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61화 (461/917)

1.

새로 장만한 향수 가게는 좁다.

더군다나 1층 정문에는 문을 여닫을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내는 종이 달려있기에 손님의 출입을 알아채지 못하는 편이 더 어려웠다.그만큼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해 있었다는 의미겠지.

“1층에서 몇 번 노크했으나 답이 없어 실례했습니다.”

노크와 함께 들어선 사람은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이본느 코하브 백작.

이지적인 이목구비, 커피보다 우유를 더 많이 탄 카페라떼처럼 상앗빛이 감도는 눈동자도 특징이지만,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녀가짧은 단발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통파 마녀는 장발이 많다.

이유를 들자면 복잡하지 않다.

지금이야 너도나도 머리를 기르지만 2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고운 장발은 브루주아 따님이나 귀족에게나 넉넉함과 여유의 상징이었다. 장발이란 시간과 노력을 굉장히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장발 자체가 지니는 여유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오랜 수명과 고리타분한 전통을 지닌 마녀에게는 여전히 선호되는 스타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하브의 염색한 검은 흑발은 꽤 독특하다 볼 수 있겠다.

코하브는 방에 들자마자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일전 그녀가 취조를 맡았던 아멜리아 메리골드와 의수를 이식해주었던 신시우.

두 사람은 쭈뼛쭈뼛한 태도로 ‘왜 왔어요?’ 눈빛을 던지고 있었던 탓이다.

야심한 시각 단둘이 있는 남녀, 그리고 이런 분위기라….

거기에 남자 마녀 신시우는 아멜리아를 되찾기 위해 그 난리 통 속으로 걸어 들어 갔었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연인 간의 시간을 방해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렸겠으나 코하브 백작의 머릿속에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애초에 메리골드 남작에게는 아베느가 남작이라는 연인이 있는 것이다.

둘의 사이는 아마도 신시우가 아직 노예였던 시절부터 이어진 주종관계이겠지.

참으로 충직한 노예로군 하고 넘긴 것이 전부였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든 큰 상관은 없었던지라 금방 잡념을 접었다.

“어쩐 일인가요?”

묘하게 경계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아멜리아에게 코하브는 가방을 열어 보이며 답했다.안에는 의수 조율을 위한 각종 기기가 들어있다.

“이식 절차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아베느가 남작에게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아….”

의수를 이식했으면 이틀에 한 번씩 점검 겸 추가 조율을 맡아주어야 하는데, 아멜리아와 시우가 즉석 계획된 여행을 떠난 결과 그것을 놓치게 된 것이다.시우 역시 그에 대한 언급을 미리 듣지 못했고 말이다.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앉아 주세요.”

그 말에 경계를 풀고 안도 및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아멜리아와 순순히 팔을 걷는 신시우.

아멜리아는 잠시 차를 준비하겠다는 말을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기에 방에는 코하브와 시우 둘만이 마주앉게 되었다.

“늦게나마 감사 인사드립니다. 팔을 치료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치료가 아니라 이식이죠. 그리고 대금은 제머나이 쪽에서 치렀어요. 돈 받은 만큼 일하는 겁니다.”

코하브 백작은 시우의 인사에 사무적인 말투로 대꾸하며 전극처럼 생긴 패드와 기다란 침 따위를 꺼내 들었다.

쌀쌀맞은 말투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 원래 이런 성격이겠거니 싶었다.

살짝 방심하고 있던 사이 시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체크할게요. 따끔합니다.”

라고 말한 코하브는 대뜸 크고 뾰족하지만 가느다란 침을 시우의 손에 푹 꽂았다.

거의 30cm는 족히 되는 장침이 왼손을 아예 꿰뚫어 버렸다.

“얼마나아픈가요?”

그러고 보니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의수니까 당연한가?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과격한 검사에 서늘해진 간담을 쓸어내리며 답한다.

“아프지 않습니다. 신기하네요.”

“아프지 않다고요?”

“네.”

“조금도요?”

