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47화 (447/917)

1.

“헉!”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난 시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느릿하게 흐르는 의식 속에서 기억을 건져 올린다.

타로 타운에서 일어난 대소란, 아멜리아를 만나기 위한 여정, 그 마무리까지.

식은땀으로 듬뿍 젖은 등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자 무릎 부근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흠냐….”

“쿠우….”

왼다리에 하나 오른 다리에 하나.

극세사 담요를 두른 채 시우의 다리를 쿠션 삼아 꿈나라로 떠난 쌍둥이의 정수리가 보였다.곤히 잠들었는지 슬쩍 다리를 빼고 침을 흘리며 입만 벌린다.

평소라면 그 귀여움만으로 1시간은 감상 타임을 갖겠지만, 지금은 때가 때이다.

아마 지쳐 쓰러져있던 것 같은데 아멜리아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후에 일은 어찌 정리되었는지.

조급한 마음에 이불을 들치고 내려서려던 시우.

“응?”

왼팔이 있다.

기억상으로는 팔목 부근까지 마법에 휘말려 깔끔하게 날아갔었는데.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뿐더러, 피부밑으로 지나는 정맥과 근육까지 여실히 들여 보이는 왼손이 있었다.

누가봐도 병실인 풍경과 침상이 아니었더라면 시우조차 꿈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 보니 ….

“감각이 없네.”

굉장히 정교하게 남의 손을 이어붙인 듯 손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당장 피아노도 칠 수 있을 것처럼 움직이는 주제에 감각만큼은 없다니.뭔가 위화감이 넘친다.

“코하브 백작이 이식해 준 자기(1器)로 만든 의수예요. 영체의 근본 구성부터 망가진지라 시술은 불가피했어요. 양해 바랄게요."“으악! 백작님? 어, 언제부터 계셨어요?”

헛기침 소리에 옆을 돌아보자 등잔불에 독서 중인 데네브 제머나이 백작이 보인다.

워낙 인기척도 없이 조용히 있던지라 화들짝 놀라 묻자.

“시, 심장아! 그렇게 놀랄 건 뭐죠?”

덩달아 놀란 백작도 고아한 눈썹을 뾰족하게 세우며 되려 시우를 책망했다.

“Oh 간병해주신 건가요? 감사합니다.”

“간병-? 당신이 행여 병상을 박차고 나오자마자 쌍둥이에게 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을까 감시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설마요.”

“설마라뇨! 당신이 수확제 당일 음란 행각을 벌이려고 준비한 장난감까지 압수했다구요! 도대체 이런 파렴치한 물건은 왜 존재하는 건가요? 불로 일소하여 정화해야 해요!”

라고 말하며 한번 포장을 풀었던 물건을 재포장한 듯한 박스를 붕붕 흔드는 백작님.

“그건 뭔가요?”

“모른 체하지 마세요!”

“아니 정말 모르는데요….”

당연하지만 쌍둥이의 서프라이즈 아이템을 시우가 알고 있을 리 없다.

이 또한 당연하지만, 그런 시우의 항변을 백작이 고이 접수할 리도 만무했고 말이다.

“언제나 예의주시하고 있을 테니 품행을 정갈히 하세욧! 하여간 남정네의 음심이란….”

쯧 혀를 차며 팔짱을 낀 백작은.

S가 말할까 말;입스을그14이다가 한숨으로 대신했다.

평소라면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말 시우의 표정이 꽤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하긴 데네브는 그가 잠든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 사정을 알고 있지만, 막 긴 잠에서 깬 그에게는 근래의 일이 암흑지대일 테니.오붓한 마음을 지닌(것이라고 추정되는) 메리골드 남작의 사정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아, 생각하다 보니 또 열받네.”

“네?”

에버그린 양도, 쌍둥이도, 예소드 백작도, 심지어 티페레트 공작과도 동시 교제 중인 마당에 일 인분 추가?심지어 천진난만한 쌍둥이를 꾀어서 이런 성인의 장난감까지 준비해놓고?

