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49화 (449/917)

1. “메리골드 남작에 대한 최종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외부인은 자리를 비켜주시길.”아멜리아와 시우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기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한 코하브였으나 이내 냉정한 고지를 내렸다.

시우는 아주 잠깐이지만 아멜리아와 맞닿았던 입술을 매만지며 지하감옥에서 올라왔다.

가능한 어떤 식으로 심문이 진행되는지 보고 싶었으나 알비레오 장모님의 입장도 있었고, 굉장히 완고해 보이는 코하브 백작을 보아하니 어리광부린다고남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하기만 한 지하감옥에서는 몰랐는데 어느덧 새벽녘을 지나 아침 해가 떠 있었다.

어쩐지 상쾌한 기분.

지금까지 찜찜하게 남아있던 모든 고민거리가 청산된 듯한 상쾌함이 기분 좋게 감돈다.

알비레오의 말대로 재판만 끝난다면 만사형통.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그러고 보니 스승님은 어디 계시지?”

사건으로부터 이틀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현세에 있다지만 게헨나 모두가 알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

분명 엘로아의 귀에도 들어갔을 텐데….

걱정을 못 받아서 섭섭하다는 것이 아니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 스승님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먼저 수아 지부장을 만나러 간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찾아뵐까 고민하던 차.아직 아침 햇살이 닿지 못한 복도 구석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오딜! 오데트! 공격!”

““예스, 마스터!””

“뭐, 뭔데?”

- 타다다다닷

복도에 깔린 카펫에 불을 질러버릴 기세로 좌우로 쇄도하며 날아오는 쌍둥이와 뒤에서 손을 뻗어 둘을 조정하는 샤론 에버그린.

실로 무협 영화의 암수같은 기세로 하늘로 솟구친 오딜의 발끝이 살짝 시우의 허벅지를 딛는다.

그대로 소매를 붙잡고 팔에 다리를 감아 앞으로 회전하는 오딜.

순간 천지가 뒤집힌다.

이름하야 플라잉 오모플라타.

체급 차를 가장 쉽게 극복하는 무술이 주짓수라는 것은 들어본 적 있다.

시우 몸무게의 절반 남짓한 오딜이지만 상대의 힘을 이용한 채로 회전과 관절기까지 동시에 걸리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끄악!”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철퍼덕 넘어진 시우.

현장 검거된 현행범의 마음으로 쓰러져있자 조금 늦게 달려온 오데트가 시우의 엉덩이를 빵빵 걷어찼다.

“조수님! 너무해요! 너무해요!”

한편 입으로만 할 수 있는 기술을 멋지게 성공한 오딜은 화가 난 것도 잊은 채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오데트 봤어? 봤어? 이거 성공한 거 처음이야!”

“그어어억…! 탭탭탭!”

시우가 일어나 아멜리아를 만나러 오는 동안 뒤늦게 눈비비고 일어난 쌍둥이는 텅 빈 시우의 침대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토록 고대하던 수확제의 하룻밤 데이트도 흐지부지 넘어갔다.

기껏 준비한 서프라이즈 선물도 작은 스승님께 압수당했고, 심지어 걱정하는 마음으로 간호하던 조수님은 일어나자마자 휭하니 사라져버렸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볼일로 자리를 비웠던 샤론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기에 합심해 시우를 혼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팔짱을 낀 샤론은 차가운 표정으로 지면과 뺨을 맞대는 시우 앞에 팔짱을 끼고 섰다.

“신시우 씨,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걱정한 사람들한테 말 한 마디는 하고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맞아! 너무했어!”

“일어나서 얼마나 기겁했다구요!”

샤론이 손짓하자 엉덩이를 걷어차던 오데트도, 탭을 받고도 팔을 풀어주지 않던 오딜도.

각기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샤론 옆에 기립한다.

그 부분은 시우도 할 말이 없었다

정신i휴리자마入『아멜리아를 만나러 가는 것이 급했다 한들, 곤히 잠든 쌍둥이를 깨우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한들.

당사자가 저렇게 느낀다면 죄가 깊은 것이다.

무릎 꿇던 자세 그대로 정중하게 머리를 박고 사과할 수밖에.

“죄송합니다…. 그게 실은….”

아직 샤론도 쌍둥이도 아멜리아와 시우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나마 쌍둥이가 옆에서 지켜본 것도 있고 난리 통 이후 케어도 도와주었으니 조금 더 알고 있는 정도겠지.

누가 뭐래도 쌍둥이와 샤론은 시우의 연인이다.

