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치찜.
시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한국인이라면 호불호가 거의 갈리지 않는 요리.
게다가 일단은 마녀인 샤론과 견습마녀 오딜 오데트에게도 호평을 받았던 만큼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보통 돼지 뒷다리살처럼 저렴한 부위를 사용하는 김치찜과 달리 이곳은 무려 삼겹살을 말아준다.
두툼한 통 삼겹살을 김치에 돌돌 말아 푹 끓여나온 김치찜의 비쥬얼은 없던 입맛도 싹 돌게 할 만큼 자극적이었다.공깃밥도 고슬고슬하니 맛이 좋아 보였고 말이다.
“제가 덜어 드릴게요.”
“아니, 제가 할 수 있는데….”
“처음 드셔 보시는 거잖아요.”
시우는 앞 접시에 고기와 익은 김치를 먹기 좋게 나눠 국물을 조금 끼얹은 채 아멜리아 앞에 건넸다.포크로는 김치를 찢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기랑 거기에 있는 김치랑 함께 드시면 될 거에요.”
“네.”
아멜리아는 주문할 때 미리 부탁했던 포크를 손에 쥔 채 시우가 건네준 앞 접시를 바라보았다.
이게 시우의 고향 음식.
아멜리아가 재현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당시 본토의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것도 있다만 설령 그 재료를 똑같이 준다고 해도 절대 똑같이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왜냐하면 이렇게 시뻘건 음식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동시에 한 입씩 고기를 먹는 순간.
아멜리아는 느꼈다.
짜다. 시다. 자극적이다. 기름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너무너무 맵다.
아멜리아는 티타임에 가볍게 홍차를 마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는 마녀다.
따라서 함께 먹기는 음식도 케이크, 스콘 따위의 디저트류이며 간혹 즐기는 식사 시에도 거의 조미가 들어가지 않은 빵과 샐러드 따위를 즐겼다.
평소 먹는 음식 중 가장 자극적인 음식이 베이컨인 아멜리아에게 김치찜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매운 맛이라 봐야 후추 정도에 밖에 내성이 없는 아멜리아에게 고춧가루에 마늘에 고추장에 청양고추까지 들어간 육수는 펄펄 끓는 지옥의 가마에서 퍼올린 불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숨을 쉴 때마다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혀가 마비되고 끝이 저리다.
희대의 맵찔이 아멜리아에게 김치찜은 자율방어가 작동할까 말까의 경계에 서 있는 음식이었다.
아멜리아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최대한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침착하게 물을 들이켰다.
오늘의 토막상식.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지용성으로 물을 마신다고 해서 가라앉지 않는다.
잠시간 괜찮아지나 싶었다가도 뒤이어 올라오는 따끔거림에 혀가 더욱 저렸다.
“입에 맞으시나요?”
괴로워하는 아멜리아 앞에는 즐거운 표정으로 고향의 음식을 즐기는 시우가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뻘건 국물까지 떠먹는 그의 모습은 마치 불을 삼키는 서커스 단원처럼 기이해 보였다.
끄덕끄덕.
사실 입에 맞지 않다
이게 고문용 자백제가 아니라 음식이긴 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행복하게 김치찜을 먹는 그의 면전에서 입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싫은 내색을 비추는 것은 싫다.
그것도 아멜리아가 먼저 제안한 메뉴라면 말이다.
애초에 아멜리아가 해준 요리가 입에 맞지 않았을 때도 그는 맛있다는 듯 전부 비우지 않았던가?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는 자주 해주셨거든요.”
“...아.”
“말하자면 추억의 음식 같은 거죠.”
시우의 말이 이어지자 아멜리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역시 티 내지 않길 잘했다.
“맵진 않으시고요?”
끄덕끄덕.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아멜리아는 이어진 시우의 말과 행동에 움찔했다.
“다행이네요, 많이 드세요.”
라고 말한 시우가 먹기 좋게 찢은 김치와 고기를 아멜리아의 앞접시에 우수수 쌓아준 것이다.아멜리아가 ‘그만! 그만! 충분해요!’라고 말할 시간도 없었다.
