 잡아 화장대 앞에 앉혔다.

평소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아멜리아다.

애초에 영체 자체가 굳이 화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고 말이다.

그러나 사랑이 전쟁터라면 화장은 여자의 갑옷.

오늘만큼은 최고의 미모를 더욱 갈고 닦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하게 할 필요는 없이 살짝 보정만 추가해주면 되겠지.

머리띠를 씌우고 블러셔를 톡톡 발라주는 동안 아멜리아는 궁금한 것이 많은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소피아.”

«으 Mo’-

“정말이거면 될까요?”

“응, 충분할 거야.”

“소피아.”

«으 »

“침대에서 하는 거겠죠?”

“보통은 그렇지?”

“보통이 아니면요?”

“눈이 닿지 않으면 어디서든 하지.”

“소피아.”

«으 Mo’-

“많이… 아픈가요?”

“사랑하는 만큼 덜 아플 거야.”

“그런… 메커니즘이 있어요?”

“물론이지.”주로 이런대화.

연한 립글로스를 발라주는 것을 끝으로 소피아는 제 작품을 바라보았다.

“와….”

화장이 어색한지 눈을 내리깔고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아멜리아.단언컨대 오늘의 그녀는 소피아가 만나본 어떤 마녀보다 아름다웠다.

2.

“생각보다 늦네….”

청소가 끝났다.

애당초 가;i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청소할 거리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빼곡하게 들어선 천연오일병들이 조금 난잡하긴 했지만, 시우가 분류할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선반의 먼지를 조금 털어내는 정도로 청소를 끝낸 뒤 또 할 일은 없나 기웃거리던 중.

- 딸랑딸랑

1 층에서 경쾌한 도어벨 소리가 들렸다.

아멜리아가 돌아온 것이다.

좁은 건물에 맞게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계단.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자니 층계참에서 아멜리아와 마주쳤다.

“오셨어요?”

별 생각 없이 인사를 건넨 시우는 조금 놀랐다.

몰래 간식을 훔쳐먹다 걸린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는 아멜리아.

그녀의 얼굴이 뭔가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촛대도 없이 어두운 계단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관능적이라고 해야 하나?

얌전한 눈꼬리가 오늘따라 길고 숱이 많은 속눈썹도 평소보다 훨씬 우아하게 구부러져 있는 느낌.여느 때보다 발그레해 보이는 볼과 평소보다 반짝이는 입술에서는 청초함과 단아함이 느껴진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아주 미세한 차이.

근사한 요리에 첨가한 아주 약간의 산미처럼 아멜리아의 미모를 극대화하는 화장이었다.

예기치 못한 아멜리아의 치장에 우뚝 멈춰선 시우.

“일하다 오신 거…. 아니었나요?”

“시우.”

시우의 말을 무시한 채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푹 숙여 발끝을 바라본 상태로 어깨를 스쳐 가며 말한다.

“10분 뒤에 방으로 올래요?”

“ 네?”

“기다…릴게요.”

그렇게 말한 아멜리아는 우두커니 서 있는 시우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4층으로 가버렸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뭐지?”

마침 담배도 피우고 싶던 터라 건물 밖으로 나왔다.

새벽녘이 완전히 떠오르지 않아 점등되어있는 가로등 아래 담배를 물고 선다.

머릿속에 온갖 마구니가 가득했다.

한껏 치장하고 온 아멜리아.

굳이 10분 뒤에 방으로 오라는 말.

사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자의식과잉 내지는 헛물을 들이켰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러나 오늘 일하는 내내 흘렀던 미묘한 분위기와 어딘가 달라진 아멜리아.거기에 부끄러운 듯 위층으로 도망쳤던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면….

뭔가 낌새가 보인다.

예전 시우라면 절대 눈치채지 못했을 낌새가 말이다.

“에이, 설마….”

비록 두 사람의 관계가 많이 변했지만 시우가 6년 간 지켜본 아멜리아의 성정을 미루어볼때.

절대 그녀가 먼저 제안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을 거였으면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생겼겠지.

괜히 생겨난 기대감을 훌훌 털어낸 시우는 3대 정도 담배를 추가로 피우며 시간을 맞췄다.

넉넉잡아 15분경과.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가슴은 아닌가 보다.

어째선지 요란스레 쿵쾅거리는 심박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 4층 문 앞에 섰다.

“후우….”

괜히 오버하지 말고 평소대로 행동하자는 생각으로 노크.

“들어가도 될까요?”

“…네.”

잠깐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멜리아의 나지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문을 열고 좁지만 안락한 숙소로 발을 들였다.

갤러리를 밝히는 어스름한 가로 등불이 창밖에서 스며드는 창가.

문을 열면 곧장 정면에 보이는 침대는 그 불빛을 조명 삼은 작은 요람 같았다.

그리고 일전 소피아의 별장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어른의 네글리제.

그 당시 보는 것만으로 불태웠던 야릇한 의상을 걸치고 있는 아멜리아가 그곳에 있다.

“문… 닫아 줄래요?”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시우를 기다리던 아멜리아가 조용히 부탁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