“그렇습니다.”« 99

코하브 백작은 침을 빤히 바라보더니 쓱 빼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세워 손바닥을 가볍게 문질렀다.

“간지럽나요?”

“아뇨, 깨어났을 때부터 아무런 감각이 없었는데요?”

그 말에 코하브는 눈썹을 찡그렸다.

“감각 연동은 슬슬 끝났을 때인데. 그 뒤로 격한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아멜리아와 잠시 여행을 떠나고 공장에서 하루 일했을 뿐 격한 마법을 사용한 적은 당연히 없었다.사실대로 전하자 코하브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기다려 보세요.”

책상 위의 마법진이 그려진 양피지를 펼치고 시우의 손을 올려놓은 코하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슬 불안해진 시우.

환자에게 있어 의사의 그런 제스쳐가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는 고려해줬으면 싶다.

“연동이 전혀 안됐네요. 어째서지….”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오히려 본인보다 침착하게 물어오는 시우의 모습에 의외라는 기색을 비춘 코하브는 차분하게 이 이상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코하브 백작의 자성마법은 ‘인형’을 활용한 마법이다.

다양한 신화에서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 듯 코하브의 인형은 흙을 구워 만든다.

인체와 비교해도 모자란 점이 없으며 오히려 그 이상의 기능을 지닌 ‘자기의체(1器義體)’를 제작할 수 있는 코하브에게 복잡한 장기가 아니라 의수를 만드는 것 정도야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을 터다.

“이식 이후 48 시간이 경과하면 이미 영체 일부로 융화됐어야 합니다. 뼈대부터 주요 혈관과 근육, 마력회로까지 재건해 두었으니까.”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다르다곤 해도 팔과 손까지 다르진 않을 것이다.

분명 평소처럼 성공적으로 이식을 끝냈을 터며 검사값 역시 이상한 점이 없었다.

딱, 하나.

감각 연동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시술을 했는데 아직도 감각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건 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신체의 이상 증상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가끔 마법을 사용하고 두통을 느끼는 정도요?”

비앙카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후.

시우의 마법을 크게 일진보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고위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면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저 지나치게 높아진 실력을 쫓아가느라 머리가 따라오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우선은 지켜보도록 하죠. 적어도 검사상의 문제는 없으니까요. 다음에는 당신이 제 저택으로 직접 찾아오세요. 닷새 뒤에요.”“알겠습니다.”

그대로 테이블에 늘여놓았던 물건을 정리한 코하브는 곧장 떠날 채비를 하던 중 문득 떠올랐는지 한 가지를 물었다.

“당신, 에렐림 공작님과 면식이 있나요?”

치료와는 전혀 관련 없는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없습니다. 직접 얼굴을 뵌 것도 이번 재판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아멜리아가 모처럼 차를 우려왔을 무렵에 코하브는 벌써 용무를 끝낸 뒤였다.차를 사양하고 떠난 코하브 탓에 다시 단둘이 된 아멜리아와 시우.

“시우….”

눈치보는 강아지의 표정.

아멜리아는 평소와 달리 한없이 어리게만 느껴지는 목소리로 시우의 이름을 불렀다.

소파에 앉고도 무릎을 착 붙이고 앉았고, 그 사이에는 두 손이 포개져 들어가 있다.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

코하브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멜리아가 시우의 팔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장 그녀의 잘못을 돌아보게 하였으니까.

“별일 없다네요. 닷새 뒤에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런 아멜리아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만큼, 시우는 그녀가 혼자 안 좋은 생각을 곱씹기 전 선수를 쳤다.

“치료도 순조롭고, 말이 의수지 사실상 새로운 팔이랑 다를 것이 없다더라고요.”

하지만 그 말에도 아멜리아는 ‘다행이에요’라고 안도하지 않았다.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아무런 대답도 슈고 상처를 잔뜩 입은 표정으로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그때 1층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 뒤를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른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이어졌다.어쩐지 익숙한 발소리와 함께 벌컥 열린 문.