데네브는 시우의 목을 졸라대며 ‘양심은 있냐!’라고 추궁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가 병상에서 막 일어난 환자가 아니었더라면 당장 마법을 퍼부어 주었을 것이다.결코 그와 보냈던 하룻밤 때문에 손을 대기 껄끄러워진 것이 아니다.

“됐어요. 메리골드 남작에 대한 것이 묻고 싶은 거겠죠?”

“그렇습니다.”

그나마 주제 파악은 하고 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시우의 모습에 데네브 백작은 인내심의 끈을 다시 붙잡았다.

“그녀는 지금 지하감옥에 구속되어 코하브 백작의 심문을 받고 있어요. 당신이 쓰러진 당일부터 시작된 심문이니 이틀 정도 지났네요.”

“이틀이나요?”

“영체에 누적된 피로가 심하다고 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겠죠?”

통상적으로 영체는 피로를 쉽게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픽하고 쓰러질 고된 노동조차 어떻게든 해낸다.

마녀가 피로를 느껴 편안하게 잠들기 위해서는 중장비가 처리해야 할만한 노동을 하거나, 마법을 빡세게 썼을 때뿐이다.

“...요새 몸을 좀 험하게 굴리긴 했네요.”

“괜찮은 영체 조율사를 소개해 줄 테니 손을 보든가 하세요.”

“그건 둘째치고 아멜리아 님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시우의 몸 상태가 아니다.

데네브 백작은 아멜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언니와 에버그린 양이 나서서 에렐림 공작의 ‘심판’을 15분 정도 저지했어요. 그 사이 당신이 메리골드 남작을 아슬아슬한 시간에 되찾아왔고요. 다만 게헨나 침공에 버금가는 그녀의 행동은 아무리 남작일지라도 그냥 넘어갈 순 없죠.”

“그럼요?”

“세피로트의 나무에서 조사위가 결성되었어요. 메리골드 남작은 구속된 채 조사에 응하는 중이고….”

“심각한 사안인가요?”

데네브는 거의 달려들 듯 격하게 물어오는 시우를 피해 상체를 뒤로 획 젖혔다.그리고는 떨떠름하다는 표정으로 옷소매를 쥔 시우의 손을 떨쳐낸다.

“나 참, 마음 급한 건 알겠지만 자꾸 말 끊지 마요.”

“죄, 죄송합니다.”

“공적으로 지정되거나 추방되지는 않을 거에요. 우선 시민의 피해도 없었고, 속삭임의 마녀가 끼어든 정황이 있으니.”아멜리아의 기억 속에 클라라가 그녀를 부추겨 폭주를 유도했었다.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데네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클라라…?”

“알고 있었나요?”

“아뇨, 어쩌다 보니 이름을 알게 되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멜리아 님이 어떤 경위로 휘말리게 되었는지 제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자꾸 말 끊지 말랬죠. 아무튼, 배상금과 벌금을 적잖이 물어야겠지만 양형에 있어 작위가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너무 걱정 말아요.”데네브의 호언장담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그리고 조심스레 묻는다.

“지금 만나뵐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라지는 시우의 뒷모습.데네브는 허망하게 나머지 말을 내뱉었다.

“...세요. 어휴.”

저 바람둥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곤히 잠든 쌍둥이를 보자 괜히 또 부아가 치민다.

헝클어진 담요를 쌍둥이에게 다시 덮어준 데네브는 혀를 쯧쯧 차며 한숨을 번갈아 내뱉었다.

2.

몇 달 만에 이뤄진 소피아와 아멜리아의 재회.둘은 그간 미뤄두었던 대화를 와르르 쏟아내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으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조사가 끝나게 된다면 함께 차를 마시자는 계획까지.

아멜리아를 꼬드겨 난장판을 벌인 릴리스에 대한 소피아의 분노가 대화 지분의 절반가량을 차지했지만 말이다.