조만간 날을 잡고 이야기하려 했던 것인 만큼 우선은 간략하게만 고해성사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초반부를 넘기기도 전.

“어휴 됐어, 알겠어.”

“이것만 듣고?”

샤론은 진지한 표정으로 시우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말을 중간에 끊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그 정도면 충분히 들었다’라는 말투라 더욱 놀랍다.아직 절반도 채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샤론은 본심을 잘 숨기지 못한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생기거나 탐탁지 않은 일이 생기면 볼이 퉁퉁 부어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샤론이 짓는 것은 모자란 남자친구의 말썽을 관대히 이해하는 연상 여자친구의 표정이었다.

“일어나, 바닥도 차가울 텐데.”팔목을 잡아끌어 일으켜 세우더니 톡톡 먼지를 털어주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었다.

제대로 해명하기도 전에 이해받은 느낌이라 이거 뭔가 굉장히 면목이 없어졌다.

샤론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정작 아멜리아와의 갈등은 말해준 적도 없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다.

“미안.”

“약속 지켜서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지. 자, 이제 이쪽 차례.”샤론이 슬쩍 비켜서자 입을 댓 발 내민 오딜과 한숨을 꾹꾹 눌러 담는 오데트가 있다.

“조수님, 하나만 약속해. 멋대로 위험한 짓 않겠다고.”오딜과 오데트가 화내는 것이 단순한 질투심이나 아쉬움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비앙카와 싸우느라 사경을 헤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또 무모한 짓을 벌인 것.이것이 쌍둥이가 쌍쌍심지를 치켜세우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약속 안 할 거에요?”

하지만 오딜이 요구하는 약속은 시우로선 쉽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또 같은 결정을 하리란 것을 시우는 알고 있었다.

쉽게 어겨질 약속을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한 노력 할게요.”

시우의 대답에 눈썹을 꿈틀했다가 긴 한숨을 내뱉는 오딜과 오데트.

“에휴, 그럴 줄 알았다.”

“조?님은 예상을 벗어나질 않으시네요.”옛날부터 오지랖 하나는 알아줘야 했던 조수님이다.

말을 한다고 들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오지랖으로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던 쌍둥이가 이제 와서 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파렴치한 노릇.

“그럼 허락이라도 받아줘 조수님은 항상 뭔가 저지른 다음에 허락받잖아.”

“맞아요,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에요 예의.”부하직원을 다독이는 부장님처럼 시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준 오딜.

“언제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대신에….”

오데트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시우의 귀를 붙잡고 뭔가 속닥였다.

대충 잃어버린 수확제를 대신하여 어떤 ‘놀이’를 하고 싶다는 부탁 아닌 명령이었다.

이제 작은 사부님에게도 걸릴 것이 없어진 쌍둥이의 발언에 수위 제한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뭔가 대담한 제안에 엄청나게 파렴치한 단어들이 줄줄 나열되어 귀가 후끈후끈해질 지경이다.

“...아셨죠?”

애어 . . .어 . . .어 ....해

괴상하게 입을 벌리는 시우의 얼굴을 빤히 보던 샤론도 뭔가 감지한 모양이다.

“잠깐! 뭐야! 나 빼고 무슨 얘기야!”

“샤론 언니는 수확제에 이런 거 저런 거 다했을 거 아니에요. 한 번은 저희 차례로 양보해야죠.”

“그게 공평한 일인걸요?”

“아니, 그래도 이런 건 미리 협의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안했어요?”

상호의 이해관계에 따라 손을 잡기도 하지만 샤론과 쌍둥이는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

데이트 시간표를 짜는 것 역시 치열한 눈치싸움의 결과물이다.

심지어 사랑을 나누는 것조차도 말이다.

“했어, 하긴 했는데…!”

하지만 공교롭게도 샤론 역시 시우와 수확제를 충분히 만끽했다 말하기 어렵다.

물론 탈의실에서 아주 짧게 했지만 그건 인스턴트 라면 같은 것.

밤새 알몸으로 찰싹 맞붙어서 꽁냥거리는 우시장 소머리 국밥 같은 시간은 보내지도 못했던 것이다.

“했음 돗벗죠!”