“게헨나 식재료가 질도 좋고 요리도 맛있긴 한데 저택에서 먹는 음식은 너무 호화로워서 말이죠. 뭔가 궁중 음식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가끔은 이런 서민적인 게 땡겨요. 아멜리아 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시뻘건 국물이 뚝뚝 흐르는 고기가 쌓일 때마다 아멜리아는 어깨가 짓눌리는 압박감을 느꼈다.
다른 메뉴…. 다른 메뉴는 없는 걸까?
조금 덜 매운 음식을 시켜 ‘이쪽도 맛있어요!’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회피하는 경우의 수는 남아있다.
아멜리아는 비상탈출을 위해 메뉴판을 살폈다.
<8이켠 전통 대한 김치찜>삼겹살 김치찜 (大)W 45,000
(中)W 35foe)0(小)W 25,000그 아래는 다른 음식 없이 곧장 밥 주류, 음류 따위.
아멜리아는 타들어가는 것 같은 혀를 간신히 움직여 물었다.
“시우…. 이, 이게 전부인가요?”
“그런가 보네요.”
“식당인데…. 어떻게 음식이 하나밖에….”
녀뉴가 하나밖(J없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죠. 이런 곳은 대부분 맛집이더라고요. 주방장의 신념이랄까,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나요?”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와 장인 정신을 고집하는 주방장이 원망스러워지는 아멜리아였다
“그렇… 군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아멜리아는 묵묵히 포크와 스푼을 들었다.
정말 먹기 싫다.
“하… ”
그리고 입안에서 펼쳐지는 지옥의 콘서트.
매운맛이 너무 강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당장 일어나서 팔짝팔짝 뛰며 난동을 부렸겠지만 그런 정숙지 못한 행동, 할 수 있을 리가.
아멜리아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수저를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흐윽…. 히끅….”
시우는 문득 앞을 보다가 아멜리아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눈물을 흘리며 김치찜을 먹는 아멜리아.
“아멜리아님….”
그 모습에 시우는 생각했다.
맛집이긴해다.
그렇다고 울 정도로 맛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머나먼 추억으로 느껴지는 제2의 소년 시절.
시우는 아멜리아에게 김치찜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했고, 아멜리아는 그것을 손수 요리해주었다.
하지만 본토 정통의 맛을 느끼며 그때 시우의 ‘맛있다는 칭찬’이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동하고 있는 것이겠지.
시우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아멜리아를 보고 마음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쪽까지 괜히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줄 수 있는 게 이 김치찜 밖에 없다.
젓가락으로 먹기 좋게 찢은 고기와 김치를 아멜리아의 앞접시에 추가로 얹어주었다.
“아멜리아 님…. 더 드세요.”“배불러요 더는 못 먹어요!”“얼래?”
단언컨데 그것은 여태 시우가 아멜리아를 알고 지내며 들은 목소리 중 가장 컸다.
2.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실로 정석적인 데이트 코스를 밟았다.
근처 가게에서 간단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놀이동산으로 직행.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놀이동산과 백화점, 아쿠아리움에 워터파크까지 포함되어있는 복합쇼핑몰이다만 하루 만에 다 둘러보기엔 너무 넓다.따라서 그중에 실내테마 파크 형식의 놀이동산과 아쿠아리움을 오늘의 코스로 정했다.
햇볕을 자연스럽게 들여오는 거대한 유리돔과 실내 곳곳에 비치된 어트랙션.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두어 번 오고 다시 찾지 않은 실내 놀이동산은 기억 속의 것보다 훨씬 작았다.
그렇다해서 규모가 작다는 것은 아니다.
타원형으로 개방된 중앙 공간으로 아이스링크가 보이는 이 실내 놀이동산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실내 놀이동산이니 말이다.어렸을 땐 아예 새로운 이세계에 온 것처럼 크게 보였다는 말이지.