아멜리아는 그런 소피아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며 못난 친구를 둬 마음고생 했을 그녀를 보듬어 주었다.

따뜻하다.

혼자이기에 완성되는 거짓된 위안 따위가 아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는 따뜻한 시간.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 순간조차 자꾸만 마음속에 덜컹거리는 돌부리를 느꼈다.

사실 조사에 응할 때도, 조사가 끝나고 멀거니 돌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느꼈던 감정.

부채감일까. 기대일까. 미안함일까. 고마움일까.

끝없이 잠겨가던 어둠 속 아멜리아를 향해 팔을 뻗어주었던 시우를 기억한다.

그의 팔이 꽃이 되어 흩어지던 순간도, 그럼에도 아멜리아를 껴안아주던 순간도 기억한다.

시우는 괜찮다고 말했다.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아멜리아를 진정시켜주듯, 모든 것을 이해한 눈빛과 목소리로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상처입혔다.

못나게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마법으로 그에게 상처 입혔다.

수십가지 색의 물감으로 찍어낸 점묘화처럼 갖은 감정의 혼합물이 하나의 커다란 감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제와서 어떤 표정으로 그를 봐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역시 사과를 먼저 해야겠지.

그의 팔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서도, 그에게 독선적인 선의를 베풀며 모든 오해가 사라지기를 기다린 것도.

“그래서 말인데….”

아멜리아를 앉혀두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한참이나 떠들던 소피아가 별안간 말을 멈췄다.아멜리아 역시 조용히 숨을 죽였다.

-저벅저벅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는 계단으로부터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결코 여성의 것은 아니다.

이 늦은 시간에 기별도 없이 내려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추측에 획을 더한다.

신시우.

그것을 깨닫자마자 아멜리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현세를 떠돌며 꾸었던 수십 개의 악몽과 수십 개의 행복한 꿈.

여기서 악몽이란 시우와 완벽하게 틀어졌던 그날의 씁쓸한 회고였으며, 아직 오지 않은 어긋난 재회에 관한 아멜리아의 상상이었다.

여기서 행복한 꿈이란 그와 함께 오두막에서 추억을 쌓던 순간이었으며, 어쩌면 올지도 모르는 행복한 재회에 관한 꿈이었다.

그 결과물을 확인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시우는 분명 아멜리아를 껴안아주었다.

괜찮다고,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멜리아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직후로 워낙에 극적인 상황이었다.무릇 사람의 감정이 랑 분위기를 따르기 마련이 다.

그 당시 시우의 마음과 지금 온도가 같을 것이라고 보장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그의 옆에는 보란 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애인이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 앞에 놓인 것은 행복한 재회가 아니라, 몇 번이고 아멜리아에게 찾아왔던 악몽처럼.

결렬의 추체험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이별은 아닐지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희석된 감정이 헛돈 끝에 남남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비켜줄게.”

소피아는 아멜리아의 손등을 다정하게 쓸어주었다.일어서려는 소피아의 치맛자락을 꽉 붙잡는 아멜리아.하지만 이내 손에 힘이 빠지듯 소피아를 보내주었다.

시우는 아멜리아를 구하기 위해 와주었다.

그 험난한 고난을 넘어,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를 넘어 벌써 두 번이나 아멜리아를 위해 용기를 냈다.여기서 도망쳐버리는 것은 그의 용기에 대한 배신이다, 라고 읊조리며.

“잘할수 있을거야.”

“네, 고마워요. 소피아.”

소피아는 아멜리아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는 복도 코너 쪽에 서성이는 그림자를 향했다.

잠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아멜리아는 황급히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딱딱한 나무 의자에 정자세로 앉은 채 어찌해야 할지 모르며 발끝만을 바라보았다.

-뚜벅뚜벅

가까워지는 발소리, 인기척.

꿈에서만 꿈꿔왔던 그의 체취가 코끝을 간질인다.

터질 듯 쿵쾅 이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아멜리아는 조용히 시우를 올려보았다.

“...시우.”

매번 혼자만 부르던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2