“Gl S니는 매일 배부른 소리해요!”뭔가 억울한 샤론과 샤론의 억울함을 납득할 수 없는 쌍둥이의 언쟁은 지나가던 데네브가 망부석처럼 서 있는 시우를 발견하고 꼬투리를 잡아 타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

코하브 백작으로부터 최종심문이 끝난 당일 저녁 아멜리아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조사위원회로부터의 정보와 코하브 백작의 심문록을 규합한 에렐림 공작은 그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협의안을 도출했다.그것을 낭독하고 선고를 내리는 것은 에렐림 공작의 몫이었지만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세피로트의 나무에 속한 귀족은 배심원이자 한 명 한 명이 재판관이 되어 과실과 양형, 심문록 등을 살폈고 모두가 협의해 도출한 판결문을 읊는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커다란 회의실에는 많은 마녀가 바글바글 들어서 있었다.

아마 게헨나 재판 역사상 가장 많은 마녀가 방청객으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당연하지만 시우도 방청석에 앉아 조마조마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알비레오 백작님은 별일 없을 것이라 했지만, 최종 협의일은 오늘이었고 그녀 역시 회의에 참석했기에 시우는 판결문에 대해 듣지도 못했다.

선고의 결과는 까놓고 봐야 아는 것이다.

주변에서 힐끗이는 마녀들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우는 아멜리아의 옆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메리골드 남작은 게헨나 632년 12월 24일, 타로 타운에서 허가받지 않은 대규모 마법을 전개했음을 시인합니까?”

“네.”

정중앙에 선 아멜리아와 그녀를 내려다보며 최후 진술을 묻는 에렐림 공작.

새까만 흑발에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은색과 백색이 섞인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고저 없는 어조에 그럼에도 위엄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시민 다수에게 위협을 끼치고 더 나아가 게헨나의 존립에 위험을 끼쳤음을 시인합니까?”

“시인합니다.”

어차피 심문 상으로도 인정했던 부분이고 피해 사실 규명까지 끝난 안건이다.아멜리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 블랑쉬 에렐림 외 총 서른 한 명의 마녀가 협의한 사항을 공표하겠습니다.”

에렐림 공작은 판결문을 손에 쥐고 그것을 읽어내려갔다.

“아멜리아 메리골드는 귀족의 책무를 져버리고 속삭임의 마녀의 꾐에 넘어가 질서를 혼란케 했습니다.

또한 일신의 마법을 통제하지 못해 다수의 시민 및 대결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했으며, 사건 당일 수차례의 중단 요구에도 불응한 채 사태의 심각성을 가속했습니다.

따라서 메리골드 남작의 작위를 몰수하고, 58년의 구금형을 통해 자신의 죄를 돌아보게 한 이후 연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추방을 선고합니다.”

거의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으로 눈을 치켜뜬 시우와 느릿하게 숨을 마시고 다시 입을 여는 에렐림 공작.

“다만, 본 위원회는 선고에 다음 사항을 참작합니다.

아멜리아 메리골드 남작이 여태껏 많은 공적을 토벌한 점, 해당 사고가 지극히 우발적이었으며 실제 피해가 경미한 점, 제머나이 백작 예소드 백작 아베느

가 남작 외 쉰 건이 넘는 처벌불원 탄원이 접수된 점, 메리골드 남작 본인이 사건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을 보이는 점.

마지막으로 역대 메리골드가 게헨나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점은 감경 요소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다음 조항을 충족하는 조건으로 메리골드 남작의 구금과 추방형의 집행을 향후 10년간 유예합니다.

하나, 메리골드 남작은 작위를 반납하여야 한다.

둘, 본 사건으로 재산적 손실을 본 182명의 마녀에게 각기 금화 천 파운드를 배상하여야 한다.

셋, 금화 삼만 파운드를 시청에 벌금으로 가납하여야 한다.

넷, 위 조건이 모두 지켜지는 것을 기점으로 메리골드 남작의 구금 및 추방형의 집행을 영구히 유예한다.”

시우는 유예 조건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간단히 자판기를 두들겼다.아멜리아가 가납해야 할 금화의 총액은 이십일만 이천 파운드.

대충 금화 하나를 80만 원 정도로 어림잡고 곱하면….

“천육백구십육억 원…?”

10년 안에?

갚을 수 있는 돈이긴 한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시우와 상상 이상의 액수에 술렁이는 주변 마녀에 비해 정작 선고를 받은 아멜리아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마치 남의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상의 판결문은 게헨나 최고의 의결기관이자 집행기관 세피로트 나무의 논의를 거쳐 이뤄진바 메리골드 남작은 이에 불복하거나 항소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이상으로 재판을 마칩니다.”

재판은 짧고 굵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났고, 게헨나 역사상 최고의 피해 배상금 판결을 내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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