평일 오전 애매한 시간이라는 메리트 덕분에 대기 없이 매표에 성공하고 아멜리아 옆으로 다가섰다.
식사 이후 어째 기운이 쭉 빠져있던 아멜리아는 새로이 펼쳐진 별천지에 고개를 든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반응을 보자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의 동심과 커플의 사랑을 자극하는 꿈과 희망의 세계.
서울을 구경시켜 주는데 이보다 좋은 장소가 있을….
-꺄아아아아악!!!!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무렵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
“시…시우…. 저건….”
아멜리아는 입을 떡벌리며 손끝으로 비명의 근원지를 가리켰다.
당장 설명해달라는 눈빛.
그녀의 손끝은 맹렬한 속도로 레일을 달리는 롤러코스터와 우렁찬 비명을 지르며 놀이기구를 만끽하는 사람들이었다.이 놀이동산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실내에 코스가 짜인 롤러코스터다.
참 즐거운 풍경이었지만 아멜리아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인 모양이다.
“저기, 기차에 탄 사람들…. 구해줘야 하지 않을까요…?”“아, 저건 원래 저런 기구입니다. 다들 즐거워하잖아요.”
웃는 표정과 고통스러운 표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를 본 양 경악하며 시우를 바라보는 아멜리아.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롤러코스터라고 지정된 레일을 빠르게 돌면서 스릴을 즐기는 기구에요. 그런 기계를 어트랙션 또는 놀이기구라고 하는데 롤러코스터는 그 중에 하나죠.타보시겠어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거부 의사를 표하는 아멜리아.
-꺄아아아아!!!!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비명이 들려오자 아멜리아는 황급히 그곳을 보았다.
거기엔 추 운동을 하며 뱃머리를 하늘까지 들어 올리는 배와 그 안에 탑승한 사람들이 보였다.
“시우…. 아무리 그래도 저건….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저건 바이킹이라고 하는데요. 좌우로 움직이면서 추락감을 즐기는 거에요.”
시우가 설명해주어도 아멜리아는 도저히 이해가 가는 표정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배에 탑승해 물길을 따라 지나다니는 놀이기구를 본 아멜리아의 표정이 더욱 아연해진다.
“현세의 사람들은 스릴을 좋아하나요?”러 펴익걱 Q7”
“시우도?”
“어렸을 때는 재밌게 탔습니다.”
그렇게 답해주니 고개를 끄덕이던 아멜리아.
굳이 ‘어렸을 때는’이라고 제한 지은 까닭은 사실 지금 타도 재미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놀이기구라는 게 내 몸을 있을 수 없는 속도로 허공에 내던지며 추락하거나 상승하는 아찔한 감각을 즐기는 건데.
이미 시우는 맨몸으로 음속에 가까운 기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말이다.
“하나 정도는 경험 삼아 타봐도 좋을 것 같아요. 눈길 가는 게 있으신가요?”
“그런 거라면….”
아멜리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한 놀이기구를 가리켰다.
중앙을 꿰차듯 놓인 유서깊은 깊은 어트랙션이자 이 놀이동산에서 가장 인기 좋은 포토존.
회전목마가 있었다.
오르골처럼 천천히 회전하며 흥겹게 흐르는 음악.
위아래로 흔들리며 나아가는 말과 마차 모형이 이 미지의 공간 속에서 그나마 친숙한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같이 탈까요?”
“…네.”
그리하여 함께 회전목마에 탑승.
애초에 정원이 널널한 기구인데다가 오늘은 하늘이 돕는지 이용객도 적었기에 줄도 서지 않고 곧장 탈 수 있었다.
그다지 재미는 없었지만 어렸을 적 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들뜬다.
처음에는 긴장하던 아멜리아도 음악과 함께 원판이 회전하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빛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녀라지만 역시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모양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와중에 바를 꽉 쥐고 있는 아멜리아의 눈에서는 그녀의 어릴 적 회상에서나 봤던 반짝거림이 듬뿍 묻어나왔으니.
쭐어님이 그려주신 아멜리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