“시우!”

발소리가 익숙할 법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뛰어든 분홍빛 머리카락과 익숙한 그림자는 다름 아닌 엘로아의 것이었다.

수아 선생의 말을 듣고 고비 사막을 조사하러 떠났던 엘로아.

수상쩍은 행적을 발견해 수아 선생에게 연락했을 때 게헨나에서 벌어졌던 겁난에 대해 전해 들었다.거기에 시우가 휘말렸다는 것도 말이다.

엘로아의 선택은 뻔했다.

게헨나에 &졔 5;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시우의 행방을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용태가 괜찮다는 알비레오의 진언도, 남의 집에 함부로 쳐들어가면 안 된다는 예의범절도 엘로아의 머릿속엔 없었다.

오직 그녀의 제자이자 애인인 시우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뿐.

“그대는 또! 어찌 잠시만 눈을 돌리면 위험한 짓을 못해서 안달인겐가!”

“스, 스승님…!”

다짜고짜 시우를 꽉 안아 든 엘로아.

그리고 곧장 흡사 기관총 난사 같은 질책과 애정 어린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 만에 두 번이나 연달아 벌어진 일이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그녀의 말투는 매서웠다.

‘일이 생겼다 하여 무작정 뛰어들기만 하면 나라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걸세!’‘일신의 알량한 재주만 믿고 무모하게 굴 것이라면 차라리 겁쟁이로 살게나!’

평소 그녀라면 절대로 입에 담지 않을 수위로 이어지던 꾸지람이 울컥 멎었다.그리고 간신이 쥐어짜 낸 울먹거림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어쩌라는 말인가….”

격해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시우에게 재회의 입맞춤을 나누려던 엘로아는 우뚝 놀랐다.한껏 좁아졌던 시야 탓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인물이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관리에 소홀해도 금방 부스스해질 것 같은 숱이 많고 가느다란 밝은 금발.

고아하고 가느다란 눈썹 아래 흔들리는 희푸른 눈동자.

에아가 토벌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데네브에게 억지를 부려 마주했던 아멜리아였다.동시에 이번에 타로 타운에서 대규모 사건을 일으켜 시우를 휘말리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메리골드 남작.”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하는 엘로아의 말에 아멜리아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이제는 남작이 아니라고 정정할 겨를도 없었다.

아멜리아는 바보가 아니다.

현세로 나가 있던 티페레트 공작이 헐레벌떡 돌아온 것은 시우가 위기에 처했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우를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으로서 차마 엘로아의 호칭을 정정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엘로아로서는 악의가 없을지라도 그녀의 존재, 돌아온 이유, 그리고 어긋난 호칭은 뾰족한 자책의 송곳이 되어 아멜리아의 마음을 헤집었으니 말이다.

아멜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나가야 할까?

둘의 재회를 위해 비켜주어야 할까?

아니면 ‘연인’인 티페레트 공작에게 시우를 위험하게 만들었던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까?

아니면 이 자리에 함께 동석하여 서로 대화를 나눠야 할까?

아마 마지막 것이 가장 사리에 맞겠지.

시우의 복잡한 연애관계 중 티페레트 공작과 시우가 연인 사이라는 것은 미리 들었던 바이다.

그러나 머리로 알고 있다 하여 직접 보는 것과 감회가 같을 리 없다.

태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아멜리아와 시우에 비해 둘 사이는 너무나도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이 숙소가 아멜리아의 것임에도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것 같다.

이건 티페레트 공작에 대한 질투일까, 시우에 대한 독점욕일까, 뒤처짐에 대한 패배감일까, 아니면 단순히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뿐인 나쁜 습관의관성일까.

“차를… 내올게요.”

등 뒤에서 들리는 시우의 부름에 ‘차를 내올게요’라고 거듭 말을 내뱉은 아멜리아.결국 그런 뻔하디 뻔한 변명을 끝으로 도망치기를 선택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아멜리아는 울고만 싶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